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조금

거짓의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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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나를 살리는 일에 관한 고백,
그것을 위한 거짓의 조금
『연애의 책』『식물원』『작가의 탄생』 시인 유진목 산문집

시집 『식물원』『작가의 탄생』 등을 통해 탄생과 동시에 삶의 바깥에 골몰하며 삶과 죽음의 어긋난 시간에 관해 노래하던 시인 유진목이 이번에는 “무엇이든 많은 것을 요구하는” 도시에서 달아나 끝내 살아남은 이야기, 자신을 살리는 일에 관한 고백을 이어간다. “나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다른 것이 되지 못한 나는 나인 채로 살고 있다”는 시인의 고백 사이에는 미움과 원망, 증오와 후회, 그리움과 사랑을 먹고 자란 최선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죽음이 끝이고 삶이 시작이라면, 『거짓의 조금』은 끝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저자

유진목

1981년서울동대문에서태어났다.2015년까지영화현장에있으면서장편극영화와다큐멘터리일곱작품에참여하였고,1인프로덕션‘목년사’에서단편극영화와뮤직비디오를연출하고있다.2016년시집『연애와책』이출간된뒤로는글쓰는일로원고료를받을수있게되었다.2017년산문집『디스옥타비아』,2018년시집『식물원』을썼다.부산영도에서서점‘손목서가’를운영하고있다.

목차

도시에서|어제는|풀베는냄새|인생을처음부터다시|벌레같은|이책슬퍼뒤짐|눈에띄고싶어|벌레이야기는그만|잘못된정보|스물한살무렵|가족을떠나기위해|무엇이든괴롭히지않고|아빠는어디에있는지|용돈을모아서|하나님을찬양하는피아노|교회는남의것을갖고|올바르게살아가기에어긋난|꿈에가끔전처가|몇가지일들을거짓으로|부엌에서|중학교3학년때|내가없는곳|병원에있는동안에|유리통창너머에서|휘게체조|시집교정지를보기에좋은환경|최상의집중력|죽음은|사랑은|밤이면그저아무것도|성욕은|섹스는|아무일도일어나지않고|협잡꾼|멀리서출발한바람|아빠는|여관에서|세계문학전집|거짓말|잡지편집장과출판사대표|결말|가능성|나는오직이것만이|왜살아요?|조심해야한다|그렇다면당신이야말로|똑똑한사람|신촌로터리|오빠에게|재일한국인|처음버린아이는|아빠가죽으면|다른삶|혼자서저녁을먹고싶다|하지못한말|단테|내가아닌모든것|나는나인채로|나중에|삶을너무사랑하더라도|내가태어나서본것|마음의준비|거짓말한사람|엄마에게|가족을떠나|저절로죽었으면좋겠어요|아빠에게|추신

출판사 서평

도시는무엇이든많은것을요구하는곳이었다

도시는무엇이든많은것을요구하는곳이었다.가진것을다주어야도시에겨우있을수있었다.도시에서‘나’는오랫동안비참하고아무것도아니었다.엄마는떠나버린아빠대신자신과‘나’를동시에괴롭혔고,‘나’는엄마를견디려고나를괴롭히는수밖에없었다.

나는태어난것이싫었다.
나를태어나게한것은부모였다.
나는부모가싫었다.(38쪽)

그러다부모와떨어지기위해혼자가되고,부모를만나지않기위해다시혼자가되는삶이반복되었다.그러나‘내’가처음으로잘한일이있다면가족을떠난것이다.그다음잘한일이있다면가족에게주소지를알리지않은것이다.세상에는안전한삶을찾아가족을떠나야하는사람들이있다.


나는왜깨어났을까

죽음은잠과같았다.‘나’를괴롭히는“벌레같은인간”들을미연에방지하지못한‘나’는“차마눈을뜨고살수없어종일잠만잤다”.그리고깨어났을때는내것이아닌팬티를입고소변줄을끼우고있었다.나는왜깨어났을까.그때가장먼저한생각이었다.

나는왜태어났을까.이생각은태어났을때는하지못한것이다.하지만이렇게간단히죽는구나생각하고서다시세상으로돌아왔을때는생각했다.나는왜태어났을까.죽음은잠과다를바없었다.(61쪽)

하루는신이나에게물었다.어디로가고싶어요?나를괴롭히는사람이없는곳으로요.거기가어딘데요?내가없는곳이에요.


끝에서부터다시시작하는이야기

죽음이끝이고삶이시작이라면,이책은끝에서부터다시시작하는이야기이다.죽음은기억할것들의끝이었고,흘러가는것들의멈춤이었고,더이상싫어할수도없고,사랑할수도없다.잠에서깨어난‘나’는이제다시기억하기시작한다.하지만그것은이전에는“알지못하는처음”이다.

내게시작된것은옮겨다니는집들,나를멀리하는아이,팔꿈치로방바닥을기어다니던뒷집오라비,내처음친구동이,동이는오라비의동생,대문앞의밤두꺼비,손톱을물들이던호박의꽃술,논을가로지르는붉은뱀,단무지공장에빠져죽은아이,버스안에서굴러가던나의도시락가방,그리고다정한엄마와나를때리는엄마,나를웃게하던아빠와여관방에숨어있던아빠.(83쪽)

엄마와아빠,그리고절대로아빠를다시만나지않겠다고하는오빠에게편지를쓴다.부모가정말싫지만,‘내’가태어나서본것들을생각하면태어난것이좋기도하다.하지만여전히그들이보고싶진않고,그러나그들을마주할마음의준비를하기전에그들이먼저죽을까무섭다.
‘나’는내가아닌모든것이되고싶었지만,그렇게다른사람이되고싶어서매번새로운문신을새기지만,결국“다른것이되지못한나는나인채로살고있다”.병원옥상에서‘웰빙’과‘힐링’을기원하는“휘게체조”를가르쳐주고,죽을거면시집을내고죽으라는,유리통창너머로손을크게흔들어주는다정한친구들덕분에,그리고한번시작된사랑은계속되어야한다는마음으로지금의사랑을지키기위해.그렇게해서‘나’는병원에있는동안내가가진최상의집중력을사용하여시집교정지를보기시작했다.그리고“삶을너무사랑하더라도무서워말자”고다독이며밖으로나갈준비를마친다.

지난날들을훌훌털어버리고살아갈수있게해주어서고마워.(169쪽)


<책속에서>


가족을떠나기위해결혼을하는대신에나는집을떠나혼자가되었다.처음집을나온것은열여덟살때였다.그첫날을또렷이기억하고있다.내가밤에잠들지못하는것은바로그날부터였다.나는술을먹지않고는절대로잠들지못했다.(36쪽)

나는그가부엌으로가는것만은막고싶었다.그가부엌으로가면모든것이끝날것이라는것을알았다.사랑은모든것이었다.꿈에서나삶에서나사랑은내게모든것이었다.오지마.거기그대로있어.나는인간의말이아닌소리를내지르며꿈에서깨어났다.사랑을지키려고한번도사용해본적없는언어로나는외친것이다.사랑은시작될수도있고시작되지않을수도있다.하지만시작된사랑은끝나서는안되었다.한번시작된사랑은계속되어야했다.그것이나의방식이었다.(53쪽)

그러나이제다른도리는없었다.나에게책임은체념과집념이함께하는것이다.언제나나는아무것도하고싶지않다는생각을하면서,아무것도하지않을수있을때까지아무것도하지않다가,결국에는체념하고집념을다해내게주어진일을마친다.교정지의마지막장을덮을때는정말이지죽을힘을다했다고생각하고서혼자웃어버렸다.(69쪽)

죽음은기억할것들의끝.흘러가는것들의멈춤.더이상행동할수없음.볼수없음.만질수없음.느낄수없음.그리하여싫어할수없음.사랑할수없음.저기저공원에서있는나무.걸어가는오래된.저기사람들이걸어가네.도시를바라보며아래로.(70쪽)

다른사람이되고싶어서문신을새긴다.새문신이생길때마다다른사람이되었다고생각한다.생각을그만하고싶어서영화를본다.잘만든영화를보며질투를느낀다.나는아무것도하지않으면서무엇인가해낸사람을질투한다.음악을듣는다.노래를따라부른다.일어나춤을춘다.다른사람앞에서노래하는사람을동경한다.무대에서춤추는사람이되고싶다.나는내가아닌모든것이되고싶다.(141쪽)

나는새로산옷과새로산구두가처음으로마음에든다.새로산수영복을입고여름에는바다수영을하자.나는나와약속한다.삶을너무사랑하더라도무서워말자.나는나를다독인다.(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