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뿌리 (애국지사 손정도 목사와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의)

거대한 뿌리 (애국지사 손정도 목사와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의)

$15.00
Description
비씨스쿨출판사는 위대한 대한민국 시리즈를 통해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을 발굴 소개해 왔습니다. 첫 책 『조국의 별 최용덕』과 일제 강점기 항공 독립 운동가들과 대한민국 공군을 창군사인 『신화의 시간』에 이어 세 번째로 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 정부 수립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와 그의 아들로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의 2대에 걸친 조국 사랑을 담은『애국지사 손정도 목사와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의 거대한 뿌리』를 펴냈습니다. 이 책의 1부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은 물론 그 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애국지사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아울려 감리교 목사로 고종 황제의 밀명에 따라 파리 강화 회의 밀사 파견을 돕고 상해 임시 정부 수립에 기여한 해석 손정도 목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에서는 그의 아들로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손원일 제독의 삶과 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굴곡의 20세기 역사를 되돌아보며 진정한 애국의 의미를 다진다. 또한 손정도 목사와 손원일 제독의 2대에 걸친 삶을 통해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독립 운동과 일제 패망과 함께 시작된 조국 건설에 앞장선 이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해방 정국에 맨 손으로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과 해방병단에 참여해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온갖 고난을 이겨낸 해군과 해병대원들의 조국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저자

손준영

손준영은1964년강원도원주에서태어나출판사에서책만드는일을하며시와동화,청소년을위한경제서등다수의책을썼다.또한비씨스쿨출판사의위대한대한민국시리즈『조국의별최용덕』,『신화의시간』등을기획하며일제강점기조국의독립을위해헌신하신애국지사들에관심을갖게되어2012년부터『애국지사손정도목사와대한민국해군의아버지,손원일제독의거대한뿌리』를쓰기시작해대한민국해군창설70주년인2018년출간하게되었다.저자는이책을통해자라나는세대들이친일파를청산하지못한현실을각성하고외세에맞서싸운이들의정신이기억되길기원한다.특히아직도곳곳에서선열들의흘린피와땀을이용해기득권만챙기려는이기주의를비판하고진정한애국자들이세상에널리알려져자랑스런오천년의역사가후대에온전히물려지길기원한다.

목차

머리말

1부뿌리깊은나무
혼돈의시대
꿈꾸는자의고통
독립운동의요람,상동교회부흥사손정도
전도사손정도와원일의출생
안중근거사와105인사건
원일의경성생활
정동제일교회목사손정도
다시평양으로
중국축구왕신국권
손목사의중국망명
평양3·1만세운동
상해임시정부의정원의장손정도
상해손님‘바람’
독립군의국내진공작전
임시정부의의친왕망명작전
우리나라최초의여류비행사권기옥
김상옥의의열투쟁과길림으로간손목사
원일의길림생활
문광중학교체육부장
안창호석방운동과새로운도전
상해중앙대학항해과학생손원일
젊은원양항해사의꿈
성찰의시간




2부조국의바다여,영원하라
거대한뿌리
굴욕과각성의시간들
창살없는감옥의사랑노래
상해의젊은사업가
충무공의후예,해방병단
세상에서가장넓고깊은힘
조선해안경비대
신화의시작,대한민국해군과해병대
몽금포작전
해군최초의전투함,백두산함
6·25전쟁최초의승리,대한해협해전
육군17연대후송작전
진동리전투와귀신잡는해병의신화
서해도서점령과엑스레이작전
장사동상륙작전과함께시작된인천상륙작전
윌리엄해밀턴쇼
중앙청에걸린태극기
지체된북진과중공군참전
흥남철수
국방장관임명을거부한손제독
제2차인천상륙작전
해군의날개해취호와최초의병원선
해군첫공대함전투와무적해병신화
군의정치참여반대
전쟁포로석방과손원일국방장관
군사원조협상
약소국외교관
불의와타협하지않은자유인

출판사 서평

『애국지사손정도목사와대한민국해군의아버지,손원일제독의거대한뿌리』

[내용요약]
우리나라는수많은외침을당한치욕의역사가있다.이러한외침을이겨낼수있었던것은영웅들의역할이컸지만수많은민초의조국사랑의산물이었다.영웅은위기에등장하지만이들의뒤에서묵묵히자리를지킨이들은이름도알려지지않은백성이었다.그러나현대인들은이러한민초들의저항보다는소수의영웅이야기를더좋아한다.우리가영웅만이야기하는것은이름도남기지못한채사라져간민초들의기록이많지않기때문일것이다.
개항이후일제의침탈에맞선한인은일부지식인을제외하곤대부분이름이알려지지않은민초였다.이들가운데평안도와함경도출신이앞장서게된것은아이러니하게도조선의정치에서소외된아픔이크게작용했다고생각한다.조선건국이후평안도와함경도는여진족을비롯한북방민족이살았다.조선의조정은국경의정치상황을고려해이곳백성들이중앙에진출하지못하게막았다.이런아픔을대신한것은개항이후들어온미국선교사들이었다.이들은평안도와함경도산간지역에서세를넓힌천도교와달리서북지역을중심으로세워진교회를바탕으로학교를설립해계몽에나섰다.이에따라이들학교에서는민족의식을가진선각자들이배출되기시작했다.
이들가운데손정도는평양인근강서군오흥리의유학자집안에서태어났다.그는과거시험을보러평양에가다가날이저물어감리교회에서최아무개목사를만나기독교도로변신했했다.과거시험을포기하고고향에돌아온그는사당의위패를불태워집에서쫓겨난뒤평양에서선교사로일하는미국인문요한목사도움으로숭실학교에다니며민족의식을일깨우는시발점이되었다.당시숭실학교에는훗날북한주석김일성의아버지김형직과조만식등과만나게되었다.숭실학교를졸업한손정도는한성감리교신학당에유학하며부흥사로독립운동의요람인상동교회에서전덕기목사를비롯해이회영등청년회원들과교류하며미국에서귀국한안창호를만나국제정세에눈뜨게된다.
그뒤손정도는훗날대한민국해군을창설한손원일제독이출생하여진남포감리교회에전도사로파견되어1년과생활하며그곳정신적인지주인임치정김지간등과교류하며교회신도들에게민족의식을일깨우며신망을얻었다.부임초기진남포교회신도는이백여명남짓이었으나손정도가전도사로일한일년동안두배가넘는오백명으로늘어났다.이처럼손정도의활발한선교활동이감리교평양선교회에알려졌다.당시감리교연회는북만주선교사가필요했는데이때손정도가눈에띄었다.진남포에서많은사람을전도한것을본평양선교회는그를북만주에파견하기위해북경에중국어연수를보냈다.이사이상동교회에서는안창호,전덕기등이중심으로신민회를조직했다.신민회원대부분은서북지역(평안도)기독교도가중심이되었다.손정도는북경에가기전평양에서감리교목사안수를받고정식목사가되었다.북경에간그는중국어를배우며안창호등신민회원들과만나신민회에가입한뒤북만주에돌아다니며교회마다청년회를조직하고곳곳의애국지사소식을국내에게전하는일을했다.

이때일제는안중근의사가이토히로부미를처단하자,항일애국지사체포계획을세우고많은밀정을만주곳곳에파견했다.이때안중근동생인안명근이평양에들어와만주에무관학교설립자금을마련하려고신민회원한경직등과모금활동을하다일경에체포되었다.일경은안명근일행을조사하며이를조작해항일지식인과김구등서북지역기독교인을체포했다.일명105인사건을조작한일제는북만주에서활동한손정도목사마저체포한뒤한성경무총감부에이송해고문했다.그러나손목사가북만주활동을선교활동이라주장해무혐의로풀려났으나조작사건이탄로날것을우려한일제는다시체포해제령위반(일본법으로처벌할수없는경우총독부의재량으로구금처벌하는법)을적용해일년간진도유배형을내렸다.진도에끌려간손정도목사는그곳에서목회활동을이어나갔다.그가독립운동을했다는소문이퍼져기독교도들이몰려왔기때문이다.
일년뒤유배형에서풀려난손정도목사는감리교연회에서최병헌목사추천으로동대문교회목사로시무하며일년사이대형교회로발전시켰다.이런모습을본감리교연회는그를정동제일감리교회목사로임명했다.이사이평양에서생활하던그의가족은한성으로이사했다.일곱살이된손원일은동대문교회목사관에서정동으로이사하며새로운생활에빠져들었다.정동교회로옮긴손목사는일제몰래경운궁에유폐된고종과만나밀사정치를돕기시작했다.고종황제는몇번의망명시도가실패한뒤밀사를통한외교활동으로독립을이룰계획을세웠다.정동교회주변은개항이후미국북감리회선교사들이몰려와학교와병원등을세워선교기지로변모했다.전임목사현순의소개로고종을만난손목사는1919년파리에서열리는강화회의밀사인의친왕과하란사(우리나라여성최초로미국에서학사학위를받음)를돕기위해감리교연회에휴직계를내고평양보통강가에있는삯월세집을얻어가족과이사했다.평양에이사해밀사안내역할을위해분주하게움직인손목사는갑작스런고종의승하로혼란에빠졌다.그러나현순,최창식등에게밀사파견을원래대로추진한다는소식을듣고상해로갔다.
상해에는여운형,장덕수등이신한청년당을만들어독립운동을모색하고있었다.손목사는상해에서신한청년당인사들을만난뒤북경으로갔다.하지만고종의갑작스런승하로의친왕이파리에갈수없게되어하란사만한성을떠났다.그런데안동(현재단동)에도착한하란사가교민들의환영회에참석했다가독살되는일이발생했다.북경에도착해고문휴유증으로병원에입원한손목사는원래북경주재각국외교관과선교사에게대한독립지지요청한뒤하란사를만나러안동에갈계획이었다.그러나하란사의죽음을전해듣고급히현순목사와함께상해에도착한그는애국지사들과임시정부를수립한뒤의정원의장이되었다.그러나지병인위궤양이발병해의정원의장을정인과에게물려주고요양하며안창호보좌관역할을했다.이사이한성과연해주에임시정부가수립되어통합협상에나선손목사는이들을설득해상해에통합임시정부를수립하는데기여했다.
하지만임시정부대통령에임명된이승만이상해에오지않아손목사는설득편지를써서귀임하도록했다.그러나이승만이회의를위해미국에돌아간뒤귀임하지않아임시정부는혼란에빠졌다.특히외교독립론을주장한이승만에맞서이동녕등대다수의임시정부인사들은이를반대했다.임시정부내인사들이외교론과무장투쟁파로나뉘게되면서파벌싸움은임시정부의정체성문제로비화되었다.안창호,이시영등과독립준비론을주장한손목사는국민대표회의에서참가해단합을호소했으나갈등이가라앉지않자,모든것을내려놓고길림으로떠났다.길림에도착한손목사는교회를세워목회활동을하며평양가족을이주시켰다.길림에온손원일은학교에다니며의사가될꿈을키웠다.그러나문광중학교졸업무렵눈병이난그는북경의대유학이좌절되어길림교회유치원에서아이들을가르치며상해유학을결심했다.상해에는그의둘째누이손성실이국립음악학교에서다니고있었다.상해에도착해의대진학을꿈꾼손원일은동제대학의대수술실에서수술광경을보고다른길을모색하게되었다.그리고우연히항구를바라보다항해사가되기로마음먹은그는중앙대학항해과에들어가공부했다.삼학년이되어실습을하게된그는중국국영해운회사초상국에서일년동안항해사로실습한뒤학교를졸업했으나갈곳이없었다.중국해군에들어가일제와맞서겠다는꿈을품었으나주위에서만류해그는결국중국정부에서시행한원양항해사시험에응시,독일함부르크에본사를둔아메이카라인상선아벤슈타인호에승선했다.첫항해를마치고최신형디젤기관선인람세스호를바꿔탄그는이년동안원양항해사생활을하다손목사부음을전해들었다.인도양을지나며손목사의부음을들은그는눈물을흘리며부친의유지를받들겠다고다짐을하며원양항해사생활을마쳤다.
그뒤새로운길을찾지못한손원일은초상국항해사로이년간일하다뜻하지않은포상휴가를받게되어미국에유학하다윤치창(윤치호의이복동생)과결혼해경성가회동에살고있는큰누이손진실을만나기위해귀국했다.그러나일경에독립운동가로몰려한달간혹독한고문을당했다.경찰서에서어렵게풀려난손원일은매형윤치창과수입식료품가게인남계양행을설립해운영하며홍은혜와결혼하게되었다.이때그는일제에의해강제귀국당해병보석으로풀려난안창호를만나그의죽음을곁에서지켜보았다.일제는만주를침략해괴뢰국만주국을세운뒤중국침략에나섰다.이사이경성에설립된식료품수출입회사동화양행에입사해금족평이풀린손원일은텐진지사장으로일년을근무한뒤상해지사장이되어전쟁물자유통사업을벌여큰돈을벌었다.
그러나일제가태평양전쟁을시작해생활이어려워진홍은혜의요청으로급히귀국하던손원일은일제패망소식을듣고손정도목사,안창호등의유지를받들어민병증,김영철,정긍모등과해군전신인해사대를만들었다.그러나말만해군조직이지보급도없는군대였다.해사대설립초기손원일은상해에서가져온돈으로운영했으나운영자금이바닥나고말았다.운영자금때문에고민하던그는조선해운보국단과합병해해사협회로개칭했으나좌골신경통이발병했다.한달동안요양하는사이해사협회부위원장석은태가맡았으나그동안자금이바닥났다.몸을회복한손원일은여운영이만든건국준비위원회참가했으나한달만에탈퇴해귀환동포구제회를돕기위해회원들을부산으로보냈다.그리고미군정청운수국해사과장칼스텐소령과하지중장특별보좌관이묘묵의도움으로1945년11월11일해방병단을춤범시키고진해로이동해해안경비업무를시작했다.그뒤미군정청이해방병단을조선해안경비대로바꿔경비대장이된손원일은1948년남한총선거로이승만정권이들어서자대한민국해군으로전환해대한민국첫제독(장군)겸해군참모총장이되었다.그러나변변한전투함이없는것을안타까워한그는해군을중심으로월급을모금해미국에서첫전투함백두산함을비롯해총네척의전함을갖추었다.
1950년6월25일북한의기습공격당일밤게릴라육백여명이탄북한의수송선을백두산함이대한해협에서침몰시켜첫승전보를올렸다.그러나적의기습남침으로국군한강방어선이무너져이승만정부가부산으로이동한뒤함선을이끌고귀대한손제독은김성은이이끈해병대를마산진동리전투에투입해서부전선적최강부대인6사단을막아냈다.진동리전투에서패한적이통영을점령해부산을공격하려하자김성은해병대를상륙시켜괴멸시켰다.그뒤유엔군사령관맥아더장군이인천상륙작전을준비하자손제독은해군첩보대를영흥도에침투시켜인천과서울수원등의적정보를수집하게하여상륙작전의기틀을마련하였다.
인천상륙작전성공으로국군과유엔군이서울을탈환한뒤손제독은인민군부역자들의학살을막는데기여해수복뒤생길혼란을막도록했다.이러한그의생각은전쟁으로무고한생명이죽어가는상황에서도훗날생길혼란을막는조치여서생명의소중함을일깨워주었다.인천상륙작전으로북진을거듭하던국군과유엔군이중공군의참전으로원산과함흥에고립되자해군수송선을파견해피란민수송에노력한그는종전직전이승만의반공포로석방으로생긴국제여론을무마하려고국방장관에임명했다.
국방장관에오른손원일은각군참모총장에게지휘권을넘기고자신은국군전력증강에힘썼다.마침정점협정으로미국과맺은군사원조를받아내기위해제네바회의를이용해성공시켰다.미국의군사원조를통해국방력을강화한손장관은1956년야인으로물러났다.그러나이승만에게절대적인신임을얻었던그는1957년서독주재대사로임명되어삼년동안유럽에서외교활동에매진했다.하지만1960년영구독재를꿈꾼이승만이부정선거로국회를장악하려다4·19학생혁명으로쫓겨나자후임대사에게대사관을인계하고미국으로건너가공부를시작했다.이사이박정희소장이군사쿠데타를일으키자이에반대하며정권의민권이양을촉구했다.
국제여론의반대를돌파하기위해박정희는손제독을외교부장관에영입하려했으나일언지하에거절했다.그뒤손정도목사를도우며평생독립운동과가족을위해헌신한어머니박신일여사를떠나보낸손제독은홍보협회를만들어우리나라알리기에앞장서다1980년2월15일향년70세에영면했다.그는온갖고난을이겨내고대한민국바다를지키는해군의창설에앞장서가장넓고깊은해군의거대한뿌리가되었다.
우리는많은국난을통해수많은애국지사를보아왔다.그러나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