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홍진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20.00
Description
1 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홍진』은 5명의 필자가 참여하였다. 남창섭·신춘 호·허우범 필자가 전체 원고의 90%를, 라다솜 · 이호윤 필자가 10%의 원고를 담당하였다.
2 이 책에서의 지명과 인명 표기는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하여 우리의 발음으로 표기하였다.
3 이 책은 만오 홍진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상세한 색인을 달았다.
저자

허우범,신영담,남창섭,라다솜,이호윤

저자:허우범

저자:신영담

저자:남창섭

저자:라다솜

저자:이호윤

목차

1부한성임시정부수립에나서다
-잊혀진독립운동가만오홍진
-한성임시정부수립을주도하다
-13도대표자회의로정통성을확보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성지,인천만국공원
-한성임시정부를선포하다
-홍진,압록강을건너다
-[interview]왜인천에서홍진을기념해야하나한시준전독립기념관장

2부상해로건너가독립운동에투신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한성정부를잇다
-대한민국국호가탄생한곳은
-상해에서만나는독립운동그날의현장
-대한민국의회정치를시작하다
-좌·우대립에통한과절망을느끼다
-홍진의유람,사색과권토중래의시간
-김응섭선생의회고록『칠십칠년회고록』과『만유록』속홍진
-[interview]의형제홍진-김응섭독립운동김응섭후손김좌현·김이정씨
-진강에서의2년,대한민국밑그림을그리다
-대한민국임시정부국무령에우뚝서다

3부만주항일무장투쟁선봉에서다
-홍진과안창호,민족유일당운동에매진하다
-만주로확산되는유일당운동,불타오르는무장투쟁
-만주독립운동든든한후원자발해농장
-홍진의항일무장투쟁현장을가다
-대한민국독립운동3대대첩대전자령전투
-대한민국독립운동3대대첩봉오동전투와청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의주역신홍균한의사
-[interview]숙조부신홍균기지로대전자령전투큰승리신홍균선생후손신민식자생의료재단사회공헌위원장

4부대한민국임시정부,좌·우합작을이루다
-한국독립당을재건하다
-흩어지는임시정부항주,진강,남경으로
-가흥과해염에은거한김구
-혼돈속의임시정부장사에서의그날들
-강물위의임시정부주강따라유주까지
-고난속의임시정부사천고원넘어중경안착
-좌·우합작에나서다
-광복군창설과국내진공작전
-생육사에서광복군까지,홍진과이청천

5부대한민국의화합과통일을위해
-꿈같은광복,다시찾은상해
-27년만의환국,끝나지않은여정
-다시조국의화합과통일을꿈꾸다
-홍진과신익희그리고정치공작대
-인천문학산홍진묘역은어디인가
-[interview]“홍진의통합정신을되새겨대한민국을바로세워야”더불어민주당김교흥국회의원
-인천시민이홍진을기억하는방식
-[interview]“만국공원에홍진선생과김구선생동상을건립했으면…”정세일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상임대표
-만오홍진의길을걷다
-홍진의꿈,인천에서다시시작된다
-인천의대표독립운동가김구홍진조봉암이동휘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일제강점기36년은한국근대사에서가장암울한시기였다.한국은일본의제국주의총칼아래정치,경제,사회적으로철저히침탈당했으며민족정체성과문화도억압당하였다.그리하여이에대항하는다양한형태의독립운동이전개되었고이는단순한반일을넘어민족의자주성회복을위한투쟁으로이어졌다.

1919년3·1만세운동은일제강점기최대의독립운동으로우리민족의독립의지를국제적으로알린중요한사건이었다.3.1만세운동을통해민족의식은크게고양되었고,중국상해에임시정부가수립되는기폭제가되었다.상해임시정부는일제의식민지지배에맞서독립운동의중심적역할을하였으며,밖으로는독립을인정받기위한노력과함께무장투쟁을위한지원을아끼지않았다.임시정부에는김구,안창호,이동휘,이시영,김규식등우리에게익숙한독립운동가들이활발한활동을하였다.아울러,일제의폭압에맞서무장투쟁을벌인윤봉길,안중근,김좌진,홍범도,이청천등의애국열사들도기억한다.

우리의독립운동사에수많은애국지사와열사가있지만그활동과업적에있어서우리가결코잊어서는안되는인물이있다.바로만오(晩悟)홍진(洪震)이다.
홍진은구한말명문가의검사출신변호사로1919년3·1만세운동이일어나자,국민적인독립열기를고취하고이를이끌어갈필요를절감하였다.이에임시정부수립을추진하고자인천의자유공원에서13도대표자회의를열어추인을받고중국으로망명하였다.이후선생은임시의정원에서충청도의원으로활동하며독립운동을전개하였다.그는상해임시의정원의요직을거쳐1921년임시의정원의장에선출되었고,1926년7월에는임시정부수반인국무령에올라이승만탄핵이후무정부상태의임시정부를수습하였다.

홍진이대한민국임시정부역사에남긴가장큰족적은임시의정원활동이다.그는1919년4월망명이후1945년12월환국할때까지모두세번에걸쳐임시의정원의장을맡았다.특히,환국전임시의정원의마지막의장으로서한국현대정치사에서의회정치가정착되는데커다란공헌을하였다.홍진의독립운동핵심은‘민족대단결’로요약된다.그에게있어서자주독립은그어떤정치적입장보다우선되는것이었고,오직이를위하여하나로뭉쳐야만한다고설파하였다.

홍진은독립운동세력의분열을막기위해심혈을기울였다.이를위해독립운동의문제점을지적하고나아갈방략을마련하였으며,‘민족유일당건설’에도실천적으로매진하였다.더나아가만주에서이청천장군등과함께5년간항일무장투쟁을벌이기도하였다.이러한홍진의노력은독립운동에투신한자들로하여금당파와상관없이누구나그를신임하게하였다.

홍진은해방을맞아환국한후에도임시정부와줄곧함께행동하였다.미군정이임시정부를용인하지않자,임시정부는비상정치회의소집을통해이를타개하고자하였다.홍진은임시의정원을계승한비상국민회의창립총회에서만장일치로의장에추대되어해방정국에서도독립운동의완수를위하여애썼다.

1946년7월7일,홍진은고령에과로가겹쳐심장천식으로입원한이후두달만인9월9일향년70세로별세하였다.그의유해는9월13일명동성당에서장례위원장인김구주석의장례미사집례후,독립에의한많은염원을가슴에담은채인천문학산선영에묻혔다.이후,1984년국립묘지로옮겨졌다.

만오홍진은우리독립운동의새로운전환점을여는중요한정책과행동강령을만들고이를몸소실천으로옮긴뛰어난독립운동가였다.그런데정작독립운동가홍진을아는국민은많지않다.모두가임시정부청사를방문할때도김구주석은알지만바로그옆에있는홍진은모른다.홍진이임시정부에서차지한위치가김구와대등했음에도우리는그를알지못하였던것이다.
인천은홍진선생이독립운동에투신하는시작점인동시에그의몸이잠든종착점이다.이에2024년,인천일보는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여행인문학도서관길위의꿈과공동으로중국에산재한홍진선생과임시정부유적지를돌아보는인천시민답사단을운영하였다.답사단은홍진과임시정부가활동했던유적지들을돌아보며그가독립운동을위해헌신했던역사를되새겼다.또한,오늘날우리가어떤방식으로독립운동의정신을계승할수있을지고민하고그답을찾는소중한시간이었다.아울러,답사를통해홍진을더많은사람들에게알리는중요한계기가되었다.

인천일보는나아가인천과관련이깊은홍진선생의고귀한독립정신을되새기고이를발전시키기위하여지난해특별취재팀을꾸려홍진선생을재조명하는기획을취재,보도한바있다.특히광복80주년이되는뜻깊은해를맞이한올해당시특별취재팀원들이다시뭉쳐
그동안국내외현장에서만난홍진의일대기를묶은『우리가기억해야할독립운동가만오홍진』을발간하게되었다.이책을통해우리는그동안몰랐던또한분의뛰어난독립운동가를알게되는기쁨을누리는한편,우리의독립운동연구가앞으로도계속되어야할필요성을느끼게될것이라고믿는다.

이책이나오기까지많은분들의도움이있었다.만오홍진선생을인천에소개하고,앞장서선양사업을벌이고있는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정세일상임대표와이성재공동대표,이희환박사에게가장먼저감사를드린다.취재활동에무엇보다큰도움을준여행인문학도서관길위의꿈김광성관장과홍성림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장에게도감사를표한다.책이출판되기까지물심양면으로지원을아끼지않은박현수인천일보사장,김교흥국회의원,도성훈인천시교육감,신민식자생의료재단사회공헌위원장에게도감사드린다.

민족과국가를사랑하고미래를열어간‘통일광(統一狂)’홍진.그의삶은우리독립운동이나아갈방향과실천방안을제시하고‘민족대단결’을위해모든것을희생한위대한삶이었다.그는인천에서민족의독립을위한투쟁을시작하였고,오늘도민족대단결과통일을바라는그의우렁찬목소리가문학산에메아리치고있다.우리가홍진선생을잊어서는안되는이유다.

2025년3월저자들을대표하여,허우범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