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자네, 길 떠나는가》는 1992년 <시와 시인>으로 등단한 박형봉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그동안 매월당문학상, 이육사문학상, 노천명문학상(번역부분)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랐던 시인의 외로운 길 떠남
모두 5부로 나누어져 87편의 시를 수록한 이 시집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 받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현실을 벗어난 길 떠남의 의미를 읊고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랐던 박형봉 시인. 시를 통해 삶의 버거운 짐을 덜어내고자 애쓴 흔적들이 이번 시집에 역력하게 묻어난다.
떠날 생각이 나면 갑니다 / 혼자서 갑니다 / 산을 넘고 들을 지나 / 바닷가 모래성으로 / 나는 갑니다 / 물살에 아롱지는 금빛 배에 / 새 희망을 싣고 / 혼자서 갑니다… 「떠날 생각」 중에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넓은 세계를 향한 여정
시인의 ?세상 떠돌기?는 어느 특정 직역에 국한하지 않았다. 항구, 주점, 숲, 갈대밭, 시외버스 터미널, 탄광촌, 바다, 산사, 성당, 병실, 장터, 거리, 부엌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터전이 바로 시상(詩想)의 출발이었다. 시인의 길 떠남에 공간의 한계는 없었다. 독도, 제주도, 강진만, 강원도 횡계에서부터 멀리는 남태평양, 사막, 터키, 뉴욕, 중국의 칭따오까지 온 세상을 향한 발걸음의 여정(旅程)이었다. 시인은 더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의 욕망을 시집에 쏟아내고자 했다.
…길고 긴 삶의 여정(旅情) 속 / 갈라타 브리지 끝의 하늬바람 / 서서히 허무를 잠재워놓고 / 밤은 내일을 위해 / 암탉처럼 따뜻하게 / 포란(抱卵)을 꿈꾸고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 가랄타 종탑 아래서」 중에서
길을 떠나는 시인의 쓸쓸한 마음이 시집 곳곳에 묻어난 것도 아마 세상과 대화하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섭섭하네 자네, 길 떠나는가 / 못 다한 말 미구(未久)에 부쳐 / 편지에 띄워보냄세 / 내 영혼은 불빛 / 초록색이 살아있고 / 자네 영혼은 풀빛 / 갈색이었던가… 「자네, 길 떠나는가」 중에서
깊은 고민 속에서 표현된 가볍지 않은 시심(詩心)
세상의 일상적인 모습도 함께 표현해 내고 있는 시집 《자네, 길 떠나는가》는 외로움에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은 고민 속에서 표현된 조용한 외침들이다.
“몇 번 쓰고 말걸 그랬어 / 어느새 천형의 가시 장미꽃처럼 / 독배를 마셔버린 후부터 / 나는 너를 멀리 할 수 없었지…”(「시(詩)를 쓰며」중에서)를 보면 한편의 시를 쓸 때마다 수많은 갈등과 번민(煩悶) 속에서 고뇌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