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창고 (창작 동화)

도깨비 창고 (창작 동화)

$15.21
Description
피자와 치킨, 햄버거를 즐겨 먹으며 도시 생활을 하는 어린이들은 농촌을 어떤 모습으로 알고 있을까? 텔레비전 예능에 이따금 나오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렇기에 박제화된 그림이나 관념으로 알고 있지는 않을까?
농촌은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공간이며 판타지가 아닌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생생한 공간이다. 농촌은 진행형의 현실이면서 설화와 민담, 전설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책의 키워드는 농촌이고 들판이다. 산동네가 배경인 「산동네엔 산신령이 없나요?」를 제외하고 표제작인 「도깨비 창고」를 비롯하여 대부분 이야기가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농촌에 대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농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선생님, 그리고 어린이인 나에 관한 이야기이며, 농촌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농기구, 반려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득 차지 않아서 조금씩 비어 있는 존재들이 빈 것을 극복하고 채워가는 과정을 통하여 손난로처럼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줄 것이다.
저자

차승호

1963년충남당진농촌에서태어나들판속에서자랐습니다.2004년≪현대시학≫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하였습니다.2017년≪푸른동시놀이터≫에동시추천,2020년≪전북일보≫신춘문예에동화가당선되었습니다.지은책으로시집「즐거운사진사」,「들판과마주서다」,「소주한잔」,「얼굴문장」,「난장」이있습니다.「도깨비창고」는첫동화집입니다.

목차

지은이의말

우주인할아버지
왜펄쩍펄쩍뛰고싶은거지?
산동네엔산신령이없나요?
예의바른녀석들
투덜투덜꼴찌스타
괜찮아,난괜찮아
들판학교
도깨비창고

출판사 서평

“어른용은어디있지?”
아빠는몇시간째컴퓨터앞에앉아쇼핑사이트를뒤지고있어요.우주복을사기위해서지요.할아버지가계신요양원에서우주복을사오라는전화가왔거든요.우주복은위아래가붙어있고밑이트인옷이에요.아기들이주로입는옷이지요.밑이똑딱단추로되어있어서기저귀를손쉽게처리할수있어요.
할아버지는요양원에계셔요.벌써일년이다돼가요.지난겨울마당을치우다쓰러지셨거든요.그뒤로자유롭게움직이지못해요.오른손이떨려서밥을먹는것도힘들어요.어른들은중풍이와서그렇대요.

“아빠,이번에도할아버지랑짜장면먹나?”
“그럼,할아버지가짜장면을얼마나좋아하신다고.”
할아버지는짜장면을좋아하셔요.이가몇개남아있지않아서거의씹지않고삼켜요.그래도짜장면을드실때보면세상에서가장맛있는음식을먹는것처럼얼굴이환해져요.턱받이와얼굴에짜장범벅이되어도합죽하게웃는할아버지.할아버지를닮아서그런지아빠도나도짜장면을좋아해요.
“아빠,손짜장면이뭐야?”
“손짜장면?면발을기계로뽑지않고손으로뽑아서만드는짜장면이지.옛날에는다그렇게했거든.”
할아버지하고단골로가는요양원앞만리장성은손짜장면집이에요.만리장성주인아저씨는러닝셔츠차림에하얀위생모자를쓰고있어요.짜장면을주문하면우두둑소리를내며좌우로머리를흔들고밀가루묻은손으로짝짝박수를두번쳐요.면발을뽑기위한준비운동인가봐요.
그러고는밀가루반죽을늘이기시작해요.고무줄처럼늘인밀가루반죽을빙글빙글돌리다가작업대에쿵쿵내리쳐요.마른밀가루도팍팍뿌려요.늘인밀가루반죽을반으로접고또작업대에쿵쿵내리쳐요.밀가루반죽을늘이고접다보면신기하게도어느새가느다란면발이돼요.한번접을때마다면발이곱빼기로불어나거든요.
“쿵쿵,쿵쿵,쿵쿵…….”
‘2×1=2,2×2=4,2×4=8…….’
면발내리치는소리에맞춰나도모르게구구단을외우기도해요.
“쿵쿵,쿵쿵…….”
면발불어나는신호예요.짜장면이곧나올것같아요.

“찾았다.대구에있는공장에서만드나보네.”
어른용우주복을찾았나봐요.
“그럼할아버지가우주인이되는거야?우주인이되려면머플러도있어야되는데.”
“머플러?”
“어린왕자는긴머플러를하고있잖아.”
“어린왕자가머플러를하고있다고?”
어린왕자는B612호소행성을떠나지구별에왔거든요.그러니까우주인이틀림없지요.
“아빠,어린왕자안봤어?항상머플러를하고있다고.”
“글쎄,할아버지는어린왕자도아닌데머플러가필요한지모르겠구나.”
아빠는평소에할아버지생각을많이해요.요양원으로모신것에대하여늘마음아파해요.어떤때는밥먹다말고멍하니창밖을바라봐요.그러면나는할아버지를생각하는거라고짐작해요.
“아빠,밥!”
요양보호사아저씨는가끔할아버지가아빠를찾을때가있다고해요.보고싶어하시는것같다는얘기예요.농사일을하는아빠는생각만큼할아버지를자주찾아뵙지못한다고안타까워해요.
“앞으로좀더자주와야겠네요…….”
말끝을흐리며아빠는멋쩍게웃어넘기지만두눈이금세붉어져요.그럴때면나는얼른이불밖으로나온할아버지발을주물러드리며아빠에게말을걸어요.
“아빠,할아버지발정말크다.그치!”

지난할아버지생신때였어요.생신은집에서보내야된다며할아버지를모셔왔어요.할아버지도기분이좋은지주름살투성이얼굴에웃음이가득했어요.할아버지가웃을때마다주름살도따라웃는것같았어요.그런데기름진음식을드셔서그랬는지할아버지는여러번설사를하셨어요.아빠는밤새기저귀를갈고물휴지로할아버지를닦았어요.
“아빠,출발안해?”
“…….”
다음날아빠는자동차시동을켜놓고한참동안출발하지않았어요.부릉거리는자동차소리만차안가득떠다녔어요.운전대에손을얹은채아빠는말없이앞만바라봤어요.아빠는할아버지를다시요양원에모셔다드리고싶지않은것같았어요.
“아빠,울어?”
“울긴이녀석아!”
깊은한숨과함께차가출발하자할아버지가내손을꼭잡았어요.뼈만남은할아버지손은생각보다따뜻했어요.손가락이몰려서조금아팠지만나는가만히있었어요.요양원까지가는동안내손은따뜻하게아팠어요.

“할아버지,짜장면먹으러가야지?”
우주복을입은할아버지가듬성듬성남은이로벙긋벙긋웃어요.기분이좋으신가봐요.우주복을입고나니할아버지는영락없이영화스타워즈에나오는우주인같아요.
“와,할아버지짱!할아버지,광선검은어디있어?”
내가엄지를치켜들자할아버지가뭐라고뭐라고하셨어요.
“할아버지,뭐라고?”
“웅얼웅얼,웅얼웅얼!”
할아버지는말을정확하게하지못해요.할아버지말을해석하려면할아버지입모양을살펴야돼요.어떤때는바짝귀를대고서야어렴풋이짐작할수있어요.이빠진우주인말이라서어려운가봐요.
“웅얼웅얼,웅얼웅얼!”
우주인도아니면서아빠는할아버지말을용케알아들어요.할아버지가무슨말을할때마다맞장구도쳐요.
“그류그류,그렇구먼유.”
아빠는할아버지를만나면그동안동네에서일어난일들을시시콜콜얘기해요.내친구현주네검정개가새끼를다섯마리나낳았다는얘기까지해요.
“웅얼웅얼,웅얼웅얼!”
“그렇다니께유,글쎄!”
어떤때보면할아버지는할아버지말을하고아빠는아빠말을하는것같아요.할아버지하고얘기할때면아빠는항상사투리를쓰는데한번도시골을떠난적이없는할아버지를위해서그런가봐요.그게우스워서깔깔거리며웃은적도있어요.
“아빠는어떻게할아버지말을잘알아들어?”
“할아버지얼굴을보면무슨말씀을하시는지다나타나거든.”
“어,정말?”
어른들은얼굴만보면무슨말을하는지,무슨생각을하는지도다안다는게정말인가봐요.
“너희들얼굴에다나와있으니까핑계대지마라!”
선생님도숙제를해오지않은친구들을꾸중하실때면꼭얼굴에다나와있다고하시거든요.
“와,아빠!선생님해도되겠네!”

휠체어에옮겨타고할아버지는짜장면을드시러가요.할아버지를휠체어에태울때마다요양보호사아저씨랑아빠는땀을뻘뻘흘려요.날이갈수록할아버지몸이굳어가기때문이에요.그래도할아버지와짜장면을먹으러가는건즐거워요.
여느때처럼면발뽑는모습을구경하며모람모람주방에서넘어오는짜장냄새에군침을삼켜요.주방에서넘어오는짜장냄새는언제나군침을퍼올리는마중물이에요.할아버지는꿀꺽,아빠는꿀컥,나는꼴깍.그러고는할아버지한그릇,아빠한그릇,나도한그릇짜장면을먹어요.맛있어요.
“할아버지,또올게.”
요양원에할아버지를모셔다드리고헤어질때면짜장면사드리러또오겠다고약속을해요.새끼손가락을걸고엄지로도장도찍고손바닥을펼쳐복사도해요.
“웅얼웅얼,웅얼웅얼!”

아침저녁날씨가쌀쌀해졌어요.조심조심했지만할아버지가감기에걸리고말았어요.요양원에서한밤중에전화가왔어요.갑자기열이심하게올라할아버지를병원으로모셨다는전화예요.하루에두번면회가되는중환자실이래요.
“아무래도연세가많으셔서…….”
의사선생님이심각하게말했어요.
중환자실면회를다니면서짜장면은더이상먹을수없어요.할아버지가짜장면을드시지않았기때문이에요.아니못드셨기때문이에요.간호사선생님이미음만겨우드신다고걱정했어요.
“미음도몇숟가락안드셔요.”
할아버지는침대에서일어나는것조차힘겨워하셨어요.우주인말도하지않고벙긋벙긋웃지도않으셨어요.정신이들면입으로만힘없이웃으셨어요.
“폐렴이문제야.환절기를잘넘겨야할텐데…….”
아빠는시무룩하게말했어요.
‘할아버지가훌쩍우주여행을떠나시는건아닐까?’
날이갈수록할아버지는요구르트한병도다못드셨어요.몸은점점새우처럼둥글어졌어요.얼굴이무릎사이로들어갈것같은할아버지.할아버지는자주깊은잠에빠졌어요.몇번잠자는모습만보다가왔어요.
“어디서전화만와도깜짝깜짝놀랍니다.”
할아버지안부를묻는동네어른들께아빠는또시무룩하게말했어요.

“할아버지!”
“…….”
“아버지,저희왔는데눈좀떠보세요!”
“…….”

날이밝았어요.바람도불지않고햇볕이따뜻해요.어제저녁엔비가조금내렸거든요.아빠는날씨가나쁘면어쩌나걱정했지만하늘은맑고투명해요.우주정거장으로가는길.은행나무가로수가노란손바닥을펼쳐흔들어요.할아버지가우주여행을떠나시는날이에요.
나는할아버지사진을넣은커다란액자를들었어요.액자속할아버지는환하게웃고계셔요.직장때문에자주내려오지못했던엄마가손수건으로눈물을닦아요.고모도고모부도슬퍼해요.
할아버지는누에고치같은우주복으로갈아입고나무캡슐에들어가계셔요.우주여행용캡슐속에잠들어계셔요.할아버지는잠자는우주여행을선택하셨거든요.나이가많아서우주여행을하는동안더늙어버리면안되기때문이에요.어느때고할아버지별에도착하면깨어나실거예요.할아버지도어린왕자처럼의자를몇번씩옮기며노을을바라볼지도모르지요.노을을바라보며내생각을할지도모르지요.

그런데할아버지별에도짜장면집이있을까요?
할아버지가지구별에다시올때까지만리장성짜장면집이장사를했으면좋겠어요.할아버지가돌아오시는날할아버지하고아빠하고나는또손짜장면을먹으러갈테니까요.
-「우주인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