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이른바 매춘, 곧 성매매는 우리 사회에서 기피 혹은 구제의 대상이다. 성을 판매하는 여성은 경멸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가난이나 인신매매,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동정의 대상이 된다. 경멸이나 동정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반응이다. 성판매 여성이 탕녀가 되느냐 피해자가 되느냐는 제3자의 평가에 달렸고, 당사자인 성판매 여성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이들의 삶은 마치 이들 자신의 것이 아닌 듯이, 당사자로서 그들 스스로가 내는 목소리는 존중받지 못해 왔다.
이들에게 붙은 창녀라는 딱지(천하고 멸시받는 존재라는 함의가 있는)와 사회적인 차별을 대하는 페미니즘의 자세는 크게 성매매 근절론과 성노동론으로 대별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성매매 근절론의 목소리가 높으며, 여성운동계에서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성매매를 뿌리 뽑자고 주장하는 편에서는, 성매매란 성노예제이고, 성매매 종사자들이 전혀 강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성매매를 선택한 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며 “성매매 그 자체가 성매매 종사자의 인격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성매매는 곧 인권 침해”(본문 7쪽)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성매매 현장에서 감시와 강제 노동이 따르는 경우는 수없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민주성노동자연대가 결성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매매를 노동의 일종으로 인정하자는 주장도 한국의 시민 사회 일각에서 이미 일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성노동에 관한 논의는 이미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Kamala Kempadoo와 Jo Doezema가 엮은 『세계의 성노동자들: 권리, 저항, 재정의(Global Sex Workers: Rights, Resistance, and Redefinition)』(1998)가 그 대표적인 연구 성과다. 세계의 페미니즘 연구자·활동가 들이 제3세계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성산업 종사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형성된 논의다.
“성매매를 성노동(섹스 워크)으로 보는 편에서는 성매매 종사자의 기본적 인권은 오히려 이들을 노동자로 간주하여 취업의 자유(물론 그만둘 자유도 포함해서)와 거주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또 성매매를 성노예제로 보면 결국 성매매라는 직업과 성매매 종사자에게 찍힌 낙인(stigma)을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엮은이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성노동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성매매 근절을 위해 이루어지는 ‘단속’이 실제 성판매 여성에게는 생활의 위협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매매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의 생계수단을 무작정 박탈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노동론자들은 “매춘을 합법화하자”고 주장하는 ‘공창론자’로 오해받곤 한다. 이에 대해 이 책 『노동하는 섹슈얼리티』의 필자 중 한 사람인 치모토 히데키는 5장 “노동으로서의 성매매와 근대 가족의 행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성매매 용인론자 또는 긍정론자 나아가 부정론자로 규정하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내 주장의 어느 측면을 강조해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딱지 붙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면, 기본적으로 ‘성매매는 노동의 한 형태’라는 입장에 선다는 의미에서 나는 용인론자 또는 긍정론자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성의 신성시와 천시, 화폐의 물신주의가 극복되었을 때 비로소 성매매가 소멸한다고 본다는 의미에서는 부정론자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본문 163쪽)
성노동론자들은 단속과 규제를 통해 성매매 종사자의 생활 기반을 갑자기 뿌리 뽑지 말고, 당사자인 성매매 종사자 스스로의 결정권을 존중하자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당사자 주권’이며,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속이 아니라 성매매를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일하는 현장에서 감시와 강제노동, 착취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보호막이라는 것이다.
성매매 근절(철저한 단속과 탈성매매 유도)이냐 성노동 인정이냐는 논쟁은 아직 페미니즘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한국의 여성주의자들은 이제 논쟁의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성노동론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책으로는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는 만큼, 앞으로 활발한 논쟁과 토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된다.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가지 논의를 하면서도, 이 책에 글을 쓴 여섯 연구자―다자키 히데아키, 가네지카 사다후미, 오구라 도시마루, 간노 사토미, 치모토 히데키, 와타나베 사토코―가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정법과 국민정서를 내세워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 전에, 왜 이들을 둘러싼 차별과 착취 구조가 온존되어 왔는지 뒤돌아보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