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2000년의 역사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

용병 2000년의 역사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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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쟁기업가인 용병대장, 그들은 누구인가?
『용병 2000년의 역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인 '용병'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다.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그야말로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했던 용병은 보수만 준다면 어제까지 적이었던 편에서 다시 일하는 것조차 사양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성심이나 조국애 같은 관념과는 완전히 반대 위치에 있던 용병들이 거대 권력에 징발되어 조국을 위해 몸을 버리는 국민전쟁에 참여하고 이국으로 팔려가는 용병노예 같은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한 예로 고향 주정청의 뻔뻔한 돈벌이로 전투에서 형제가 서로 죽여야만 했던 스위스 용병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용병다운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

기쿠치요시오

저자기쿠치요시오(菊池良生)는1948년,이바라키현에서출생.와세다대학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고현재메이지대학교수로재직중이다.전공은오스트리아문학,주연구테마는독일?오스트리아문화사이며특히합스부르크가에대한연구에조예가깊다.유럽근대,합스부르크가,용병제등의주제로연구와집필을계속하고있다.저서로≪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크가의영광≫≪싸우는합스부르크가≫≪합스부르크를만든남자≫≪이카로스의추락≫≪개의죽음≫등이있다.

목차

제1장크세노폰의도주극
세계에서두번째로오래된직업
크세노폰의만인대
아테네의쇠퇴와용병의발생

제2장팍스로마나의종말
병역은로마시민의긍지
시민군에서지원병제로
용병의시대가시작되다
오도아케르의권력찬탈

제3장기사의시대
전사계급의탄생
아르바이트에열심인용병기사들
기사용병시장의탄생
악명높은용병기사단

제4장이탈리아르네상스의꽃용병대장
한나라의운명을움켜쥔용병대장
국장으로치러진용병대장
도시국가,용병에의존하다
용병대장에서밀라노공작으로
용병들의사기극전쟁
상비군같은용병부대
전쟁을바꾼스위스장창부대

제5장피의수출
기병군의대패
스위스서약동맹의발족
타지로나간용병은스위스최대의산업
부르고뉴전쟁
사악한전쟁(마라그에라)
노바라의배반

제6장란츠크네흐트의등장
막시밀리안1세와남독일용병부대
란츠크네흐트의고향
란츠크네흐트vs스위스용병부대
‘자유’야말로우리의정체성
란츠크네흐트의병사모집
역사상보기드문민주적인군대
주보상인의존재
전쟁기업가용병대장의자격
란츠크네흐트의아버지
파비아전투

제7장끝없이이어지는사악한전쟁
독일농민전쟁
사코디로마
남미까지사악한전쟁을수출하다
란츠크네흐트의악명
용병의수요가폭발적으로늘어난16세기유럽

제8장란츠크네흐트붕괴의시작
스페인제국의생명줄
네덜란드독립전쟁
마우리츠의네덜란드군제개혁
보병?기병?포병의확립
네덜란드의약진

제9장국가권력의앞잡이가된용병
독일30년전쟁과절대주의국가의성립
보헤미아의반란
갑옷과투구를입은거지
15만명의군대를조직한용병대장
구스타프아돌프의군제개혁
구스타프아돌프의죽음과발렌슈타인의암살
‘국가의식’과용병의지위저하

제10장태양왕의용병들
프랑스절대왕조의탄생
태양왕루이14세
루이14세와스위스용병
낭트칙령의폐지와위그노유출
와일드기스
스페인왕위계승전쟁
스위스용병의비극

제11장용병의슬픈역사
오스트리아계승전쟁
프리드리히대왕의군대
프로이센군의병사사냥
아메리카로팔려간독일용병
횡행한병사사냥

제12장살아남은용병
국민군의탄생
‘조국이아니면죽음을’
‘피의수출’금지
프랑스외인부대의탄생
외인부대를지원하는사람들
현대의용병들

출판사 서평

역사의전환점마다그이면에는언제나용병이있었다!

세계에서두번째로오래된직업,용병

매춘다음으로용병은역사상가장오래된직업이다.용병은권력자의입맛에따라그야말로쓰고버리는소모품에불과했다.용병은고용주를가리지않는다.보수만준다면누구라도좋았다.보수는토지도아니고명예는더더욱아니다.오로지현금뿐이었다.그리고군복무가끝나면어제까지적이었던편에서다시일하는것조차사양하지않았다.권력에좌우되지도않았다.그들은원래권력이란것을경멸하기때문에그런권력에자기인생을바치는충성심따위가지고있을리없다.이것이란츠크네흐트로대표되는16세기의용병이었다.적어도란츠크네흐트는자신들의비참한처지를잊고싶어,주인이따로없다는자부심과각오로살고있다는환상에빠져있었다.그러나용병들이그토록경멸하는권력은미처깨닫지못하는사이그들을꼼짝못하게옭아매는힘을가지게되었다.그것은아이러니컬하게도충성심과는관계없이싸워온용병자신들덕분이었다.강력한권력은용병들에게서‘주인이따로없다’는자부심과각오를빼앗았다.고향주정청의뻔뻔한돈벌이로전투에서형제가서로죽이는짓을해야했던스위스용병의비극적인이야기는용병다운기반이무너졌다는것을보여주고있다.이제유럽용병은자유전사의모습은완전히사라지고,거대권력에징발되어어딘가이국으로팔려가는용병노예같은양상을띠기시작했다.

스위스용병의비극
유럽최대의경제위기인14세기,기사들에게도위기가덮쳤고기사들은현금수입을올릴수있는길을찾아다녔다.영주를위한군역을금전으로대납하고그자신들은기사용병으로서돈을벌어들였다.
십자군원정이끝나고졸지에일자리를잃어버린전투병력은마침내금맥을발견했다.도시국가들이항쟁하던14세기의이탈리아였다.이탈리아르네상스는용병대장의시대였다.
이탈리아는르네상스의탕아들이오로지흉포한에너지가날뛰는대로음모,암살,배반,간통을일삼는막다른골목에와있었다.
바로그럴때였다.이탈리아사람들은지금껏듣지도보지도못한엄청난수의군사들이침략해오자몸이얼어붙을정도의공포에빠졌다.그것은프랑스기사군이었다.
이탈리아사람들을공포에떨게한것은프랑스군에섞여있는다수의용병,특히보병의중심을이루는스위스장창(長槍)부대였다.피리와북소리에맞춰힘차게리듬을타는행진방식,원시적인무대뽀습관,용맹함과잔인함이가득한전장에서의외침소리등,스위스장창부대원들은세련된르네상스문화를향유하고있던이탈리아사람들눈에는말과행동,그무엇하나도경악하게만드는외계에서온사람들처럼보인것이다.
척박한산간지역에서자란덕택에하체가단련된강건한남자들이일할곳이라곤별로없었다.그래서남자들은돈벌러타지로나갈수밖에없었고,당시대규모의고용을보장하는최대의산업은단연전쟁뿐이었다.이렇게해서스위스의남자들은용병이되었다.일할데가없는건강한젊은이들이앞다투어용병모집에응했고,용병은스위스최대의산업이되었다.그야말로‘피의수출’인것이다.
그러난스위스각주정청은전쟁양측에모두스위스병사를팔아넘겼고급기야스위스병사끼리전투까지벌어지게된다.스위스병사는자신의조국정부에‘배반당하고팔려간것’이다.

독일용병란츠크네흐트의등장
15세기말~17세기동안약2백년에걸쳐유럽의전장뿐아니라신대륙남미를포함해세계도처에나타나사람들을떨게한,군사역사상매우특이한군사조직인란츠크네흐트이등장한다.“란츠크네흐트는복장과무기면에서스위스용병부대보다훨씬낭만적이고다채로웠다”는것이일반적인평가였다.특히그복장은괴이하기까지했다.
란츠크네흐트는군당국으로부터관리통제를받지않는자신들만의자치조직을갖고있었다.병사집회는현재의노동조합과비슷한기능을하며급료의미지급에대한항의,‘돌격수당’같은특별수당의획득,약탈품의공동분배등,공동결정권을행사하며군당국의온갖부정행위를감시했다.그런의미에서란츠크네흐트부대는군역사상보기드물게민주적인군대였다.

전쟁기업가용병대장,그들은누구인가?
그럼이처럼특수한군대인란츠크네흐트부대를이끄는연대장,즉전쟁기업가인용병대장은어떤사람들일까?
병사들에게있어서연대장은악랄한방법으로자신들의피를빨아먹는악덕기업가였지만그렇다해도연대장이있고나서야병사들이있는것이다.부대내에서의재판권,전투중의작전지휘등,연대장은그야말로병사들의생살여탈권을쥐고있었다.
병사들은연대장의고용주가누구건상관하지않았다.최고사령관이어느나라의군주건,적이누구건,누구를위한전쟁이건전혀관심없었다.오로지어느연대장을따라가야급료를밀리지않고받을수있고,많은약탈품을얻을수있는가에만관심이쏠려있었다.
많은수의용병대장이전투에서공을세우면위험시되고,반대로전투운이나쁘면곧장해고되었다.언뜻화려하게보이지만용병대장들이서있는곳은서서히무너져내리는모래성과같았다.
그래서용병대장들은생각했다.매사에적당히하는것이좋다.즉이기지도않고지지도않는것이무엇보다중요하다.그래서서로맞붙은용병대장들은미리짜고서싸움을질질끌었다.이를두고마키아벨리는“밀집대형을짜지않고흩어져서전선에돌입하는이탈리아식공격방법에대해작은전투라는이름이붙어있다”라며통렬히비난했다.그야말로이탈리아르네상스판전쟁게임이었다.
용병대장호크우드는돈에대한집념에서는누구못지않았다.영국의유복한상인의아들로태어났으나평소좋지않은행실로인해조국을떠나프랑스로흘러들어간후이탈리아에모습을드러낸그에대한일화가있다.
어느두명의수도사가“신이당신에게평화를내리시기를!”하고공손하게인사를하자호크우드는“신이베푸신너희들의양식을다시거둬들여뒈져버리기를!이빌어먹을놈들아,신이나에게평화를내리면나는뭘먹고살란말이냐!”라고소리쳤다.
용병대장은“전쟁은전쟁에서영양을섭취한다”라는단순하면서도효과적인자금회수방법을발견했다.즉승리한쪽이벌이는일상적인약탈보다그몇배규모로약탈을실행하는것이다.그리고이러한용병대장뒤에는자금을대는민간투자가가있었다.

일본에도용병이있었다
임진왜란직후부터나타났다.약10만명의일본군이조선으로건너갔고,그리고돌아온병사들은갈곳을잃었다.그렇다면돈에굶주린병사들이동남아시아로눈을돌린것도전혀이상할게없다.사실스페인의마닐라총독은스페인왕펠리페3세에게일본인용병의위험성을보고하기도했다.
동남아시아는스페인과포르투갈같은동양무역의선두주자와네덜란드,영국등후발주자가격돌하고있던전장이었다.양측모두용맹을떨치고있는일본인용병을몹시원했다.이렇게해서수많은일본인들이동남아시아곳곳을휩쓸고다녔다.
그런데도쿠가와막부는1621년일본인용병의해외진출을금지했다.또한무기수출입금지령을내리고일본이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유력한병참지가되는것도완강히거부했다.그것은유럽각국의치열해진식민지전쟁에일본이휩쓸릴까봐두려웠기때문이다.

프랑스혁명과루이14세
루이14세는스위스용병을특히총애했는데,그가어린시절연못에빠져위험에처해있을때스위스호위병이구해주었기때문이라는이야기가있다.
루이14세때스위스인구는약90만명이었고,그중12만명이프랑스군을위해일했다.따라서스위스병사는프랑스의단순한용병이라기보다프랑스국왕으로부터급료를받는동맹자나다름없었다.
1792년8월10일,프랑스혁명세력은왕이사는튈르리궁전으로돌격했다.이때튈르리궁전을지키던스위스근위병은최후의한명까지싸우다가모두전멸했다.그리고열흘후프랑스에상주하던스위스연대4만명의병사가해고되었다.약3백년에걸쳐프랑스군의중추를담당한스위스용병부대가프랑스에서사라지는순간이었다.
파리로진격하던혁명군속에서갑작스레“프랑스국민만세!”라는소리가들려왔다.그것은“프랑스국왕만세!”가아니라틀림없이“프랑스국민만세!”였다.
외침소리는순식간에프랑스전군으로퍼져나갔다.프랑스군병사들은이때처음으로‘조국아니면죽음’을의식한것이다.이렇게해서유럽역사상최초의‘국민군’이탄생했다.즉이때부터프랑스의전쟁은왕가에의한왕조전쟁이아닌국민전쟁이된것이다.동시에그것은용병부대의종언을의미하는것이기도했다.

프랑스외인부대의탄생
7월혁명(1830년파리에서일어난부르주아혁명)으로샤를10세를몰아내고왕좌에오른루이필리프시대는극도로혼란한시대였다.유럽각국에서내란이일어나망명객들이프랑스로몰려들었다.사회는불안했고알제리에서는식민지전쟁이계속되고있었다.하지만본국의군대를파견하기에는불안한상황이었다.
골치아픈망명객,도피자들,부랑자들그리고군대가해체되어불만에차있던군인들을모아‘외인부대’를만들어알제리로보내싸우게한다는것이었다.말하자면이부대의당초목적은당시프랑스가손에넣은식민지알제리의점령정책을위해서였다.
아프리카에주둔하는외인부대병사들은병사인동시에도로공사장의인부이기도했다.낮에는뜨겁고밤에는격심한추위속에서병사들은전투가없을때는카빈총을옆에두고도로공사에종사했다.프랑스정규군은절대그런일을하지않는다.그래서외인부대를지휘하며주로알제리전선에서싸웠던프랑스인장군들은‘아프리카촌놈’이라고멸시당하며군의핵심에서늘밀려났다.

현대의용병들
최근리비아의시민혁명에가다피는용병3000명을투입해반정부군을공격하고있다고알려졌다.예나지금이나전장은용병들에게있어서최대의돈벌이장소이다.현대의용병들은예전처럼먹고살기위해서만용병의길을택한사람들이아니다.그들이굳이사지로향하는것은자신들몸에깃들어있는모험심때문인지도모른다.
그들은자신들의정체성을찾아전장을헤매고다닌다.그러나죽음을마주한곳에서만자신의정체성을표현할수밖에없는그들은한편으로는서글픈인간들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