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삼재 (동경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삶과 선택)

동경삼재 (동경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삶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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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대 지성계를 대표하는 동경의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 그들의 삶과 선택을 조명하면서 한 시대를 읽는다
한말에 조선인은 일본 유학생들에게 기대가 컸다. 실제로 이들은 일본에 유학하면서 습득한 근대 지식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후세대 청년과 소년들에게 출판 및 저술 활동을 통해 그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들 동경 유학생 가운데 크게 주목받았던 유학생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를 ‘동경삼재(東京三才)’라고 불렀다. 홍명희는 1888년, 최남선은 1890년, 이광수는 1892년에 태어났으며 각각 두 살 터울이었다. 비슷한 연배의 이들은 한말 일제 초 ‘아시아의 런던’이라고 불리던 동경에 유학하면서 서로 활발히 교류했다. 동경에서도 이들은 학교 및 서점·도서관 등에서 근대 학문의 세례를 받았으며, 귀국하여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조선의 문명화를 위해 활동했다. 그러나 정치적 노선 차이 때문에 서로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들 동경삼재는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빼곤 식민지의 지배 정책 변화와 해방과 분단의 시대 상황에서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았다. 해방과 분단 전후 동경삼재의 삶의 궤적은 한말 일제강점기란 시대를 선도했던 우리 지식인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이들 세 사람의 삶과 선택을 조명하면서 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한 시대를 읽는다.
저자

류시현

저자류시현은한국근현대사를전공하고고려대학교사학과에서석사학위와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광주교육대학교사회과교육과교수로있다.지은책으로는『최남선연구』(2009),『최남선평전』(2011),『한국근현대와문화감성』(2015)등이있다.현재광주와호남지역의역사와문화를공부하면서서양사상의수용과번역,한국적정체성의형성과정에관한사상사,문화사적접근을연구하고있다.

목차

책을내면서

머리말:한국현대사와동경삼재

제1부동경삼재의만남
전통과근대의충돌:어린시절
작은출발,큰간극:신학문수련
근대학문의세례:일본유학과입학
‘동양의런던’인동경:첫만남
민족의발견:일본유학생활

제2부동경삼재와민족
장밋빛전망:귀국과계몽운동참여
신경쇠약과방랑:강제‘병합’전후
문명에대한압도:식민지인의삶
민족의기대:1910년대신문화운동참여
시대의주인공:2·8독립선언과3·1운동참가

제3부동경삼재와이념
새로운각성:감옥생활과중국망명
민족의재발견:1920년대전반기국내활동
개조론과조선문화연구:조선적정체성탐구
민족운동의새방안:사회주의의소개와수용
갈림길:민족운동노선의분화와신간회활동
정치운동의대안:1930년대조선학운동참가

제4부동경삼재의선택
전쟁의조짐:만주사변과민족공간의확대
전쟁의확산:중일전쟁과지조와변절사이
전쟁의광기:태평양전쟁과학병독려활동
독립의기쁨과불안:해방공간과좌우분열
또다른선택:분단국가수립과6·25전쟁

참고문헌
동경삼재와그의시대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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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책의특징은
*영화[동주]이후,이책에서그려내는홍명희최남선이광수를통해식민지시기일본유학생들의고뇌와분투를생생하게만나볼수있다.
*홍명희최남선이광수세사람사이의교류에초점을맞춰그들의삶을소개하면서한시대의지성사를그려낼뿐만아니라,이를시각적으로보여줄자료도판들을여럿싣고있으며,이들삶을일목요연하게한눈에파악할수있도록‘동경삼재와그의시대연표’를책말미에붙여독자들의이해를돕고있다.

이책의구성과내용은
제1부동경삼재의만남
홍명희(1888),최남선(1890),이광수(1892)는각각두살터울로1876년개항이있은지15년을전후해서태어났다.전통과근대가혼재되어있던시점이었다.그리고각각양반,중인,몰락양반(평민)등으로출신이달랐다.그래서전통시대였다면이루어질수없었을이들의교류는매우근대적인현상이었다.제1부에서는이들세사람의어린시절각기달랐던집안분위기부터한문공부를비롯한학문수련과정이나,독서목록,근대적교육기관의입문,외국어습득,그리고일본유학생활과그로인한민족주의의자각등을소개하고있다.세사람은1904∼1905년사이의러일전쟁을전후로각각동경에유학을가며그곳에서근대적학문을수용하고신분의차이를뛰어넘어서로활발히교류한다.

제2부동경삼재와민족동경에서조선으로돌아온동경삼재는식민지현실에서민족주의를혹독하게체험한다.그리고일본과대비되는헐벗은조선에서이들은동포를계몽할계획을세운다.이광수는오산학교의교사가되어,최남선은신문관을세우고《소년》을발간하는등출판과인쇄문화에힘쓰면서청년들에게신문명을소개했다.홍명희도1910년졸업시험도치르지않고귀국하여중국지역의민족운동가와교류하면서움직였다.이후동경삼재는1910년강제병합의충격으로신경쇠약등정신적인동요를겪었다.이광수와홍명희는방랑을떠났다가상해에서만나한이불을덮고생활하기도한다.이광수는이후다시동경와세다대학에제2차유학을가고,홍명희는해외에서방랑을계속하다귀국한다.1917년《무정》으로이광수는조선문단의대표주자가되고,사회계몽에관한글을계속쓰며교육보급과사회개량을역설하지만홍명희는글을쓰거나심정을피력하지않았다.3·1운동에이들동경삼재는적극주도적인역할을한다.동경에서20대후반의‘늙은유학생’이었던이광수는조선지식인청년의대표로서<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쓴뒤바로상해로탈출했으며,최남선은민족의대표로<기미독립선언서>를작성했고,오랜해외의방랑끝에고향괴산에거주하던홍명희는3월19일충청북도지역에서최초의만세운동을주도했다.

제3부동경삼재와이념3·1운동에적극참여했던동경삼재는감옥에갇히거나중국으로망명했다.이광수는선언서를영어로번역해해외에배포하는책임을맡고상해로갔다가,대한민국임시정부에참여해기관지《독립신문》의책임자로활동한다.홍명희와최남선은3·1운동으로감옥에갇혔다가홍명희가1920년4월28일출감하고최남선이1921년10월가출옥한다.최남선은감옥에서조선의근본을고민하다태양을숭배하는문화권에관한논의인‘?’의원리를찾았다고하며,이를기점으로계몽주의자에서역사학자이자민속학자로활동한다.홍명희는출옥후교육과언론에서활동한다.1919년수립된대한민국임시정부는1920년초반부터위축이되고,국내에서는조선지식인에대한회유정책으로문화통치가펼쳐지는가운데이광수는귀국을하고,최남선은잡지《동명》을발행하며,홍명희는사회주의사상단체에참여한다.이후동경삼재는당대사회주의사상과이를기반으로한민족운동을바라보는입장의차이에서서로다른길을걷게된다.사회주의에우호적인홍명희는비타협적민족주의자의길을걷고,이광수와홍명희는민족주의계열의입장을고수한다.1920년중후반민족주의좌우파로나뉘어이루어진사회적활동에비례해서이들동경삼재사이는서로더욱멀어진다.이광수는타협적민족주의자의일원으로일제가허락하는범위에서의‘자치’를주장하고,최남선은단군과불함문화론연구를통해일본인학자의조선연구에학문적으로대결하려고했으나정치적입장이탈각된이런연구는이후조선총독부산하단체인조선사편수회의에참여하고일제의조선지배를합리화한‘식민사관’을옹호하게된다.
1931년국내최대합법적인민족운동단체였던신간회가해소되면서1930년대정치운동의대안으로조선학운동이대두되는데,이러한조선적인것에관한문화학술운동은1928년홍명희의소설《임꺽정전》에그연원을둔다.한편이광수와최남선은조선민족단위의고민에서벗어나심지어일본중심의문화권논의에서조선문화를하나의지역단위로축소시키거나조선문화의일본화를주장한다.

제4부동경삼재의선택1930년대중반에홍명희는《임꺽정전》집필에몰두하고조선의역사와문화를소개하는글을쓰면서도암중모색했으며,최남선과이광수는민족독립의전망이사라지자당대현실을외면하고회고적경향에입각해일제와타협하는정치적입장을보였다.이광수는‘동우회사건’으로친일로돌아선다.동우회는안창호가만든흥사단의국내지부로독립정신을고취하고민족운동을전개했는데,1937년이광수를포함한41명이재판에회부되고일본경찰에검거됐다가보석으로출석한다.이때이광수는전향을한다.최남선은1930년대중후반부터만주와관련을맺고《만선일보》고문과만주건국대학의교수가된다.반면홍명희는이둘과는달리침묵하면서지조를지켰다.태평양전쟁이시작되자최남선과이광수는창씨개병,학병동원등일제의‘내선일체’정책을적극지지한다.1945년해방이되어홍명희는좌우의분열을막아하나가된민족국가를수립하고자했고,이광수와최남선은일제말친일행위로실추된문화적권위를해방공간안에서복원하려고했다.1948년반민특위가조직되면서최남선과이광수는체포됐다가반민특위활동이주춤한사이무혐의처분을받는다.홍명희는1948년북으로갔다.그후1948년북한의부수상에올랐고과학원원장을지내고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부위원장으로선임됐으며,1968년81세로사망했다.이광수는6·25전쟁때건강이안좋아피난을못갔다가납북된뒤지병이었던폐결핵으로59세에사망했다고한다.최남선은6·25전쟁때해군전사편찬위원회일을했고,휴전후서울에서서울시시사편찬위원회고문을맡았으며,육군대학에서한국사강의를했다.1955년뇌일혈로병석에누웠다가1957년66세의나이로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