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의 외교

헨리 키신저의 외교

$39.00
Description
외교 분야의 기념비적인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다시 시작된 강대국 경쟁의 시대를 통찰하는 헨리 키신저의 역작
세계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점점 더 전략적 경쟁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처럼 또다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거대한 독재국가들의 팽창에 맞서기 위해 NATO를 확대하고 쿼드나 한미일 안보협력체를 구성하는 등 민주주의 국가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상하이협력기구나 브릭스를 확대하면서 미국의 진영을 균열시키고 역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의 대전쟁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2023년 5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현재의 국제정세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과 비슷하다. 미국과 중국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원칙을 정하지 못하면 5~10년 안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키신저의 말대로, 세계는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부지불식간에 대전쟁으로 끌려들어 갔던 19세기 말 유럽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인가, 아니면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충돌 없이 오랜 기간 체제 경쟁을 벌이는 새로운 냉전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경로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어떤 경로가 가능성이 높을지, 대전쟁이라는 파국이 과연 일어날 것인지, 그런 대재앙을 막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 현대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가 쓴 기념비적인 책 『헨리 키신저의 외교(Diplomacy)』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지금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질서이고 미국의 가치가 지배하는 질서이다. 그 질서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키신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자연법칙에 따르기라도 한 듯, 모든 세기마다 권력과 의지, 지적 도덕적 추진력을 갖추고 국제체제 전체를 자신의 가치에 따라 형성하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17세기에는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의 국가이성이, 18세기에는 영국이 주도한 세력균형의 개념이,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협조 정신이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였다. 메테르니히의 협조체제를 깨뜨린 것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냉정한 권력정치였고, 그 권력정치의 비극적 결과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 전쟁을 결정지은 미국은 세력균형과 권력정치에 기반한 유럽의 구질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국제법, 집단안보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제시했고, 그 이후로 윌슨주의가 미국 외교의 근간이자 세계질서의 토대가 되었다.

미국 외교의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헨리 키신저는 30년전쟁 이후의 베스트팔렌 체제로부터 나폴레옹전쟁 이후의 빈 체제, 독일 통일 후의 비스마르크 체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베르사유 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체제, 그리고 탈냉전 질서에 이르기까지 국제체제의 주요 변화들을 만들어낸 강대국들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면서 지난 1세기 동안 국제체제를 주도해온 미국 외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지금의 국제정세가 키신저의 말대로 무질서와 대전쟁으로 빠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냉전 상황으로 갈지는 상당 부분 미국의 선택과 리더십에 달려 있다. 그리고 한국 외교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도 미국의 선택에 대한 판단과 예측에 달려 있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다시 돌아온 강대국 경쟁 시대를 통찰하고 그 미래를 예측하는 데 가장 적절하고 절실한 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저자

헨리 키신저

(Henry A. Kissinger)

1923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출생한 키신저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8년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귀향장병지원법의 수혜자로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지적 자본을 축적했고, 동 대학교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었고 1973년 최초의 이민자 출신 미국 국무장관이 되었다. 포드 행정부에서까지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8년간 미국 외교의 설계자이자 집행자로 활동했다.

1971년 미국 최고위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극비 방문해 미중 관계 개선을 이뤄냈고, 소련과의 데탕트를 이끌어냄으로써 3각 국제체제를 구축했다. 북베트남을 협상장으로 끌어내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고 미국을 베트남전쟁의 질곡에서 탈출시켰다. 베트남전쟁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세계질서와 미국 외교에 대한 키신저의 구상은 19세기 초반 ‘유럽의 수상’으로 불린 메테르니히와 19세기 후반을 지배한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키신저의 외교 구상은 미국 우위의 안정적인 국제체제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핵무기와 외교정책』(1957), 『선택의 필요성: 미국 외교정책의 전망』(1961), 『곤경에 빠진 파트너십: 대서양동맹의 재평가』(1965), 『헨리 키신저의 외교』(1994), 『회복된 세계: 메테르니히, 카슬레이, 그리고 평화의 문제, 1812년-1822년』(2013), 『중국 이야기』(2011), 『세계질서』(2014), 『리더십: 세계전략에 관한 여섯 가지 연구』(2022) 등이 있다.

목차

01 신세계질서
02 경첩: 시어도어 루스벨트 혹은 우드로우 윌슨
03 보편성에서 균형상태로: 리슐리외, 윌리엄 오렌지공, 피트
04 유럽협조체제: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05 두 혁명가: 비스마르크와 나폴레옹 3세
06 자승자박의 현실정치
07 정치적 인류파멸 장치: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유럽 외교
08 소용돌이 속으로: 군사적 인류파멸 장치
09 외교의 새로운 얼굴: 윌슨과 베르사유 조약
10 승자들의 딜레마
11 슈트레제만과 패배자들의 재등장
12 환상의 종말: 히틀러와 베르사유체제의 파멸
13 스탈린의 바자회
14 나치-소련 조약
15 미국의 무대 재등장: 프랭클린 루스벨트
16 평화를 향한 세 가지 접근법: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17 냉전의 시작
18 봉쇄정책의 성공과 고통
19 봉쇄정책의 딜레마: 한국전쟁
20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아데나워, 처칠, 아이젠하워
21 봉쇄 뛰어넘기: 수에즈 운하 위기
22 헝가리: 제국 내부의 격변
23 흐루쇼프의 최후통첩: 1958-1963 베를린 위기
24 서방 단결의 개념: 맥밀런, 드골, 아이젠하워, 케네디
25 베트남: 수렁 속으로.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26 베트남: 절망으로 향하는 길에서. 케네디와 존슨
27 베트남: 탈출. 닉슨
28 지정학으로서 외교정책: 닉슨의 삼각 외교
29 데탕트와 이에 대한 불만
30 냉전의 종식: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31 되짚어보는 신세계질서

감사의 말
사진목록과 출처
NOTES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국제체제의 미래를 유추하기 위한 국제 외교의 고전
지금의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인가, 새로운 냉전의 시대인가

키신저는 다수 국가들에 기반을 둔 세계질서의 흥망의 역사는 현대 정치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이해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며, 역사는 유추를 통해 비교가 가능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예견되는 결과를 비추어준다고 말한다. 처칠 역시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무정부적 국제체제 하에서 국가의 행태는 반복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다시 시작된 강대국 경쟁은 과거 어느 시점의 강대국들의 행동과 유사한가, 그리고 유사하면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거대한 파국인가, 아니면 또 다른 차가운 전쟁인가.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역사를 통찰하고 현재와 미래를 유추하게 하는 놀라운 지적 요소들로 가득하다.

19세기 말 유럽의 역사는 1890년 통일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 실각 전후로 나뉜다. 비스마르크 대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통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유럽의 정세는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대립으로 빠져들었다. 비스마르크가 공들여 쌓았던 모든 게 무너졌다.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영국이 균형자 역할을 포기하고 여기에 가담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위태로운 동맹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누구도 거대한 파국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이 20년 후 더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유지했더라도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 책의 표지는 1878년 베를린 회의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러시아-터키 전쟁(1877년)의 결과인 산스테파노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열강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스마르크 체제의 정점을 상징하지만 그 붕괴의 시작이기도 했다. 러시아는 독일에 원한을 품게 되었고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병합하면서 대충돌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렇지만 아직 대전쟁까지 가려면 독일의 중대한 실책들이 연달아 이어져야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동서 진영의 대결 구도가 명확해졌고 미국의 봉쇄정책이 본격화되었다. 동독 내에 위치한 베를린 문제를 놓고 몇 차례 위기가 이어졌고 쿠바 미사일 위기도 있었다. 베트남 등에서 국지전이 벌어졌지만 미국과 소련 간의 직접적인 충돌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1991년 소련이 스스로 와해되면서 냉전의 막이 내렸다. 대전쟁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련군이 언제라도 동독 국경을 넘어 밀려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고 한국전쟁마저 그러한 시도의 일환처럼 여겨졌다. 핵무기 경쟁이 끝이 없었다. 하지만 19세 말의 유럽과 달랐던 것은 미국도 소련도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두려워했고 두 진영 간에 안정적인 힘의 균형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대전쟁의 기억과 두려움이 새로운 대전쟁을 억제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었다.

2023년 8월 19일 한미일 3국 정상이 역사적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과 원칙에 합의했다. 사실상 중국이라는 잠재적 적국을 상대로 한국과 미국, 일본이 포괄적 안보 협력에 나서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가 평시 동맹을 꺼려왔던 영국과 협상(entente)이란 형태의 덜 구속력 있는 제휴 관계를 수립하게 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소련 진영과 대치 중이던 서독이 나토에 가입하고 서방에 결속되면서 결과적으로 양 진영의 대결 구도가 완성되어 가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전후 냉전 시대의 봉쇄정책에 관한 키신저의 분석은 예리함으로 가득 차 있다. 소련에 대한 봉쇄와 중국에 대한 봉쇄는 무엇이 다르고, 또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중국에 대한 봉쇄가 적절하고 가능한 것인가. 지금의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 강대국의 행동들을 돌아보며 유추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미국 외교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심오한 통찰
21세기에도 미국은 윌슨주의의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보편적 가치를 전쟁명분으로 내세웠고, 그로 인해 윌슨주의의 나라가 되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고립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조지 워싱턴의 금언에 따라 유럽 국가들이 싸우든 말든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이었다. 하지만 우드로우 윌슨은 고립주의적인 미국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시키기 위해 미국이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인들의 신념에 호소해야 했다. 미국인들의 도덕적 신념에 호소하지 않고는 가장 안전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머나먼 전장으로 달려가 싸우다 죽으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윌슨은 “이 위대하고 평화로운 국민을 … 가장 끔찍하고 비참한 전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고 마침내 세계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자유로운 국민들의 협력에 의한 권리의 보편적 지배를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미국인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을 민주주의를 위한 성전으로 그리고 선과 악의 투쟁으로 받아들였고, 이로써 미국의 행동에 거대한 추진력과 헌신이 뒷받침되었다.

윌슨 이후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윌슨주의적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는 자신의 대외적 목표를 천명할 수 없게 되었다. 트루먼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강력한 지정학적 개입 논거들이 있었지만 전쟁명분을 미국의 국익이 아닌 보편적 원칙의 수호로 설명했다. “국제문제에서 무력의 지배가 다시 시작된다면 그 여파가 광범위할 것입니다. 미국은 계속해서 법의 지배를 수호할 것입니다.” 현실정치를 추구한 닉슨조차 자신이 윌슨의 국제주의를 신봉한다고 스스로 여겼고 백악관 각료회의실에 윌슨의 초상화를 걸어두었다. 2023년 8월 미국이 주도한 한미일 3국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도 첫 문장을 “우리는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조를 강화할 것이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윌슨주의의 위대한 성취들이 있었다. 불운했던 국제연맹은 국제연합으로 재현되었고, 유럽을 재건하기 위해 마셜 플랜이 실행되었으며, 한국전쟁에 대규모 유엔군이 파병되었고 냉전 시기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윌슨주의는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은 윌슨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확신을 약화시키고 미국 사회를 극도로 갈라놓았다. 중동 국가들을 민주화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수많은 인명의 희생과 지역의 불안정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 미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국제적 개입을 반대하는 흐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했던 미국우선주의위원회(America First Committee)를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윌슨주의의 보편성을 거부하고 세계질서에 대한 중국적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힘과 가치가 안팍으로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윌슨주의는 미국 외교의 지침으로 계속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가 사라진 시대에 윌슨주의적 미국 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키신저는 2022년 7월 영국 주간지 〈스펙테이터〉 와의 대담에서, “역사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자신은 “미국이 많은 실패를 했지만 세계에서 선한 힘이었고, 세계 안정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신념의 지지자”라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선한 힘”의 원천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상주의적인 미국 외교가 실패하지 않고 미국 우위의 국제체제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키신저의 고뇌가 담겨 있다. 키신저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윌슨주의가 국익과 세력균형에 기반한 현실정치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윌슨주의적 동기와 현실정치적 동기가 불일치할 때 미국 외교는 곤경에 처했고, 양자가 일치할 때는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21세기 국제체제에 대한 키신저의 관점
윌슨주의와 현실정치 그리고 미국 외교의 선택

키신저는 국제질서가 안정적으로 존재하려면 세력균형에 의한 균형상태가 존재하고 공통의 가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본다. 키신저는 나폴레옹전쟁 이후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체제를 이상적인 강대국 국제질서로 보았다. 빈 체제는 승전국들의 4국동맹에 기초한 균형상태가 있었고 정통성이라는 공통의 가치에 기반했다. 패전국인 프랑스도 회의에 동등한 자격으로 초대되었다. 빈 합의가 이루어진 1814년 이후 100여 년 동안 유럽에서는 대전쟁이 없었다. 반면 1차 세계대전 이후 들어선 베르사유 체제는 불안정 그 자체였다. 패전국 독일을 억제할 수 있는 힘도, 공통의 합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베르사유 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독일의 힘과 야망이 너무 강해져서 더 이상 현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은 분할되었고 일본은 점령되었지만 승전국들은 미국과 소련 진영으로 나뉘었다. 일종의 균형상태가 존재했고 어느 쪽도 근본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려 하지 않았다. 냉전이 끝났고 패전국인 소련은 해체되었고 러시아는 현상을 변경할 힘이 없었다. 그 사이에 중국이 부상했고, 현재의 중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처럼 현상을 변경할 동기도, 능력도 모두 지니고 있다. 중국과 주변국들의 군비경쟁으로 불안정성이 높아가고 있고 민주주의와 독재체제라는 가치의 충돌이 존재한다.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는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발칸반도 문제처럼 미국과 중국 모두 사활적 이익으로 인식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키신저가 지금의 국제정세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유사하다고 본 이유다.

유럽의 30년전쟁과 나폴레옹전쟁,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깊이 연구한 키신저에게 어떻게 대전쟁을 막을 것인가는 항상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키신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