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버마

1983 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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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83 버마』는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 수도 랭군(현 양곤)에 있는 ‘아웅 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외교사절을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6개국 순방길에 나섰다가 첫 방문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경호실장 등은 숙소에서 늦게 출발해 사건 당시 현장에 없어 화를 면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이 사건이 “북괴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한 뒤 비상경계태세를 발동했다.

전국적으로 ‘북괴 만행 규탄대회’가 열렸고 보복과 응징 분위기가 고조됐다. 버마 정부는 사건 발생 후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이 범인이라는 입장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자신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남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난 뒤인 11월 3일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버마 정부는 그 다음 날 바로 북한 외교관에게 출국을 명령했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강민철’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기로 감형됐다. ‘강민철’은 2008년 옥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책은 버마 사건과 관련하여 이제까지 한국 정부가 발표하고 여러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저자

강진욱

저자강진욱은『연합뉴스』에민족뉴스취재본부가있던호시절에북한부와남북관계부에서7년정도근무했고,그전후몇년외신부에서근무하면서분단체제의모순을제대로깨달았다.대학에입학하던1983년버마아웅산묘소테러사건이일어나고대학을졸업한1987년김현희사건이일어난것역시이땅의모순에눈뜨는계기가됐을것이다.어쩌면이들사건을통해깨달은이땅과세계의모순에대한고민은유전자처럼육신을지배했는지도모른다.아웅산묘소사건현장에서카메라를들었던언론계대선배를북한부기자시절찾아간것이나,30여년이지나이사건에대해책을내게된것도바로그때문이아닐까?2015년5월충남홍성주재기자로발령을받았고6개월뒤인그해11월부터안양주재기자로있다가2017년6월1일월간부로발령을받았다.

목차

●추천사(김종철자유언론실천재단이사장)
●책머리에
●제1부1981∼1982년전두환대통령시해모의사건들
●제2부아웅산묘소폭파사건의전조
●제3부전두환정권의자작극의혹
●제4부강민철의말한마디로북한소행임이밝혀졌다?
●제5부버마사건의마무리를위한‘다대포공작’,이어지는‘늑대사냥’
●제6부전두환정권의남북회담속셈과‘간첩선공작’
●제7부버마감옥에갇힌강민철,한국이관리했다
●제8부강민철은북파공작원이란말인가?
●제9부네윈의버마와미국,북한
●제10부여록
●버마아웅산묘소테러사건일지
●후기

출판사 서평

1983년10월9일,버마(현미얀마)수도랭군(현양곤)에있는‘아웅산묘소’에서폭탄이터져전두환대통령을수행하던외교사절을포함한한국인17명과버마인4명이사망하고수십명이부상을당했다.6개국순방길에나섰다가첫방문지에서벌어진일이었다.
전두환대통령과장세동경호실장등은숙소에서늦게출발해사건당시현장에없어화를면했다.전두환대통령은사건직후이사건이“북괴의소행”임을주장했고,남은일정을모두취소하고귀국한뒤비상경계태세를발동했다.전국적으로‘북괴만행규탄대회’가열렸고보복과응징분위기가고조됐다.
버마정부는사건발생후3주가지나도록‘북한’을특정하지않은채‘코리언’이범인이라는입장이었다.범인으로지목되어체포된‘강민철’은처음에는자신이서울에서자라고서울에서왔다고했으나,남한정부관계자들과만난뒤인11월3일자신이북한에서왔다고진술을번복했고,버마정부는그다음날바로북한외교관에게출국을명령했고북한과의외교관계단절을선언했다.
‘강민철’에게는사형이선고되었지만수사에협조했다는이유로무기로감형됐다.‘강민철’은2008년옥중에서사망한것으로돼있으나사실여부는확인되지않았다.

이책이다루고있는‘버마아웅산묘소테러사건’과관련된개략적인내용은위와같다.(흔히‘아웅산테러사건’이라고하지만,‘아웅산’은버마의영웅적인독립운동가이며사건이벌어진곳은그를기리는‘아웅산묘소’였다.)
이책은위의사건과관련하여이제까지한국정부가발표하고여러언론이보도한내용에의문을제기한다.
필자는사건이벌어지고오랜세월이흐른뒤에출판된책자들,특히당시대통령경호실장이었으며대통령과함께폭파당시현장에도착하지않아목숨을건진장세동,현장에있었던외신기자,순방일정을기획하던외무부장관이었다가사건당시고사에도불구하고뜻밖으로안기부장자리에있었던노신영,그리고김대중정부시절국가안전기획부와그후신인국가정보원에서1차장을지낸라종일등의책을꼼꼼하게읽으며,‘합리적의심’을굳혀갔다.
필자는당시한국언론의보도내용을세심하게검토했고,미국-남한,미국-북한,남한-북한,미국-버마,남한-버마,북한-버마등의외교와관련된정부문서들과연구서들을추적했다.한국과미국의정부문서가운데는얼마전에야일반인에게공개된문서도포함되어있다.그리하여1980년대초반,미국과한국의정권이북한을국제적으로고립시키기위한계획을세우고작전을추진하고있었음을밝혔다.
아울러테러범으로지목된‘강민철’이라는인물에대해남한정부관계자들이보인의외의연민과애정에주목했다.그리고북한의공작원이라는‘강민철’에대한여러묘사가남한의북파공작원이회고한것과너무도일치함을밝혀냈다.현직기자인필자는‘강민철’이수감되어있었다는미얀마의교도소에서근무했다퇴직한교도관과통화하여증언을듣는노력도기울였다.
그리하여필자는1983년버마아웅산묘소에서의폭발이전두환정권초기3년내내일어났다는‘북한에의한남한대통령시해기도’사건가운데하나라는결론에도달한다.아웅산묘소에서의폭발은북한을외교적으로고립시키기위한‘공작’이었다는것이다.
북한과버마는미국에반기를들고있던비동맹운동을주도하던두축이었다.버마에서북한이남한국가원수를살해할의도로테러를벌인듯사건을일으켜북한을비동맹운동에서고립시키고나아가국제사회에서고립시키려는것이당시정권의의도였다는것이다.물론전두환정권만의계획이아닌미국과의협조속에서이루어진작전이라는것이필자의생각이다.

제1부에서는전두환정권이1983년이전부터북한이남한의대통령을시해하려‘대통령시해모의사건’을꾸며왔음을밝힌다.그리고시해기도이유는번번이‘광주에서의학살을응징한다’라는것으로발표되어왔는데,전두환정부는버마에서의테러도같은이유로설명했다.
제2부에서는1983년사건이벌어지기직전에한국과버마에서벌어진일들을소상히소개하면서‘아웅산묘소사건’이기획되고준비되어왔음을밝힌다.사건당일을전후하여벌어진일들,우연으로돌리기에는너무도기괴한여러정황들(제3부)도필자의‘합리적의심’을뒷받침한다.아울러처음에는서울에서왔다던‘강민철’이북한공작원임을시인하는과정에안기부직원이간여한정황도밝힌다(제4부).
필자는버마에서의폭발사건이후다대포에서‘간첩’을생포한일이나여러국가를북한과의관계정도에따라분류하여외교관계를다시정립한일(“늑대사냥”)이모두버마에서의사건을마무리하는작업으로본다(제5부).
아울러필자는전두환시절에추진했던남북회담이북한으로하여금아웅산묘소테러사건을저질렀다고인정케하기위한속셈에서시작되었기에실패할수밖에없었다고밝힌다(제6부).
‘강민철’이북한의공작원이아닌북파공작원이라는의심은버마에수감되어있던강민철을한국정부에서관리한사실(제7부)로인해더욱깊어진다.제8부는강민철에대한정부관계자의묘사와설명이북파공작원스스로증언하는훈련과정과일치함을보여준다.
제9부는당시버마와미국의관계,버마와북한의관계를개괄하고,버마와한국이CIA의동시작전구역이었음도설명한다.
제10부는1983년버마에서일어난사건에견줄수있는여러사건을소개하고그에대한의혹도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