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 비상 계엄이 선포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여 비상 계엄이 선포된 이래 45년만의 일이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가 있었고, 1986년 5월 3일 인천이 있었고, 1987년 6월 항쟁이 있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있었다. 2024년 12월 수류산방에서 새로 발간한 『두렁, 앞뒤 - 한국 민중 미술사의 재구성』은 이 모든 역사를 자신의 예술로, 삶으로 끌어안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은 책이다. 1982년 홍익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미술 동인 두렁이 결성되었다. 1984년 창립전을 치른다. 미술 동인 두렁의 회원들은 이 2년의 활동을 끝으로 예술이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지 끝없이 스스로 질문하며 공장으로, 농촌으로, 노동 현장과 운동의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부족한 설명이다. 이에 2014년 창립 30주년 두렁의 회원이었던 작가들을 모아 컬로퀴엄을 개최했다. 2016년 그 날 것 그대로의 자료들이 수류산방에 도착했다. 수류산방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구술을 글로 풀고 다듬고, 작품과 시대의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을 책으로 묶었다. 808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10년에 걸친 두렁 작가 16명의 구술과 약 1,000장의 도판, 약 170개의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민중 미술사’가 아니다. 예술 사조로서 박제된 표면적 역사가 아닌, 현장을 누비는 역동적인 역사를 담았다. 동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의 인생이면서 동시에 그 어디에도 없었던 두렁만의 고유한 체험이다. 민중 미술의 진실과 이면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한다. 미술의 흐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의 역사도 한 권에 담았다. 쫓기고 잡히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16명 각자의 스토리가 마치 소설이나 극본 같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작가 개개인의 역사와 예술 사조의 변화도 다양한 도판과 함께 한 눈에 볼 수 있다. 1970~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 대학가와 예술인들 사이 어떤 일들이 숨죽여 일어났는지 궁금한 사람들, 현장에 뛰어든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이어졌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권해 본다. 『두렁, 앞뒤』는 미술 동인 두렁과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미술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면면이 탈피하고 파괴하고 새로 쌓아 올린다. 1982년 두렁이 던진 질문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미술 동인 두렁은 지금 이곳에서 이 시대를 살아내는 모든 사람의 곁에 있다. [편집부에서 보냅니다] 밤샘 마감으로 어수선한 사무실을 청소한 뒤 신간 보도자료를 쓰다 말고 늦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늙은 어머니와 멀리 사는 형제들의 문자 메시지가 쏟아집니다. “계엄” “광화문 괜찮으냐” 찾아 보니, 빨간 배경의 자막에 “언론 출판 통제”가 뜹니다. 에헤~이, 2024년에 계엄이 무슨, 먹던 소주를 한 잔 더 따르면서도, 머릿속에 두서없이 걱정들이 명멸합니다. ‘아… 어쩌면… 이 책 배포를 못할 수도 있겠네….’ 동료들은 다들 안전한 곳에 있을까?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알려야 하나? 이 전화기는 사용해도 되는 걸까? 돌아오는 제삿날에 지방의 어머니 댁에 갈 수 있는가? 살면서 한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질문들이었습니다. | 그러나 2024년 12월 3일의 비상 계엄의 첫 작전이 술자리를 파하기도 전에 불발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하고 단단하게, 깊은 곳까지 뿌리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촛불 집회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축제이고 놀이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겪으며 집회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박힌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마음의 마당이 됨을 알았고, 진압 군경들과 충돌을 피하는 지혜를 익혔습니다. 연행을 피해 재빨리 적법한 국회를 소집하고, 그렇게 하도록 돕고, 그 상황을 디지털 매체로 공유할 수 있는 나라라는 믿음이 두텁고 넓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을 차려 일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공포를 질서로 누를 줄 알고, 분노를 혐오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지난 반 세기, 또는 130년 전 동학 농민군들 때부터 이 땅의 홍익 인간들이 수없이 피흘리고 또 실패하며 쌓아 낸 두터운 성과일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혹한의 계엄에, 우리는 1979년 12월 서울로부터 45년의 어둠 속에서 피흘리고 더듬으며 씨뿌렸던 민주화가 이렇게나 훌륭하게 뿌리내리고 울창하게 자랐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합니다. 또한 우리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과오가 독이 되어 우리의 현재, 우리의 미래,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망치려드는 현장을 똑똑히 확인하게 됩니다. 민주화 운동의 실패, 3.1 만세 운동의 실패, 동학 농민 혁명의 실패를 다음 세대가 마주칩니다. 이 모든 것이 수류산방의 새 책 미술 동인 두렁의 이야기, 『두렁, 앞뒤』의 이야기입니다.
“‘두렁’이란 말은 논이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둔덕을 뜻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그 곳은 농작물을 거두어 집으로 나르는 곳이고, 일하다 쉬는 휴식처이자 일에 지치지 않게 함께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춤도 추는 놀이판입니다. 이처럼 ‘두렁’은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노는 삶의 터입니다. 이런 이름을 미술 모임에 붙인 것은 미술품이 한낱 고급 소비품에 불과하지 않고 그림 한 장, 조각품 하나가 만들어지더라도 고생을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복판에 같이 있고 싶어서입니다.”[『미술 동인 ‘두렁’ 판화 달력』, 실천문학, 1983. 12.] [1980년대 민중 미술 ‘소’집단 두렁 : ‘대’집단은 누구입니까?]
〈두렁, 앞뒤〉는 미술 동인 두렁에 가담했던 열여섯 사람들의 구술을 모은 책입니다. 두렁은 미술에 조금 관심이 있다 해도 생소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 “미술 동인 두렁은 1982년에 홍익대학교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민중 미술 이념을 표방하며 출범한 미술 단체이다.” 한국 미술 용어 사전에서 두렁을 소개하는 첫 문장입니다. 이것은 반쯤 맞습니다. 두렁은 그 출범 시점도 명확하지 않고, 학벌로 닫힌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개개인이 민중 미술의 대표 작가라고 할 만한 여정을 걸었던 것도 아니고, 미술 단체였다고 하자니 꾸준히 전시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두렁이 무엇인데?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이 책 『두렁, 앞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수류산방이 책 제목에 ‘앞뒤’를 붙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두렁은 정확한 시점과 끝을 알 수도 없고, 완결될 수도 없습니다. | 두렁은 1983년에 동인으로서 창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창립 예행전을 가지고, 1984년 경인미술관에서 창립전을 개최했습니다. 그것이 동인의 이름으로 연 모든 전시였습니다. 미술관과 전시장, 미술 작품으로는 두렁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모든 민중 미술을 표방하는 작가들과 두렁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전》을 거부했습니다. 『두렁, 앞뒤』는 두렁의 스펙트럼을 한데 모은 최초의 출판물입니다. | 지금 우리가 두렁의 이야기, 『두렁, 앞뒤』를 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1980년대 민중 미술 집단의 한 부분을 이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두렁은 처음부터 그 자리를 버린 데서 시작한 이름이었습니다. 현실과 발언의 뒤를 이었다느니, 광자협 서미공과 나란하다느니, 그런 말들은 조금도 두렁의 가치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닙니다. | 두렁의 개개인들은 스스로 ‘이념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선언했지만, 모두 입을 맞춘 듯 ‘두렁은 하나의 정신이고 태도였다’고 회고합니다. 그 태도는 민중을 위한 예술이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예술을 넘어서는 것으로, 민중 속의 예술, 삶 속의 미술, 현실을 바꾸어 가는 미술이었습니다. 두렁에 속한 이들은 이른바 순수 미술에 대한 염증, 삶과 유리된 예술에 대한 질문, 서구에서 이식된 장르와 개념에 대한 의문들을 가졌습니다. 우리 전통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는 없는가? 우리 삶 안에서 일어나는 창작일 수는 없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며, 예술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많은 말들을 대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품었던 분들이라면 꼭 이 『두렁, 앞뒤』를 보십시오.
[두렁과 『두렁, 앞뒤』 : 미술사가 아니다]
그들은 보자르식 서양 미술을 잘 습득해 대학까지 갔으면서 한국 전통 미술과 풍물을 연구합니다. 일부러 못 그리려, 일부러 서툴게 그리려 했습니다. 미술 작품이 아닌 걸개그림이나 현수막, 판화와 만화… 여러 시각 매체로, 여러 장르로 나아갔습니다. 아예 미술계가 아닌 현장으로 나아가 공장 근로자가 되고 농민이 되어 버렸습니다. 서울의 외곽, 자본주의의 언저리에서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살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 모든 삶이 두렁의 작업입니다. 두렁의 스승은 미술 밖에, 대학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미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1980년대 미술사가 아닙니다. 미술을 버려도 좋다고 작가의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두렁의 동인으로 남았습니다. 두렁의 동인들은 역사의 현장에 스스로 나아가 목숨을 걸고 검열을 피해 이름을 바꾸고 몸을 숨기고 감옥에 잡혀가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 우리가 『두렁, 앞뒤』를 보아야 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이것이 1970~1980년대 독재 치하 한국 민주화의 역사 그 자체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전태일 이후 동일방직 노조 등 초창기 노조의 탄압으로부터 민주노총이 결성되기까지의 노동 운동의 역사와, 1970년대 유신과 민청학련 이후 1980년 5.18과 민청련이 펼쳐 나간 정치적 민주화 운동의 역사, 해방신학과 기독교 농민회로부터 전국농민회총연맹을 거쳐 FTA 반대 투쟁까지의 농민 운동의 역사가 어떻게 서로 얽히며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는지, 그 속살을 이처럼 내밀하게 그리고 퍼즐처럼 증언하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현장 안에서 몸을 굴려 그 역사를 만들어 간 톱니들입니다. | 두렁의 동인들은 작가가 되기도 전에 훗날 한국 민주화 역사를 쓸 영웅들과 함께 있었으며 운동권의 붕괴와 그 욕망의 변절 또한 지켜보았습니다. 그 모든 트라우마를 각자의 삶으로써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