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27살청년이쓴시집한권이세상을뒤흔들다
1984년,한공장노동자의손에서한문학평론가의손으로신문하나가건네졌다.그신문지사이에서,얇은습자지위에연필로또박또박눌러쓴시들이쏟아져나왔다.군사독재치하의엄혹한시절,한편한편의시는가슴에불을지피는충격이었고눈물이었고위험한그무엇이었다.시인은자신을밝히지말아줄것을당부하며사라졌다.그시들이묶여한권의시집으로탄생했고,그것이바로'얼굴없는시인'박노해의『노동의새벽』이었다.
『노동의새벽』은곧바로엄청난충격과논란을몰고왔다.그리고지난30년간한국사회의변화에가장큰영향을미친책중의한권으로남게되었다.저자박노해는이시집을세상에발표하고곧바로위험인물로떠올라,얼굴이알려지지않은채로각종시국사건의배후인물로추적당했다.그는'불순한'노동자,'불온한'시인,'위험한'혁명가였다.
군사정부의탄압에도불구하고『노동의새벽』은출간이듬해베스트셀러목록에올랐다.박노해는등장하자마자평론가김윤식,임헌영등이뽑은'1984년의시인'중한사람이되었다.1988년에는계간『문예중앙』과평론가들이선정한'지난10년간최고의작품한편'으로『노동의새벽』이뽑히기도했다.1991년그가구속될때까지공식기록은없지만이시집은100만부가까이가발간된것으로추정되고있다.
문학적으로,문화적으로,또사회적으로『노동의새벽』이던진파장은넓고컸다.문단은경악했다.그의시는지식인시인들이아무리애를써도닿을수없는지점에이미도달해있는것처럼보였다.노동자계급이자신의목소리로,군홧발로짓밟혀온1천만노동자의살아있는실체의모습을맞닥뜨리게되었다.그것은'잊혀진존재'였던노동자가역사의당당한주체로걸어나오는시대적예감이었다.이로써『노동의새벽』은노동운동과민주화운동의하나의커다란지침이되기도하였다.
또한"『노동의새벽』은단일시집으로서가장많이노래로만들어진시집"(강헌,대중음악평론가)이라는기록을갖게되었다.『노동의새벽』에묶인42편의시가운데「가리봉시장」,「지문을부른다」,「시다의꿈」,「진짜노동자」,「노동의새벽」,「바겐세일」등20여편의시들이80년대민중가요로작곡되어노래의몸을입고울려퍼졌다.2004년,故신해철씨가프로듀싱을맡고싸이,윤도현,한대수,언니네이발관등의뮤지션이참여한『노동의새벽20주년헌정앨범』이발매되었는데,한권의시집에음반과공연이헌정되는것은한국음악사상유례없는일이었다.
"1980년대를이땅에서살았던사람들에게박노해는역사이고상징이며신화이다.고달픈저임금노동자로부터몸을일으켜이나라최초의빛나는노동자시인이된희귀한존재,사회모순이절정에달했던시대의고통과꿈과투쟁을기적처럼한몸에구현했던투사-문학사적으로나사회사적으로우리는그런존재를다시만날수없을지모른다."(도정일,문학평론가)
2014년,'노동의새벽'은이미왔는가,아직오지않았는가?
2014년,『노동의새벽』출간30주년을맞이했다.30년이란세월은한세대이전의시간이며,한시집이망각속으로소멸하기에충분한시간이다.그러나『노동의새벽』은세월을뚫고새삼스럽게다시기억의전면으로떠오르고있다.『노동의새벽』이여전히'불온한'물음을던지는생생한목소리로되살아나는까닭은,이시집이가진시공을뛰어넘는근원의저항과소망때문일것이다.
어찌보면불과30년전의이노래들은지금시대를경유하는이들이가닿을수없이아득하기만하다.하여노동의새벽은쉬이잊혀져서는안될'기억'을'대물림'하는일이기도하다.동시에우리는그것을암울했던과거한때의,처절했던누군가의이야기로읽을수없다.이시집속의노동은곧삶이요,노동자는곧인간이되어오늘우리자신의이야기로되살아나기때문이다.
『노동의새벽』에는'평온한저녁밥상'을앞에두고자하는소박한열망,사람대접받고,사람으로돌아가고싶은간절함이곳곳에녹아있다.단지인간다운존재가되고싶어하는,그러나사회의모순구조에의해그본질적인욕망이짓밟힌인간군상의신음과일어섬이담겨있다.
그처절한노동과저항끝에이루어낸산업화와민주화의대한민국,그러나오늘의노동현실은출구가없는상태로치닫고있다.30년이지난지금"일당4,000원짜리"노동자는'5,210원짜리노동자'로바뀌었을뿐,'기계'는늘어나고,'일자리'는희소해지고,'인간'은저렴해지고있다.비단그시절육체노동만이아니라사무노동,지식노동,감정노동등에서벌어지는인간의몸과정신과영혼에대한'노동착취'는여전하지않은가.노동은갈수록자연과자율과몸과영혼에서분리되고,내노동과그생산물이자아를온전히담아내지못하는진정한'노동소외'는여전하지않은가.
"많은강을건너고/많은산을넘었다/새벽은이미왔는가/아직오지않았는가//전쟁같은밤일을마치고/새벽쓰린가슴위로/차거운소주를부으며/온몸으로부르던새벽/그때우리는스무살이었다//나는처음노래했지만/노래한것은내가아니었다/누구의가슴에나이미있었고/누구라도받아쓰지않으면안될/우리들가난한사랑의절규였다//인간의삶이란,노동이란/슬픔과분노와투쟁이란/오래되고또언제나새로운것/묻히면다시일어서고/죽으면다시살아나는것//스무살아프던가슴이/다시새벽노래를부른다"(박노해,『노동의새벽』개정판서시)
30년을맞은『노동의새벽』은우리에게묻고있다.과연노동은삶을신성하게하는노동으로,노동자는인간으로해방되었는가?노동의새벽은'이미'왔는가,'아직'오지않았는가?그대자신의삶은해방되었는가?"아마도내가자살한다면새벽일거야."『노동의새벽』의수많은얼굴들은'또다른나'의얼굴이되어지금우리앞에서있다.하여『노동의새벽』은여전히불의한시대,여전히불안한영혼에게바치는위로이자용기이다.그강인한시들이힘이우리를강하게할것이다.
장인적노동으로완성된개정판,실크인쇄와납활자의복원
이번『노동의새벽』개정판은1984년초판본의미학과정신을새롭게재해석하고구현하는것이었다.그것은단순한형태의복구가아닌정신의복원에가깝다.『노동의새벽』은노동자가부른,노동자가주인공인,노동자의노래이다.또한노동자가만든책이기도하다.하여개정판의디자인과제작전반에창조적노동의과정을오롯이담아내고자하였다.
1984년초판본의정체성은표지에서고스란히드러난다.故오윤선생의'고뇌하는노동자의표상'과도같은판화와'강인한노동자의뼈대'같은제목,그리고깊은새벽의검푸른빛.2014년노동의새벽개정판은초판본을창조적으로계승했다."아마도내가자살한다면새벽일거야"그시린아픔과슬픔이스며든짙은코발트블루,그리고묵중한노동의무게에한줄기빛과같은희망을담은블랙앤화이트의현대적타이포그래피로새로태어났다.디자인은한국의대표적인타이포그래퍼이자출판디자이너홍동원이맡았다.
기계화,자동화의진행으로출판인쇄영역또한대량생산과효율성을따지는방향으로흘러왔다.이번『노동의새벽』개정판에서구현한'실크인쇄'는오래된인쇄기법중하나로,사람의손이훨씬많이들어가는작업이다.『노동의새벽』이담지한정신을구현하고자한것으로,기계의미학이아닌장인적노동의미학을담아내고있다."실크인쇄의기술은시간이갈수록,그것을다루는장인의경륜과경험이깊어질수록더새롭고아름다워진다.색이쉽게변질되지않고오래가며,색감또한일반인쇄에서는구현되기힘든깊이를지닌다."(홍동원,글씨미디어대표)
개정판본문의특징은바로'납활체'에있다.납활체는컴퓨터가상용화된이후거의사라져지금은찾아보기어렵다.『노동의새벽』개정판본문은1984년초판본의납활체를가능한그대로살렸으며,세월이흘러읽기어려운글자는하나하나수작업을거쳐되살려냈다."납활체는글자하나하나를일일이손으로만들고,또사람이누르는정도에따라달라지기에같은글자가한글자도없다.손으로글씨를쓸때강약과느낌이다다른것처럼.그것이살아있는글자이며,거기서우리는'글자의힘'을느낄수있는것이다."(홍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