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영혼

고장 난 영혼

$15.00
Description
영문학을 대표하는 ‘여자 셰익스피어’,
심리적 리얼리즘의 대가,
조지 엘리엇이 파헤친 인간 내면의 심연
조지 엘리엇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여자 셰익스피어’라 불린다.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통찰과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영문학을 한 단계 더 격상시켰던 조지 엘리엇의 작품 가운데, 비뚤어진 욕망과 기이한 정신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 두 편이 『고장 난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엮였다. 이 책에 수록된 「벗겨진 베일」과 「제이컵 형」은 인간의 탐욕과 위선, 허영을 폭로하는 동시에, 사회적 규범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옥조이고 개인들의 운명에 명암을 드리우는지를 보여준다.

「벗겨진 베일」은 조지 엘리엇이 쓴 유일한 고딕 소설로, 골상학과 투시 능력,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수혈 요법 등의 소재가 등장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불행한 능력을 타고났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는지까지도 낱낱이 예지하고 있는 그는 형의 약혼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데, 그가 그녀에게 매혹된 것은 오직 그녀의 마음만이 들여다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민한 기질, 시인의 천성을 지닌 그와 간교한 정신의 소유자인 그녀는 비참한 결말을 향해 함께 치닫는다.
「벗겨진 베일」의 주인공 래티머가 원치 않은 능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반면, 「제이컵 형」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포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능력과 조건을 탐하는 탓에 점점 더 운명의 실타래가 엉켜버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있던 포는 자신은 이런 “좁은 운명”에 걸맞지 않으며 마땅히 “최상의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꿈을 이룰 ‘신세계’로 떠나기 위해 그는 기꺼이 가족을 배신한다. 그런 그를 막아서고 파국을 선사하는 인물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먹는 것에만 집착하는 바보 형이다. 「제이컵 형」은 인습과 가부장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전통 사회에서 상업자본주의 도시로 변모하는 중인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신분 상승 욕구와 가치 충돌이 빚어내는 다양한 갈등을 펼쳐 보여준다.
조지 엘리엇은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해럴드 블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놀라운 업적을 이뤘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일이란 아이를 키우는 것이나 가사노동이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자신의 본명을 숨기고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을 사용해야 했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조롱당해야 했다. 또한 유부남이었던 헨리 루이스와의 사랑이 당대의 도덕 관념에 위배되었던 탓에 가족에게 의절당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다. 사회적 관념이 용인하지 않는 능력과 이상, 열정을 갖고 있었던 조지 엘리엇 또한 또 한 명의 ‘고장 난 영혼’이었던 것이다.
1856년 《웨스트민스터 리뷰》에서 “예술의 위대한 기능”은 “공감의 확대”와 “동료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라 썼던 조지 엘리엇은 이 책 『고장 난 영혼』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욕망하고, 갈등하고, 좌절하는 인간들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여준다. 운명이라는 굴레에 갇혀 발버둥치는 모순된 인간들의 갈등과 고독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근원적 괴로움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저자

조지엘리엇

저자:조지엘리엇(GeorgeEliot)
19세기영국의소설가이자시인,편집자,번역자였으며,빅토리아시대의가장위대한작가로꼽힌다.그가쓴『미들마치』는2015년‘BBC가뽑은최고의영국소설’1위,2020년‘데일리텔레그래프선정최고의소설’1위를기록했으며,문학평론가해럴드블룸은조지엘리엇을“서양문학사에서가장중요한작가중한명”이라고극찬했다.
1819년영국워릭셔에서태어났다.본명은메리앤에번스지만,여성에게가해지는제약과편견을피하고자‘조지엘리엇’이라는남성필명을사용했다.1857년『성직생활의단면』을출간한후,『애덤비드』,『플로스강의물방앗간』,『사일러스마너』,『미들마치』,『다니엘데론다』등을펴냈다.이책『고장난영혼』에는예리한심리묘사와탁월한통찰을통해인간의탐욕과위선,허영을폭로한두편의중편소설「벗겨진베일」과「제이컵형」이수록되어있다.1880년12월에사망해하이게이트공동묘지에묻혔다.

역자:박희원
이야기를만지며살고싶어번역세계에뛰어들었다.바른번역소속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옮긴책으로『무법의바다』,『사물의표면아래』,『나는바보다』,『에이스』,『낭만적우정과무가치한연애』등이있다.

해설:김선옥
서울대학교영어영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현재원광대학교영어교육과교수로현대영미문학을연구하고강의하고있다.

목차

벗겨진베일
제이컵형
해설고장난영혼,그깊은심연을들여다보다

출판사 서평

「벗겨진베일」과「제이컵형」은작가의주요관심사와문학적특징을잘보여주는작품들이다.「벗겨진베일」은초자연적요소를통해소통의부재와인간소외의문제를깊이있게다루며,「제이컵형」은날카로운풍자로인간의허영과위선을적나라하게폭로한다.이두중편소설은매력적인서사와간결한분량으로엘리엇의방대한문학세계로들어가는좋은길잡이가되어줄것이다.

책속에서

오래된이야기다.먼훗날에나치를대가에는아랑곳없이인간이유혹자에게자신을팔아넘기고피의계약을맺는것.인간의주위에는늘어두운그림자가있기에,그계약을맺고도여전히사나운충동으로영혼의갈증을채우고자허겁지겁악마의잔을들이키는것.지혜에이르는지름길이란,특허받은전찻길이란존재하지않는다.수세기에걸친발명과발견이있었음에도영혼의길은가시돋친황야에펼쳐져있어여전히과거와같이혼자서,피흘리는발로,도와달라흐느끼며걸어야한다.
ㅡ52쪽

그순간내가어떻게보였는지안다.버사가매서운회색눈을들어나를바라봤을때그녀의머릿속에떠오른내모습을봤으므로.유령이나보는딱한인간,한낮에도혼령에둘러싸여있어나뭇잎도움직이지않는산들바람에벌벌떨고인간이일반적으로욕망하는대상에는관심이없으면서달빛에애달파하는인간.우리는서로를마주보며서로를재단했다.완벽한조명이모든것을밝히는지독한순간이닥치자나는어둠이내게숨겼던풍경은다른것이아니라오직텅비고범속한벽뿐이었음을이해하게되었다.
ㅡ76쪽

버사와이여자사이의비밀은무엇이었나?나는통찰력이돌아와사랑없는두여자의심장에서무엇이자라났는지강제로보게될것이끔찍이도두려워버사에게서눈을돌렸다.버사가자신의비밀에봉인을찍을이죽음의순간을기다려왔다는느낌이들었다.그비밀이내게계속봉인되어있음에나는신께감사했다.
ㅡ96쪽

“쉿!”데이비드가속삭임치고는큰소리로말했다.
“아무한테도말하지마,전부형거니까,쉬이이잇!기니금화를구덩이에넣으면,이렇게변하는거야!”
더똑똑히가르쳐주고자데이비드는기니금화를집은손을구덩이안으로내렸다.“이렇게넣어.”이어서마지막남은로젠지사탕을꺼냈다.“그럼이렇게나와.”그러고는넙죽열린제이컵의입에사탕을넣어줬다.
ㅡ123쪽

여성의매력과미덕이란영역에서최고라하기에모자람이없어야서인도제도의무성하고찬란한아름다움에익숙해진에드워드프릴리씨의열정에불을붙일수있었다.디저트장수가더높은신분의사람에게서나보일법한생각과대화를했다는것이믿기어려워보일수있겠으나,그가외국에다녀온것은물론이고오다리와누런낯빛,옹졸한이목구비의소유자로서여성을깐깐하게평가하는감식가로자연의인증을받은이였음을명심해야한다.
ㅡ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