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탐미주의작가로만알려져있는일본문학계의저명한대문호인다니자키준이치로의산문선이《그늘에대하여》라는제목으로출간되었다.이번산문선에는전세계적으로최고의수필로다채로운찬사를받으며널리읽히고있는〈그늘에대하여〉뿐만아니라,일본근대의문학,전통극을비롯하여다양한예술분야에서보이는남녀관계의미묘함을세심한필치로풀어놓은〈연애와색정〉도실려있다.또한화장실문학(?)의효시라고도볼수있는〈뒷간〉외에도〈게으름을말한다〉,〈손님을싫어함〉,〈여행〉등일상생활에서일어나는일화들을예리한관찰력으로묘사하고있어그동안쉽게읽을수없었던다니자키의문학중에서도엄선된산문을접할수있으며,특히그속에서근대의일본문화를엿볼수있다.게다가일본전통미를말할때빼놓을수없는〈그늘에대하여〉는사물하나하나를바라보는견해속에작가자신의미학을감성과이론과행동으로관철시키고있어작가로서의뛰어난면모를으뜸으로보여주고있다.
이책에실린산문들이씌어진시기는주로1930년대이다.이때의일본은서구의문물을도입하면서근대의변화가이루어지던때로,한지를바른장지문에유리창이끼워지고전통의상에서양복으로갈아입었으며,호롱불에서전등으로바꾸어달고,서양식건물이속속들어서던시대이다.그래서인지다니자키는글전반에걸쳐당시일본의풍토와문화를외면한채물밀듯이들어오는서구의외래문화와문명을받아들이는과정과결과를이중생활이라칭하며담담하게그러나아주신랄하게꾸짖고있다.
공사할때의발생하는문제들,교토나나라의사원들의변화,전등이가져다주는득과실,종이의효용성,일본의건축과다다미방,어둠속에있는황금박과금빛이발산하는아름다움,노무대의어두움과옛여인의생활상그리고그늘(음예陰?)의세계……이러한것들은일본을이해하는데가장기본적인것들로알기쉽게서술함과동시에변화의과정에서전통을어떻게지켜나갈것인가에대해다시금생각해보게하는데,이것은단지일본만해당하는것이아니라현재서구문물의실용성과합리성에짓눌린우리에게도시사하는바가크다고할수있다.
〈그늘에대하여〉는이미1996년에국내에소개된적이있는산문이다.원래제목은‘음예예찬陰?禮讚’이지만당시에는《음예공간예찬》(발언)으로번역되었었다.일반인보다는주로건축을공부하는사람들이주요독자층이었으며,심지어는서지분류도건축으로되어있었다.이것은〈그늘에대하여〉가산문이기도하지만오래전부터미국의콜롬비아대학건축대학원에서설계및일본건축사의교재로사용되고,동양학부의일본사와일본문학사과목의필독서로선정되어읽히고있으며,영국대학에서도읽히고있어산문그자체보다는건축에서의공간개념을익히기위한교재로여겨졌기때문이다.그렇다고해서〈그늘에대하여〉가단순히동양건축의공간개념만을보여주고있는것은아니다.그것은단지‘그늘’즉‘음예’를설명하는한부분에지나지않는다.
그렇다면생소하고낯선단어인‘음예’란무엇인가?책에서는음예를‘그늘인듯한데그늘도아니고,그림자인듯한데그림자도아닌거무스름한모습이다’라고옮긴이는설명하고있다.말로써는애매모호하지만책을몇장만넘겨보면금방이해할수있을것이다.더군다나이음예의공간은어느특정한한부분이아니라생활전반에걸쳐우리의삶과함께하고있다.한예를들면,서양식좌변기에익숙해진우리에게재래식화장실이라면보통불결함을떠울리겠지만,다니자키는“어느정도의옆은어두움과철저히청결한것과모기소리조차들리지않는그런변소에서,부슬부슬내리는빗소리듣는것을좋아한다며,변소벽면맨밑바닥에길고가는창문이붙어있어처마끝이나나뭇잎에서방울방울떨어지는물방울이,석등의지붕을씻고징검돌의이끼를적시면서땅에스며드는소리를실감나게들을수있는,달밤에어울리는벌레소리새소리에어울리는,사계절의사물이드러내는것을맛볼수있는”‘단아한풍취’가담긴‘화조풍월’을말할수있는공간으로바꾸어놓는다.
또한어둠을조건으로한칠기그릇의아름다움을금은박을입힌마키에공예와함께예찬하고있다.옛날금은박을사용하였던것은“반드시그런어두운방을염두에두고,빛이적은속에서의효과를겨냥한것이틀림없고,금색을호화롭게사용한것도,그것이어둠에떠오르는상태나,등불을반사하는정도를고려한것으로,금박장식은밝은곳에서한번에퍼뜩전체를보는것이아니라,어두운곳에서여러부분이그때그때조금씩빛을드러내는것을보도록만들어진것이어서,호화현란한모양을어둠에숨겨버리는것이말로할수없는여정을불러일으키는것이다.그리고저반짝반짝빛나는칠기그릇표면의광채도어두운곳에놓고보면그것이등불끝의어름거림을비추고,조용한방에도때때로바람이찾아온다고알려주어,어느덧사람을명상에빠지게한다”고하여,칠기그릇과촛불과등불이어둠속에서자아내는묘한빛과그림자의세계를명상에이르게하여신비와선미를맛보는경지로끌어올리고있다.
지은이의음예에대한예찬은일본건축과다다미방,그속의도코노마와가부키와인형극인노에이르며끝이없이이어지고있으며심지어는백색인종과황색인종의피부색에서도또얼굴에하얗게분을바르고이를검게물들인일본의옛날여자의화장법에서도그늘이면서그늘이아닌그림자이면서그림자가아닌거무스름한모습을찾아내고있다.현대에이르러도시는네온사인에장식전구에일정한간격의가로등에의해진정한밤의어둠을알기어려우며,어둠속의아련한빛이자아내는푸근함과따뜻함을잊어버린지오래이다.〈그늘에대하여〉는‘밝음’만을좇는현대의경직속에서아련하니손때묻은옛것에대한그리움과향수를불러일으키게한다.
제목부터가눈길을끄는〈연애와색정〉은지은이의일본전통문화와근대문학에대한깊은성찰을보여주고있으며그속에서자신의남녀관계에관한철학을담고있다.젊은시절여성숭배와관능주의를기치를올렸던다니자키에게여성은“바꿔말하면여성숭배의정신으로,여자를자신이하로보고애무하는것이아니라,자신이상으로우러러보고그앞에서쭈그리는마음이다.여자가남자위에군림하지않더라도적어도남자와비슷하게자유스럽고,남자의여자에대한태도가지금처럼폭군적이지않고,다분히정중하여무척부드럽게,때로는이세상가운데가장아름다운것,귀한것으로다루어졌다고”“그시절의일기나이야기나와카따위를읽자면,여자는많은남자로부터존경받고있고,어떤경우에는남자로부터애원하는태도가나온다든지하여,결코지금처럼남자의의지에유린당하고있지않다”고자신의생각을피력하고있다.
뿐만아니라“여자와밤은예나이제나붙은말이다.그러나현대의밤이태양광선이상의현혹과광채를가지고여자의나체를샅샅이비춰내는데반해,옛날은밤은암흑의장막을가지고발을치고있는여자의모습은더욱그상으로감싼것이다.옛날의남자는어떤특정한여자의얼굴을아름다움,육체의아름다움에홀렸던것도아니다.그들에게달은항상달인것처럼여자도단하나의여자였을것이다.그들은어둠속에서희미한소리를듣고,옷냄새를맡고머리카락을대고,요염한촉감을손으로더듬어느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