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이정우,책을말하다
이정우의독서에세이『탐독』이출간되었다.‘유목적사유의탄생’이라는부제가붙어있는이책은『삼국지』를보며울고웃던소년이철학자로성숙하기까지의여정을그리고있다.현재동·서양철학과문화,한의학,건축등을넘나드는저자의활동은한마디로‘노마드의학문’이라할수있지않을까.이책은저자의생각을키운다양한책들과지적성장의기록을담고있다.
그동안내로라하는저자들이‘독서에세이’또는‘책에대한책’을무수히많이펴냈다.그러나대부분단순한서평모음이거나,책에얽힌사적인이야기를풀어놓는데그치는경우가많았다.반면『탐독』은문학작품에국한되기쉬운서평의대상을학문의전분야로넓혔다는점,한권의책을통해얻은고민이계속다른책으로이어져하나의체계를이루고있다는점,따라서저자의독서체험에서인류가이룬지식과사상의핵심을발견할수있다는점에서독특하다.
수식과그래프가나오는서평?경계없는학문?
이책은크게문학,과학,철학세분야의책들을다루고있다.저자의성장과정에따라사춘기에읽은소설과시,대학시절에읽은자연과학과사회과학서적들,본격적으로학문의길을걷게된후에읽은이론서와사상서들을이야기하고있다.
1부<문학과더불어>에서는동ㆍ서양의문학작품들을통해저자가인간과세계,인생에대해눈을뜨는과정을볼수있다.2부<과학의세계>에는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경제학의핵심개념이수식과그래프,간결한설명으로표현되어있다.과학을통해저자는문학에서발견한‘인간에대한관심’을과학적으로해명하는방법론을얻었으며,그것은철학으로가는징검다리가되었다.3부<철학마을가로지르기>는저자가읽은책들과쓴책들을주제에따라함께소개하고있다.여기에서독자들은철학의주요사상과더불어철학자이정우의학문을요약적으로살필수있다.
이책에서소개되는책들은하나의영역에만머무르지않고,분야를넘나들며해석된다.『수호지』와『임꺽정』을통해얻은사회의식이『자본론』에대한탐구로이어지고,하이젠베르크의『부분과전체』에서플라톤의사상이발견되는것이다.
지질학과수학의무한개념을통한존재론의탐구,“과학없는인문학,인문학없는과학”은있을수없다는주장,하나의연장선위에놓인들뢰즈와다산의학문등은진정한학문에는경계가없다는것,‘교양’이란단숨에얻을수있는것이아니라종합적인사고속에서만이뤄질수있음을증명한다.
이것은저자가한문학자집안에서태어나어릴때부터고전을읽었고,학부에서는공학을공부했으며,그리스철학을거쳐프랑스철학을전공한후에도계속문화,과학,동양철학등에대한관심을키워왔기에가능한일이었다.또한저자는‘강단의철학’이아니라‘현실의철학’을하기위해서강대교수직사임후철학아카데미를창립하고,철학이라는한분과에얽매이지않는다양한활동을펴는등이채로운삶을살고있는데,이책에는학문과세상에대한저자의고민과열정이잘드러나있다.
책을통해그리는인류사상사와지식의지도
『탐독』은저자의최초의대중교양서로,10여권의저서와20여권의번역서를낸경험과필력을바탕에두고있다.이책은1년여의시간동안과거에읽었던책들을모두하나하나정독한뒤에씌어졌다.
독자들은이책을통해‘책’이사람을어떻게변화시키고성장시키는지를볼수있으며,문학,과학,철학전분야에걸친다양한책들을통해하나의지식지도를발견할수있을것이다.이책은학문의세계에서치열하게고민하고살아낸한사람의모습을담은휴먼에세이이자,쉽고부드러운수필의형태로결코가볍지않은지식의핵심을전하는인문서이다.
■주요수록도서
문학
화수분/운수좋은날/백치아다다/목로주점/나나/파우스트/아라비안나이트/삼국지/수호지/임꺽정/전쟁과평화/안나까레니나/부활/까라마조프가의형제들/죄와벌/데미안/지와사랑/싯다르타/파우스트/이방인/구토/아Q정전/성/심판/변신/법앞에서/라쇼몽/덤불속
과학
공간의역사/구조적안정성과형태발생/성장과형태에관하여/부분과전체/빛과물질/지적사기/기체론강의/시간과공간의철학/시간의방향/생명이란무엇인가/천의고원/제국/두경제학의이야기/정치경제학비판요강/자본주의이행논쟁/역사란무엇인가/자본론/공산당선언
철학
철학적탐구/눈과마음/과정과실재/논리-철학논고/의미의논리/생명의논리/지각의현상학/창조적진화/형이상학강의1/물질과기억/광기의역사/임상의학의탄생/말과사물/박물학의욕망/지식의고고학/동양의학과철학/기,흐르는신체/중국의학의이론적기초/음양오행설의연구/중국의과학과문명/동아시아의과학과기술/맹자요의
■책속으로추가
『부분과전체』는20세기초과학계의분위기를그대로전달해주는소중한기록이다.하이젠베르크는자신이만났던사람들,나누었던대화들을기록하면서양자역학이탄생하는과정을생생하게전달해주고있다.당시내가이책을읽으면서깊이생각했던것은‘아낭케’개념이다.자연에대한합리적ㆍ수학적사유를펼쳤던플라톤은그러나자연속에존재하는비결정성에예민하게주목한다.플라톤은이대목을비유를써서설명하고있는데,누스〔이성〕가멋대로굴려는아낭케를잘달래서우주를이끌어간다고말하고있다.이것은하이젠베르크의불확정성원리와모종의관계를가지는것으로생각되었다.
불확정성원리를좀더이해하기위해서는,고전역학에근거한결정론을생각해봐야한다.고전역학의체계에서는한물체의위치(x)와운동량(질량×속도,p=mv)을동시에알면그물체의궤적을추적할수있다.그래서우주의물체들에대해그위치와운동량을완벽하게알고있는전능한존재가있다면우주전체의운행을예측할수있다는‘라플라스적결정론’까지등장하게된다.―과학의세계「물질의심층」중에서
생명체의동일성은A=A와같은논리적동일성도,시간속에서해체되어가는물질적동일성도,또인간의작위를통해서만들어지는문화적동일성도아니다.생명체의동일성은차이들을보듬으면서점차복잡해지는동일성이다.생명체가자신의동일성을계속바꾸어나가지못하는경우는그것이이미죽은경우이다.베르그송은생명체의이런특성을“엔트로피의사면을거슬러올라가려는노력”이라고말한다.슈뢰딩거는『생명이란무엇인가』에서이런생각을보다과학적인방식으로표현했다.
생명체에게중요한것은차이들의흐름속에서와해되지않고그흐름들을보듬으면서오히려자신의동일성을성장시켜나가는것이다.우리는진화의과정전체를이런관점에서볼수있다.―과학의세계「끝없는회로들의주름」중에서
1980년에나는대학2학년생이었다.박정희정권의몰락과전두환-노태우신군부세력의등장이있었고학생들의격렬한저항이이어졌다.대학은학문의전당이라기보다는데모의전당이었다.교문앞에서시위하다가‘지랄탄’이터지면뒤로빠져서달려갔다가다시교문으로달려가는일이반복되었다.이런와중에계급투쟁으로서의역사에눈떴던것같다.
당시대부분의젊은이들이그랬듯이나도맑시즘역사학과정치경제학을공부했다.맑스의전기저작들이철학적ㆍ윤리적성격을띠고있다면,후기저작들은자본주의에대한과학적분석에치중하고있다.『자본론』은그결정판이며특히‘잉여가치’의개념은그의경제학전체를이해하는데핵심이다.『자본론』을읽음으로써우리는우리가살고있는자본주의사회에대한가장기초적인인식을얻을수있다.맑시즘경제학은경제학자체로서고립되어있는것이아니라역사학,윤리학,정치학등과결합해서맑시즘철학이라는보다거대한사유체계의한고리를형성한다.바로이때문에주류경제학과맑시즘경제학을같은지평에놓고서비교하기가쉽지않은것이다.―과학의세계「계급투쟁의역사와정치경제학」중에서
『철학적탐구』는처음읽으면묘한느낌이든다.상투적으로생각하는‘철학책’같지가않기때문이다.예컨대누군가물리학책을집어들었을때거기에수식과그래프가하나도없다면고개를갸우뚱거리게될것이다.모든분야가마찬가지이지만우리가어떤분야의책들에대해가지고있는일반적인이미지가있다.철학책이가지고있는가장일반적인이미지는고도의추상성,복잡한개념들,서울의논리성과정치함등일것이다.아마칸트의『순수이성비판』,헤겔의『정신현상학』,하이데거의『존재와시간』,화이트헤드의『과정과실재』같은책들이가장전형적인철학책들일것이다.그러나『철학적탐구』는우리의이런선입견을뒤집는다.
이책은기본적으로언어에관한책이다.논의되는문제들은분명언어철학의핵심적인문제들이다.그러나서술이지극히평이하며철학사를가득메우고있는전문용어들도거의등장하지않는다.논리전개도얼핏보면그다지치밀하지않다.그런데도거기에담겨있는사유는심오하다.―철학마을가로지르기「최초의텍스트들」중에서
내가다산에관심을가지게된것은근대성의말류인천민자본주의가아닌,우리문화속에서형성되었고근대성의씨앗을뿌렸으나불행하게도꽃피지못한어떤사유로회귀하려는것이었다.나는이것을‘자생적근대성’이라부른다.18세기에시작되어19세기에본격적으로전개되었으나결국내적역부족과외적강압때문에좌절되고야만사유로돌아가그의미를다시한번읽어보고싶었던것이다.그결과19세기조선에서나는세사유를발견했다.다산,혜강,그리고동학.나는특히다산의‘도덕적주체의탄생’에관심을갖고『논어고금주』『맹자요의』『중용자잠』등을주로보았다.
다산이세우고자했던도덕적주체의이념은성리학의본질주의를거부하고현실적인노력을통해서점차자신을완성해가는주체의이념이다.그러나이주체의힘은본격적으로시험에부쳐지기도전에외부의힘에의해차단되어버렸다.
―철학마을가로지르기「전통,근대,탈근대」중에서
『차이와반복』과『의미의논리』는내게참으로많은가르침을주었다.푸코도“위대한책들중의위대한책들”이라는표현을썼지만,철학의역사에솟아오른드높은준봉들중에서도가장높은봉우리들에속하는걸작들이라고생각된다.『차이와반복』이세계의심층을다룬다면,『의미의논리』는표층을다룬다.즉전자가잠재성의세계를다룬다면,후자는현실성의세계를다룬다.나에게『차이와반복』은기氣의사유로,『의미의논리』는역易의사유로다가왔다.세계의잠재성은기이고기화의결과로서의생성이역이기때문이다.『차이와반복』이칸트카물자체로서남겨놓은차원에대한심오한가설을제시하고있다면,『의미의논리』는현상계에대한참신한사유를새롭게개념화하고있다.
―철학마을가로지르기「존재론의구상」중에서
문학책들을읽으면서인간과인생을깊숙이반추할수있었다.그후과학책들을읽으면서물질,생명,문화를합리적으로분석하는방법을배웠다.그리고더나아가철학책들을읽으면서다양한지식들을창조적으로종합하는사유능력을얻었다.그많은책들이내마음에심어준여러생각들,지식들이없었다면삶이란얼마나공허한것이었을까.
새책을구입했을때가가장행복한순간들중하나이다.나는책장을넘기고새로운세계로들어간다.거기에서내영혼과사유에영향을끼칠글들을발견한다.내가쓰는글들에는어느새그런글들의흔적이묻어나온다.책을통해서내영혼은다른영혼들을만난다.그들과대화한다.
―에필로그「끝없이이어지는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