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옛길 걸은 까닭

조선통신사 옛길 걸은 까닭

$54.33
Description
이 책은 지난 2007년부터 2년에 한 번 실시해 오고 있는 ‘조선통신사 서울-동경 한·일 우정 걷기 행사’ 전반을 아우르면서 2019년 제7회 대회를 중심으로 발로 쓴 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기행록이다.
저자

선상규

■경남진영출생
■농학석사·체육학석사·이학박사학위취득
■한국에처음으로국제걷기대회를도입하여1995년에경주에서개최
■조선통신사옛길을발굴하여서울-동경6회완보,서울-부산2회완보,백의종군길,한국일주걷기등다양한국내외걷기활동으로걷기운동의발전·확산에선도적역할수행
■생활체육진흥공로를인정받아‘대한민국체육상’수상

목차

추천사:‘성신교린(誠信交隣)문화사절’조선통신사의재조명


서문:조선통신사옛길을53일간걷고배우다

1장한국내조선통신사옛길을걷다

1일차(4월1일)
설렘과두려움으로1,158km대장정에나서다
2일차(4월2일)
옛지명인‘판교’와‘낙생’은그대로인데

3일차(4월3일)
좌찬고개넘으며한·일·대만‘고향의봄’합창

4일차(4월4일)
조선후기무장,어제연장군생가방문
☞휴게실:조선시대통신사들이주로이용한길

5일차(4월5일)
옛통신사사행들이휴식했던‘숭선참’은수몰되고

6일차(4월6일)
탄금대에맺힌원한의탄식은아직도……
☞휴게실:탄금대율시(彈琴臺律詩)

7일차(4월7일)
물한잔에따뜻한인정을느끼며

8일차(4월8일)
문경새재넘으며한·일평화·우정의가교되새기며

9일차(4월9일)
‘고모산성’성황당에기원하며

10일차(4월10일)
용궁의전설깃든‘용궁토끼간빵’을상품으로

11일차(4월11일)
옛날산적이출몰하던‘백골고개(百我峴)’을넘으며
12일차(4월12일)
숨가쁘게달려온낙동강물은하회마을감돌아쉬어가네

13일차(4월13일)
영호루(映湖樓)올라시한수읊조리고싶었건만

14일차(4월14일)
의성의조문국과일본천황가(天皇家)와의인연은?

15일차(4월15일)
1만명운집했다는조양각전별연그리워라

16일차(4월16일)
백릿길걸어신라천년고도경주에입성

17일차(4월17일)
일본무장‘사야카’,그는왜조선인‘김충선’이되었을까?

18일차(4월18일)
천년흔적간직한신라의흙냄새가코끝을간질어

19일차(4월19일)
울산의처용무와학춤에반해

20일차(4월20일)
조선조향리‘대일외교관’이예선생후손환대감사

21일차(4월21일)
21일간한국구간걷기끝마치니만감이교차

22일차(4월22일)
일본총영사초청만찬후일본여정완보의지다져

2장일본의옛뱃길을버스로가다!

23일차(4월23일)
해신제지내고넘던쓰시마뱃길단숨에넘다

24일차(4월24일)
아름답고풍요로운이키섬(壹岐島)에‘어죽’은없었다

25일차(4월25일)
일본인의로망,해발850m‘노로국립공원(野呂山高原)’에여장을풀다

26일차(4월26일)
한·일문화교류활성화헌신하는강정춘씨
☞휴게실:조선통신사의숙소

27일차(4월27일)
도모노우라‘일동제일형승지’는제모습잃어가고
☞휴게실:에도시대사람의하루걷는거리

28일차(4월28일)
조선통신사유적활용도드높이는‘우시마도’

3장에도를향해옛길을걷다!

29일차(4월29일)
춘풍(春風),긴제방스쳐고향집감도는구나!

30일차(4월30일)
일본의레이와(令和)시대도래하는순간에
☞휴게실:조엄의[해사일기]에의하면……

31일차(5월1일)
2대걸쳐한국문화·정신계승‘고려박물관’에진한감동
☞휴게실:①교토문화답사‘쇼코쿠지(相國寺·상국사)’한글유작시
②교토(京都)의귀무덤,미미즈카(耳塚)

32일차(5월2일)
산조오하시난간청동(靑銅)장식물보고놀란옛사행들
☞휴게실:바다처럼보이는호수‘비와코(琵琶湖)’

33일차(5월3일)
조선인가도와·비와코호수변한·일우호걷기대회열리기를

34일차(5월4일)
히코네소안지(宋安寺)의통신사환대의지혜·묘수

35일차(5월5일)
일본의역사를바꾼하루전쟁‘세키가하라’전쟁터

36일차(5월6일)
다루이에서펼친민간외교

37일차(5월7일)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동상바라보며회한에잠겨

38일차(5월8일)
나고야‘묘렌지’에기념식수(植樹)하다

39일차(5월9일)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고향,‘평화도시’오카자키시

40일차(5월10일)
한·일역사수레바퀴는앙숙·협력교차인연으로

41일차(5월11일)
죽을힘을다해아라이관문에도착하다

42일차(5월12일)
옛조선통신사상생지혜를한·일외교정책밑거름으로

43일차(5월13일)
후쿠로이시장등한·일지자체장들,긴밀한우호협력

44일차(5월14일)
소소한선물에도때로는감동

45일차(5월15일)
우츠노야(宇津谷)고갯길빼어난경관에취하다

46일차(5월16일)
‘조선통신사보고(寶庫)’세켄지옛절경은간데없고

47일차(5월17일)
조선통신사를위해만든‘삿타토오게’절경에매료

48일차(5월18일)
호텔옥상에서웅장한후지산보며호들갑떨다

49일차(5월19일)
참가자평균연령72세노인들,하코네고개에서체력과시

50일차(5월20일)
1,300년전고구려유민들이일본열도로이주했다니

51일차(5월21일)
폭우대비형형색색패션의참가자들

52일차(5월22일)
긴여정마무리하루앞두고들뜬마음진정시키려니

53일차(5월23일)
1,200km대장정마무리하니감격의눈물만……

◎부록①‘21세기조선통신사서울-동경한·일우정걷기’교훈

◎부록②내가체험한일본·일본인·일본문화

저자후기:“조선통신사의옛길을‘평화순례길’로만들고파”

출판사 서평

이책을쓴선상규박사는한국에처음으로국제걷기대회를도입하여1995년에경주에서개최한인물이다.조선통신사옛길을발굴하여서울-동경6회완보,서울-부산2회완보,백의종군길,한국일주걷기등다양한국내외걷기활동으로걷기운동의발전·확산에선도적역할수행해생활체육진흥공로를인정받아‘대한민국체육상’수상했다.
2007년은임진왜란후최초의조선통신사가파견된지400년이되는기념비적인해였다.이사업은조선통신사의성신교린(誠信交隣)정신을오늘에이어서한·일관계를회복하고저자가평생천착해온걷기의대중화와의접목으로두나라국민의건강증진에도움이되고자하는취지에서시작했다.
걷기에대한저자의철학은“육체적인활동을통해건전한몸과마음을만들며나아가미완성의인간이정신적인자유를얻어원숙한인간이되게하는고급운동이고걷는일은생각하는일과마찬가지”라는거다.
한·일양국의회원들은장장53일에걸쳐서울에서부산까지걸어가서배를타고대마도와이키?岐섬그리고시모노세키(下?)에상륙해서는버스로오사카로이동한다.그곳에서육로로교토를거쳐최종목적지인도쿄까지총연장1,200km를걷는강행군이다.참가자들의평균연령이72세안팎에이른다.민간교류를위한각종활동그리고걸어가면서보고듣고느끼며생각하고체험한일들이고스란히이책속에담겨있다.
참고로조선통신사는임진왜란후조속히국교를회복하려는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의강한여망에서시작되었다.100년의혼란의전국시대를통일하고에도막부를연이에야스에게는다행하게도임진왜란에대한원죄가없었다.이에야스는도요토미히데요시(?臣秀吉)에의해영지교환이라는명목으로오랜삶의터전을빼앗겼다.
당시이에야스는황무지에가까운에도(지금의도쿄)일대로쫓겨갔으며새로운영지를개척하고도시를건설하느라여념이없었다.이것이그가히데요시의조선출병요청을거부할수있었던명분이었다.덕분에다른영주들과달리자신의병력과자원을온전히보존할수있었다.영지를빼앗긴것이오히려전화위복이되어히데요시사후정권을쟁취할수있었다.
한편조선으로서는일본에끌려간포로의송환과함께일본의국정을살필필요가있었다.그뿐만아니라당시만주에서한창떠오르고있었던여진족의위협에대처하기위해서는일본과의관계를안정시킬필요성이절실했다.그결과전란이끝나고채10년도되지않은시점임에도이에야스의요망에부응해통신사를파견하게되었다.
제1차는사명대사를대표로하는‘회답및쇄환사’였으며제4차부터는양국의국교가회복되어본격적인대규모통신사파견이이루어진다.조선통신사의규모는보통300~500명정도였다.기간은당시는바닷바람과조수그리고일본국내의변화무쌍한기후의영향으로6개월에서길게는1년이걸렸다.
새로운막부의통치철학으로이에야스는주자학을택했다.주자학선진국인조선에대한경외심과배우고자하는이에야스의절실한마음이조선통신사실현으로이어진것이다.임진왜란이후양국의국교가조속히회복되는데가장큰공로자는조선주자학의거봉퇴계이황이아닐까생각된다.
제1차통신사가일본을찾았던1607년이에야스는정이대장군(쇼군·將軍)을아들히데타다에게넘겨준상태였다.그렇지만당시는아직오사카성을중심으로도요토미집안의잔당세력이남아있었던불안정한시기였다.그래서하코네(箱根)에서서쪽은이에야스자신이그리고쇼균히데타다는하코네의동쪽을지키는이원체제를취하고있었다.
제1차통신사일행은에도로가기전에슨푸(駿府:지금의시즈오카)의이에야스에게예방하고싶다는뜻을전했다.그렇지만그는현직쇼군이히데타다인만큼에도에서국서교환의외교의례를마친다음에귀로에들러달라고정중하게사양했다.일행은에도에들러히데타다에게최고의예우를받은후국서교환을마치고귀로에슨푸의이에야스를찾아극진한대접을받았다.
제4차통신사부터는에도막부의쇼군이습직할때축하한다는명분으로파견되었다.당시통신사일행은오사카에도착해일본측이준비한배를타고요도가와(淀川)를거쳐교토로간다음에육로로에도(江戶·지금의도쿄)까지걸어갔다.이들은통과하는지역마다대대적인환영을받았으며지역의다이묘(大名·영주)학자문인승려화가일반백성들과폭넓게교류하며한류열풍을일으켰다.쇄국상태의당시일본인들에게조선통신사행렬은신기한볼거리였으며막부는의도적으로백성들이구경하도록장려했다.
우리통신사일행들이일본에서보고느낀충격역시작지않았다.이들이오사카에들렀을때도시의번화함그리고무엇보다도서적의출판과판매가활발한데놀란다.당시조선의서적인이퇴계의[퇴계집]이애독되고있는것을보고유학의국제화를실감하기도했다.1719년제4차통신사의제술관으로참여한신유한은”오사카는글을청하는사람이다른지방보다곱절은많아어느때는새벽닭이울도록잠을자지못했다“라는기록을남기고있다.
그들은일본의발달한문물그리고잘사는모습에놀라움과부러움을느끼는한편억울하다는생각도했다.어느단원에서는“남의나라를침략했던야만스러운왜인들이벌을받은줄알았는데이렇게잘사는것을보니배가아플지경”이라고적었다.당시일본은금광에이어대규모은광의발견으로막부는넉넉한은을보유하고있었다.통신사가임무를끝내고에도를떠날때쇼군은상당량의은을일행들에게선물로나누어주었다.
그렇지만이들은이선물을국내로가지고올수가없었다.조정에서금지했기때문이다.부득이이들은아까웠으나강에던져버렸다.이를주우려고일본의짐꾼들이경쟁적으로강으로뛰어들었다.당시일본의발달한문물이나정보가국내에유입되는것을조선조정은엄금했다.여전히일본은오랑캐며상종하지못할나라라는인식을백성들에게심어주고자했다.상공업의발달로부강해진일본의모습을보고왔지만이를철저히무시했으며국정에반영시키지않았다.백성들의살림이윤택해지면통치하기가어려워지기때문이다.
영·정조시대에실사구시를추구하는실학운동이한때일어나기도했다.그렇지만기득권층의반발로이불씨를살리지못한가난한나라조선은,상업으로국부를키우고메이지유신이후서양문물을받아들여부국강병에성공한일본제국에의해식민지로전락하고말았다.
일본의통치철학은주자학이었지만민간에서는오히려이후에들어온양명학이주류였다.양명학은사농공상에서공업이나상업도모두본업(本業)이라고주장하며주자학이본업과말업(末業)을구분하는것을비판했다.즉직업은달라도도(道)를이룰수있다는것으로서기술자노동자그리고상업에종사하는사람들이자기의직업에자긍심을가질수있었다.
통신사의성공적인접대를위해에도막부는심혈을기울였다.동원한인부가33만여명말이7만7,600필이렇듯인마의조달물자운반숙박등에쓰인경비는매회100만냥으로서일본국가재정1년치와맞먹었다.에도막부는통일후불안정한국내정세속에서막부지배의정통성을대내외에과시하고막부의권위를확립하기위한기회로통신사를활용했다.
그러나조선통신사는메이지유신이후일본국민에게잊혔다.권력핵심에의해의도적으로평가절하되었다.이는조선통신사의활동이제대로알려지는것이조선의식민통치에는불리했기때문이다.일본국민사이에거의잊혔던조선통신사가새롭게기억되고2017년유네스코기록유산에등재된것은선각자재일교포신기수선생의역할이컸다.
신기수선생은[조선통신사의여정]이라는저서에서“어둠의역사’를철저하게검증하는것도중요하지만그것만으로불행은사라지지않는다.‘빛’을보는복안적(複眼的)인사고가필요하다”라고말한다.


필자가일본을어렴풋하게나마알기시작한것은걷기운동교류를위해일본을왕래하기시작한1995년도부터이다.그때부터지금까지이해관계없이일본을왕래한것이100여회이상이른다.지난30여년동안필자는일본의참의원에서부터현지사·시장·교수·신문사사장등은물론일반시민에이르기까지각계각층의많은인사와교류해왔다.이러한교류활동은물론걷기대회를비롯한각종행사에참여하면서보고듣고느낀점은첫째일본인정신의저변에는천황에대한충성심이짙게깔려있다는사실이다.
둘째는일본이세계강국으로군림하게된기본바탕에장인정신이살아있었다는점이다.
셋째는왕따(이지메)조직문화이다.
한조직에서단체생활에적응하지못한다든가이질적인행동을하면여지없이왕따를시킨다.그래서리더에대한충성심과단체를이탈하지(왕따가되지)않으려고열성을다하는조직문화가형성되다보니현지에서이를피부로절감할수있었다.
넷째는일본인의철저한약속준수의식과사소한것에도가치를부여하고귀하게생각한다는사실이다.옛것이라도낡은것이라하찮게여기지않고존재의가치를불어넣어생명력을되살리고있다는점을들수있다.
저자는이책에서“우리는일본을싫어하나일본인의문화와생활속에서많은것을배울것이있다”라며“기초질서의식과항상준비하는습관,초등학교(소학교)초년생에게는학습보다인간윤리교육을우선해시킨다는사실과봉사정신과책임감,그리고기록·관리·보존이다”라고말한다.

저자는이책에서“제7차조선통신사서울·동경한·일우정걷기는조선통신사의자료들이유네스코기록문화유산으로등록된후처음으로실행한행사이기에유네스코에등록되기전과후의차이점도비교하기로하였다”라며“실제가보니우리나라는관련연고지지자체장들은물론이고향토해설사까지도조선통신사자료들이유네스코에등록된줄도모르고있는곳이많았는데일본은조선통신사행렬이자기지역을지나갔다고홍보와선전은물론관광자원으로활용하고자열성을다하고있었다”라고안타까워한다.
저자는이책에서“옛조선통신사들이사경(死境)을넘나들며,필사적인노력으로,통큰정치와지혜로운외교술을발휘하여,200여년동안평화시대를선도한것처럼,이시대에도한번더지혜롭고격조높은외교술과통큰외교로,일본을이시점에서용서하고,상생의길로진정한이웃사촌으로동행하는외교정책을펴나갔으면하는바람이다”라고강조한다.이어서그는“이지겨운악연의한·일관계를언제까지후손들에게유산으로물려줄것인가?”라고반문하면서“이제는조선통신사의성신·교린·우호정신을계승발전시켜,우리후손에게는악연의쇠사슬에서벗어나진정한동반자로상생의복지국가를만들어나가도록우리세대는어떠한비난을받더라도해결해야할것”이라고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