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탐구 (양장본 Hardcover)
Description
나 탐구는 마하리쉬가 쓴 최초의 작품이다. 그것은 1901년경, 즉 그가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을 때 쓰였다. 그는 이미 완벽하게 나를 자각하고 신성한 지식의 찬란한 희열 안에 있는 현자(갸니)였다. 그때 그는 아루나짤라 언덕에 있는 비룩빡샤 동굴에 살고 있었다. 많은 제자들이 이미 그의 주위에 모여 있었다. 실제로 침묵의 서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초기 헌신자들 중의 한 명인 감비람 세샤야가 그에게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을 그는 글로 썼다. 감비람 세샤야는 일기에 그것들을 옮겨 적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형이 이 일기를 손에 넣었다. 질문과 대답은 나따나난다에 의해 편집되었고 바가반의 승인 하에 비짜라 상그라함 혹은 나 탐구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그것들은 에세이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원본 형식을 채택했다.
이 작품에는 청년의 느낌이나 미성숙함이 없다. 스승은 말년에 그랬던 것처럼 완전한 영적 지식의 권위를 가지고 글을 썼다. 말뿐 아니라 글로 한 그의 모든 설명처럼, 이것은 불모의 이론이 아닌 나 자각의 길에 대한 실용적 질문들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후기의 설명과는 다르다. 즉, 그것은 나 탐구의 길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 즉 나와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명상과 호흡 통제에 기초한 요가의 길 또한 설명한다는 것이다. 후기의 설명에서 그는 오직 나 탐구 아니면 구루에 대한 굴복submission만을 제시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보거나 굴복하는 것입니다.”
왜 그는 이 글에 다소 덜 직접적이면서도 더 정교한 방법들에 대한 언급을 포함시켰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책이 쓰이도록 질문을 한 제자가 이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책을 읽고 그것들에 대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또한 더 넓은 의미에서는, 그가 제시했던 평생의 가르침 이전에 다양한 방법에 대한 일반적 설명을 먼저 하는 것이 적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다른 방법들이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그다지 권장되지는 않는다.
설명된 호흡 통제는 물론 단순한 신체적 수련이 아니다. 그 수련의 영적 의미는 그것을 정교한 과학으로 만든다. 그것은 전통적인 자기 정화의 인도 과학이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표현이 정말 그것에 적합한 단어이다. 이는 그것에 대한 사전 소양이 없는 서양 독자들을 난해하게 만드는데, 특히 모든 과학처럼 그것은 장문의 주석 없이는 적절한 번역을 허용하지 않는 전문 용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설명을 쓰면서 마하리쉬는 그가 글을 써 준 사람의 질문에 대해 과학의 기술적 지식에 의존할 수 있음을 알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양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위안은 그가 이 길을 권하지도 않고 처방하지도 않았으며, 후기 저작들에서는 그것을 거의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것의 전문성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저자

라마나 마하리쉬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성자로 불리는 그는 인도의 힌두 철학자이자 요가 수행자다. 1879년 12월 30일 인도 남부 마드라스 마두라이의 중류층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벤카타라만(Venkataraman)이었다. 17세 때 그는 평범한 소년에서 성자로 만드는 불가사의한 체험을 하게 된다.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심하게 느꼈고, 그는 죽음의 탐구를 생생히 하기 위해 시체처럼 몸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그런 경험 후 참나(Self) 속으로의 몰입이 지속되었고 그는 아루나찰라 산으로 올라가 지냈다. 주변에는 상당한 수의 제자가 모여들었고 지금의 라마나스라맘(Ramanasramam)이 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난 야르(Nan Yar), 타밀어로 ‘나는 누구인가?’로 나의 근원을 직시하게 하고, 진솔하게 근원을 받아들이는 헌신을 보여주었다. 에고의 존재를 온전히 비우기 위해 그가 사용한 수행법은 요가이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과 수용성을 지녔으며,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충만한 성인으로 유명하다. 그를 스리 바가반이라고도 부르는데, 스리(Sri)는 존칭어이고 바가반(Bhagavan)은 ‘전능한 신’이라는 뜻이다. 또한 라마나(Ramana)는 부모님에게 받은 이름인 벤카타라만(Venkatarama)에서 따온 것으로 ‘참나에 머무는 자’를 의미하며, 마하르시(Maharshi)는 ‘위대한 성취자’를 뜻한다. 그와의 만남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에고의 사라짐과 참나의 세계를 체험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침묵의 힘을 가졌다. 사람들이 그의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방황하던 마음은 고요해졌고, 오랫동안 갈구해왔던 영적체험이 일어났다. 그는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제자들에게는 침묵을 통해서 그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전하고 그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해서 가르침을 주었다. 그는 1950년 4월 14일 죽음의 고통도 발작의 징후도 보이지 않은 채 입적하였다.

목차

도입
기도
나 탐구 (비짜라 상그라함)
1 ~ 40. 질문과 답변
경의
참고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