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19.37
저자

후쿠자와유키지

지은이_후쿠자와유키치
1834년12월12일(양력1835년1월10일)일본오사카에서태어났다.후쿠자와유키치의아버지후쿠자와햐쿠스케(福澤百助)는나카쓰번(中津藩,오늘날의규슈오이타[大分]현)의하급무사로서유키치가태어날당시오사카의나카쓰번구라야시키(藏屋敷)에서근무하고있었다.2남3녀중막내로태어난유키치는1836년에아버지를여의고온가족과함께나카쓰번으로돌아와그곳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1847년부터한학(漢學)을배우기시작했고1854년에는형의권유로나가사키에유학하여난학자오가타고안(緖方洪庵)의데키주쿠(適塾)에서난학(蘭學)을배웠다.1858년에도의쓰키지뎃포즈(鐵砲洲)에위치한오쿠다이라번(奧平藩)나카야시키(中屋敷)에난학주쿠를개설했다.그러나이듬해나가사키를방문했다가영어의필요성을절감하고영어를독학하는한편이난학주쿠를영학(英學)주쿠로바꿨다.1860∼1867년에는막부에출사하여번역업무를하는관리로일했다.이기간에세번에걸쳐막부의해외사절단의일원으로미국과유럽을시찰하는기회를얻었다.1868년4월쓰키지의영학주쿠를신센자(新錢座)로이전,당시의연호를따서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라고명명했다.메이지유신이후에는재야의대표적계몽사상가로서저술과번역작업에힘썼으며,『학문을권함』『문명론의개략』같은책을통해‘독립자존’의국민정신함양에의한국민국가형성과대외적독립의달성을제창했다.1879년도쿄학사회원(東京學士會院,현재의일본학사원)초대회장에취임했고,1882년에는『지지신보』(時事新報)를창간했다.1901년1월25일뇌출혈로세상을떠났다.그가남긴수많은저작과번역은당대는물론후대의지식인과대중들에게까지지대한영향을미쳤다.특히『학문을권함』『문명론의개략』과더불어이책『후쿠자와유키치자서전』은그가세상을떠난지한세기가지난지금도일본인들의필독서이자애독서로끊임없이인구에회자되고있다.

옮긴이_허호
이1954년서울에서태어났다.한국외국어대학일본어과,일본쓰쿠바대학문예언어연구과석박사과정을마치고바이코학원대학에서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미시마유키오를비롯한일본근대문학전공.현재수원대학교일본어학과교수이자번역가로

목차

목차
초판서문
어린시절
나가사키유학
오사카수업
오카타주쿠의기풍
오사카를떠나에도로가다
처음으로미국에가다
유럽각국에가다
양이론
다시미국으로
왕정유신
암살걱정
잡기
일신일가(一身一家)경제의유래
품행과가풍
노후의생활
옮긴이의해설
후쿠자와유키치연보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문명개화’의선구자

근대일본을이야기할때결코빠뜨려서는안되는인물가운데한사람이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이다.그는19세기의일본에서번역가,문필가,계몽사상가,교육자,언론인으로서빼어난업적을남겼다.번역가로서는많은번역어를만들어냈으며,문필가로서는공전의베스트셀러가된다수의책을썼고,계몽사상가로서대중계몽에크게기여했다.뿐만아니라교육자로서일본최초의사립학교인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를설립하여일본의근대화를선도할인재를양성하는데힘썼으며,『지...
문명개화’의선구자

근대일본을이야기할때결코빠뜨려서는안되는인물가운데한사람이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이다.그는19세기의일본에서번역가,문필가,계몽사상가,교육자,언론인으로서빼어난업적을남겼다.번역가로서는많은번역어를만들어냈으며,문필가로서는공전의베스트셀러가된다수의책을썼고,계몽사상가로서대중계몽에크게기여했다.뿐만아니라교육자로서일본최초의사립학교인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를설립하여일본의근대화를선도할인재를양성하는데힘썼으며,『지지신보』(時事新報)를창간하여언론인으로서도한역할을톡톡히해냈다.그리고이런그의유산은오늘날에도면면히이어지고있다.그가만들었던번역어들―civilization=문명,enlightenment=개화,speech=연설,competition=경쟁,copyright=저작권등등―은일본뿐만아니라우리나라까지도사용하고있고,그의저작들은현재일본에서근대의고전으로끊임없이읽히고있으며,게이오기주쿠는일본의명문사립대학인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발전했다.또한그의사상은마루야마마사오(丸山眞男)를비롯한많은학자들의중요한연구대상이되었고,『지지신보』는『산케이신문』(産經新聞)으로그명맥이이어졌다.일본근대화의주역들,더엄밀히말하면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주역들이일본군국주의의부침과함께명멸해갔지만평생토록현실정치와일정한거리를유지했던후쿠자와유키치만은일본에‘문명개화’를가져온선구자로서의이미지를계속해서간직하고있다.일본에서현재통용되고있는만엔권지폐에인쇄된그의초상이그것을단적으로말해준다.

후쿠자와유키치의인간적인면모

이책은한인간으로서후쿠자와유키치가살아온인생을직접구술한것을기록한자서전이다.후쿠자와는이자서전에서막부말기와메이지시대로이어지는근대일본의격동기를헤쳐나가면서자신의뜻한바를하나하나이루어나가는과정을담담하게회고하고,자신의정치관과경제관그리고사생활에관해서진솔하게이야기한다.그의이야기를들어보면후쿠자와는대단히열정적이고자존심이강하고맺고끊는것이분명하고무슨일을하든인내심을갖고최선을다해노력하는사람이었던것같다.그리고무엇보다도두주불사의술고래였다.이책에서가장재미있는일화들도대부분술에얽힌이야기들이다.나중에크게결심하고술을끊긴하지만아무튼술에관한한둘째가라면서러워할사람임을후쿠자와는여러차례언급하고있다.그리고후쿠자와집안의가풍이나자신의자녀교육관에대한이야기에서는당시의세태를엿볼수있을뿐아니라오늘의우리에게도시사하는바가적지않다.후쿠자와시대역시부모들의교육열이대단했던모양인데,후쿠자와는자신이글을비교적늦게(열서너살때부터)배우기시작했음에도불구하고남들보다빠르게한문과네덜란드어와영어를익힌경험이있어서인지기본적인예의범절과예능교육외에는조기교육에반대하는입장을피력하고있다.그래서자신이낳은9남매에게건강하게자라기만을바랐지공부하라는잔소리를일체하지않았다고한다.그리고젊은사람들이학교를졸업하면너나할것없이모두국가관리가되어편하게살려고시험공부만한다고한탄하기도한다.또한가지재미있는것은그의경제관념이다.그는이론적으로는자본주의의생리나돈의중요성을잘알고있었지만요즘식으로말하면재테크에는별관심이없었던것같다.쓸데없는지출은최대한줄이면서도꼭필요한때는과감히썼으며,남에게돈문제로아쉬운소리하지않고줄돈은주고받을돈은받는것이마음편하다고생각하는타입이었다.

 
‘근대인’으로서후쿠자와유키치

이런인간적인면면들외에이책에서가장흥미로운것은후쿠자와가양이론과쇄국이대세를이루던시대에왜신변의위험을무릅쓰면서까지서양문명을적극적으로받아들이게되었는지를설명하는부분이다.가난한하급무사의막내아들로태어난후쿠자와는봉건적인신분제도에반감을갖게되었고문벌제도라는악습의근원이한학(漢學)에있다고판단,이를타파하기위해서양학문에뜻을두었다는것이다.이후그는평생을일본의근대화,즉일본의서양문명화를위해자신이할수있는모든일을다했다.그리고그의궁극적인꿈은일본의부국강병이었다.일본이서양열강과어깨를나란히하는부강한나라가되어야만후손들이고통을겪지않는다는것이었다.거두절미하고이것만보면지구상의모든국민국가가똑같이산출하는내러티브를후쿠자와는공유하고있었다.이런논리는일본을군국주의로몰고간정치인과군인들에게서도확인할수있다.그러나꿈은같았을지언정그는결코현실정치에발을들이지않았다.그는메이지시대정치가들의부도덕성과이중성을혐오했고,관료사회의획일성과안하무인적인행태에고개를돌렸다.결국자신의지식과학문그리고명망을등에업고정계나공직에진출하지않고초지일관재야의사상가로남아독립적으로자유롭게살기를고집했기에후쿠자와는오늘날에도일본의과거사로부터비교적자유로운인물로남게되었을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부국강병은근대의양면성을그대로보여주는논리이며그런점에서후쿠자와는일본의과거사로부터완전하게자유롭지는못하다.하지만그것은어디까지나후쿠자와가세상을떠난1901년이후에약반세기에걸쳐진행된일본의역사를염두에둔평가에불과하다.만약우리가후쿠자와는왜근대의긍정적인면만을보았을까하는점에주목하고이책을읽는다면우리는언외의교훈을얻을수도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