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동아시아 국제전쟁 (양장본 Hardcover)

임진왜란: 동아시아 국제전쟁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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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쟁사는 단순한 전투사의 총합이 아니다!
한국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이미지는 역사의 질곡과 권력의 정당화, 혹은 필요에 따른 ‘역사의 정치화’·‘선택적 기억’을 통해 때로 과장되고 때로 왜곡된 형태로 해석되어 왔다. 특히, 이순신과 의병처럼 이들이 비록 국난극복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해도, 전쟁에 대해 일부 전투사나 지나치게 개개 인물들(대부분은 이순신 연구)에만 집중함으로써 임진왜란 자체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시키고 오히려 편향시키는 문제를 만들어 냈다. 그러다 보니 실제에 입각한 임진왜란의 역사상(歷史像)은 올바르게 정립될 수 없었다. 그 최대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 혹은 조선·명과 일본의 전쟁으로만 보는 단순한 ‘일국사’ 시각과 전투사의 총합을 전쟁사라고 잘못 파악하는 시각이다. 임진왜란은 조선·명·일본이 복잡하게 얽힌 ‘동아시아 국제전쟁’이었고, 조선에 파견된 명군에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군사들도 편입되어 있었다. 물론 류큐와 동남아 지역 국가들이 임진왜란과 직·간접으로 관련되었던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연구가 되어야 할 과제다.
저자

이계황

1954년9월충남당진군면천출생
연세대학교문과대학사학과,대학원사학과석사졸업
일본교토대학박사과정졸업(문학박사)
현인하대학교명예교수
전인하대학교문과대학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전국사편찬위원회위원
전외교통상부독도정책자문위원
전제2기한ㆍ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위원
전고등학교동아시아사검정심의회위원장

목차

들어가며

1장임진왜란연구의현황과과제
머리말
한국학계의임진왜란연구현황
일본학계의임진왜란연구시각
맺음말을대신하여

2장임진왜란원인론
머리말
한국학계
일본학계
패전전/패전후
맺음말

3장동아시아속의임진왜란
머리말
도요토미권력의조선침략계획
명분없는침략-임진왜란
파죽破竹의진격/조ㆍ명군의반격
강화없는‘강화교섭’
허무한전쟁-정유재란
맺음말

4장정응태무주사건丁應泰誣奏事件과강화교섭
머리말
정응태무주사건의발생과강화교섭
명ㆍ일장수들의강화교섭/제1차정응태무주와조선의대응/제2차진주사파견
제2차정응태무주사건
조선의대응
맺음말

5장명군유철留撤을둘러싼조ㆍ명교섭
머리말
제1차철병-명의‘3만유병안’과조선의‘1만5천유병안’
제2차철병-명의‘1만5천유병안’과조선의‘8천유병안’
제3차철병-명의‘1만유병안’과조선의‘3천유병안’
명군의완전철병과조선의‘1천유병안’
맺음말

6장정유재란종결전후의강화교섭과조ㆍ명ㆍ일3국의동향
머리말
정유재란종기의강화교섭과조선
명ㆍ일장수들의철병교섭/쓰시마정벌론261
정유재란종결직후의강화교섭
강화교섭에서화호교섭으로의전환
맺음말

7장조ㆍ일화호ㆍ통호교섭
머리말
명군철수후의조선과명
쓰시마기미론313/명의동아시아전략의변화
조선과쓰시마의화호교섭
정탐사파견과조선·쓰시마의화호관계성립
맺음말

8장조ㆍ일화호관계의성립
머리말
조선·쓰시마의화호성립
‘회답겸쇄환사’파견을둘러싼조·일교섭
맺음말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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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임진왜란은한국과일본양국모두최대의역사업적을자랑하는연구주제이기도하다.그럼에도임진왜란은그원인조차정설이없고,임진왜란과관련한정응태무주사건,정유재란말기의강화교섭과정유재란종전직후의강화교섭에관한연구는거의없다시피하며,임진왜란후벌어진국교재개교섭을규정한요인들도,시기구분에대해서도명확하지않다.특히명나라원군으로말미암아조선의군사권·외교권이어떻게변화하고어떤과정을통해다시회수되는지에대해서도일관된관점이없다.
이때문에임진왜란전체과정(조·명·일)을찬찬히들여다보면갑갑한마음이들게된다.기존의임진왜란연구경향,즉일국사시각,전쟁사없는‘전투사’,타자없는역사,편향된소재중심의연구,사안들의관계에대한미천착등때문이다.많은연구성과가축적되었음에도불구하고임진왜란연구가재점검되고재정립되어야하는까닭이다.
이번에새로출간된「임진왜란-동아시아국제전쟁」에는이러한깊은고민들이고스란히담긴책이다.일본근세사를전공한저자이계황인하대명예교수는이미두권으로된「일본근세의새벽을여는사람들」을출간하여근세기일본의모습을개괄적이되세세한부분까지놓치지않고그려내보였는데,이번책을통해평생일본사를연구하며숙제처럼껴안고고민하던임진왜란문제를정면에서다루었다.책은제목그대로머리말에서부터임진왜란을조·명·일이긴밀하게관련된‘동아시아국제전쟁’이라고규정하고시작하였다.물론단순히명과류큐,그리고동남아여러국가가임진왜란과관련되어있었다는사실만들어,임진왜란을‘동아시아국제전쟁’이라고성격규정한것은아니다.임진왜란자체가조선·명·일본3국의국가이해가서로뒤얽혀있었고,해결방법역시이3국의이해관계와밀접히관련되어있었기때문이다.이러다보니오랜전쟁기간도대부분‘외교교섭’으로채워졌고,임진왜란이후의3국사이의관계도이전과는다른형태를보이게되었다.

저자는임진왜란의원인과전개과정에대해,일본은‘전국규모의대명영국제(大名領國制)’가갖고있는모순을해결하기위해,명나라는‘순망치한론,문정론’이라고하여명을지키기위해조선을전쟁터로만드는군사전략과전투를고려하였다.조선은책봉체제라는틀을이용하여명나라에일본을방어할원병을요청하여전쟁을수행했다.여기에서특히‘순망치한론,문정론’에따른명의원군파견은조선의군사·외교권을근본에서규제하는성격을띠고있었다(임진왜란을다룬영화나소설을보면서‘죽도록’고생해서승리를거두고도조선의장수가명나라장수에게꼼짝도못한다든가일견말도안되는명령까지받아들이며울분을참는것으로묘사되는모습에‘왜저러냐’며답답한심정을느껴보았을것이다).임진왜란은기본적으로이러한성격을띠었기때문에,전쟁중이나종전후조·일,조·명교섭은복잡다단하게전개될수밖에없었다.전쟁종결이후의동아시아국제관계도기존의책봉체제중심의명분외교에서벗어나현실을중시하는외교관계로전환하게된다.

저자는조선민중에게임진왜란은‘일본’과의전쟁이자‘명군’과의전쟁이었고‘지배층’과의전쟁이었다고단언했다.일본민중에게도이구조는마찬가지였다(‘조선’과의전쟁,‘명군’과의전쟁,‘지배층’과의전쟁).일본에게임진왜란은조선·명과의전쟁이었고,명에게는일본과의전쟁이었다(임진왜란이명나라민중에게어떤의미였는지에대한판단은보류하지만정유재란때동원된조선군이3만정도였던데비해조선파견명군은10만이상이었다고하니그로인한피해는상당했을수밖에없다).그럼에도저자가임진왜란의최대피해자였던조선·일본의민중에대해전혀언급하지못할것이라고미리고백하였는데,이책의구성에어울리지않기때문이라고하면서도전쟁에비참하게노출된민중을전쟁주체로서장악할자신과논리를구축하지못한점을반성하고있다.


임진왜란과조·일국교재개교섭역사에대한진지한고찰이여전히절실한이유
책은임진왜란발발직전부터정유재란후조·일국교재개까지의시기를다루었는데,오래전부터주장해온동아시아지역사의입장과전투사가아닌전쟁사의입장을반영하였다.책의도입부인〈1장임진왜란연구의현황과과제〉와〈2장임진왜란원인론〉은임진왜란연구시각과연구의성격을규정하기위한기초작업에해당한다.저자는학자들이인과법칙을그렇게강조하면서도임진왜란발발원인을둘러싸고여전히정설이없는희한한상황을언급하며,이것은역으로임진왜란연구에일관성과논리성,그리고역사상이없다는것을반증한다고보았다.
〈3장동아시아속의임진왜란〉에서는동아시아지역사로서의임진왜란상(동아시아국제전으로서의임진왜란)에대한입체적,동태적,총합적인서술을시도하였는데,특히조·명·일의타자성을인정한전투사가아닌전쟁사로서의임진왜란상=동아시아국제전쟁상을구축하고자하였다.이러한입장에서도요토미히데요시의조선침략계획,명분없는침략(임진왜란),강화없는‘강화교섭’,허무한전쟁(정유재란)순으로기술하며임진왜란의전체역사상을추구하였다.
〈4장정응태무주사건(丁應泰誣奏事件)과강화교섭〉에서는정유재란말기에명나라관리정응태가경리양호가명조정에올린울산성전투보고를허위라고상주하면서시작된사건을다루었는데,이사건에는명조정의일본과의전쟁을둘러싼강화파와주전파의대립,임진왜란발발과관련한‘조·일음결’즉조선과일본밀약설에대한의구심이포함되어있었다.따라서자칫조선이임진왜란발발책임까지뒤집어쓸사안이었고,이때문에조선이군사·외교권을근본에서박탈당할수도있었다.저자는이무주사건의발생과그에대한조선의대응을자세히다루어명조정과조선에파견된명장수들간의임진·정유재란에대한태도의차이를명확히하면서,명조정의동아시아전략의일단과이에대한조선의대응을살펴보고사건의역사적의의를밝혔다.특히이사건은전쟁이후조·명외교·군사관계,조·일국교재개교섭을근저에서규제한요소중하나로중요한의미를지녔다.
〈5장명군유철(留撤)을둘러싼조·명교섭〉은조선에파견된명군의주둔과철병을둘러싼교섭과정을세밀하게다루었다.유철문제는명군의조선내원(來援)과논리상수미관계에있으며,명과일본장수들간의강화교섭,일본군의재침가능성과그에대한조·명의대응과관련되어있다.조선에게는대일본강화·화호교섭과조선의군사·외교권회복,정응태무주사건과도관련이있었기때문에당시조선이풀어야할최대의정치·군사·외교사안이었다.이문제는오늘날외국군의주둔과철수를어떻게보아야하며,외국군의철수에얼마나지난한노력과고민이필요한지새삼돌아보게만든다.
〈6장정유재란종결전후의강화교섭과조·명·일3국의동향〉에서는정유재란종결전후시기에이루어진명·일장수들간의강화교섭과조·일교섭문제를다루었다.교섭에대해서는보통임진왜란기를주로다루고,정유재란기는소홀한편인데,사실임진왜란(정유재란포함)이후의조·일,명·일장수들간의교섭은정유재란종기의강화교섭을전제로진행된것이었다.여기에는조선왕자·대신의일본파견,조선의일본입조(入朝),조선주둔명장수들이일본군의철수로확보를위해명조정의허락도없이비밀리에인질을일본으로보낸문제등이복잡하게얽혀있었다.조선과명장수의대일강화교섭,조선과명장수들의유철교섭,조·일음결문제까지역시긴밀히관련되어있다.저자는조·명·일의상황변화에주목하면서이문제들을추적하였는데,다음장에서다룰조·일화호교섭의본격화가이문제들이해결을보고나서야진척되므로그전제가되는이문제들을명확히하였던것이다.
〈7장조·일화호·통호교섭〉은명군이철수한후의조·일화호교섭을다루었다.명군철수는명나라의동아시아전략변화를반영한것으로조·일화호를인정하겠다는의미였다.조선은철수를통해군사·외교권을확보하고적극적으로일본과의외교에도임하게된다.물론그렇다고조선이독단적으로일본과의외교를전개할입장은아니었다.‘조·일음결’문제는언제든지재현될수있었고,따라서조·명관계가우선정상화되어야했기때문이다.한편,쓰시마는경제적이익을위해조선과의교섭에최선을다했고,히데요시를이어일본최강자로올라선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는외교권을장악하여권력을강화하려하였다.이런배경하에조선과쓰시마의화호관계가성립하고,일본과의화호교섭으로넘어간다.
〈8장조·일화호관계의성립〉에서는조·일화호교섭과정과조·일교린관계의성립을다루었다.조선이일본과화호교섭에나섰다는것은조선이그토록지키려했던자주적인군사·외교권을명으로부터인정받았음을의미한다.일본은이에야스의장군직취임과관련하여조선에신사(信使)의파견을지속적으로요청하였다.그러나이런교린관계의성립을위해서는조선의경우,일본통치권자의확인,임진왜란발발책임론,그에따른사과와그표현으로서의신뢰성확보,국서의교환방법및조건등산적한문제를해결해야했다.

이책이다룬복잡다단한문제들을16~17세기에일어난그저옛날역사로만보고넘길수없다는것에대해저자는서글퍼하였다.우리는1953년휴전협정성립후휴전상황(남북군사대치)이고,남한에는적지않은미군이주둔하고있다.우리는이남북군사대치상황과미군주둔,그리고그것과관련한남북갈등의구조해소를위한어떠한노력을얼마나했을까?북핵과관련하여한·미,미·북,남·북의군사·외교관계에서자주회자되는‘코리아패싱’이나,남한에대한미국의군사·외교규제같은민감한문제들은이미임진왜란과종전후조·일국교재개교섭기에도보였다.조선은명군철수와조·일국교재개교섭을둘러싸고신중에신중을기하는피나는노력끝에군사·외교권을확보할수있었다.현재우리가처한상황을타개하기위해서도임진왜란과조·일국교재개교섭역사에대한진지한연구는필수불가결수밖에없다.임진왜란연구를그저가볍게권력과정권의이데올로기문제로보면안되는이유다.
짧게보아도저자는25년전부터명군의유병(留兵)과철병문제를제기하고또조선의군사·외교권을근저에서부터규제한정응태무주사건을제기하였다.그럼에도역사학계는여전히이문제들에대해진지하게답을찾으려는모습을보이지않고있다.저자스스로자신을새털처럼가벼운연구자로표현하면서자신을포함한역사학자들의얕은현실인식과그것에바탕한역사서술에계속부끄러움을느낀다고끝을맺었다.이는사실연구자뿐아니라일반독자들역시진지하게숙고해볼문제가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