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문제는 여전히 정치!”
오늘날처럼 자유민주주의가 ‘현실에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점점 동일시되고 그 정치적 차원이 법치로 제한될 때, 배제된 사람들은 근본주의 운동들에 합류하?거나 반자유주의적이고 대중영합적 형식의 민주주의에 경도될 위험이 있다. 건전한 민주주의 과정은 정치적 입장들 사이의 왕성한 충돌과 개방적인 이익 다툼을 요청한다. 이것이 간과된다면 건전한 민주주의 과정은 협상 불가능한 도덕적 가치들과 본질주의적인 정체성들 사이의 대결로 매우 쉽게 대체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은 늘 ...
“문제는 여전히 정치!”
오늘날처럼 자유민주주의가 ‘현실에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 점점 동일시되고 그 정치적 차원이 법치로 제한될 때, 배제된 사람들은 근본주의 운동들에 합류하거나 반자유주의적이고 대중영합적 형식의 민주주의에 경도될 위험이 있다. 건전한 민주주의 과정은 정치적 입장들 사이의 왕성한 충돌과 개방적인 이익 다툼을 요청한다. 이것이 간과된다면 건전한 민주주의 과정은 협상 불가능한 도덕적 가치들과 본질주의적인 정체성들 사이의 대결로 매우 쉽게 대체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적 담론은 늘 문제의 원인을 ‘정치의 과잉’에서 찾았다. 정치는 정치가나 정당의 권력욕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장(場)이며, 늘 사회를 갈등과 대립으로 몰고 가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축소를 주장하거나 혹은 국가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정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가 늘 동원되었다. 이리하여 우리 사회 모두가 “정치논리 배제, 경제논리 우선”, “전문가 우대”를 외치게 되었고, 선거에서의 후보 간 경쟁 역시 누가 더 “기업이 잘 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고 누가 더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할 수 있는가를 두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처럼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수적인 진영이나 진보적인 진영이나 할 것 없이 “문제는 경제!”라고 하면서 스스로 정치의 문제를 없애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정치가 만들어내는 갈등 때문에 문제이고, 정치가 축소되면 민주주의는 화합과 통합의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의 대답은 단호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인 것’이 축소되면 어찌될까? 그 경우 사회는 파괴적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정치의 세계는 갈등과 대립을 본질로 하는 데, 이러한 갈등과 적대가 정치의 영역에서 제대로 표출되고 대표되고 경쟁될 수 없다면, 그 에너지는 사회를 원초적으로 분열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익과 다원적 정체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적대를 다룰 수 없는 조건에서, 한편으로 누구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 모두가 발전과 성장을 말하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이 책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최악인 것이다. 정치 전선의 부재는 정치적인 성숙의 징후이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공허함의 표현이며, 그런 공허함은 새로운 반민주적인 정치적 정체성들을 접합하려는 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허함과 반정치적 사유는 정치의 영역에 존재하는 경쟁자들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규정해 경쟁해야 할 반대자가 아니라 오로지 파괴해야 할 적으로만 인지하게 만든다. 자유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명확하게 분화된 입장을 둘러싼 집단 정체성의 구성, 그리고 실제적 대안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한 정치적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은 정치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의 과소 때문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일자리가 적고 성장이 덜 되고 복지가 안 되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경제의 문제로 환원되어 다뤄지는 일원주의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가 아니라 여전히 정치가 문제의 중심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반정치관이 무차별적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게 된 데에는, ‘신자유주의 극복론’에 매달려 있는 진보파들과 민주주의를 정치적인 것을 초월한 보편적 시민의 세계로 이해해온 시민운동가들의 책임도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은 중도와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반정치적’ 민주주의관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정치’, ‘정치적인 것’이 무엇이며, 민주주의 발전의 추동력인 갈등과 적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기획되었다. 정치적인 것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관련지어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더 없이 중요한 지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1) 민주주의의 추동력으로서 갈등과 적대
민주주의 혁명은 자연이나 신에 근거한 단일한 실체적 공동선의 관점을 둘러싸고 조직된 위계적인 사회의 종언으로 이해된다. 클로드 르포르가 보여 주었듯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권력, 법, 지식이 근본적인 불확실성에 노출된 사회, 통제 불가능한 모험의 극장이 된 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군주의 인격 내에 구현되어 있고 초월적인 것과 결합한 권력의 부재는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나 질서의 실존 혹은 정당성의 선험적 원천을 무효화하고 있다. 사회는 더는 어떤 유기체적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실체로 정의될 수 없으며, ‘확실성 표지의 해소’라는 사회 구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확실성 표지의 해소를 통해서만 바로 ‘정치적인 것’이 작동하며 ‘민주주의’가 탄생하게 된다(3장, “롤즈: 정치 없는 정치 철학”, 4장, “민주주의적 시민권과 정치 공동체”).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따라서 심화시켜야 하는 만큼이나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적인 존재를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민주주의는 그것이 구현하는 가치들에 대한 합의와 충성이 불충분할 때만 위기에 처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그 경합적인 역동성이 외견상 과도한 합의로 가로막힐 때에도 위기에 처한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는 갈등의 제도화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갈등의 제도화란 사회 경제적 갈등의 제도적 해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갈등에 기반을 둔 체제로서, 민주주의는 갈등을 전제로만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갈등과 적대는 불행하게도 제거할 수 없는 방해물이나, 조화의 완전한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험적인 장애물로 간주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합의와 만장일치가 가능하다는 환상이 ‘반정치’에 호소하는 것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임을 인정해야 하며, 따라서 이런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정치 전선의 부재는 정치적 성숙의 기호이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공허함의 징후일 뿐이다(서론, “경합적 다원주의를 위하여”).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는 갈등과 적대가 항구적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며, 갈등과 적대는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동시에 그것의 최종적인 완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항상 ‘도래해야 할’ 하나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역설적 상황이 민주주의의 결점이 아니라, 바로 그 장점이며,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동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 자유주의 정치(학)와 그 불만들
롤즈의 ??정의론??이 출간된 이래, ‘정치’, ‘정치적인 것’의 본성에 대한 성찰, 시장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치철학적 노력,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룬 사회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철학적 성찰 역시 많이 등장했다. 이런 철학적 논쟁의 흐름은 롤즈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진영과 샌들, 왈쩌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자들의 논쟁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롤즈의 성찰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인격체들이 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그들이 속한 결사체의 기본 조건들을 정의하기 위해 어떤 정의 원칙을 선택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소위 ‘정의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으로 구성된 롤즈의 정의론은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개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