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 특별대사 회고록)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 특별대사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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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 특별대사 회고록
한국어판 출간!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은 2009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북한인권 특별대사를 지낸 로버트 R. 킹의 외교적 경험과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회고록이다. 로버트 킹은 북한인권이 대북관계에 핵심적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의도적으로 묵인되거나 지나치게 정쟁화되어 온 현실을 되짚으면서 북한인권의 실질적 증진을 위한 아낌없는 조언을 제공한다.
저자

로버트 R. 킹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 국무부 북한인권 특별대사로 근무했다. 현재 국제전략연구소 선임고문, 한미경제연구소 비상근 연구위원, 북한인권위원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킹 대사는 25년간 미 의회에서 일했으며(1983~2008) 톰 랜토스(Tom Lantos)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비서실장과 하원 외교위원회 실무국장(2001~2008)을 역임했다.

목차

추천사
감사의 글
제1장 북한인권법
제2장 소방호스로 물을 들이키다
제3장 2011~2012년 인도적 식량지원 협상
제4장 북한인권과 유엔의 역할
제5장 자유로운 정보의 유입
제6장 북한의 미국인 억류
제7장 탈북민:북한 탈출과 재정착
제8장 대북 인도적 지원
제9장 돌아온 북한인권법

출판사 서평

"한국어를 구사할 순 없어도 인권을 구사할 수 있는" 인물로 자신을 소개하는 로버트 R 킹 북한인권특사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마주한 “충격적(appalling)”인 북한인권의 실태를 드러내며 국제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의식 고양을 촉구한다.
북한인권 문제는 북측 입장에서는 식량, 안보 및 기타 정치적 사안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북한인권특사로서 북한 고위 관료들과 인권에 대해 논의하며 마주하는 도전 과제는 만만치 않다.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결정적인 외교적 역할을 한 주체인 미국을 대표하는 킹 특사는 이와 더불어 북한인권 개선과 정치적 자유 증진을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유엔, 유럽연합, 기타 국가 간은 물론 북한인권을 다루는 비정부기구들과의 협의와 토론, 북한인권 보호 향상을 위한 전략 검토,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 2004/13 이행을 지원하는 행동계획을 발전시키는 등 북한인권 문제 해소를 위해 개입한 경험을 나누며 통찰을 제공한다.
북한인권 탄압 및 침해는 북한 주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가 저지르는 공개 처형, 고문, 강제 이전, 사상·표현·종교의 자유 침해, 차별, 성폭행, 강제 낙태 및 기타 성폭력, 노예화 뿐만 아니라 미국, 한국, 일본 등 국적을 가진 외국인 납치 및 강제 실종 등 반인도적 범죄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지속될 수 있는 원인은 “정책, 제도, 불처벌 관행이 범죄의 핵심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결론 내렸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지난 6년간 북한인권이 더 악화됐다.’는 평 가운데 9월 4일 북한인권법 시행 6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로버트 R. 킹 특별대사의 통찰은 시의적절하다. 정부와 민간 모두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제고하여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침묵을 깨고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 개선에 기여하며, 더 나아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 제1장 북한인권법
미 국무부의 ‘북한인권 특별대사’(이하 북한인권특사) 직책은 2004년 채택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미국 의회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 유린에 관심을 기울이고 북한인권 증진을 추구하기 위한 첫 번째 주된 노력이었다. 당시 법안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논란 없이 채택됐다. ‘북한인권법’의 가장 중요한 조항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이 국무부 내에서 북한인권 특사를 임명한다”는 것이다. 북한인권특사는 유엔이 운영하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제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제1대 북한인권특사는 변호사 출신의 제이 레프코위츠(Jay Lefkowitz)였다. 그는 관리예산처 자문, 대통령 국내정책 부보좌관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당시 북한인권특사는 대사(ambassador)의 지위도 아니었고 상근직도 아니었기에 상원의 인준 없이 임명되었다. 그는 평소에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북한인권 관련 업무가 있을 때만 워싱턴DC로 날아와 일했다. 미 행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북한인권특사 직책의 변화가 필요했다.
2008년 북한인권법이 재승인되면서 북한인권특사에 대한 조항이 강화되었다(참고: 미 의회는 법안이 정세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거의 모든 법안에 효력 만료일자를 명시하고, 법안이 지속될 필요가 있을 때는 심사를 거쳐 내용을 수정한 뒤 재승인한다). 재승인법은 북한인권특사가 국무부 내에서 적절한 위상과 입지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특사에게 ‘대사’의 권한을 부여하고 상근직으로 국무부 내에 사무실을 두게 했다.
제2대 북한인권특사를 선정하는 과정은 매우 치밀했다. 북한인권에 대한 미 의회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킹(Robert R. King)은 1983년부터 2008년까지 톰 랜토스 미 하원의원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했으며 의회 근무 마지막 8년간은 미 하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수석보좌관을 지냈다. 로버트 킹은 의회 업무를 잘 이해하고 의원 및 의회 직원들과도 친분이 두터웠기에 북한인권특사직에 적임자였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다. 대북정책을 담당하던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중국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북 문제를 전담할 북한인권특사 임명이 시급했다. 이러한 정치적, 외교적 배경 하에 로버트 킹은 2009년 11월 제2대 북한인권특사에 임명됐다.

● 제2장 소방호스로 물을 들이키다(Drinking from a Fire Hose)
킹 대사가 북한인권특사에 취임하자마자 할 일이 쏟아졌다. 그는 당시 상황을 마치 “소방호스로 쏟아지는 물을 들이키는 것”(dring from a fire hose) 같았다고 회고한다. 킹 대사가 취임한 2009년은 북한이 2006년에 이어 두 번째 핵실험을 단행해 북미갈등이 첨예하게 고조된 시기였다. 킹 대사는 취임 직후인 2009년 12월 유엔인권이사회가 개최하는 북한의 제1차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에 참석해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UPR은 유엔 회원국이 자국의 인권상황을 스스로 평가해 유엔에 보고하고 이를 회원국들에게 검토받는 절차다.
북한이 UPR에서 제시한 자국의 인권상황을 살펴보면 인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먼 주장이 가득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인권 보호와 증진의 장애물”로 규정하며 맹비난했다. 북한은 미국이 ‘인권보호’라는 구실 아래 북한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으며 ‘북한인권법’이 그 전형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킹 대사는 미국을 대표해 북한에서 자행되는 초법적 처형, 고문, 강제노동, 성폭력 문제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북한을 비난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의 인권증진 노력을 장려하기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인권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강조했다.
킹 대사는 취임 직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들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2009년 12월에는 로버트 박이, 2010년 1월에는 아이잘론 마흘리 곰즈가 불법 월경 혐의로 북에 체포되었다. 사실 미국인의 북한 억류는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미국 정부와 대북 민간단체들의 활동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문제 중 하나다. 과거 미국인의 북한여행이 허용되던 시절에는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2009년 은아 리, 로라 링 등 두 명의 미국 기자가 불법월경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들의 석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으로 직접 날아가 김정일을 만나야 했다. 이 두 미국인의 억류와 석방은 전 세계 이목을 북한에 집중시켰다. 킹 대사는 이 사건이 향후 북한에 억류되는 미국인의 숫자가 증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북한은 미국인 억류를 미국 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자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주권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킹 대사는 유엔 및 유럽연합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그는 2010년 3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 면담했다.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2004년 유엔인권위원회(유엔인권이사회의 전신)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에 근거해 마련된 제도다. 킹 대사는 또한 유럽연합 및 일본 대표단과 만나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 작성을 논의하고, 여러 국가 대표들과 만나 결의안 투표에 찬성해 줄 것을 독려했다. 2010년 4월에는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연합 및 유럽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인권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의 협력을 다졌다.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4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이 한국의 민간인 거주지역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연평도 포격을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중한 사건 중 하나”로 규정했다. 북한이 왜 그 시점에 도발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식량원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북한이 2009년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이 전면 중단된 데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까지 가동됐다. 더구나 북한은 2009년 말 화폐개혁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군사 도발의 또 다른 이유는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권력승계 때문이었다. 2009년 1월 김정일의 막내아들 김정은이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었음이 노동당 고위 간부들에게 통보되었다. 이후 본격화된 권력 승계작업은 연평도 포격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 제3장 2011~2012 인도적 식량지원 협상
한국의 진보정권은 북한에 상당한 규모의 인도적 식량지원을 제공했지만 북한의 2009년 핵실험으로 모든 지원이 중단되었다. 2009년 북한은 화폐개혁을 단행했는데 이는 사실상 식량 공급의 새로운 원천으로 떠오른 시장에 엄청난 교란을 가져왔다. 더구나 2010년 가을 북한은 심각한 수해를 입어 식량위기가 가중되었다. 당시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54만 2,000톤의 곡물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2011년 1월 북한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미국에 식량지원을 요청해왔다. 대북 식량지원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식량이 시장에 판매되거나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이었다. 미국은 식량이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전달되길 바랐으나 북한은 식량 배분 과정에 개입하고자 했다. 북한의 상위계층을 먼저 챙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은 식량 배분 모니터링 요원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리거나, 식량이 북한 항만에 하적되자마자 일방적으로 프로그램 중단을 선언하고 모니터링 없이 식량을 나눠준 전력이 있었다.
킹 대사와 협상단은 2011년 5월 평양으로 날아가 북한 협상단과 식량지원 조건을 논의했다. 특히 미국의 인도적 지원을 받으려면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같은 해 10월 2차 협상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미국은 24만 톤의 식량 제공을 제안했는데, 이전에 비하면 적은 양이라 북한은 실망하는 눈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