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겨울 일본과 식민지 조선을 뜨겁게 달군 한 권의 대중잡지가 있었다. 이례적으로 “30만부” 판매기록을 남긴 이 잡지는 일본에서 발행되던 월간지『모던일본』에서 기획한 조선특집호, 『모던일본 조선판』이다. 이 잡지의 원본은 한국과 일본에서도 희귀자료로 평가되고있다.
일반적으로 일제 강점기 말, 전시체제가 강화된 이 시기에 한국의 일상적 문화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문화와 일상적인 삶을 알 수 있는 사진과 그림, 만화, 소설, 꽁트, 수필, 설화, 논설, 당시 조선의 유명인 백인 등 다양한 장르의 기사가 망라되어 있다. 1939년 동시대의 생생한 정보가 넘치는 이 책은 가공되지 않은 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21세기의 오늘날, 근대가 무르익던 시대의 삶의 모습을 접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신선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모던일본』은 일본에 모더니즘을 소개하고 최신 유행에 앞서 갔던 대중잡지로, 1930년 10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통권 13권 12호가 발행되었다. 1932년부터는 조선의 지식인 마해송(1905-1966)이 사장으로 취임하여 편집 책임을 맡았는데, 그 중 조선판은 수년간 품어온 그의 계획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1939년 11월과 1940년 8월에 각각 두차례 발행되었다. 1939년에 발행된 조선판은 일본과 조선 양쪽에서 판매되었는데, 30만부가 매진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표지사진이다. 꽃모양의 비단치마 저고리를 입고 비스듬이 누운 자태의 여성은 배우 김소영의 모습. 당시의 유명한 평양기생이거나, 차홍녀, 문예봉, 신 카나리아와 같은 당시를 풍미하던 조선의 여배우, 그리고 최승희와 같은 무용가들이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화보에 등장하고 있다.
한편 물동이, 담뱃대 등 조선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풍경들, 전통적인 여성의 가정생활 및 관광명소 등이 일본인의 시선에 의해 투사된 모습이기는 하나 다양한 생활의 면면이 생동감있게 그려지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조선의 여행정보도 풍부하다. 예를 들어, 조선에서 만주에 이르는 교통편과 소요시간, 각 지역의 유명한 산업과 공장 소개, 각 지방의 명물을 재미있게 소개한 지도, 여행 에세이 등 조선 여행을 위한 다양한 정보들로 가득차서 근대시기의 문화 자료들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토록 생생하고 귀한 자료들을 우리들은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기사에서는 중일전쟁에 동원되는 학도병의 모습, 애국부인회의 절미헌납 장면, 내선일체에 앞서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의 체제 편향적인 글 등,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국책적 시선과 아울러 ‘내선일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조선의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들도 여과없이 찾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예술상>의 신설이 모던일본 조선판에 의해 공개되었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는 문학가 마해송의 탁월한 기획력과 조선문학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일본의 대중작가의 소설과 이광수, 이태준 등 조선문학을 대표하는 조선인 작가의 소설이 나란히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었음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우리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