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절의파 두문동 72현 연구

조선 초기 절의파 두문동 72현 연구

$42.80
Description
역사의 이면에 존재했던 고려말ㆍ조선초 두문동 72현을 비로소 역사의 표면으로 드러내다!
역성혁명과 대의명분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시대적 사회 변혁이다.
고려 후기 성리학의 수용은 사회 변혁의 사상적 이념이 되었으며, 이는 불교 중심 사회에서 유교(성리학)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현 학계의 통설에서는 사회 변혁의 주체는 성리학을 수용한 사대부들이자 성리학자들로서, 역성혁명을 통하여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는 것이다.
유교(성리학)의 근본이념인 대의명분을 지켜야 할 사대부들이자 성리학자들이 스스로 성리학의 대의명분에 어긋난 역성혁명을 도모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역성혁명을 도모한 것은 아니듯,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켰던 사대부들이자 성리학자들도 존재하였으니, 이들이 바로 두문동 72현이다.
저자 김보정 박사는 그간 현재의 통념으로 바라본 두문동 72현을 조선 후기 성리학자의 잣대로 새롭게 규명하였다. 역사의 이면에 존재했던 두문동 72현을 비로소 역사의 표면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학술적 의미가 있다.

두문동 72현의 자료와 존재
조선 초기부터 절의를 지킨 충신에 대한 지속적이며 간헐적인 예우와 추숭이 조선 후기 영조 27년(1751) 두문동 72인의 충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면서 역사상으로 드러났다.
두문동 72현은 누구인가? 그 구체적 인물상은 「두문동칠십이현록」과 「고려두문문동칠십이인」의 두 종류에 나타나 있으며 모두 조선 후기 자료라는 점에서 존재 여부의 신빙성을 두고 가타부타하지만, 이는 조선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받은 예우와 추숭의 결과로써 남겨진 자료이다.
저자는 이들을 고서족보(古書族譜)를 통하여 일일이 대조 분석한 결과, 당대 실존한 인물이었음을 밝혔다. 두 종류의 자료가 존재하는 것은 고려 말 역성혁명을 반대한 사대부들 가운데 대표적인 두 세력으로서 정몽주당과 우현보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 당쟁의 가운데 남인과 노론의 입장에서 바라본 두문동 72현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남인들은 『기우집』 의 「두문동칠십이현록」에서 정몽주를 대표적 인물로 선정하였고, 노론들은 우현보를 대표적 인물로 선정한 「고려두문동칠십이인」의 출처인 『화해사전』을 서술하였다.

두문동 72현의 사상 계승과 의미
두문동 72현이란 용어는 ‘두문동’이 갖는 정치 사건과 ‘72현’이 의미하는 유학 사상(성리학)이 함께 함축되어 있다. 이들은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올바르게 지키며 개국공신에 맞선 사상적 정치세력이었다. 정치적으로 두문동 72현은 고려 말 이색, 우현보, 정몽주 등이 중심이 되어 역성혁명을 전후하여 개국공신에 대립하는 정치세력으로서, 태조대 정치 탄압과 불합리한 정치 처우에도 불구하고 태종대 정치세력 내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그 자손들이 대간 세력으로 성장하여 정치입지를 굳힌다. 이를 이어 두문동 72현의 자손들은 세종대 집현전학사뿐만 아니라, 재상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등 조선의 정치세력을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 전기 정치세력의 흐름은 고려 말 절의파-두문동 72현-세종대 집현전학사-사육신-성종대 사림파 등으로 맥락을 잡을 수 있다.
또한 사상적으로 ‘72현’이 의미하는 것은 유학사상(성리학)의 도통(道統)이다. 조선의 국시(國是)는 성리학이다. 역성혁명을 반대한 근본이념은 바로 성리학의 대의명분에 있다. 두문동 72현은 단순히 충신이 아니라 성리학을 수용하고 이해하였으며, 이를 현실에서 행동으로 실천한 성리학자들이다. 이 책에서는 두문동 72현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서 정몽주, 원천석, 길재, 이행 등과 그들의 사상을 계승한 하연, 박서생, 강석덕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 등 모두 8인의 사상을 살펴보았다. 대의명분을 따라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사상은 세종대 집현전 학사를 거쳐서 사육신으로까지 계승되면서 조선 초기 사상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조선 초기 사상과 문화가 가장 꽃피웠던 시기를 이끌었던 세력은 두문동 72현의 자손들이었다. 이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에서 사회 변혁을 이끈 진정한 주체는 역성혁명을 성공한 개국공신이 아니라 역성혁명을 반대한 두문동 72현이었음을 의미한다.
대의명분에 어긋난 행동은 시대와 사상을 불문하고 오늘날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두문동 72현의 진정한 화두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김보정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ㆍ박사과정 수료, 졸업. 문학박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역임.
국민대학교 글로벌 인문ㆍ지역대학 한국역사학과 강사
저서|「포은 정몽주 1-그의 생애와 사상 및 문인」(2018)
「포은 정몽주 2-조선전기 사서(史書)를 통해 본 정몽주 인식」(2018).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서론

제2장 두문동 72현의 이해와 인물 분석
Ⅰ. 절의파와 두문동 72현
Ⅱ. 두문동 관련 자료
Ⅲ. 72현의 인물 분석

제3장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정치기반과 사상
Ⅰ.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정치기반
Ⅱ. 정몽주의 생애와 사상
Ⅲ. 원천석의 생애와 사상

제4장 태조~태종대 두문동 72현의 정치성향과 사상
Ⅰ. 태조~태종대 두문동 72현의 정치성향
Ⅱ. 길재의 생애와 사상
Ⅲ. 이행의 생애와 사상

제5장 세종~세조대 두문동 72현의 사상 계승
Ⅰ. 하연의 생애와 사상
Ⅱ. 박서생의 생애와 사상
Ⅲ. 강석덕의 생애와 사상
Ⅳ. 박팽년의 생애와 사상

제6장 결론

부록

출판사 서평

두문동72현의자료와존재
조선초기부터절의를지킨충신에대한지속적이며간헐적인예우와추숭이조선후기영조27년(1751)두문동72인의충신에대한제사를지내면서역사상으로드러났다.
두문동72현은누구인가?그구체적인물상은「두문동칠십이현록」과「고려두문문동칠십이인」의두종류에나타나있으며모두조선후기자료라는점에서존재여부의신빙성을두고가타부타하지만,이는조선초기부터지속적으로받은예우와추숭의결과로써남겨진자료이다.
저자는이들을고서족보(古書族譜)를통하여일일이대조분석한결과,당대실존한인물이었음을밝혔다.두종류의자료가존재하는것은고려말역성혁명을반대한사대부들가운데대표적인두세력으로서정몽주당과우현보당이존재했기때문이다.
그러므로조선후기당쟁의가운데남인과노론의입장에서바라본두문동72현에대한견해도달랐다.남인들은『기우집』의「두문동칠십이현록」에서정몽주를대표적인물로선정하였고,노론들은우현보를대표적인물로선정한「고려두문동칠십이인」의출처인『화해사전』을서술하였다.

두문동72현의사상계승과의미
두문동72현이란용어는‘두문동’이갖는정치사건과‘72현’이의미하는유학사상(성리학)이함께함축되어있다.이들은성리학의대의명분을올바르게지키며개국공신에맞선사상적정치세력이었다.정치적으로두문동72현은고려말이색,우현보,정몽주등이중심이되어역성혁명을전후하여개국공신에대립하는정치세력으로서,태조대정치탄압과불합리한정치처우에도불구하고태종대정치세력내의변화를가져오면서그자손들이대간세력으로성장하여정치입지를굳힌다.이를이어두문동72현의자손들은세종대집현전학사뿐만아니라,재상의반열에까지오르는등조선의정치세력을이끌고있다.그러므로조선전기정치세력의흐름은고려말절의파-두문동72현-세종대집현전학사-사육신-성종대사림파등으로맥락을잡을수있다.
또한사상적으로‘72현’이의미하는것은유학사상(성리학)의도통(道統)이다.조선의국시(國是)는성리학이다.역성혁명을반대한근본이념은바로성리학의대의명분에있다.두문동72현은단순히충신이아니라성리학을수용하고이해하였으며,이를현실에서행동으로실천한성리학자들이다.이책에서는두문동72현가운데대표적인물로서정몽주,원천석,길재,이행등과그들의사상을계승한하연,박서생,강석덕그리고사육신박팽년등모두8인의사상을살펴보았다.대의명분을따라절의를지킨두문동72현의사상은세종대집현전학사를거쳐서사육신으로까지계승되면서조선초기사상의흐름을주도하였다.
조선초기사상과문화가가장꽃피웠던시기를이끌었던세력은두문동72현의자손들이었다.이는고려에서조선으로의전환에서사회변혁을이끈진정한주체는역성혁명을성공한개국공신이아니라역성혁명을반대한두문동72현이었음을의미한다.
대의명분에어긋난행동은시대와사상을불문하고오늘날에도적용되지않을까싶다.
두문동72현의진정한화두는역사를바라보는새로운관점,사고의전환에서비롯되었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