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는 마음으로 그림과 사귀세요!”
그림과 러브레터?
사랑의 표현은 글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몸짓 하나로도 가능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보던 하늘로도 이뤄진다. 그림은 또 어떤가. 글이나 말로서 표현의 한계를 느낄 때, 사람들은 시각언어를 빌어서 마음을 전하곤 한다. 한 장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것을 내게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그림의 질감과 상대방의 애정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렇다면 연애의 감정은 그림을 감상하는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먹서먹했던 사람끼리 만나서 말을 트고 애틋한 감정을 나누고 사랑하는 행위가 그림을 사귀는 방법과 다를 것이 없다. 감정을 무장해제시키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맞아들이게 하듯이 그림과 말을 트고, 사귀면 된다. 연애하듯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쓰는 러브레터』는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사랑을 키우고 갈등을 겪고 원숙한 사랑을 이룰 때까지, 그림을 통해서 연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형식의 조형적 고백이자 색다른 그림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가졌던 사랑의 감정들을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되살려 놓고 있다. 명주실을 고르듯이 섬세하게 앉힌 글과 다채로운 도판은 서로 돕는 가운데 행간의 메시지의 극대화를 꾀한다. 그것은 또한 지은이가 미술전공자답게, 모네, 몬드리안, 고갱, 클레, 클림트, 실레, 마티스, 뭉크, 프리다 칼로, 샤갈, 모딜리아니, 해링, 야블렌스키, 칸딘스키, 마그리트, 쇠라, 폴록, 호크니, 말레비치, 로스코, 루소 등의 그림과 교접하면서 일궈낸 절절한 마음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그리워하는 연애 초기의 이야기를 드리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은 「채링 크로스 다리」 연작(모네), 「꽃이 핀 사과나무」 외 2점(몬드리안), 「글로리 홀」(해링), 「명상」(야블렌스키), 「웅크린 여인의 모습」(클림트), 「무제」(칸딘스키), 「레오폴드 츠보로프스키의 초상」(모딜리아니)이다. 2장에서 이별을 반복하며 갈등을 겪을 시기의 이야기를 「청강실Ⅰ」(마그리트), 「상류에서 본 크로투아 풍경」(쇠라), 「다친 사슴」(칼로), 「라벤더 안개 Nomber 1. 1950」(폴록), 「도시 위로」(샤갈), 「예술가의 초상」(호크니), 「흰색 위의 흰색」(말레비치) 등의 그림을 통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3장에서는 갈등을 겪고 난 후 찾아드는 원숙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았다. 뭉크의 「키스」를 비롯하여, 「가벼운 지구와 푸른 색」(로스코), 「해변의 기수」(고갱), 「창조자」(클레), 「죽음과 소녀」(실레), 「이집트풍의 커튼이 있는 실내」(마티스), 「채석장」(루소) 등의 그림이 동행한다.
각 편짓글의 뒤에는 [팁(Tip)]으로, 편지의 ‘추신’처럼 그림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또하나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이는 그 자체로 완결된, 독립된 글이기도 하다.
그림 속의 두 사람은 놀랍게도 얼굴이 하나입니다. 깊게 입을 맞추고 있는 그들 어딘가에 경계가 있을 법도 한데,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서로를 껴안은 양팔을 빼고는 어느새 그들의 몸도 하나입니다. 사랑은 저렇듯 온전히 하나가 되고픈 욕망일까요. 둘이서 함께 무엇이든 하나로 만들어내고픈 것일까요. 너무도 갈망하는 것이기에, 저 두 사람은 오히려 불안해 보입니다._「켜켜이 쌓인 흔적」 중 팁 글에서
[부록] ‘편지 속 화가들과 연애하다’는 이 책의 또다른 자랑거리이다. 편짓글을 읽으며 피어나는 감정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서 한곳으로 모아서, 작은 인명사전으로 꾸몄다. 짧은 글 속에 작가의 신상에서부터 작품세계까지 알차게 담되, 백과사전식 설명을 지양하고 맛깔스런 글쓰기로 작가의 초상을 가까이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점은, 이 부록이 미술의 이해를 높이는 ‘책 속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클림트, 구스타프(Gustav Klimt, 1862~1918): 클림트는 문자언어에 대해 병적인 거부감을 지녔다. 스스로 작가 자신에 대한 언급도, 작품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그의 그림을 보면서 더 풍부한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금 세공사, 어머니는 결혼 전에 가수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그토록 많은 여인을 그려내면서도 죽을 때까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으며, 역설적이게도 그를 오래도록 기억할 열네 명의 사생아를 두었다._[부록] ‘편지 속 화가들과 연애하다’에서
지은이는 현재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 전문가이다. 따라서 한 장의 그림을 보더라도, 그것에서 우러나는 감정과 애정이 맞닿아 있는 지점을 찾고, 그 그림을 어떻게 느껴야 할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고백하듯이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이것은 전작 『내 사랑 미술관』에 이어, 지은이가 제시하는 가슴으로 느끼는 그림 감상법이다.
내 삶에 당신이 들어오고 또 당신의 삶에 내가 들어갔듯이, 그렇게 그림이 삶 속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복잡다단한 일상만큼이나 많은 양식의 작품을, 기왕이면 뚜렷한 논의의 지점을 제공하는 현대미술의 쟁점에 놓인 작가를, 또 이미 눈에 익은 작품이 아니라 낯설지만 새로운 작품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연애편지를 통해 그 작품들이 건네는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삶, 더불어 당신을 향해 던지는 내 마음의 빛깔을 되짚어보게 하는 지점임을 두루두루 전하고 싶었습니다._「여는 글」에서
이 책의 미덕은 연애의 느낌을 그대로 그림에 얹어 감상하면 그 그림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있다. 또한 실제로 말과 글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 자신의 감정을 연서(戀書)처럼 건네주게 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미술 안내서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시적인 맛을 배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