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일본 메이지 유신의 3걸, 조슈번의 좌장 기도 다카요시!근대국가의 출발점에서 맞닥뜨린 대위기에 대처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추적하다
최근 우크라이나 ↔ 러시아, 이스라엘 ↔ 하마스·헤즈볼라 등 사이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이 유럽과 중동에서 각각 벌어져 위기상황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비단 유럽과 중동지역만이 아닌,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및 중국 ↔ 동남아시아 각국(필리핀·베트남 등) 간의 영유권 분쟁처럼 아시아 지역에도 현존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국가지도자의 냉철한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이러한 참에 시선을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근대의 출발점에 서 있던 과거 일본으로 돌린 심기재 교수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와 보신戊辰 전쟁」이 출간되었다. 지도자의 신념이 신생국가 근대 일본의 메이지 신정부 건설에 투영된 유신기 무렵, 조슈번長州藩의 좌장으로 신정부에 참여한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1833~1877)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다. 저자는 기도 다카요시가 특히 판적봉환版籍奉還[1869.7. 지방 번주藩主들이 소유 토지〈版〉와 백성〈籍〉을 천황에게 반환한 정치개혁]·페번치현廢藩置懸(1871.8.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현 등을 설치한 행정개혁) 등 수많은 근대화 작업을 주도하는 첫 걸음으로서, 근대 일본의 국가 운명을 좌우할 절체절명의 최대 내전이었던 보신 전쟁戊辰戰爭(1868.1~1869.5)에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상세히 살펴봄으로써 격동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교훈으로 삼고자 하였다.
흔히 메이지 유신 3걸三傑이라 하면 삿초薩長 동맹의 주역인 사쓰마薩摩 출신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함께 조슈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를 가리킨다. 그런데 ‘최후의 사무라이’로 불리며 후대까지 큰인기를 누린 사이고와 오늘날까지 일본정치의 중요한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오쿠보에 비하면 기도는 연구자와 일반인의 관심이 적은 편이다. 사실 기도는 다른 2인과 마찬가지로 오개조 서문五箇條誓文·판적봉환·폐번치현 및 점진적인 입헌제의 도입 등에서, 이른바 메이지 신정부의 기반을 다지는 뛰어난 정치적 능력과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저자는 강력한 개성을 자랑하는 사이고와 오쿠보 사이에서 내전 중에 직면한 수많은 국가적 과제들을 능숙하게 조율해낸 기도를, 특히 보신 전쟁의 처리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서한과 일기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우리의 시각에서 차근차근 추적하였다. 이는 기도 탄생 191년, 보신 전쟁 156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근대 국민국가 일본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기도라는 정치지도자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는 보신 전쟁 및 ‘전후처리’ 등에 대한 기도의 정치적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여 4부 총 8개 장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제1부에서 기도의 보신 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정치적 대응 노력과 보신 전쟁관을 개관했다. 제2부 제1장에서는 보신 전쟁 중 내내 구막부 지지세력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장한 기도가, 보신 전쟁의 최대전투라 할 도호쿠東北 전쟁의 ‘전후처리’ 즉 항복한 제번에 대한 처분과 행정구역 분할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검토했다. 제2장에서는 신정부측 관군의 과도한 진압 행위가 도호쿠 지역민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한 기도가, 이 지역의 민심 안정과 지방지배 확립을 목적으로 한 민정民政처리를 위해, 어떤 인식 아래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검토했다. 제3장에서는 도호쿠 전쟁이 막을 내리고 항복한 아이즈인會津人에 대한 ‘전후처리’ 과정에서 도출된 홋카이도로의 이주개척 문제와 관련해, 기도의 상황 인식과 정치적 노력을 살펴보았다. 제3부 제1장에서는 하코다테箱館 평정작업의 일환으로 당시의 수뇌부 중 최초이자 가장 적극적으로 기도가 추진하였던 ‘도쿠가와가德川家의 하코다테 출병’의 내용과 이를 둘러싼 신정부 요인들의 논의 과정을 추적했다. 제2장에서는 구막부 함대를 몰고 탈주하였다가 항복한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 등의 탈함정권 수뇌부에 대한 ‘전후처분’과 관련하여 신정부 내에서 벌어진 조슈파와 사쓰마파 간의 정치적 대립을 고찰했다. 제4부 제1장에서는 보신 전쟁 중 신정부에게 너무도 절실하였던 함선의 수배와 매입을 위한 노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경험 때문에 기도는 곧바로 신정부 자체의 해군력 강화에 전념하였다. 제2장에서는 메이지 원(1868)년부터 메이지 5(1872)년 2월 해군성 설치 무렵까지, 그의 정치적 동반자로 ‘일본 근대 군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향의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와 긴밀히 협력하며 해군 우선의 ‘병제’ 기초 확립, 그 재원의 마련, 해군사관 양성학교 설치, 해군함대 창설 등 해군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정치적 성과들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검토했다.
이러한 참에 시선을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근대의 출발점에 서 있던 과거 일본으로 돌린 심기재 교수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와 보신戊辰 전쟁」이 출간되었다. 지도자의 신념이 신생국가 근대 일본의 메이지 신정부 건설에 투영된 유신기 무렵, 조슈번長州藩의 좌장으로 신정부에 참여한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1833~1877)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다. 저자는 기도 다카요시가 특히 판적봉환版籍奉還[1869.7. 지방 번주藩主들이 소유 토지〈版〉와 백성〈籍〉을 천황에게 반환한 정치개혁]·페번치현廢藩置懸(1871.8.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현 등을 설치한 행정개혁) 등 수많은 근대화 작업을 주도하는 첫 걸음으로서, 근대 일본의 국가 운명을 좌우할 절체절명의 최대 내전이었던 보신 전쟁戊辰戰爭(1868.1~1869.5)에 어떻게 대처하였는지를 상세히 살펴봄으로써 격동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교훈으로 삼고자 하였다.
흔히 메이지 유신 3걸三傑이라 하면 삿초薩長 동맹의 주역인 사쓰마薩摩 출신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함께 조슈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를 가리킨다. 그런데 ‘최후의 사무라이’로 불리며 후대까지 큰인기를 누린 사이고와 오늘날까지 일본정치의 중요한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오쿠보에 비하면 기도는 연구자와 일반인의 관심이 적은 편이다. 사실 기도는 다른 2인과 마찬가지로 오개조 서문五箇條誓文·판적봉환·폐번치현 및 점진적인 입헌제의 도입 등에서, 이른바 메이지 신정부의 기반을 다지는 뛰어난 정치적 능력과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저자는 강력한 개성을 자랑하는 사이고와 오쿠보 사이에서 내전 중에 직면한 수많은 국가적 과제들을 능숙하게 조율해낸 기도를, 특히 보신 전쟁의 처리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서한과 일기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우리의 시각에서 차근차근 추적하였다. 이는 기도 탄생 191년, 보신 전쟁 156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근대 국민국가 일본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기도라는 정치지도자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는 보신 전쟁 및 ‘전후처리’ 등에 대한 기도의 정치적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여 4부 총 8개 장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제1부에서 기도의 보신 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정치적 대응 노력과 보신 전쟁관을 개관했다. 제2부 제1장에서는 보신 전쟁 중 내내 구막부 지지세력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장한 기도가, 보신 전쟁의 최대전투라 할 도호쿠東北 전쟁의 ‘전후처리’ 즉 항복한 제번에 대한 처분과 행정구역 분할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검토했다. 제2장에서는 신정부측 관군의 과도한 진압 행위가 도호쿠 지역민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한 기도가, 이 지역의 민심 안정과 지방지배 확립을 목적으로 한 민정民政처리를 위해, 어떤 인식 아래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검토했다. 제3장에서는 도호쿠 전쟁이 막을 내리고 항복한 아이즈인會津人에 대한 ‘전후처리’ 과정에서 도출된 홋카이도로의 이주개척 문제와 관련해, 기도의 상황 인식과 정치적 노력을 살펴보았다. 제3부 제1장에서는 하코다테箱館 평정작업의 일환으로 당시의 수뇌부 중 최초이자 가장 적극적으로 기도가 추진하였던 ‘도쿠가와가德川家의 하코다테 출병’의 내용과 이를 둘러싼 신정부 요인들의 논의 과정을 추적했다. 제2장에서는 구막부 함대를 몰고 탈주하였다가 항복한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 등의 탈함정권 수뇌부에 대한 ‘전후처분’과 관련하여 신정부 내에서 벌어진 조슈파와 사쓰마파 간의 정치적 대립을 고찰했다. 제4부 제1장에서는 보신 전쟁 중 신정부에게 너무도 절실하였던 함선의 수배와 매입을 위한 노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경험 때문에 기도는 곧바로 신정부 자체의 해군력 강화에 전념하였다. 제2장에서는 메이지 원(1868)년부터 메이지 5(1872)년 2월 해군성 설치 무렵까지, 그의 정치적 동반자로 ‘일본 근대 군대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향의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와 긴밀히 협력하며 해군 우선의 ‘병제’ 기초 확립, 그 재원의 마련, 해군사관 양성학교 설치, 해군함대 창설 등 해군력 강화를 위한 일련의 정치적 성과들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검토했다.
기도 다카요시와 보신 전쟁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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