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오늘. ‘직선제 개헌, 호헌철폐’를 외치던 1987년 6월 민중항쟁이 20년을 맞았다. 뒤 이어 ‘절반의’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바꿔내기 위한 7ㆍ8ㆍ9월 노동자 대투쟁도 20년을 맞는다.
6월 항쟁을 기념하는 행사와 각종 언론 뉴스에 사방이 분주하다. 정부는 항쟁 스무 돌을 맞아 6월 10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곳곳에서 기념사업과 학술행사가 열렸다. ‘6월 시민 축제의 광장’,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같은 사업도 있었고 지난 9일에는 ‘고故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도 열렸다. 대선 주자들은 그 때 뭘 했을까. 언론은 이것도 잊지 않고 찾아내어 기록한다.
서른여섯의 이해찬은 재야 운동권의 살림꾼이자 ‘꾀돌이’였다…민청련 초대의장 김근태는 경주교도소에서 6월 10일을 맞았다…청년 고진화도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공주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있었다…인파 속에 노동운동가 심상정이 있었다. 그는 1985년 구로노동자 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6월 18일 여성운동가 한명숙은 머리에 삼베 수건을 쓰고 종로 네거리에 서 있었다…노회찬은 인천 부평역 앞에 있었다…학교에서 돌아온 정동영 <문화방송> 기자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민 끝에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현장에 있지 못해 아쉽고 죄송했다”고 말했다…권영길 <서울신문> 프랑스 특파원도 서울에서 날아온 팩스로 고국의 소식을 접했다. 그는 88년 2월 귀국했다…손학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은 오랜 유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은 전국을 뒤흔든 혼란 속에서 열심히 일했다…변호사 천정배는 시국 사건 변호로 눈코 뜰 새 없었다.…
- <벅찬 승리였고 시린 상처였다>, 《한겨레21》, 제663호, 2007. 6. 7
‘기억’을 위한 여러 행사들이 열리고 있는 이 와중에 그러나 우리가 정작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1987년 6월은 ‘열린 공간’이었다. 어떻게 그 공간이 열려졌는지, 무엇이 그 열림을 만든 힘이었을까, 7ㆍ8ㆍ9월 노동자대투쟁은 6월 민중항쟁으로 열린 공간을 활용해, 노동자들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6월 민중항쟁을 한발 진전시켰으며, 현실 민주노조운동을 뿌리내린 힘이다.
6월 항쟁을 뒤이어 분출한 7ㆍ8ㆍ9월 노동자대투쟁은 열린 공간을 틈타 노동자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엄혹한 탄압을 뚫고 노동자 · 민중의 반독재투쟁과 생존권 투쟁을 전개한 선배 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모아진 힘은 아닐까.
한국 전쟁 이후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의 근간을 이뤄온 노동자들은 전태일 분신 이후 일궈온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힘으로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에 균열을 냈다면,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한 1980년대 전반기 노동운동은 신군부 정권의 숨통을 조였다. 이들의 끊이지 않는 투쟁이 1987년 두 개의 항쟁을 가능케 한 실질적 힘이다.
그 가운데 구로동맹파업은 1970년대 노동자 생존권을 확보하려던 민주노조운동을 계승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투쟁으로, 1987년 두 항쟁을 싹틔운, 반독재투쟁 25년의 역사에서 가장 큰 봉우리이다.
구로동맹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적 동맹파업이었다. 구로동맹파업은 정권의 민중·노동운동 탄압에 맞서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중심으로 민중민주운동세력의 지지연대투쟁을 이끌어내어 노동운동이 반독재투쟁의 중심임을 드러낸 투쟁이었다.
정부에 맞선 구로동맹파업은 1987년 6월 항쟁기 민중의 정치적 대중행동을 이끌어내는 지렛대였으며, 3개월간 실질적, 전국적 총파업의 성격을 띤 노동자대투쟁을 잉태했다. 구로동맹파업은 자주성, 연대성, 민주성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전국에 뿌리내리게 했다.
민주노조운동에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성’, 자본과 정권의 분열과 회유에 대항한 ‘자주성’,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할된 현실에서 구로동맹파업의 중심 정신인 노동자들의 ‘연대성’은 역사 속에서 현실로 기억해내야 할 소중한 정신이다.
《아름다운 연대》는 구로동맹파업을 중심으로 1984년 민주노조활동에 대해 상세히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구로지역 민주노조들의 노조결성부터 자본의 탄압을 딛고 전개한 일상 활동, 조합원 총회 등 실질적 민주주의의 시도, 조합원이 참여하는 소모임 활동, 나아가 지역 차원에서의 소그룹 활동 등 민주노조운동의 일 전형을 복원시켰다.
민주노조에 대한 정권의 탄압과 이에 저항한 동맹파업의 과정이 자료와 여러 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정리되어 있다. 투쟁 이후 지속된 투쟁을 다룬 부분은 동맹파업이 각자가 처한 여러 조건에서 지속적으로 투쟁이 진행됐다는 것을 복직투쟁, 재판투쟁, 감옥생활 등을 다루고 있어 다른 역사기록물과 다르다. 특히 20년이 흘러 투쟁주체들이 그 투쟁의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담고 있어서, 투쟁의 주체를 ‘역사 기록의 주체’로 위치 지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처럼 이 책은 지워진,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개인의 역할과 경험이 녹녹히 녹아 있는 주체들의 기록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의 역사 글에서는 집단의 흐름 속에 개인은 사라지고, 지도자의 이름이 일반 노동자들을 대신했다면, 이 기록은 50여 명의 개인 경험을, ‘보통’ 노동자들의 기억을 집단의 역사 속에 다시 위치 지은 점에서 ‘집단과 개인의 역사’를 같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는 다른 한편 투쟁주체들의 목소리를 ‘역사기록’으로 불러들여 주체들이 참여하고 발언하는, 역사에서 일반 노동자들의 발언력을 높이기 위한 필자의 ‘역사 민주화’의 시도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