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를 찾다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

조선의 미를 찾다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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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의 미를 찾다』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거주하면서 조선의 미술공예, 특히 조선백자의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한반도 전역 700여 개 이상의 가마터를 직접 조사해 얻은 성과를 국내외에 널리 알린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 1884-1964)의 일대기를 담은 글이다.
저자

정병호

목차

〈아연인문교양총서〉를기획하며
책을펴내며

1장한일해협을건너는일본인들의군상과노리타카의조선행
아사카와노리타카·다쿠미형제의성장배경
일본인의식민지열기와한반도이주
아사카와노리타카의한반도행

2장근대일본의조선문화인식과아사카와노리타카
근대국민국가의형성과조선인식
근대일본의조선문화인식
아사카와노리타카·다쿠미형제의조선문화인식의의의

3장일제강점기조선전통예술최초의‘한류’붐
2000년대한류의등장과한국문화
야나기무네요시와조선도자기의재인식
조선백자의재인식과한류라는창

4장도자기에서조선의미를발견하다
근대조선예술의범위
미술가로서의노리타카와도자기그림
백자,조선의미와예술의상징

5장조선의문화유적을지키다
조선건축물옹호론
조선자연옹호론
노리타카의조선음악옹호론

6장일본의전통시가로조선을노래하다
일본전통시가와도자기
전통시가서적의장정과도자기
노리타카의단카와조선의미

7장아사카와노리타카를기억하다
조선미술공예의국립민족박물관이관
전후아사카와노리타카의활동과추모
아사카와형제의기억

부록아사카와노리타카연보

출판사 서평

아사카와노리타카는일제강점기에노리타카의동생,아사카와다쿠미(淺川巧,1891-1931),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와더불어조선전통문화와미술공예를연구하고그미적가치를널리알리는데의기투합하였다.이들은일제의조선문화재훼손을적극적으로저지했으며사라지려고하는조선문화의보전을위해조선민족미술관을개설하는데함께동분서주하였다.이당시일본지식인들은조선문화가열등하고독창적가치가없다고조선의미술공예를여전히폄훼하던시절이었지만,이들은1920년대조선도자기붐을가져오는데원동력이될정도로활발한연구와홍보활동을거듭했다.

이들중다쿠미는일제강점기조선어를사용하며조선인들속에서살다가망우리공동묘지에묻히게된일화와더불어다카사키소지(高崎宗司)의활발한연구,논픽션소설이나한일공동제작영화를통해서가장많이알려진인물이다.야나기무네요시도도쿄대철학과출신으로일본내에서도주류엘리트였을뿐만아니라조선미술공예에서힌트를얻어전개한민예(民藝)운동의기수로서일본내외에서오랫동안다양한조명을받아왔다.

그러나아사카와노리타카가조선미술공예를연구하고이를세상에알린공적은이들두사람에비해결코가볍지않다.오히려야나기무네요시와동생다쿠미를매개하여조선과일본에서본격적으로조선도자기담론을일으킨인물이라는점,당시세간에거의알려지지않은조선시대도자기의선구적인연구를수행하여1920년대조선도자기붐을일어나게했다는점,한반도내에서도조선의미술공예를매개로당시재조일본인문화인들의중심적위치에있었다는점,조선도자기연구뿐만아니라화가?조각가?도예가로서조선인과조선문화를제재로한수많은작품을남기고,아울러일본전통시가가인으로서조선미술공예를통해조선의미를적극구가하였다는점,일본패전이후에도일본으로돌아가지않고1946년가을까지한국에남아조선미술공예품을한국의국립민족박물관에안전하게이관하였다는점등일일이열거하기에도부족할정도로조선전통문화와관련하여선구적역할을수행하였다.

이책의필자들은일제강점기의엄중한현실과조선문화의의도적폄하를뛰어넘어아사카와노리타카가조선문화의연구와발굴,보전,나아가그예술적가치를널리알리는데에이렇게지대한공적이있음에도불구하고상대적으로널리알려지지않았다는점에서그를대상으로한책을구상하게되었다.

일제강점기라는엄중한현실에도불구하고조선문화에대한애정어린연구와조선문화를지키고보전하려는노리타카의노력을통해조선문화에대한한일상호이해가주는긍정적효과와의미가제대로전달되기를희망하는바다.이런점에서이책이현재도지속되고있는한국과일본사이의갈등을뛰어넘어일제강점기노리타카가남긴업적과교훈을되짚어보는하나의시금석이되었으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