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페미니즘 : 몸 물질 생명 - 여이연이론 39

신유물론×페미니즘 : 몸 물질 생명 - 여이연이론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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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유물론은 페미니즘이 없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 철학에서 ‘열등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규정되던 것들에 관한 관심은 여성의/여성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신유물론과 페미니즘을 함께 다룬 이론서가 없기에 우선은 페미니즘과 신유물론을 접속시켜 개괄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김남이는 신유물론이 어떻게 학문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진화해왔는지를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들을 (거의)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신유물론이 기존의 지배적인 페미니즘 혹은 젠더 이론과 다른 점을 지적하며, 특히 로지 브라이도티가 왜 ‘젠더’가 아닌 ‘성차’를 역설하는 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다. 이현재의 글은 저자의 오랜 질문인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을 어떻게 설명해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대답이다. 그녀는 ‘생물학적 여성’ 혹은 ‘몸’과 ‘성차’라는 개념들이 페미니즘에서 환원적으로 쓰여온 것을 경계하며, 그 원인을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오인에서 비롯한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녀는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대표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저작 『몸 페미니즘을 향해Volatile Bodies』에서 강조된 성차화된 몸 논의를 빌려와서 ‘문지방’으로서의 신체, 내부와 외부의 접점으로서의 성차와 몸을 페미니즘이 재사유해야 함을 역설한다.
무엇보다도 신유물론은 페미니즘 이론이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물론 이런 무관심은 여타 인문사회과학들처럼 페미니즘도 ‘인간’의 ‘사회, 제도, 법, 정치, 권력, 경제’에 긴급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유물론 페미니스트들은 과학기술의 성과와 통찰들을 통해 과학과 페미니즘이 처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임소연은 과학기술학이 페미니즘과 만날 때 어떤 물질, 사물, 타자, 대상, 그리고 자아가 새로이 드러나고 생성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저자의 성형수술에 대한 일종의 ‘경험적 기술’은, 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을 놀랍게도 다른 관점에서 유물론적으로 성취하면서, 페미니즘이 성형수술에 대해 가지는 통념을 비튼다. 이지선은 버라드의 물리학이 어떻게 정치, 문화와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녀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았던 캐런 버라드의 행위적 실재주의를 충실히 설명하고, 이 이론을 통해 영화 〈오펜하이머〉와 〈바비〉가 보여준 존재-인식의 얽힘, 물질의 ‘물의빚기’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신유물론이 자연과 몸에 보여온 관심과 열정은 페미니즘의 딜레마를 달리 보여줄 수 있을까? 여성이 몸과 맺어온 양가적 상황, 즉 사회적 평등을 위해 몸을 지워야하면서도 그 몸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끈질기게 다뤄야 하는 모순에 대해 신유물론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박신현은 페미니즘 안팎으로 전개되어온 여성의 몸과 재생산을 둘러싼 딜레마를 ‘자기-향유(self-enjoyment)’와 ‘관심(concern)’의 불가분성을 주장하는 스티븐 샤비로의 논의를 빌려 돌파하고 있다. 레비나스에게 ‘향유’보다 ‘관심’이 우월하고, 그래서 존재보다 윤리가 우월하다면, 레비나스를 비판하는 샤비로에게는 그 둘이 분리될 수 없다. 레비나스에게 재생산은 ‘형이상학적 초월적 타자(아이)’를 위한 물질적 과정일 따름이지만 (그러면서 레비나스는 재생산에서 여성을 지우고 자연과 같이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 정도로 축소한다), 이리가레와 지아렉에게 재생산은 여성의 창조성, 쾌락과 자기-향유를 위한 공간이다. 저자는 이런 논의를 통해 현재 멈춰있는 임신중지와 관련한 사회적/법적 논의를 여성의 자기-창조 관점에서 볼 것을 제안한다. 심귀연은 신유물론이 구성주의적인 버틀러의 몸과 물질 논의를 비판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버틀러의 몸 개념은 신유물론의 비판과 달리 훨씬 신유물론에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메를로 퐁티의 몸현상학을 경유한다. 메를로 퐁티의 몸의 행위성은 단순히 의식적 주체의 능동적 행위와는 거리가 먼, 성적 끌림과 감각 및 지각, 그리고 신체의 물질로 구성되는 몸이다. 버틀러에게서든 메를로 퐁티에게서든 몸과 물질은 단순히 담론/의식의 기입의 효과가 아니라 능동/수동의 구분 불가능성, 물질화와 언어화의 동시성과 비경계의 지대인 것이다.
신유물론을 단순히 물질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실천적이며 전방위적인 사태를 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결론부를 장식한다. 박이은실은 한국의 한 여성/청소년/학생/노동자였던 어떤 ‘소녀’의 짧은 삶을 추적함으로써, 그녀의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작동한 일련의 사회-생태를 분석한다. 그녀는 전 세계적 ‘녹색혁명’, 한국의 산업화, 농어촌과 생태파괴, 화학적 물질인 농약, 그리고 자본주의까지를 한꺼번에 분석의 테이블에 올리고 신유물론이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의 정치학을 시도한다. 김지은은 신유물론에서 주로 집중하는 ‘생명’에 관한 논의에서 생명의 순환으로서의 ‘죽음’의 계기를 발견한 발 플럼우드를 조명하며, 개체적 차원의 삶 속의 죽음이 다른 차원의 생명과 접속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신유물론은 (일부 심층생태주의에서 보이듯) 자연을 신비화하지 않으면서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며 사회를 과학주의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통찰들을 빌어 페미니즘을 비롯한 정치적 교착을 돌파하려고 한다. 자연은 분노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의 무관심과 비일관성을 다룰 수 없을 뿐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의 ‘질문’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물질은 생명도 죽음도 아닌 존재 일반의 핵심이다. 그와 동시에 이런 자연/과학/물질에 대한 재사유가 혼미한 숫자놀음과 착취적인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 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각자의 학문적 여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물음들을 신유물론과 페미니즘을 통해 답하려고 했다. 미리 밝히자면 저자마다 신유물론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르고, 번역도 일관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심지어 ‘신유물론’이라는 이론의 이름과 그 경계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랐다. 예를 들어 어떤 저자는 new materialism에 대해 기존의 유물론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물질주의’라고 번역할 것을 선호하지만 또 어떤 저자는 ‘신유물론’이라는 기존 번역어로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저자는 캐런 버라드(Karen Barad)의 이론인 agential realism을 행위 실재론, 수행적 신유물론 등으로 부르지만 또 다른 저자는 행위적 실재주의라고 번역한다. 더 심각하게는(?) 어떤 저자는 신유물론을 그것의 개방성과 창조성으로 긍정하지만, 또 어떤 저자는 신유물론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를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일관성을 위해 개념어와 관점 등을 모두 통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비일관성은 이 책이 저자들의 손을 떠나 여기저기 방랑한 후 여러 마주침들과 내부-작용(intra- action)을 통해 고정되거나 또 달리 변할 것이고, 저자들은 그 모든 것을 환영할 것이다. 부디 이 둘의 얽힘과 공명이 또 다른 얽힘과 공명을 만들어내며 파동으로 서서히 모두에게 가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저자

김남이,이현재,임소연,이지선,박신현,심귀연,박이은실,김지은

저자:김남이

서울대에서미학을공부하고,대학과대중강연에서미학,철학,사회학을강의한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정신분석세미나에서선배,동료들과성,섹슈얼리티,페미니즘에관한책을읽고쓴다.역서로『왓이즈섹스?:성과충동의존재론』(2021),『엘렌식수』(2023),저서로『페미니스트정신분석이론가들』(공저,2016),『우리시대의마녀』(공저,2023)등이있다.



저자:이현재

사회/여성철학전공자로서현재서울시립대학교도시인문학연구소교수로재직하고있다.신유물론과페미니즘의관점을접목시켜몸,도시,공간의물질성을새롭게정립하는작업,포스트휴먼페미니즘과돌봄전환을연결시키는작업에몰두하고있다.최근에는『포스트휴먼페미니즘』(후마니타스,2024)를공역하였다.



저자:임소연

과학기술학연구자.신유물론페미니즘,과학기술과젠더,인간향상기술과몸등에관심이있다.AsianWomen,EthnicandRacialStudies,MedicalAnthropology,SocialStudiesofScience등에단독및공저논문을발표했고『나는어떻게성형미인이되었나』(2022),『신비롭지않은여자들』(2022),『겸손한목격자들』(2021,공저)등의책을썼다.현재동아대학교기초교양대학조교수로재직중이다.



저자:이지선

이화여대에서물리학과철학을공부한뒤,프랑스파리디드로대학(구파리7대학)에서과학기술의인식론과역사박사학위를취득했고,현재전남대철학과조교수로재직중이다.프랑스근현대철학,과학철학,과학사등을연구해왔으며,최근에는포스트휴머니즘,신물질주의,정치생태학등도연구하고있다.저역서로『초연결의철학』(공저,2021),『물질혐오』(공저,2023),프란체스카페란도의『철학적포스트휴머니즘』(역서,2021)등이있다.



저자:박신현

건국대몸문화연구소학술연구교수.서울대불문학과를졸업하고,고려대대학원에서비교문학석사학위와영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저서로『캐런바라드』와『공유,관계적존재의사랑방식』,공저로『신유물론』과『생태,몸,예술』이있다.신유물론페미니즘을바탕으로버지니아울프의작품을분석한논문들을발표했고최근에는기후변화시대현대여성작가들의인류세문학을연구하고있다.



저자:심귀연

메를로퐁티의현상학을기반으로연구하고있으며,오이코스인문연구소와경상국립대학교인문학연구소에서연구를진행중이다.단독저서로『신체와자유』,『철학의문』『취향-만들어진끌림』,『몸과살의철학자메를로-퐁티』,『내머리맡의사유』,『모리스메를로퐁티』가있으며,대표적공저로,『인류세와에코바디』,『인류세와윤리』등이있다.



저자:박이은실

여성학박사.『월경의정치학』,『양성애:열두개의퀴어이야기』를썼고『퀴어이론입문』,『SexWork』,『페미니즘탐구생활』등을우리말로옮겼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회원으로오랫동안활동해왔고2018년부터‘아주작은페미니즘학교탱자’전담교수,탱자씨(앗)으로일하며공부하고있다.날로심각해지는사회불평등과기후위기속에서탈성장,자급의삶등을페미니즘의사유안에서고민하며공부하고실천하려고애쓰고있다.



저자:김지은

경희대학교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영미문화를전공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과정을수료했다.옮긴책으로는『식물의사유』,『악어의눈』,『영화와문화냉전』,『일본군위안부』(출간예정)가있고,『도래할유토피아들』,『우리는어떻게사랑에빠지는가』등에글을실었다.

목차


서문

1부젠더에서성(차)로:신유물론의지도그리기
신유물론(들)과페미니즘,그리고버틀러비판/김남이
신유물론의렌즈로읽는그로스의육체유물론:사회구성주의와생물학적결정론을넘어서는‘몸’을향하여/이현재

2부새로운질문들:물질과과학기술
몸과함께작동하는연구:신유물론페미니즘과과학기술의접점에서/임소연
세계의파괴자오펜하이머가바비와얽힌끝에바벤하이머가되기까지:버라드의물질이론과영화<오펜하이머>로본물리학과여성주의/이지선

3부몸:재생산과섹슈얼리티의지대
여성의자기향유와빈공간의창조성:신유물론으로사유하는여성의재/생산/박신현
새로운물질로서몸과페미니즘/심귀연

4부생명과죽음,그리고얽힘의실제들
소녀,농약,좀비/박이은실
생태안에서분해되기:발플럼우드의먹이와묘지이야기/김지은

출판사 서평

신유물론이자연과몸에보여온관심과열정은페미니즘의딜레마를달리보여줄수있을까?여성이몸과맺어온양가적상황,즉사회적평등을위해몸을지워야하면서도그몸이어떻게다를수있는지를끈질기게다뤄야하는모순에대해신유물론은무엇을말해줄수있을까?박신현은페미니즘안팎으로전개되어온여성의몸과재생산을둘러싼딜레마를‘자기-향유(self-enjoyment)’와‘관심(concern)’의불가분성을주장하는스티븐샤비로의논의를빌려돌파하고있다.레비나스에게‘향유’보다‘관심’이우월하고,그래서존재보다윤리가우월하다면,레비나스를비판하는샤비로에게는그둘이분리될수없다.레비나스에게재생산은‘형이상학적초월적타자(아이)’를위한물질적과정일따름이지만(그러면서레비나스는재생산에서여성을지우고자연과같이우리가향유할수있는물질적조건정도로축소한다),이리가레와지아렉에게재생산은여성의창조성,쾌락과자기-향유를위한공간이다.저자는이런논의를통해현재멈춰있는임신중지와관련한사회적/법적논의를여성의자기-창조관점에서볼것을제안한다.심귀연은신유물론이구성주의적인버틀러의몸과물질논의를비판하지만그녀가보기에버틀러의몸개념은신유물론의비판과달리훨씬신유물론에가까이있음을보여주고자한다.그리고이를위해메를로퐁티의몸현상학을경유한다.메를로퐁티의몸의행위성은단순히의식적주체의능동적행위와는거리가먼,성적끌림과감각및지각,그리고신체의물질로구성되는몸이다.버틀러에게서든메를로퐁티에게서든몸과물질은단순히담론/의식의기입의효과가아니라능동/수동의구분불가능성,물질화와언어화의동시성과비경계의지대인것이다.

신유물론을단순히물질에관한이론이아니라실제적이고실천적이며전방위적인사태를분석할수있는방법론으로서보여주고자하는것이이책의결론부를장식한다.박이은실은한국의한여성/청소년/학생/노동자였던어떤‘소녀’의짧은삶을추적함으로써,그녀의삶의다양한국면에서작동한일련의사회-생태를분석한다.그녀는전세계적‘녹색혁명’,한국의산업화,농어촌과생태파괴,화학적물질인농약,그리고자본주의까지를한꺼번에분석의테이블에올리고신유물론이생산할수있는‘물질’의정치학을시도한다.김지은은신유물론에서주로집중하는‘생명’에관한논의에서생명의순환으로서의‘죽음’의계기를발견한발플럼우드를조명하며,개체적차원의삶속의죽음이다른차원의생명과접속되어있음을역설한다.

신유물론은(일부심층생태주의에서보이듯)자연을신비화하지않으면서인간중심주의를탈피하고자하며사회를과학주의적으로개입하려는것이아니라과학적통찰들을빌어페미니즘을비롯한정치적교착을돌파하려고한다.자연은분노하지않는다.인간이자연의무관심과비일관성을다룰수없을뿐이다.과학은우리에게‘답’을주는것이아니라우리에게새로운방식의‘질문’이가능함을보여준다.그아래에면면히흐르고있는물질은생명도죽음도아닌존재일반의핵심이다.그와동시에이런자연/과학/물질에대한재사유가혼미한숫자놀음과착취적인자본주의의본질을드러내줄수있다.

이책의저자들은각자의학문적여정에서해결되지않는물음들을신유물론과페미니즘을통해답하려고했다.미리밝히자면저자마다신유물론에대한관점이조금씩다르고,번역도일관되지않은것들이있다.심지어‘신유물론’이라는이론의이름과그경계에대해서도생각이달랐다.예를들어어떤저자는newmaterialism에대해기존의유물론들과의차별화를위해‘물질주의’라고번역할것을선호하지만또어떤저자는‘신유물론’이라는기존번역어로고수할필요가있다고생각한다.어떤저자는캐런버라드(KarenBarad)의이론인agentialrealism을행위실재론,수행적신유물론등으로부르지만또다른저자는행위적실재주의라고번역한다.더심각하게는(?)어떤저자는신유물론을그것의개방성과창조성으로긍정하지만,또어떤저자는신유물론에대한기대와함께우려를표하는것을주저하지않는다.일관성을위해개념어와관점등을모두통일할수도있었겠지만그런비일관성은이책이저자들의손을떠나여기저기방랑한후여러마주침들과내부-작용(intra-action)을통해고정되거나또달리변할것이고,저자들은그모든것을환영할것이다.부디이둘의얽힘과공명이또다른얽힘과공명을만들어내며파동으로서서히모두에게가닿기를바라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