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본서는 도마복음 71-114의 해설서다. 1권(1-28), 2권(29-70)에 이은 3권(71-114)으로, 도마복음 로기온에 해석을 덧붙였다. 철저히 초월신의 관점, ‘좀비 신학’의 관점에서 읽는 방식을 거부한다. 우리 각자 안에서 성취되어야 할 ‘신성 언약’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바라보고 읽기를 시도하며 주석하였다. 그 점에서 한 치의 혼돈이 없다. 신을 말하되 ‘좀비 신학’의 초월신이 아니다. 왕국을 말하되 우주 종말론의 교리적 관점이 아니다. 도래하지 않은 가상 세계를 전제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것을 교리화해 사람들의 영혼을 혼미케 하고 현혹하는 자기기만이요 종교적 사기 행각이기에 동의할 수 없다.
도마복음은 이 점에서 매우 명쾌하고 간결하다. 로기온 114를 주석하는 동안 참고하되 의존하지 않은 도서는 Simon Gathercole의 “The Gospel of Thomas: Introduction and Commentary”다. 매 로기온마다 꼼꼼히 살폈고 자료적 도움은 받았으나, 주석은 의존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도서라고 판단된다. 그 밖에도 April D. DeConick의 “The Original Gospel of Thomas in Translation”의 주석서도 참고했으나, 나의 성향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그들을 의존할 수 없는 까닭은 도마복음조차 여전히 ‘좀비 신학’의 관점에서 주석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석을 읽어보면 그 점이 너무도 현격하다. 참고는 하였으나, 감사와 고마움이 있음에도 주석은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을 서론에서 미리 밝힌다.
구약·신약 성서와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그리고 현대 정신분석은 내게 도마복음을 읽어가는 틀 거리다. 애초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풀리지 않던 질문과 의문에 대한 힌트를 그곳에서 많이 얻었다. 카발라는 물론이고, 정신분석의 흐름은 내게서 재해석되었고 나름의 또 다른 기의를 담아 그들 속 기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중요한 요소는 어느새 나의 도마복음 읽기에 틀 거리로 녹아 있다. ‘융합’이라 해도 상관없다. 학문적 호기심에 의한 의도적 융합은 아니다.
성서에 대한 전통 해석에 만족할 수 없다는 데서 질문이 시작되었다. 도마복음 읽기도 성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고,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도마복음 글쓰기도 시작되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성서의 전통적 해석에 대한 이의제기에서 나의 글쓰기와 도마복음 읽기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법은 텍스트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것밖에 찾지 못했다. 타인의 해석, 곧 칼뱅이나 루터,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 주석가의 해석에 의존할 수 없었다. 부득불 헬라어·히브리어를 통한 텍스트와의 마주함이 40여 년이다. 또 부득불 헬라어와 매우 친화적인 콥트어를 더듬으며 도마복음 읽기에 도전한 것도 유사하다.
그 모든 것이 도마복음 읽기의 바탕이 된다. 도상에서 서양 사상사를 만나고 동양의 도덕경을 만나며 카발라와 현대 정신분석을 만난다. 그렇게 해서 도마복음 해설서 3권이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도마복음은 이 점에서 매우 명쾌하고 간결하다. 로기온 114를 주석하는 동안 참고하되 의존하지 않은 도서는 Simon Gathercole의 “The Gospel of Thomas: Introduction and Commentary”다. 매 로기온마다 꼼꼼히 살폈고 자료적 도움은 받았으나, 주석은 의존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도서라고 판단된다. 그 밖에도 April D. DeConick의 “The Original Gospel of Thomas in Translation”의 주석서도 참고했으나, 나의 성향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그들을 의존할 수 없는 까닭은 도마복음조차 여전히 ‘좀비 신학’의 관점에서 주석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석을 읽어보면 그 점이 너무도 현격하다. 참고는 하였으나, 감사와 고마움이 있음에도 주석은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을 서론에서 미리 밝힌다.
구약·신약 성서와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그리고 현대 정신분석은 내게 도마복음을 읽어가는 틀 거리다. 애초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풀리지 않던 질문과 의문에 대한 힌트를 그곳에서 많이 얻었다. 카발라는 물론이고, 정신분석의 흐름은 내게서 재해석되었고 나름의 또 다른 기의를 담아 그들 속 기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중요한 요소는 어느새 나의 도마복음 읽기에 틀 거리로 녹아 있다. ‘융합’이라 해도 상관없다. 학문적 호기심에 의한 의도적 융합은 아니다.
성서에 대한 전통 해석에 만족할 수 없다는 데서 질문이 시작되었다. 도마복음 읽기도 성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고,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도마복음 글쓰기도 시작되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성서의 전통적 해석에 대한 이의제기에서 나의 글쓰기와 도마복음 읽기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법은 텍스트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것밖에 찾지 못했다. 타인의 해석, 곧 칼뱅이나 루터,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 주석가의 해석에 의존할 수 없었다. 부득불 헬라어·히브리어를 통한 텍스트와의 마주함이 40여 년이다. 또 부득불 헬라어와 매우 친화적인 콥트어를 더듬으며 도마복음 읽기에 도전한 것도 유사하다.
그 모든 것이 도마복음 읽기의 바탕이 된다. 도상에서 서양 사상사를 만나고 동양의 도덕경을 만나며 카발라와 현대 정신분석을 만난다. 그렇게 해서 도마복음 해설서 3권이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성서 그리고 도마복음 말씀 71-114 (여자가 남자가 되다)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