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무게를 견뎌라 (법학자 정약용의 삶과 흠흠신서 읽기)

백성의 무게를 견뎌라 (법학자 정약용의 삶과 흠흠신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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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법학자로서 정약용의 삶을 조명하고,
우리나라의 최초 판례 연구서 ??흠흠신서??를 살펴보며,
조선시대를 다시 읽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시대가 낳은 최고의 학자이자 개혁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다산 정약용은 민중의 삶에 큰 애착을 가진 실천적 지식인으로, 조선 후기 역사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 유산을 남겼다. 그는 요즘으로 치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학식이 깊었는데, 특히 18년이라는 오랜 유배 기간 중에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런 지적 유산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고, 관련 서적도 적잖게 출간됐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서로 꼽는 ‘일표이서(一表二書)’ 즉『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법학자로서의 다산 정약용의 생애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편이며, 중국과 조선의 살인 사건 재판에 대한 원칙, 사건 처리에서 문제점, 그리고 바람직한 법률 적용 방법을 소개한 우리나라 최초 판례 연구서로서 의미가 있는 『흠흠신서』는 목민(牧民. 지방관)의 사적을 가려 뽑아 폭정을 비판한 다산의 저술 『목민심서』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 다산 정약용의 진면목을 알려면 다양한 측면에서 그의 생애와 저술을 조명해야 하고, 당대 최고 법률사상가라는 위상 또한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에 이 책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학자이자 법조인으로서 면모에 주목해 그의 생애를 조명하며, 그의 법률관과 법사상, 법을 집행하는 관청에서 활동, 그리고 다산 정약용 저술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 판례 연구서로서 가치를 지니는 『흠흠신서』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경전과 역사책 공부에만 몰두하고 법률 지식 등 실용학문을 등한시했던 당시 사대부 사회에서 다산 정약용은 어떻게 『흠흠신서』 같은 전무후무하고 독보적인 법률 전문서적을 쓸 수 있었을까? 또 『흠흠신서』에 담긴 여러 사건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당시 백성의 생활상과 법률문화의 실상은 어떠했을까?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법률사상가로서 다산 정약용의 활약상과, 다산 정약용이 바라본 조선시대 사법제도와 형정(刑政)의 실상, 『흠흠신서』의 구성과 내용,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 다산 정약용 사후의 평가와 다산 정약용이 남긴 법학자로서 유산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더욱이 올 2018년은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현에서 18년이라는 기나긴 유배를 끝내고 1818년에 고향인 마재마을의 여유당(與猶堂)으로 돌아온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기념 심포지엄이나 행사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책은 다산 해배 200주년에 펴내는 다산의 일대기와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흠흠신서』 이야기다.
저자

심재우

저자심재우(沈載祐)
서울대학교인문대학국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에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학교강사,규장각한국학연구원조교,국립중앙박물관학예연구사등을거쳐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인문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는『네죄를고하여라:법률과형벌로읽는조선』,『조선후기국가권력과범죄통제:『심리록』연구』,『조선후기법률문화연구』(공저),『조선의왕으로살아가기』(공저),『단성호적대장연구』(공저)등이있다.

목차

서문

제1부정약용의생애와법학자로서면모
집안배경이약이되기도독이되기도
관직은개인의영달을위한것이아닐지니
목민관이되어백성과눈높이를맞추다

제2부정약용이바라본지방사회형정의실상
법률경시풍조가만연한지방사회
형장남용과열악한환경의죄수관리
살인사건수사와검시의문제점

제3부정약용이쓴판례연구서『흠흠신서』
방대한분량의판례연구서를편찬하다
『흠흠신서』에소개된중국판례의이모저모
조선을뒤흔든사건과사람들

제4부『흠흠신서』에담긴정약용의형법사상
재판과형벌집행의기본원칙
‘정당한복수’와‘의로운살인’을논하다
정조의판결에대한완곡한비판

제5부정약용이남긴유산
고통과창작이공존한유배생활
『목민심서』와『흠흠신서』가남긴영향
법률사상가정약용을재조명하다

참고문헌
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제1부「정약용의생애와법학자로서면모」에서는다산의집안,생애와더불어법조인으로서역량을발휘한관직생활을돌아봤다.다산이살던18세기후반부터19세기초반까지는영조,정조,순조,철종재위기간이었다.다산은1789년문과에급제해1799년형조참의에서물러날때까지10여년이라는짧은기간에다양한관직을경험했다.정조의후원과배려속에서중앙조정의주요관직뿐아니라,지방사회의실상을몸소확인할수있는암행어사및목민관도지냈다.이러한관직경험이다산에게는조선의현실정치와제도를명확히파악하고,구체적이면서도새로운혁신안을내놓을수있는자산이됐다.또한다산은양반사회의모순과성리학의비현실적학문경향을비판하고민생에바탕을둔실용과실천을강조한근기남인(近畿南人.서울·경기지역의남인)의개혁사상을어린시절부터체득했었다.이것이그의학문및사상형성에적잖은영향을미쳤을것이고,여러관직을두루거치며왕조사회의제반모순과문제점을깨달았을것이며,유배형에처해진이후에는전라도의작은고을강진현에서과중한부세(賦稅)부담과생활고로도탄에빠진농민의실상을목도하며현실을직시하고절실한개혁내용을다듬는데밑거름이됐을것이다.

제2부「정약용이바라본지방사회형정의실상」에서는다산의눈에비친지방사회재판과형벌의실상,그가제시한법제도및형정(刑政)운영의바람직한개선책에주목했다.다산은10여년의짧은관직생활을마감하고순조첫해부터경상도장기현을거쳐전라도강진현에서무려18년동안유배생활을했다.하지만그는고립무원의유배지에서도학문적으로눈부신성취를거두었다.이시기에쓴많은저작가운데특히『목민심서』와『흠흠신서』는그가유배지에서보았던탈법과부정의현장,형장남용으로얼룩진형정의실상,세금으로고통받던백성의피폐한생활상등을잘담고있다.따라서이두저술에는당시지방사회의법집행에어떤문제점이있었는지,법치와정의를실현하기위한다산이주장한시급한대책들이담겨있다.그리고다산은관리들이법률을등한시하고법전등관련서적을평소제대로읽지않는세태를강한어조로비판했다.실제로한도(道)를책임지고권한이수령보다몇배나큰관찰사가법령을정확히꿰고있지않아큰문제가발생하곤하는데,지방에서비리관리들에의한피해는고스란히백성에게로돌아가고있어이런현실을비판하고있으며,현실적이고적극적인개선책을제안하고있다.

제3부「정약용이쓴판례연구서『흠흠신서』」에서는『흠흠신서』의편찬과정과구성,수록된사건의유형과특징을살폈다.다산은성리학의주류학문에매몰되지않고법학,의학,경제학,지리학등실용학문에도관심을기울였으며특히뛰어난율학자로서형정의실상과개혁방안을모색했고,살인같은인명사건에큰관심을보였다.그는인명사건피해자의사망원인을밝히고사건을해결하기위해서는법의학,형법등관련지식이중요하다고생각했으며,인명사건수사와재판에관한내용을전문적인학문으로다룰필요가있다고여겨유배생활중에『흠흠신서』을편찬했다.『흠흠신서』는사대부관리들이거의관심을두지않던살인범죄및관련법률에관한저술이라는점에서의미가있다.그리고『흠흠신서』는중국과조선에서발생한다양한살인사건을여러유형별로분류,정리해놓고사건처리의문제점,법률용어해설,자신의비평등을덧붙여,조선역사에서전무후무한법률서이자판례연구서로서중요하다.다산이우리나라최초판례연구서인동시에형법학,수사학의지침서인이책을집필한것은군현에서발생하는살인사건의1차조사및처리를담당할각지방관의무거운책임감을강조하기위해서였다.

제4부「『흠흠신서』에담긴정약용의형법사상」에서는『흠흠신서』전반에흐르는다산형법사상의핵심을짚어봤다.우선다산은『흠흠신서』를편찬하면서인명사건의1차법관인수령이유념해야할재판및형벌집행의기본원칙을책첫머리에소개하고있으며,그외에정상을참작할필요가없는대역죄처벌이나복수살인사건을처리하는기준등도제시했다.다산은법관이유념해야할가장기본덕목으로살옥처리에서흠휼(欽恤)의자세를꼽았다.다산은생사여탈권을가진하늘만이유일하게사람을살릴수도,죽일수도있다고생각했다.즉,목민관은단지하늘을대신해법을집행할뿐이므로하늘을공경하고두려워하는마음,죄인을불쌍히여기는마음으로옥사에임함으로써살려야할사람을죽이거나죽여야할사람을살리는일이없도록해야한다는것이었다.다산은유교경전에서법관이지녀야할원칙을뽑아『흠흠신서』에소개하기도했지만,법률에해당조문이없는경우경전과역사책을근거로해야한다고밝힌데서도알수있듯이,전형적인유교지식인의법률관을지니고있었다.

제5부「정약용이남긴유산」에서는다산의인간적면모와유배지에서저술활동,다산학연구현황등그가남긴유산을음미해봤다.다산은정조승하뒤천주교도로몰려40세에경상도장기현과전라도강진현에서57세까지18년간유배생활을했다.강진에서도사의재,보은산방,이청의집등을전전하다가47세되던1808년봄다산초당으로거처를옮기면서,많은책을비치해놓고제자들을가르쳤고저술에집중할수있었다.이에유배지강진은‘다산학(茶山學)의산실’이되었다.사상가로서수많은저술을남기기도했지만,가족의정을소중히여겨,같은유배인처지인둘째형정약전을그리워하는시와편지를썼고,두아들에게보낸편지와서첩『하피첩(霞?帖)』,그리고시집간딸에게쓴편지와그림「매조도(梅鳥圖)」등이지금도전해져가슴을따뜻하게하고있다.한편조선전기에는명나라목민서인『목민심감(牧民心鑑)』이보급,활용되었으나학자들이조선현실에맞는독자적인목민서를만드는단계에이르지못했는데,다산은조선시대목민서편찬의전통에따라양,질등모든면에서종래의목민서를뛰어넘는수령을위한업무지침서인『목민심서』를편찬했다.그리고『흠흠신서』는중국과조선의여러살인사건판례를담고있는다산의또다른기념비적저작으로,수령의형사사건처리에도움을주려는목적에서작성한재판참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