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쉼표

간이역, 쉼표

$19.00
Description
[간이역, 쉼표]는 잡초가 꽃을 피울지도 몰라 잠시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꽃과 잡초는 함께 자란다”라는 게 철도 역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이 책 저자의 평소 지론이다.
간이역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본연의 고독과 닮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어쩌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이미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여긴다. 간이역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생명을 다한 기차역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이 맞물려 저자는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철도쟁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는 철도인을 낮춰 부르는 게 아니냐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철도쟁이라는 말 속에는 철도인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과 끼가 담겨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철도쟁이로서 전국의 간이역을 둘러보며 저자의 삶에서 꽃과 잡초를 구별하는 방법과 잡초를 없애야 할 순간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곤 했다.
저자가 간이역 여행을 시작할 무렵인 2021년 하반기에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그녀의 마음을 집어삼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나름의 돌파구가 필요했기에 저자는 다시 기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벗어나고 싶었던 스트레스가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이 책을 탈고한 2026년은 봄이 더디게 찾아왔다. 저자가 근무하는 봉화군 분천 일대에는 때아닌 철도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옷장 안으로 들여보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여러 번 있었다. 조금 늦었으나 원추리와 달맞이꽃이 움트기 시작했고 제일 먼저 봄을 알리던 크로커스는 며칠을 더 기다려야 꽃을 피울 듯 보였다. 그런데 원추리와 달맞이꽃, 크로커스 주변에 그들과 같이 겨울을 지낸 잡초도 올라왔다. 키 큰 매화나무 아래에도 어김없이 잡초는 자랐다. 날이 따뜻해지면 잡초를 뽑는 것이 저자의 행복한 일상이기도 하다. 잡초를 솎아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꽃보다 더 무성해지기 마련이다.
더러는 잡초라고 여겼던 풀에서 예쁜 꽃이 필 때가 있다. 그런 풀은 오래 두었다가 걷어내곤 한다. 남천이 모여 있는 화단에서 백일홍이 싹을 틔우기도 하는데 이때는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남의 자리를 탐낸 백일홍을 잡초처럼 뽑아버리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나이를 먹어도 살아가는 일은 늘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제는 고통을 감내하는 마음의 근육이 좀 더 단단해졌다고 믿고 싶다고 한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삶에 지쳐 휘청거리는 누군가가 두 발 딛고 서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게 저자의 소망이다. 간이역을 둘러보고 원고를 정리하는 동안 몇 년이 흘렀다.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고 기차가 정차만 하는 역. 간이역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라는 노래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로 시작된다. 아마도 노랫말을 쓴 이는 기차가 멈추지 않고 지나쳐가는 역을 간이역으로 여긴 듯하다.
철도공사 여객운송약관에서는 “여객의 승하차 설비만을 갖추고 승차권 발행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역”을 간이역이라고 한다. 승강장이 있어서 기차를 탈 수는 있지만 역에서 표를 살 수 없는 역이 바로 간이역이다. 영동선이나 경북선에는 기차 안에서 승무원이 표를 끊어주는 간이역이 많다. 간이역은 저마다 다르게 정의되지만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는 의미를 은연중에 담고 있다. 물론 요즘은 철암이나 동백산처럼 규모가 제법 큰 역이더라도 승차권을 살 수 없는 역이 있기도 하다.
이번 단행본에서 저자의 여행 목적지는 간이역이다. 다만, 단어의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중소도시의 다른 역들도 함께 찾아가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은 기차역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폐역(廢驛),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무인역(無人驛), 그리고 내 마음을 끄는 보통역까지 말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믿는다. 그것이 스스로가 노력하고 행동해야 하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고 여긴다.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짧은 일정의 여행으로 얼마나 많은 역을 둘러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시작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간이역을 순례했다.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후 3년, 아니 5년이 되어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었으나 저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지금’ 다시 시작을 준비했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에 말이다. 그러면서 가이역 여행에 필요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렸다.
첫째, 약간의 자투리 시간이라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떠난다. 꼭 1박 2일이나 2박 3일의 여행 일정을 고집할 필요는 없으니까.
둘째, KTX 정차역보다 무궁화호 정차역을 더 많이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KTX 열차는 앞으로도 많이 탈 수 있지만, 철도 환경의 변화로 무궁화호를 탈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서다.
셋째, 기차여행이긴 하지만 열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나 열차 운행 횟수가 드물어 시간상 제약을 많이 받는 간이역을 둘러볼 때는 어쩔 수 없이 승용차나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름의 여행 규칙까지 만들었으니 이제 정말 떠나는 일만 남았다. 달력을 보며 다가오는 휴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첫 여행은 일정이 여의치 않아 당일치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 노선도를 바라보며 어느 역을 가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마침 구례 이야기가 나왔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온 작가가 구례에 자신만의 집을 마련했는데, 한 지인이 작가를 만나러 온다는 내용이었다. 뭔가에 이끌리듯 저자는 ‘코레일톡’을 이용하여 열차 시간표를 검색했다. KTX 열차는 경북에서 전남까지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기차여행의 3요소, 즉 기차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떠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자신도 모르는 새 끌려다니던 일상을 하루라도 멈출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승차권이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마무리되고 이제 승차권까지 예매해 두었으니 기차여행의 모든 준비는 끝난 셈이다. 표를 끊어두고 여행을 기다리는 시간은 ‘아마도 복권을 사놓고 당첨의 기쁨을 생각하는 날들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 글은 2021년 9월에 시작하여 2024년 10월에 끝낸 간이역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5년의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저자가 다녀왔던 기차역들도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을 수도 있다. 공사 중이던 역사(驛舍)가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 곳도 있고, 언제부턴가 기차를 탈 수 없는 역이 된 곳도 있다. 저자가 본 역들의 모습이 변한만큼 저자 자신의 외양과 내면도 그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리라 여긴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욕심이 과해 탈이 날 때가 더러 있었다. 남은 삶을 살면서 불필요한 욕심은 줄이되, 글쓰기에 대한 욕심만은 무럭무럭 키워나가고 싶다는 게 저자의 바람이다.
저자

정정심

27년차철도인이자,[괜찮아,잘했어!기차여행](글로벌마인드,2020년)의저자입니다.[신동아제38회1천만원고료논픽션공모]우수상(2002년),[제31회근로자문학제]수필부문금상(2010년)을수상했건만맞춤법과띄어쓰기를지금도고민하는비숙련공입니다.현재,분천역부역장으로근무하며죽는날까지글쟁이로남고싶은욕심을키워가고있습니다.

목차

[서문]
꽃과잡초는함께자랍니다

[간이역기행을시작하며]나중이아니라바로지금

[구례구역]
가까이다가설수록멀어지는것은

[압록역]
지나온후에야깨닫는것들

[가은역]
멈춰버린시간,소리마저사라진자리

[용궁역]
끝내건네지못한마음은

[불국사역]
소소한행복을담으며

[정동진역]
함께나눌수록삶은온기로채워져

[현동역]
내가너의이름을불러줄때

[구둔역]
우리,추억으로다시만나서

[석불역]
변하지않는것들이내게말해주는것

[동촌역·반야월역]
기대감이적당한때와만나서시작되는여행

[금강역]
달고고마운한가로움을위해

[고모역]
익숙한풍경,다른시선

[진해역]
봄과함께다시일어나기차를탄다

[경화역]
삶의종착역을받아들이는연습

[직지사역]
커피보다따뜻한것

[송정역]
조금늦어도괜찮다

[의성역]
내삶의환승시간에는다른모습으로

[청소역]
수없이흔들려도다시중심을찾아간다

[봉성역]
애쓰지말고,긴장을풀고

[각계역]
누구를위한선택일까

[심천역]
기차역이내게주는것들

[이원역]
아무도기억하지않는시간

[능내역]
책속에머문순간

[평은역]
누구에게나똑같이흘러가는세월

[신동역]
다시북적이는날을꿈꾸며

[삼성역]
웃으며손흔들어주는사람으로남고싶다

[주평역·불정역]
지난날의분주함을이제는내려놓고

[진영역]
나만의빛깔과향기를만들어갈수있기를

[남광주역]
사라진것과남아있는것

[남평역]
한번내딛은길이라면

[능주역]
작은식물이주는큰위안

[명봉역]
말이멈춘자리,자연의소리만남아

[연당역·예미역]
내게허락된시간은얼마나될까

[함백역]
함께만들어가는삶의의미

[개태사역]
넘치지않게,모자라지도않게

[연산역]
무궁화호처럼천천히,그리고따스하게

[율촌역]
곁에있는이에게마음을담아

[북천역]
나도누군가의친구가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