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참을수없이가벼운것들이횡행하는시대에묵직한사유의,그것도무려5백페이지에이르는소설이나왔다.구광본의[미궁]이바로그것이다.작가는식민지제국의수도동경에서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일본경찰에체포된뒤폐결핵으로사망한1930년대의이상을우리시대에다시불러내고있다.한국현대문학최대의아이콘'이상'에대한관심은그동안엄청난수의논문으로이어졌다.그리고여기에그의문학과삶의비밀에접근하려는평전과소설이더해졌다.그것들을이상의이차텍스트라고할수있다면,[미궁]은일단또...
참을수없이가벼운것들이횡행하는시대에묵직한사유의,그것도무려5백페이지에이르는소설이나왔다.구광본의[미궁]이바로그것이다.작가는식민지제국의수도동경에서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일본경찰에체포된뒤폐결핵으로사망한1930년대의이상을우리시대에다시불러내고있다.한국현대문학최대의아이콘'이상'에대한관심은그동안엄청난수의논문으로이어졌다.그리고여기에그의문학과삶의비밀에접근하려는평전과소설이더해졌다.그것들을이상의이차텍스트라고할수있다면,[미궁]은일단또하나의이차텍스트이다.그러나[미궁]은이상의문학과삶의세목에충실하면서새로운해석을내놓거나상상력으로빈곳을채워나가는기존의이차텍스트들과는달리대담한발상으로,포스트모던세계에던져진모더니스트이상이라는완전히새로운이상을탄생시켰다.
이상을"모던시대에살았던포스트모던작가"로파악하는김성곤교수는이런점과관련해[미궁]을"이상이제시해준미로의식을빌어전근대와근대와탈근대를봉건시대와식민지시대와후기산업시대의극심한혼란속에겪어온현대한국사회를조감하고,수수께끼같은현대의리얼리티를파악하며,그러한상황에서의글쓰기와삶의의미를천착한흥미있는포스트모던소설"이라고규정한다.나아가"포스트모던소설의대표적인주제와기법을갖춘한편의주목할만한포스트모던소설"임을밝히고,"강렬한미로의식을바탕으로양극의배제나타자의포용을주제로해서삶과글쓰기를긴밀하게연결시키는것"을포스트모던소설의특징으로꼽았다.
90년대문학을넘어서
새로운문화지층에서펼쳐진90년대의한국소설이이전소설의전통을여러면에서배신하고있다는점을들어그것에곧바로실패의낙인을찍을수는없을것이다.그러나90년대이후한국소설이전반적으로허약해졌다는점은널리인정된다.[미궁]의말미에실린대담의마무리를하며평론가신철하는"이제한국문학은그지리멸렬한실존의내면적탐구나,흐느끼는듯한여성취향의일상적소재로부터더역동적이고,더선굵은남성서사의한편을보여주어야할터닝포인트의지점에와있는것처럼보인다"며구광본의[미궁]을주목했다."2천년대의벽두를뒤흔들만한진지함과진정성을내장하고있음에틀림"없으며"그가볍고여성취향적인내면화의흔적들에가새를지르고도약할새로운문학의향도로서[미궁]의역할은전혀손색이없다"는것이다.
[미궁]은오랜작업을거쳐나왔다.포스트모더니즘논쟁이시작된뒤우리소설에80년대식의거대서사를대체할미시서사가언급되던때[미궁]은첫모습을보였다.7백장분량으로1992년에발표된그동명의작품을일단기반으로하고있지만,이번의이[미궁]은내용이나구성그리고분량모든면에서단순한개작의성격을넘어서새로운작품으로집필되었다.발표당시평론가신범순의「글쓰기의최저낙원―새로운소설들의가능성」([문예중앙],92년가을호)과그해[오늘의시]하반기호의특별좌담「새로운현실의문학적조건―패러디패스티쉬키치」등을통해주목을받은바있다.그러나작가는자신의작의와실제작품의내적성취사이의현격한차를진작부터의식하였다.이에그동안[미궁]이가진여러문제성을극대화하고정교화하는데공을들여10년만에마침내우리시대의이상을재탄생시킨것이다.
거대서사를접고미시서사로내달리면서결국실존적내면과여성취향의일상으로경도된90년대한국소설전반의흐름과는달리그동안그는더거대한쪽으로나아갔다.이런점은구광본이포스트모던작가로분류되더라도당시그부류의작가들과차별성을가지게할것이다.그동안의포스트모더니즘에대해"많은경우그것이멋진치장품이거나위급한순간내미는방패일뿐이었다는혐의를두고있다"면서도작가는자신이근대극복의한방안으로포스트모던논의를눈여겨보았으며어떤부분을흡수했다고,대담에서밝히고있다.또[미궁]을"우리식혹은구광본식탈근대기획의하나로평가"받기를바란다고도밝혔다.그의거대서사는물론80년대식의그것이아니라,소설의공간을일상및경험가능한세계를포함하여신화적세계로까지넓히는것이었다.이번에함께나온,넓게보아신화적사고의부활을통해소설의새로운가능성을탐색한「소설의미래」는그런면에서[미궁]과짝을이루며작가의문학관을집약한것으로이해할수있겠다.
범어,열세개의미로혹은고래뱃속
[미궁]은여러시대와장소그리고온갖텍스트가뒤섞여만들어진세상(범어)에얽혀든서적외판원이상이현실복귀를위한방황과탐색을하는가운데존재의비밀을깨닫는한편또작가로서의책무를받아들이게되는과정을그린장편소설로,'최후의모더니스트'시인이자작가였던이상의삶과텍스트에대한단순패러디를넘어그의시대보다훨씬광대하고복잡다단한오늘의세계를미로의주제에맞추어탐구하고있다.[미궁]의이상은33세의서적외판원이며,작가지망생김해경과는약혼한사이.소설은비오는출근길에그가택시와함께강물에휩쓸린뒤,약혼녀의친구라며나타난여자마드모아젤을따라가범어시유곽동33번지,일명18가구라는곳에머물게되는상황에서부터본격적으로펼쳐진다.
여러시대와장소그리고온갖텍스트가정교하게뒤섞여만들어진도시범어는환상적이다.그러나그'환상'은현실과의차이와거리에서발생하는경이가아니라우리의당면현실쪽으로이끈다.물에빠지는상징적인죽음과재생을통해이또다른현실을사는그는[날개]의주인공이자「오감도」의새로운주인공이된다.약혼녀의죽음을통보받고유언까지전해듣게되는그첫날밤부터이상한기미를보이던33번지에서오래지않아한여자엘르가의문의죽음을당한뒤자살로처리되는사이마침내그는현실복귀를위한방황과탐색을시작한다.그가사후의중유(中有)세계혹은심령계가아닐까의심하던도시범어는여러시대가중첩된세계이다.독자들은그것이"1세기도채안되는짧은기간동안우리의전통사회를융단폭격하고,초토화하다시피한근대화과정"(김상훈)을상징하는공간임을어렵지않게깨닫게될것이다.
이곳에서의이상의방황과탐색은곧질곡의한국현대사를통과하는일이며상처를치유하고대안을구상하는일이다.믿을수도믿지않을수도없는이곳에서환속한승려출신작가로의변신을강요당하는그는자신에게소설과화두라는두겹의형벌이씌워져있음을깨닫는다.약혼녀가지망한작가의길과그녀의작품노트에기록된화두(독품은복어요리하기)가고스란히그의삶으로들러붙은것이다.부지불식간에상황을받아들이는가운데마드모아젤의정부가되며또그녀의친구로랑생으로부터집요한유혹을받기도하는등이곳의삶에깊이얽혀들게되고그런한편삶과죽음그리고섹스에대한앎을일상너머의신비적영역으로까지넓혀간다.
홈바가있는세평반의방에서손님을받는마돈나,쉬즈,에꼴과뒤에미스그랑블루선발대회를거쳐팔려온마리끌레르등33번지의여자들.이상과함께절에서뛰쳐나왔다는도원스님과하산길에복어를안주로술을마시다쓰러진그들을간호한간호사마리.복벽운동을벌이는'황태자'장가택.자신의영혼에의혹을느껴사서직을버리고성문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