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읽는 신심명 (Paperback)

선으로 읽는 신심명 (Paperback)

$13.38
Description
선불교에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는 극찬을 받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선시(禪詩) 가운데 하나인 삼조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을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이 선(禪)의 핵심을 곧장 가리키는 언어로 설법했다. 조사선(祖師禪)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실제 눈을 뜬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태완 원장의 설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마음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양하게 도를 가리키지만, 언제나 바로 이것,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까닭에 쉽게 읽히면서도 저절로 도(道)에 몰입되게 한다. 선(禪)에 관심이 있거나 마음공부를 하는 독자에게 좋은 지침이 되는 책이다.
저자

김태완

저자김태완은
무심선원원장.

저서및역서
《마조어록》《달마어록》《육조단경》《황벽어록》《임제어록》《무문관》《백장어록》《간화선창시자의禪》(상,하)《선으로읽는금강경》《선으로읽는반야심경》《선으로읽는신심명》《선으로읽는대승찬》《선으로읽는마하무드라의노래》《선으로읽는사라하의노래》《유마경》《금강반야경문수반야경》《바로이것!》《참선의길잡이》《조사선의실천과사상》《선문염송염송설화》《대혜보각선사어록》등이있다.

목차

권두시
삼조승찬대사에관하여
머리말

신심명73수전문

첫번째법문
두번째법문
세번째법문
네번째법문
다섯번째법문
여섯번째법문
일곱번째법문
여덟번째법문
아홉번째법문
열번째법문
열한번째법문
열두번째법문
열세번째법문
열네번째법문

출판사 서평

선의황금시대를이끌었던조사선의본래모습을되살리기위해매진해온무심선원김태완선원장의《선(禪)으로읽는신심명》이도서출판침묵의향기에서출간되었다.지공화상의대승찬을설법한《선(禪)으로읽는대승찬》에이은김태완선원장설법시리즈의두번째책이다.

문자로서는최고의문자,신심명
중국선종제3조승찬대사가지은[신심명]은146구584자의짧은글이지만불교의모든가르침과선(禪)의근본이모두이글속에담겨있고,팔만대장경의심오한가르침과온갖화두의본질이모두이글속에포함되어있다고하여,중국에불교가전해진이후로‘문자로서는최고의문자’라는극찬을받고있다.

《선(禪)으로읽는신심명》은14개의법문으로이루어져있으며,법문에앞서[신심명]의원문을충분히음미하도록73수전문과,조사선전문가인지은이의엄밀한번역을수록했다.

중국선종의삼조승찬대사
북제천평2년에나이마흔을넘긴거사가찾아와서이조혜가스님께물었다.
“저의몸이중풍에걸려있습니다.스님께서죄를씻어주십시오.”
“죄를가져오너라.너의죄를씻어주겠다.”
거사가잠시묵묵히있다가대답했다.
“죄를찾을수가없습니다.”
혜가스님이말했다.
“너의죄를다씻어주었다.”

이거사가훗날의삼조승찬대사다.마음을가져오라는달마의요구에마음을찾을수없다고답했던혜가의일화를연상케하는이대화를통해승찬스님은무엇을깨달았던것일까.한가지는분명해보인다.그것은어렵지않으며단순하다는것.스님은자신이깨달은단순한진실을후인들도쉽게깨달을수있도록보석같은가르침을[신심명]73수에오롯이담아전해주었다.

도(道)는어렵지않다
“지극한도는어렵지않으니,다만가려서선택하지만말라.”
[신심명]의첫수는이렇게,선(禪)공부인이라면모르는사람이거의없을정도로유명한구절인,‘지도무난유혐간택(至道無難唯嫌揀擇)’으로시작한다.지극한도를어렵지않다고생각할사람은거의없을것이다.평생치열하게수행해도도를깨치기는어렵다고믿는사람이대부분일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승찬대사는분명히이렇게말하고있다.나아가두번째수에서는“싫어하거나좋아하지만않으면막힘없이밝고분명하리라.”고말한다.즉,가려서선택하지만않으면,좋아하거나싫어하지만않으면,도는어렵지않으며밝고분명하다는것이다.여기에[신심명]의핵심이담겨있다.한마디로,분별하지만않으면도를볼수있다는것이다.

분별한다는것은무엇인가?나와너가따로있고,이것과저것이따로있고,좋아함과싫어함이따로있고,옳음과그름이따로있고,과거와현재와미래가따로있고,여기와저기가따로있고,중생과부처가따로있고,있다와없다가따로있다고보는것이다.모양을좇고이름을좇아서다름을만들어내는것이다.이런분별심은진실을가리고갈등을일으키며인간을불행하게만드는원인이다.

그렇다면목석처럼아무생각도하지않고분별하지않으면되는가?지은이는고개를가로젓는다.

“분별이도가아니듯이,분별이없는무분별역시도가아닙니다.분별과무분별은또하나의분별일뿐입니다.그렇기때문에‘분별이망상이라면분별하지않으면된다’고이해하는것은어리석은짓입니다.이렇게분별과무분별,있음과없음의양쪽을왔다갔다하면,중도(中道)는꿈도못꾸는겁니다.중도에서는양쪽이없어요.아무리분별해도분별이없고,아무분별이없는곳에서얼마든지분별할수있는것이중도입니다.”

분별심을버려야한다는판단도이미분별심이라는것이다.어쩌란말인가?분별하지말아야한다면서도분별심을버리려하면안된다니…….이렇게해도어긋나고저렇게해도어긋나며,어떻게해보려고해도어긋나고,어떻게하지않으려고해도어긋난다니…….이렇게해도안되고저렇게해도안된다면,도대체어쩌란말인가?지은이는말한다.

“그래서생각으로는전혀접근할수가없어요.잘보십시오.가리켜드립니다.”

다만,여기에생생히살아있는진실을보라
선사들은이치에맞게설명해주지않는다.개념들을동원하여머리로이해되게끔납득시키려하지않는다.개념을동원하여설명해주면,이미수행자가가지고있는개념위에더많은개념을더해줌으로써오히려진실과는더멀어질수있기때문이며,어차피생각으로는진리에접근할수없기때문이다.그래서만약선사들이어떤설명을해준다면,그것은임제스님의말대로“어린아이를이끌고달래며병에따라처방하는약”일뿐이다.선에는본래방편도수행도없다.법(法)은,진리혹은진실은수행과는상관이없기때문이다.남악회양스님이마조스님앞에서벽돌을갈면서보여준일은왜그런지를보여주는대표적인일화라할수있다.

그러면선사들은어떻게하는가?생각이갈곳을잃게만들기도하지만,그보다직접적으로는,가리킨다.가리키고가리킨다.가리킴으로써곧바로진실을드러낸다.“그러므로선에서의가르침은언제나여기(죽비를들어올리며)를다만가리킬뿐입니다.어떠한분별도설명도없이다만곧장가리킬뿐이죠.”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조사들의전통을충실히따르는지은이역시가리킨다.법(法)을향해가리키며,수없이다양한말을통해다양한모양으로가리킨다.혹은,지은이의말을빌자면,끊임없이물을휘저어물을보여준다.

이가리킴을생각으로이해하려하면앞뒤가꽉막힐것이다.도무지이해가되지않을것이다.하지만도무지이해할수없는그자리에서생각으로이해하려는노력을포기하고,지은이가가리키는곳을꾸준히바라보면어떻게될까?

“불교는다만이불이법문(不二法門)하나를가리키고있을뿐입니다.지금여기(손을흔들며)에서문득모든차별이사라지게되면,오랫동안갑갑하게막혀있던속이쑥뚫려버리는것같습니다.이제는세계가새로워집니다.세계의겉모습은지금까지보아왔던그세계이지만,스스로는완전히새로운세계에있습니다.……이제순간순간삶을즐기게됩니다.모든순간에이것이눈앞에서팔딱팔딱살아있습니다.이즐거움은말로다할수가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