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

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

$15.28
Description
국립대학 역사교육과 교수가 제기하는 우리 역사교과서에 대한 진지한 반론!
이 책은 역사교사 15년, 교육부 역사교육지원TF 파견교사 경력의 현직 국립대학 역사교육과 교수가 제기하는 우리 역사교과서의 시각과 서술 방향에 대한 진지한 반론이다.
저자 신유아 교수가 이 책에서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현 대한민국의 국사교과서들이 우리의 시각에서 역사를 본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한계’의 시각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우리가 도대체 왜 ‘그런’ 의도를 갖고 우리 역사를 보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우리 교과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관점과 의도는, 아무리 보아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 교과서들에서 가장 중시하는 ‘근대’의 시작이 왜 우리와 전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인지, ‘근대화’는 언제부터 세계사의 절대 과업이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역사 발전의 기준을 ‘근대’와의 접근성에 두고 있는 것인지, 우리 역사교과서는 왜 이러한 시각에 매몰되어 우리 역사 곳곳에 ‘한계’를 심어둔 것인지, 이것이 과연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안하는 바다.
저자

신유아

서울대학교사범대학역사교육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대학원에서‘조선전기체아직연구’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2000년부터2015년까지부천여자고등학교,세종국제고등학교등에서역사교사로근무하였고,2014년에는교육부역사교육지원TF에파견되어교과서내용분석등의업무를담당하였다.현재인천대학교사범대학역사교육과교수로재직하고있다.

목차

I프레임에갇힌역사
1.교과서가설정한‘한계’-우리는우리역사를어떻게보고있을까?
2.‘근대’라는이름의함정
3.‘객관’과‘실증’에대한강박
4.우리눈으로다시본조선의정쟁政爭-우리역사가특수해진이유
(1)성리학의역할
(2)사화士禍
(3)당쟁
(4)예송
(5)탕평

II프레임을깨는역사
1.신분身分의탄생
2.골품제의두얼굴
3.과거시험의위력
4.조선,능력이곧기회인시대
5.역사발전의의미와동력動力

출판사 서평

국립대학역사교육과교수가제기하는우리역사교과서에대한진지한반론!

이책은역사교사15년,교육부역사교육지원TF파견교사경력의현직국립대학역사교육과교수가제기하는우리역사교과서의시각과서술방향에대한진지한반론이다.
저자신유아교수가이책에서질문하고자하는것은,현대한민국의국사교과서들이우리의시각에서역사를본다고는믿기어려울만큼많은‘한계’의시각들로점철되어있다는점이다.나아가우리가도대체왜‘그런’의도를갖고우리역사를보게되었는가하는부분이다.우리교과서전체를관통하고있는관점과의도는,아무리보아도우리스스로가만들어낸것같지는않기때문이다.
현교과서들에서가장중시하는‘근대’의시작이왜우리와전인류의역사에서가장중요한사건으로군림하고있는것인지,‘근대화’는언제부터세계사의절대과업이되었는지,그리고우리는왜역사발전의기준을‘근대’와의접근성에두고있는것인지,우리역사교과서는왜이러한시각에매몰되어우리역사곳곳에‘한계’를심어둔것인지,이것이과연우리의미래에어떤영향을미치게될것인지,다시한번생각해보자는것이저자가이책을통해제안하는바다.

우리역사를설명할때,고구려와백제는지배층분열의‘한계’로,부여와가야는연맹왕국의‘한계’때문에멸망했고,신라의삼국통일은외세를끌어들여대동강이남의영토만확보했다는‘한계’가있고,신라는폐쇄적인골품제의‘한계’때문에멸망했다는인식,조선건국당시역성혁명이라는‘한계’,성리학의부정적영향을조선조의‘한계’라보고,조선의대동법과균역법은백성들에게별도움이못됐으며영조와정조의탕평책의‘한계’를설정하는등온통‘한계’만강조되는역사인식을‘객관적인’역사서술로포장해온것이지금까지우리의역사학,역사교육의주류가아니었을까.
저자는‘근대’의출현으로이전에존재했던인류의모든역사는‘전(前)근대사’가되어버린것이이런인식의바탕에있다고본다.우리에게는‘근대’이후의역사보다도훨씬더길고빛나는역사지만,그런‘old’한이야기는‘편협한민족주의’의산물로치부된지오래다.이제는마치태초에신이세상을창조하기전에이땅에아무것도존재할수없는것처럼,서양이‘근대’를창안해내기전에는우리에게제대로된‘국가’도,‘민족’도,‘혁명’도,그어떤찬란한‘문명’의역사도존재할수없는것처럼인식하게되었다.
이렇게된것이단지서구중심주의만의책임일까?‘전근대사’에‘한계’를설정해야할필요를느끼는쪽이단지‘근대’이후세계사의주도권을장악한서양만은아니었다.일제강점기때식민사관은물론이고,사회주의에입각한역사관에서도,혁명이전의역사는전부타도의대상일수밖에없었다.이역사관들이출현하게된배경은서로달랐지만,우연인지필연인지‘전근대사’를공격해야한다는점에있어서는모두이해관계가절묘하게일치했다.
경제결정론적역사관은세계사의주도권을서양에넘기는데든든한토대를제공했다.‘신석기혁명’과‘산업혁명’은,그래서예사로운작명(作名)처럼보이지않는다.우리역사교과서역시이러한경제결정론적시각에서자유롭지않다.우리역사교과서는언제부터인지조선후기를서양의‘근대’에가까이가져가려고안간힘을기울여왔다.아마도‘국사’교과서를상권과하권으로나누고하권을양란(임진왜란과병자호란)이후부터시작한바로그때부터였을것이다.이러한노력은구차할만큼세심하게이루어졌는데,그결과고려말에들어온이앙법이조선후기에널리확산되어생산력이증대하였고,그것이상품화폐경제의발달과부농층의성장등농민계층의분화를가져와곳곳에서‘자본주의적인’변화가일어났다는설명이주류로자리를잡게되었다.우리의‘근대’가서양으로부터이식된것이아닌,우리내부의변화에의해시작되었다는논리가제공된것이다.
역사발전의원동력이과연농법의변화와생산력의증대일까?그렇다면고려말에들어온이앙법이왜300년이나지난조선후기에야널리확산되었을까?우리나라사람들이법으로이앙법을금지한다고해서수백년이나얌전히말을듣고있을사람들인가?그많은산에들어가농사를지을수있는땅은거의다찾아내어농사를지어대는바람에토질의차이가커서땅의절대면적을단위로세금을걷을수가없어토지면적의계산법을이미고려시대에수확량기준으로바꾼나라가우리나라다.만약이앙법이노동력을그렇게획기적으로감소시켜주는농법임에틀림없다면,수백년이나그것을시도해보지않고묵혀둘사람들이아니다.이앙법은교과서설명대로봄가뭄이심한우리나라에적합한농법이아니었다.위험부담이너무나큰방법이었다.하지만조선후기에는그렇게큰위험부담을기꺼이감수하게만든무엇인가가있었고,그것이부를축적하려는욕구를자극하였을것이다.
조선전기와후기를나누는기준은이제는재론의여지없이양란이다.16세기를조선중기로설정해도,양란이후는조선후기다.전쟁이역사전반에끼치는영향이그만큼큰것이사실이기때문이다.그렇다면전쟁이인간의역사에끼치는가장큰영향은무엇일까?
다른나라의역사에서도모두마찬가지겠지만,전쟁에참여해서군공(軍功)을세운사람들에게아무보상도해주지않는나라는없다.그렇게해서는국가가유지될수없을것이다.하지만전쟁에참여한대가를돈으로충분히보상해줄만큼부유한나라는적어도전근대시기에는존재하지않았다.그렇다면당시국가가해줄수있는보상이무엇이었을까?돈도안들면서사람들이자신의전재산,혹은생명까지걸수있게만드는것은무엇일까?그리스아테네는수병으로전쟁에참여한사람들에게정치에참여할수있는‘기회’를주었다.그렇다면조선은무엇을주었을까?조선후기에신분제가크게동요하고서민계층이성장하게된것은정말로양란이후갑작스럽게늘어난저수지와이로인해확산이가능해진이앙법덕분일까?이제이런역사서술에대해서는진지한의문이필요한시기가되지않았을까.

저자신교수는이책을쓰는데에는많은용기가필요했다고말한다.소위‘주류’역사학자들에게는절대로용납받지못할그런이야기들을이책에서다쏟아내려했기때문이다.과거에도그리고지금도,우리사회는‘다양한’역사해석이가능한사회가아니라는것이저자의판단이다.저자는더이상역사발전의동력을경제적변화에서찾는것에동의하지않는다.역사는인간에의해발전하는것이고,역사를발전하게만드는인간의의지는자신과국가의운명을스스로의힘으로바꿀수있다는확신에서비롯된다.우리는이것을‘희망’이라고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