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이있구나.그것만으로도감사하다.명칭이있다는것은다른이들도경험했다는뜻이고,남들도겪는거라면나는미친게아니다.미치지않았다면나을수있다.”
중증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테레사는심리상담사게리와일곱번째만나고나서야자신이20여년넘게겪어야했던심신의상태에이름이존재한다는것을알게된다.남에서상해를입거나폭행이나죽임의위협을당하는외상을겪은피해자는마비된듯한공포,두려움,무기력등극심한반응을보이고,악몽,플레시백,불면증,시도때도없이불쑥불쑥떠오르는생각들로그외상을끝도없이되풀이해서겪는다.그리고공포,수치심,죄책감등은반복해서경험하는고통에대한회피로이어진다.
나는강간당했었다
집앞주차장에서성폭행을당한테레사.이때의사건은촉발제가되어이십여년전(열아홉살때)어느밝고청명한날오후안개가살포시찾아든무렵,동네에서겪은끔찍했던강간의기억들을다시불러일으킨다.일상생활이어려울정도로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심해지면서더는스스로를방치하면안된다는절박함에테레사는심리상담소를찾는다.
글로든말로든강간의경험을다른사람앞에서드러내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니지만,테레사는그어려운시간들을통과하기위해노력한다.최근의강간에서시작해,이십여년전의강간,강간으로인한임신,자살기도,유산,이후남편과의사이에서생긴아이유산등.떠올리는것만으로도버거울수있는기억들을글과말을통해충분히들여다보고애도하는과정을거쳐몸과마음의평안을조금씩되찾을수있었다.
테레사는3년동안심리상담을받고자신도심리상담을공부해상담사가된다.테레사는성폭력피해로인해아직도속이아물지않아아파하고있는더많은이들과치유의시간을함께나누기위해‘떠올리는것만으로도아팠을그기억들’을책으로드러낸다.보기좋게포장하는법없이용감하게실제상담의세세한내용과과정의속내를보여주는테레사의이야기는,한국에사는또한명의강간피해자를용감한생존자로거듭나게돕는다.
그여자의용기있는번역,<그녀의불편한진실:강간피해생존경험드러내기>
“아무도먼저요구하지않았다.의뢰가먼저있었던것이아니라,문득책을펴고번역을시작한것은그야말로어느날갑자기였다.얼마동안하다가말지도모르겠다고생각한것도다름아닌나자신이었다.하지만,멈추지않았다.멈춰지지않았다.아마도그것은명상을하는듯이내자신깊은곳으로빠져들수있는위안이되었기때문일것이다.”-강영일기중에서
테레사이야기에마음이동한강영은대학과대학원에서영어를전공하고,서른즈음환경조각학과에서미술을공부한덕에문자언어와이미지언어를넘나들줄아는여자다.그는2008년조각,그림,퍼포먼스,노래등을통해어린시절겪은강간의기억을드러내는개인전를연다.전시공간을찾은이들에게속시원한해방감,치유와안식이흐르는시간을만들어준그는개인전을열기전부터다양한작업을해왔다.
강영은제10회이프안티페스티벌에서는자신의속내를담은드로잉에세이를그림곁에앉아사람들에게들려주고,제2회국제사운드아트페스티벌에선란타이틀로섹슈얼트라우마를당당하게드러내는라디오방송을진행한다.5회문화미래이프주최여성전용파티에선늦은밤거리에서도사회적약자들이신변의위협을느끼지않고행복하게자신을드러낼수있는공간인<춘화제작소>를차린다.또한사운드아트의일부로여성싱어송라이터시와와함께,듣는사람들의마음을보듬어주는노래를만들고,피해경험을바탕으로공감과성찰의시간을갖는‘수다포럼’을연다.2009년말에는대한민국최초성폭력생존자다큐멘터리<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에출연해성폭력피해자들에게재갈을물리는사회안에서성폭력피해의경험과함께살아야하는삶이어떤것인지전한다.
이러한작업물을통해보여준일관된진정성은<>를우리말로옮기는작업으로이어진다.“혼자무턱대고시작한만큼과연끝까지해낼수있을까하는의구심이없지않았고특정부분에서는읽기조차겁이나서저도모르게제안에서일어나는거부반응을다스리느라다소힘들”어하면서도번역을끝내마무리한다.그리고이용감한여자의뚝심덕에이책은지금여기,대한민국을사는성폭력피해자들을위한치유안내서<<그녀의불편한진실:강간피해생존경험드러내기>로출간된다.
이책1부는저자가3년여에걸쳐심리상담가와나눈50여차례실제상담내용을담고있다.시작단계,중간단계,마무리단계의특징을통해서예상되는여러단계들을보여줌으로상담이어떤식으로진행되는지를알려준다.
2부에서는피해자들이해결해야하는삶의영역(감정,정신,육체,성적치유,가족/친구)을규정하는데도움이되는좀더구체적인정보를피해자들이궁금해할만한질문에경험자와전문가가답변하는형식으로제공한다.“데이트강간도진짜강간인가요?”“왜어떤냄새를맡으면강간범이떠오르는것일까요?”“그일이있은후로는왜집중할수가없죠?”“왜아죽작은소리에도깜짝놀라는걸까요?”“도대체어떤남자가이런짓을할수있죠?”“더주의했더라면이런일은일어나지않았을까요?”“상담을받고싶지않은데,다른방법이있을까요?”“왜자해를하고싶을까요?”“내몸에서분리된느낌이에요.왜성욕을느낄수없는걸까요?”“특정체위가감정적으로매우힘든데,어쩌면좋을까요?”“만지려고하면움츠려드는데어쩌면좋죠?”“아내를보호하지못한것을자책하고있습니다.그녀역시그럴까요?”“딸이고의적으로자해를하고있는듯해서안타깝습니다.어떻게해야할까요?”한국상황에대한자료는한국성폭력상담소의도움을받아덧붙였다.
3부에는한국에서도움이될만한책(어린이,청소년,일반),영상,기관(여성긴급전화,원스톱지원센터,웹사이트,전국성폭력상담기관,장애인성폭력상담기관,아동성폭력전담기관,성폭력전담의료기관)의정보를실었다.
아무것도아니었다고말하지말아요
영화에서아니,현실에서우리는‘머리에꽃꽂고다니는여자’를더러목격한다.그들은혼자감당해내기버거운혼돈을경험하고그것을영영기억에서지우려는몸부림을하고있는것은아닐는지.데레사라우어,강영,두여자는용기내어이책을쓰고옮기는작업을통해강간을비롯한죽음과도같은혼돈을홀로외로이숨죽이며겪고있는이들에게구원의손길을내민다.도와줄테니이제그만무거운짐을내려놓으라고,당신은혼자가아니라고.
성폭력범죄율세계2위를자랑(?)하는대한민국에서피해자로숨죽여살아가는이들에게,
아무것도아니었다고말하지말아요/아무것도아닌척말아요/아무것도아니었다고말하지말아요/아무것도아닌게아니잖아요/난유니콘/내잘못이아냐,그렇죠?/제발그렇다고말해줘요(<유니콘>,강영시|시와곡)
책에공감하는분들을위한Tip
*책을읽고난후가보면좋을모임:한국성폭력상담소(www.sisters.or.kr)주최로3월부터11월까지그달마지막수요일저녁서울홍대부근카페에서열리는성폭력피해자지지모임‘작은말하기’.
http://cafe.daum.net/small-but-big-talk
*책과함께보면좋을다큐멘터리:대한민국최초성폭력생존자다큐멘터리<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http://blog.naver.com/vstalkshow
*책과함께보면좋을작품:강영의개인전를채웠던작업들.강영,밤의아이,남현,곰이참여하고싱어송라이터시와가함께만든노래<괜찮아>,<유니콘>.
http://www.kangyoung.co.kr
<책속으로추가>
(...)이는열아홉의내가상담을하러온다면들려주고픈얘기이기도하다.
나는그녀에게그것이자신의잘못이아니었다고말해줄것이다.그때도아니었고,지금도아니며,한번도그녀의잘못인적이없었다고말해줄것이다.함께하는시간동안다양한감정의스펙트럼을겪게되겠지만,그감정의의미는곧바로이해되기보다는다른어떤것에더긴밀하게연결되어있을것이라고말해줄것이다.무엇을입었건,무슨말을했건,어떤행동을했건간에강간을겪었어야할이유는전혀없었다고들려줄것이다.잠을잘수있게될때,악몽은마침내사라질것이라고말해줄것이다.하지만방심하고있을때다시찾아올지도모른다는걸알려줄것이다.3년에걸쳐받은상담이언제나앞뒤논리정연했던것처럼제시하고싶어도그렇게하지않으려고애쓸것이다.실제로그렇지않았기때문이다.오히려여기저기올이풀린누더기마냥정돈되지못했고,입밖으로뱉지못한숱한혼돈의말들이었다.혼자서명상에잠길때마음을휘저어놓는낯설고여린감정은누군가와나눌수있을때에훨씬덜해질것이라고말해줄것이다.받아들일수없는것을받아들이는일은지극히힘든것이며,그저항감으로인해기운이다소진될것이라고얘기할것이다.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대한치료는힘들지만중요하다고얘기할것이다.그리고나아지기이전에더욱나빠질수도있음을알려줄것이다.삶에서친밀감과사랑을다시경험할수있을것이며,그것은아마도오히려기대하지못한영역에서일것이라고말해줄것이다.죄책감과수치심은대부분의강간피해자가겪게되지만,너무신경쓰지말라고얘기해줄것이다.그것은아무데도쓸모가없는것이다.그녀에게때가되면다시금사람들이마음속으로들어올수있게된다고알려줄것이다.사람들을받아들이는순간이올것이며,이역시때가있기에충분히여유롭게시간을갖는일이무엇보다중요하다고말해줄것이다.
하지만무엇보다도,그녀가혼자가아니라고말해줄것이다.
-상담95,186~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