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아야코의해석으로보는바오로의말
바오로의삶은결코평온하지않았으며성공한자의생애도아니었다.이세상의관점에서말하자면실패한인생이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바오로의사상은그의사후수천년에걸쳐서전세계사람들의마음을뒤흔들고있다.이러한바오로식삶의반전은소노아야코식해석을통해뜻밖의깨달음을선사하기에충분하다.사랑,용서,감사,진심등등우리를둘러싼모든것들이바오로의편지속에서어떻게표현되는지…그기대를저버리지않을것이며,소노아야코의재해석이촌철살인의맛을더해줄것이다.
사랑에대하여바오로가말한내용은성서에많이있다.다음은그중한구절이다.
우리가나약했던시절,그리스도께서는정해진때에불경한자들을위하여돌아가셨습니다.의로운이를위해서라도죽을사람은거의없습니다.혹시착한사람을위해서라면누가죽겠다고나설지도모릅니다.그런데우리가아직죄인이었을때에그리스도께서우리를위하여돌아가심으로써,하느님께서는우리에대한당신의사랑을증명해주셨습니다.(로마신자들에게보낸서간5장6~8절)
이구절에대해소노아야코는이렇게쓰고있다.
나는성서의이구절을지금까지몇번이나읽었는지모른다.그러나여기아무렇지도않게쓰인이런일이인간세상에서는아주드물다는것을오랫동안알아차리지못했다.(중략)호의를가진사람을위해죽는일은두렵기는하겠지만가능성이없지도않다.호의도악의도없는상대를대할때나를그쪽으로몰아갈정열은상당히희박해진다.별상관이없기때문에무심히지켜보는사이에일이끝나지않을까싶다.
그러나증오나혐오의감정을가진상대를위해죽는것은예수가처음으로보여준가치관이다.이한가지를보더라도예수라는분은결코보통사람이아니라는사실을바오로는우리에게전해준다.
다음의인용문구를보노라면,바오로가얼마나진솔하고,따듯한사람이었는지짐작할수있다.장밋빛꿈을제시하기보다는고난의길에동참하라는가장현실적인제안을하는모습이그렇고,소노아야코가그리스어를해석하며알아낸‘함께괴로워해주는사람이있다’는표현이그러하다.
그러한까닭에나는그대에게상기시킵니다.내안수로그대가받은하느님의은사를다시불태우십시오.하느님께서는우리에게비겁함의영을주신것이아니라,힘과사랑과절제의영을주셨습니다.그러므로그대는우리주님을위하여증언하는것을부끄러워하지말고,그분때문에수인이된나를부끄러워하지마십시오.오히려하느님의힘에의지하여복음을위한고난에동참하십시오.(티모테오에게보낸둘째서간1장6~8절)
이에소노아야코는이렇게덧붙이고있다.
하느님의힘에의지하여우리가천국으로올라가는행복을얻을수있는가하면바오로는결코그렇다말하지않는다.바오로는하느님의힘에의지하여‘고난에동참하십시오’라고말할뿐이다.
이절망적인구절이내가바오로를좋아하는이유다.바오로는장밋빛꿈을품지않는다.인생의원형이고통임을뼛속깊이알고있는듯하다.그러나인생이괴로움뿐이라고바오로는말하지않는다.‘고난에동참하다’라고번역된말은슌구카코파세인이라는그리스어다.슌은‘함께’라는의미의접두어이며카코파세인은‘괴로움을함께하다’라는동사다.거기에서영어의‘sympathy동정’이라는아름다운말도나왔다.
나혼자괴로워하는것이아니다.나와함께괴로워해주는사람이있다.이또한얼마나멋진말인가.
소노아야코는말한다.바오로의문장에는늘용기,신뢰,희망과함께깊은슬픔,괴로움,때론따뜻한체념과도같은것이바닥에깔려있음이느껴진다고말이다.
4개의복음서에서느껴지는것이인간의속성을뛰어넘는위대함과현명함이라면,바오로의편지는철저하게인간적이라고말한다.하지만이런인간적모습들때문에그의가치가희석되는일은없다.오히려하느님과의유대감을더욱도드라지게하여사람들로부터깊은공감을이끌어내고있다.
이것이바오로의저력이자,사후수천년에걸쳐서전세계사람들의마음을뒤흔드는이유일것이다.
바오로의힘
소노아야코는고백하고있다.처음부터신앙면에서바오로라는인물에끌린것은아니라고…,단지그의문학적이며철학적인설득력때문에바오로의편지에감동받은것뿐이라고말이다.
하지만소노아야코는점차바오로의말에감화되고,인간의편협함을반성하며,인생의본질을깨닫고,삶의스승으로삼기를주저하지않았다.
소노아야코는늘자신의문학을통해고통의반전,즉고통이야말로삶의자양분이라는인생에대한강한긍정을표출해왔다.바오로에대한깊은조명을읽노라면,소노아야코의작품속에스며있는긍정과따뜻한시선의뿌리가어디에서비롯되었는지알게된다.
소노아야코는암울했던가정환경과이로인한폐쇄공포증,그리고실명위기등한인간이감당하기에는벅찬절망을경험한사람이다.이런소노아야코에게강한긍정의힘을심어준바오로의말은또누군가에게따뜻한긍정의힘이되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