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개요]
이 책의 중심인물은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시조로 평가되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입니다. 영국의 낭만주의는, 이성과 과학 중심의 계몽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문명의 반 명제인 자연과 문명에 노출되기 이전의, 곧 자연 상태의, 선하고 소박한 인간 심지어 창조 능력으로 규정되는 상상의 능력까지도 가능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표방하는 문학운동이었습니다. 영국 낭만주의는, 공식적으로는, 1798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작은 시집 『서정 담시』 1판이 출판되며 시작되었고 역사 소설가 겸 시인으로 알려진 월터 스콧(Walter Scott)이 사망했던 1832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20세기 초, T. S. 엘리엇(T. S. Eliot),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등이 나타나 모더니즘 문학을 창시하기까지 즉 19세기 말까지도, 다소 변형된 모습이긴 하나 여전히 낭만주의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영국에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워즈워스의 가족 상황과 그의 성장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그려집니다. 아버지 존 워즈워스와 어머니 앤 쿡슨 그리고 형제들의 삶의 궤적을 두루 살피고, 특히 워즈워스가 시인의 삶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그의 핵심 동반자였던 여동생 도로시 워즈워스(Dorothy Wordsworth)를 상세히 조명합니다.
워즈워스의 성장 파트에서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의 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워즈워스는 9세부터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하는 17세까지 총 8년 동안 호크스헤드 문법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이 학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문교육을 핵심 커리큘럼으로 했던 당시 영국의 K-12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라틴어 문법 교육과 라틴 문화권의 문학·역사·철학 분야의 책 읽기 및 그에 버금하는 글쓰기를 중시했던 이 학교는, 워즈워스가 최고의 글쓰기 능력을 요구하는 시인으로서의 잠재력을 키움에 있어 큰 역할을 합니다.
워즈워스의 교육에서 자연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막대합니다. 호크스헤드 시절, 워즈워스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경험함과 동시에, 자연과 함께 떼굴떼굴 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연과 밀접하게 접촉하며 성장합니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의 고요하고 선한 영향력을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느끼며 성장한 그는 ‘자연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자연에서 신을 보는 높은 상상력’이라고 하는 낭만 시인의 기본 자질을 갖추게 됩니다. 필자는 이 책에서 호크스헤드에서의 독서 경험이 워즈워스의 지적 성장과 시인의 능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자신에게 자연은 책보다 훌륭한 스승이었다는 워즈워스의 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워즈워스가 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할 당시, 친척들은 그가 안정된 중산층의 삶을 보장하는 성공회의 사제가 되기를 원했고 워즈워스도 친척들의 뜻에 부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워즈워스는 시인의 삶을 동경한 나머지 사실상 사제의 길을 접었고, 그가 사제가 되기를 바랐던 친척들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거의 무위도식에 가까운 대학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대학 졸업 직후 4-5개월 정도 백수로서 런던에 머물고 다시 몇 달 후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워즈워스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런던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 프랑스대혁명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면서, 혁명의 명분에 찬동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난한 이들, 사회에서 핍박받아온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을 적극적으로 소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생활에도 큰 변화가 옵니다.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소개받은 연상의 여성 아네트 발롱(Annette Vallon)과 사랑에 빠짐으로써, 프랑스 땅을 밟은 지 대략 1년이 지난 시점(1782년 12월)에 혼외의 딸 캐롤라인(Anne-Caroline Wordsworth)의 출생을 맞이합니다.
워즈워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3세에 양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가 되었고 경제적 뒷받침도 열악한 가운데 호크스헤드 문법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총명한 10대 청년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성공회의 사제직을 마다하고 생활수단이 되기 어려운 시인의 길을 고집함으로써, 거기에 프랑스에서의 낭만적인 행보로 인해 부양해야 할 가족까지 생김으로써, 삶의 무게가 가중되며 결국 정신적인 붕괴 직전까지 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동생 도로시가 그의 조력자로 성큼 다가왔고, 이어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또 한 명의 시조이자 거장 문인의 반열에 오르는 콜리지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도로시, 콜리지, 워즈워스로 이루어진 ‘3인방’ 시인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 공동체에 힘입어 워즈워스가 자신을 빛내 줄 새로운 종류의 시를 쓰게 됩니다.
삼인방 시인 공동체에 힘입어 워즈워스가 써낸 시들은, 워즈워스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인 산업혁명, 프랑스대혁명, 그로 인한 영불전쟁 등으로 인해 가난의 나락에 떨어진 시골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시의 중심으로 끌어들였습니다. 18세기까지 문학은 사실상 상류층의 취향에 맞추어진 것이었고 그런 만큼 상류층과 그들의 삶만이 시 문학의 소재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필자는 워즈워스가 ‘문학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을 선한 감성을 지닌 정상적인 인간 때로는 신성이 느껴지는 고귀한 인간으로 그려냄으로써, 단순히 시 문학의 소재를 하향 확장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보다 실체적인 문학의 민주화’를 이뤄냅니다. 이상적인 사회, 모든 이들이 굶주림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했던 프랑스대혁명의 명분이 나폴레옹의 야심과 함께 무너지면서, 워즈워스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의 삶을 시 문학에 담아내어 정치적 혁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혁명적인 자신의 소망에 다가간 것입니다.
[이 책의 특징]
이 책의 특징 혹은 강점은 그 디테일에 있습니다. 워즈워스가 시인의 입지를 다지는 초반 37년의 삶과 당시 생산한 그의 시 문학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워즈워스의 전기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의 기존 전기들이 워즈워스와 그의 작품 특히 후자 쪽에 포커스를 둔 나머지, 그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현실, 그 자신의 어려운 경제 상황, 가족, 친척, 친지, 친구, 사랑과 결혼 등의 문제를 가볍게 터치하는 선에서 끝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워즈워스의 기존 전기들은, 최소한 일반 독자에게는, 어렵고 재미없는 책으로 남고 맙니다. 반면 이 책은 소년기 및 그 이후 워즈워스를 둘러싼 개인적, 사회적 환경 심지어 그의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복원하여, 우리 독자들이 워즈워스라는 영미권 대시인의 탄생 이야기를 마치 동네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따라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워즈워스와 그의 주변인들이 생산한 그리고 그들에 관해 또 다른 이들이 생산한 각종 흥미로운 글을 활용하여, 역사책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현실의 문맥 안에서, 13세의 고아 소년이 세계적인 대시인으로 부상하는 대장정을 펼쳐냅니다. 그 대장정을 만들어낸 이 책의 특징을 항목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이 책은 워즈워스의 부모와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워즈워스 앞에 놓여 있던 경제·사회 이야기를 풀어내며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대략 2년이 지난 시점에 ‘워즈워스 대 론스데일’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법정 소송이 시작되는데, 이는 아버지의 고용주였던 론스데일 백작으로부터 아버지의 밀린 임금 등을 받아내기 위해 워즈워스의 친척들이 워즈워스와 그의 형제들을 위해 벌인 소송입니다. 이것이 론스데일 측의 정치적 영향력에 힘입어 20년 넘게 해결되지 않은 채 법정에 남음으로써, 워즈워스는 무일푼에 적지 않은 학자금 빚까지 짊어진 상태로 시인의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찾기 위한 법정 소송 이야기와 더불어 워즈워스 형제들의 직업 관련 이야기 또한 이 책에 등장합니다. 형제들은 당시 영국 중산층이 선호했던 법조인, 무역인, 성공회의 사제직을 직업으로 선택하는데, 그러한 직업을 향해 전진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이후의 그들의 삶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워즈워스를 둘러싼 당시 영국인들의 전형적인 경제·사회적 인식 및 처신의 현실을 피부로 와 닿게 복원해 낼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서 시인이라는 직업 선택이 가지는 의미 또한 부각합니다.
2. 영국 영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영어와 다른 점이 제법 많습니다. 영국은 미국과 다르게 역사와 전통이 길고 깊으며, 언어는 역사·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특히 워즈워스가 살았던 18-19세기는 아직 ‘전통 영국’이 실재했던 시기이기에, 당시의 제도와 그에 따른 어휘 설명이 필요합니다. 지방행정 시스템, 화폐, 법, 교육, 종교, 경제, 정치, 심지어 교통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가 그러한데, 흥미롭게도 그 제도들은 이후 변화를 거치지만 그에 따르는 어휘 중 상당수는 지금도 영국의 일상 어휘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별도의 박스 형태로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한 예로, 18-19세기 영국의 화폐가치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워즈워스의 아버지가 론스데일 백작에게 받아야 하는 돈이 대략 5,000파운드였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크기의 돈인지 필자는 별도의 박스 형태로 당시 영국 화폐 가치를 현재 우리나라 원화 가치로 환산하는 방법을 찾아 설명합니다. 이 책은 그 외에도 오늘의 한국인 독자들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영국의 여러 제도와 언어-변호사 양성 제도와 ‘법학원(inns of court)’이라는 용어 등-를 그 핵심적인 내용을 추려 짤막이 부연 설명함으로써, ‘모르는 것 따로 찾아보기’ 없이도 당시의 상황을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익숙하게 느끼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게 했습니다. 영시의 제목 등 영어 표현도, 필요한 경우 짤막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