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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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곽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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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곽경택(郭暻澤)</b>
1966년 부산출생, 부산고, 뉴욕대학교 영화연출과 졸업.
1995년 단편 [영창이야기] 각본, 연출.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몽페랑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작.
1997년 영화 [억수탕] 각본, 연출.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상파울로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작.
1999년 영화 [닥터K] 각본, 연출.
브뤼셀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공식 초청.
벤쿠버 영화제 공식 초청.
몽페랑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작.
2001년 영화 [친구] 각본, 연출. 한국 영화사상 최다관객(전국 820만) 동원 기록.
제25회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진출.
캐나다 벤쿠버 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 심사위원 위촉.
미국 AFI 영화제 초청.
청룡영화제 한국영화 최고흥행상 수상.
춘사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

출판사 서평

그의 삶, 그의 사랑, 그의 드라마... 몰아치는 감동의 카타르시스!
1995년 제2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영창이야기]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영화계에 나온 이래 이색적인 소재와 공격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은 [억수탕], 국내 최초의 메디컬 미스터리 [닥터K], 한국 영화사상 최다관객(전국 820만 명) 기록에 빛나는 [친구]를 각본, 연출한 곽경택 감독의 회심의 역작.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2001년 히트상품 1위로 선정된 [친구]는 국내 흥행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청룡영화제 한국영화최고흥행상, 춘사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기록되었다.

[친구] 제작군단이 선사하는 2002년 최고의 감동신화!
2001년 8월 제작발표회를 시작으로 1년여의 장정 끝에 발표한 [챔피언]은 총제작비 60억 원, 2천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대형 실외세트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에서 재현된 초대형 스케일의 L.A 로케 등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 스펙타클한 감동으로 개봉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며 전작인 [친구]를 뛰어넘는 감동의 역작으로 기대되고 있다.

운명적인 복서 '김득구'의 치열한 삶과 두려움 없는 사랑!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한 우정과 두려움 없는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한판 승부, 불꽃처럼 살다간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집념과 열정의 삶을 그린 [챔피언]은 웃음과 눈물에 새겨지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시원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주체할 수 없는 전율로 다가올 것이다.

울지 마… 내가 죽으러 가니? 꼭 이기고 돌아올게!
타오르는 붉은 태양과 끝없이 펼쳐진 오렌지빛 바다를 보며 소년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도전했다. 거침없는 용기와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오직 챔피언이 되겠다는 끈기와 집념 하나로 이루어낸 위대한 삶의 향기.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 특설링.
"작은 관을 하나 준비했다. 싸워서 지면 링에서 걸어나오지 않겠다"던 도전자 김득구, 그는 목숨을 건 투혼 끝에 이국만리 타향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가난으로 배우지 못한 한을 두 주먹으로 풀기 위해 글러브를 끼었던 그는 23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며 그렇게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나이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건다'는 신화를 남긴 김득구.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순수의 이름, 신화의 가장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우리는 그를 챔피언이라 부른다!

♠ 작가의 말
"나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열일곱 살, TV에서 처음 본 그는 별로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선수였다. 또 누구 하나가 이기지도 못할 원정경기를 떠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이 울리고 첫 라운드가 시작되자, 나는 브라운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들것에 실려 마지막으로 링을 떠나는 그의 모습에…… 열일곱 살이었던 나는 서러움과 분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뇌리 속에 '김득구'라는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었다.

'집념'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마치 그런 단어는 우리 아버지 세대에나 즐겨 사용하던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버지들은 집념이라는 말을 소중히 했다. 그것으로 아내에게 용기를 주었고 자식들을 먹여 살렸으나 결국 자신의 지친 몸은 조용히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의 함박웃음 속에 씁쓸하고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김득구. 그는 죽지 않았다.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링줄을 거머쥐고 일어나려 애쓰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들을 낳게 되면 반드시 챔프로 키우겠어요"라고 말하던 스물두 살 앳된 여성의 바보 같은 순정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도 이제 서른여섯 살의 아버지가 되었다.

"니가…… 내 얘길 해줘야만 돼!"
그리고…… 나는 이제 그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 곽경택 감독의 연출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