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 네이처(SECOND NATURE)

세컨 네이처(SECOND NATURE)

$15.88
Description
파헤칠 것인가, 숭배할 것인가?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공존을 향한 마이클 폴란의 정원 여행
사람들은 자연(야생)과 인간(문화)이 상충하는 것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쉽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버린다. 무자비하게 파헤치거나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인간의 간섭을 제한하거나…. 이 둘 사이의 중간지대, 즉 자연을 해치지 않고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인간이 자연의 역사에 뛰어들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은 『세컨 네이처』에서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양극단에 선 사람들에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연과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본문에는 그가 손수 정원을 가꾸며 벌어지는 온갖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흙을 만지고 풀꽃과 나무를 심고 오솔길을 산책하는 동안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연과 정원의 세계로 시공을 넘나드는 지적 여행을 떠난다. 그런가 하면 두엄더미의 의미에 대해 골몰하고, 장미정원을 가꾸며 우리의 삶과 성의 사회학을 읽어내기도 한다. 저자는 정원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교감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껏 우리가 자연에 대하여 뿌리 깊게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깡그리 매몰시킨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지금의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미래의 우리를 생각하며 대지를 가꾸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원사의 윤리관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거나 혹은 전혀 개발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세계를 정원으로 인식하는 저자의 아이디어가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 Key Point!
QPB선정 '새로운 관점상'을 수상한 이 책은 미국원예협회로부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원 관련서 중 하나로 꼽히며 2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를 지키고 있다.
저자

마이클 폴란

현재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
《나만의 자리A Place of My Own》(1997년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선정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욕망하는 식물The Botany of Desire》《잡식 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In Defense of Food: An Eater's Manifesto》(제임스 비어드 상 수상) 등 출간하는 책마다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치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폴란의 글에 대해 미국 언론들의 격찬이 그칠 줄 모르며 학계와 관련 단체 역시 그가 내놓는 인간과 자연, 환경과 역사에 관한 새로운 해석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2009년 6월에 개봉한 로버트 케너Robert Kenner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음식 주식회사Food Inc.>에 출연했다. 그의 저서 《욕망하는 식물The Botany of Desire》을 소재로 한 동명의 텔레비전 타큐멘터리도 2009년 10월에 미국에서 방송된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New York Times Magazine>에 환경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ckley) 대학원 과정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다.

목차

- 프롤로그

제1장 두 개의 정원

봄
제2장 자연은 정원을 싫어해
제3장 왜 잔디를 깎는가?
제4장 두엄의 형이상학

여름
제5장 장미 정원에서
제6장 우리가 바로 잡초다
제7장 원예의 재능

가을
제8장 가을걷이
제9장 한 그루 나무 심기
제10장 미완의 정원: 또 다른 정원의 개념

겨울
제11장 사색의 겨울정원
제12장 정원 여행

- 역자후기
-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 마이클 폴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현실의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다!


재기 넘치고 눈부시다. (…) 정원에 관해, 인간과 자연에 관해 이만큼 빛나고 흥미로운 책은 없다. -앨런 라시Allen Larcy,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재미있다! 자서전이자 정원서이며, 지적인 대서사시다. 《세컨 네이처》는 광대한 정신을 가진, 희망적인 작품이다. -프랭크 레버링Frank Levering,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일찍이 야생을 옹호했던 한 자연주의자가 시험 삼아 콩밭을 일구다 말고 괭이를 내던졌다. 세상을 등지고 호숫가에 3년 동안 은신했던 그는, 훗날 위대한 책으로 추앙받게 될 자신의 저서에 당시 경험에 대해 적어두었다. “이 콩들이 우드척을 위해서 자란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렇다면 우리의 콩 농사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리 낙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풍성한 잡초가 새들에게는 보다 풍부한 먹잇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라고. 아시다시피《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다.
이로부터 약 150년 후. 미국 코네티컷에서 자신의 채소 모종을 지키기 위해 우드척과 치열하게 대치 중인 한 남자는 이렇게 비웃었다. “아무렴 즐겁지, 헨리. 그리고 굶어죽는 거야.”

소로와 작별한 어느 정원사의 모험
마이클 폴란. 소로가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한 베스트셀러 목록을 거느렸고,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로 명성을 얻은 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소로의 충실한 제자였다. 하지만 바위투성이 언덕에 힘들여 가꿔둔 자신의 정원에 사슴, 너구리, 우드척, 온갖 곤충과 잡초들이 총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낭만적 정체성을 유지하기란 지극히 어려웠다. 그는 자연의 관찰자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행동해야 하는 ‘정원사’였으니까.
<워싱턴 포스트>가 ‘자서전이자 정원서이며, 지적인 대서사시’라고 상찬했던 《세컨 네이처》는 저자 마이클 폴란이 7년 동안 직접 땅을 일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폴란은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역사 정치 미학 윤리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펼쳐낸다.
자연과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자연과 인간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근거를 제시해주는 공간으로, 폴란은 정원을 찾아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양극단에서 고민하던 우리에게 세계를 정원으로 인식하는 그의 아이디어는 21세기 최대 이슈인 환경과 먹을거리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과 희망적인 대안을 선사한다.

맨해튼을 떠나 농장으로
어린시절 그는 두 개의 극단적인 정원을 경험했다. 강박에 가까울 만큼 기하학적 규칙을 사랑했던 외할아버지의 정원과 말끔한 잔디의 물결로 일렁이던 교외지역 풍경을 사정없이 망가뜨린 아버지의 방치된 정원. 할아버지는 땅을 ‘교환가치가 큰 상품’ 정도로 여겼던 게 분명했지만, 그는 할아버지의 정원을 사랑했다. 깨끗한 밭이랑에서 멜론이나 토마토를 수확하는 일은 언제나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 빈 땅을 일궈 딸기 수박 오이 가지 등의 채소를 길렀다.
그에게 정원에 대한 인상과 개념을 심어준 것이 외할아버지였다면, 정원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건 아버지였다. 마구 자라게 놔둔 잔디를 깎으라는 이웃들의 소리 없는 압력을 시종일관 무시하던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가 칙사로 찾아왔던 날 예초기에 시동을 걸고 마당 한가운데에 자기 이니셜을 새겨버렸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마이클 폴란의 아버지는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상사를 해고하라Fire Your Boss》등의 유명한 저서를 남긴 스티븐 폴란Stephen Pollan이다.)
하루 평균 두 시간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맨해튼의 아파트에 살던 시절,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두 정원의 추억들이 그에게 자꾸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콘월 후사토닉 계곡 동쪽 가장자리의 버려진 낙농장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정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봄: 자연은 정원을 싫어해
콘월에 짐을 푼 마이클 폴란은 꿈에 부풀었다. 다년초 화단은 잡초와 함께 자라도록 이랑을 만들지 말아야지, 정원에서 내 몫만 고집하는 건 우아하지 못한 짓이야. 하지만 야생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을 가꾸겠다던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계획은 채소 모종을 심은 바로 다음날부터 좌초하기 시작했다. 우드척이란 녀석이 나타나, 공들여 일군 밭이 자신을 위해 차려진 밥상인 양 당당히 모종들을 먹어치워 버렸으니까. 그는 굴에 돌멩이를 밀어넣기도 하고, 우드척 소굴에 휘발유를 부어 베트남전을 방불케 하는 화공 작전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불길만 엉뚱한 곳으로 번졌을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우드척만이 아니었다. 정원 식물들과 사이좋게 자라길 바랐던 잡초는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 다년초들을 질식시켜버릴 태세였다. 진딧물과 온갖 벌레와 땅 속 박테리아의 공격 역시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자연은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원에 침입해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적의 공세를 막아낼 준비는커녕 자연 속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마저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름: 받아들일 것인가, 군림할 것인가?
자연을 관찰하기만 했던 도시인의 순진한 인식으로, 자연의 야생성을 존중한답시고 이들의 침략을 묵인하는 건 턱없이 무책임한 짓이었다. 새벽부터 우드척의 공격을 받은 어린 새싹들,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못생긴 당근, 잡초에 숨이 막혀 기를 못 펴는 화초들, 꽃이 제대로 피지 않는 으아리꽃,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열매를 성숙시키지 못하는 토마토……. 사람이 적절히 개입해 자연의 거센 공격을 막아주지 않으면 정원 식물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그렇다고 DDT니 말라티온이니 하는 독한 살충제를 써서 정원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비료와 살충제는 대량 생산의 단꿈을 실현시키며 한동안 개가를 올렸지만, 채 반 세기도 지나기 전에 땅은 황폐해지고 작물들은 약에 찌든 중독자처럼 형편없이 허약해지지 않았는가? 인간의 오만함은 25억 년 동안 진화하며 자연이 이룩해낸 공생 관계 역시 무차별적으로 망가뜨렸다.
자연을 객체로 전락시키는 ‘과잉경작’과 인간의 손길이 지나치게 제한된 ‘과소경작’의 실패를 차례로 경험하며, 폴란은 인간과 자연 어느 쪽도 압승을 거두거나 완패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훌륭한 정원사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관절염 걸린 손가락마냥 울퉁불퉁하고 작은 자신의 당근을 떠올렸다. ‘낭만적’으로 ‘방치’된 못생긴 당근. 부랴부랴 거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퇴비를 섞어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더니, 그해 여름 당근은 오동통한 담황색 어깨를 밀어올렸다. 당근 뿌리 하나를 셔츠에 문질러 닦아 한 입 베어 먹었다. 흙내음과 함께 신선하고 달콤한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당근다운’ 당근이다. 그는 슬그머니 웃으며 생각해봤다. ‘어쩌면 나는 진짜 재능이 있는지도 몰라.’

가을: 지구라는 정원
1989년 가을 내내, 콘월은 토네이도가 무참하게 지워버린 ‘캐시드럴 잣나무숲’ 이야기로 뒤숭숭했다. 하루아침에 망가져버린 숲을 두고 사람들은 잔해를 치우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공방을 벌였다. 한편에는 자연에 대한 어떤 개입도 비자연적이라고 생각하는 순수주의 환경론자들이, 반대쪽에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논란이 뜨거워질수록 폴란은 의기소침해졌다. 이 다툼은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드러내는 또 다른 고전적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청교도들은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무자비하게 파헤쳐지는 자연에 몸서리치며 소로가 숲으로 들어가버린 이후, 사람들은 오랫동안 청교도와 소로의 견해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왔다. 둘은 엄청나게 다른 것 같지만 인간(문화)과 자연(야생)을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은 무척 닮았을 뿐 아니라 역사라는 틀 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연이 일정한 규칙대로 변화한다는 ‘숲의 천이’ 이론에 손을 들어주며, 인간이 시도하는 모든 변화를 비자연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자연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건 사실 우연적 요소다.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 갑자기 나타나 소나무 순을 먹어치운 사슴, 가로수에서 날려온 씨앗 꼬투리, 산성비, 사람이 무심코 버린 담뱃불만으로도 숲의 미래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자연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어째서 숲의 미래에 우리의 희망과 염원을 투영하면 안 된다는 것일까?
게다가 야생을 보존하고 거기에 모든 걸 맡겨버리는 소극적인 방식을 견지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양심, 윤리적인 선택, 기억, 분별력처럼 지극히 인간적이고 생태 친화적이지 않은 소양이야말로 오히려 지구에 마지막 희망을 주는 건 아닐까? 이제 그 능력을 자연 세계에서 제대로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겨울: 정원의 가능성
정원 식물들이 모두 휴식에 들어간 겨울이면, 폴란은 종묘사에서 보내온 카탈로그를 뒤적이며 다음 해의 정원을 구상했다. 이번에 그의 마음을 끈 것은 ‘정원에 나타난 무정부주의자’ 허드슨의 카탈로그였다. “우리는 화석 연료의 도움으로 세계를 신속하게 여행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며 철새가 씨앗을 옮기듯이 인간이 종과 종 사이의 DNA 전이, 즉 진화에 기여하고 종자를 보존해야 한다는 허드슨의 주장은 그럴 듯했다. 곧 폴란의 상상 속에서 다문화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정원이 싹텄다. 인디언의 시블리 호박과 프랑스 말메종에서 육종한 마담 하디 장미 그리고 모네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