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서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왜 서구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향해 가는 것인가?
▣ 여섯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 서구 문명의 발달과정과 미래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서구의 가치관과 문명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가치관들이 지닌 의미, 인류의 의식과 삶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 뒤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서구의 문명과 가치관이 과연 미래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혹은 아예 존재 자체가 멸망할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서구를 이끌어온 가치관으로 크리스트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유주의, 개인주의를 들었다. 이 여섯 가지 가치관은 서로 맞물리고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지난 2,000년 동안 전 세계 역사를 끌어왔다.
각 가치관의 의미, 태동의 배경, 변천의 역사,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현재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향후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의 전망을 밝혔다. 이를 통해 서구문명이 지속될 것인지, 멸망할 것인지를 고찰했다. 나아가 지속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자멸의 길을 걷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살폈다. 또한 멸망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를 제안했다.
▣ 서구의 의미
이 책에서 말하는 서구는 지리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호주와 뉴질랜드이다. 즉 유럽 문명을 뿌리로 한 국가들이다. 여기에는 동유럽도 포함되나 라틴아메리카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로 의미하는 서구는 서유럽과 미국이다.
▣ 자멸의 의미
자멸Suicide은, 서구사회 내의 모순을 해결하여 서구의 이상을 보존하는 데 실패한다는 의미이다. 몰락Decline과 다르게 쓰였음에 주목해야 한다. 몰락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한 국가(혹은 문명)가 망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자멸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스스로 멸망한다는 뜻이다. 자살과 비슷한 의미로 보면 된다.
이 책에서의 자멸의 실제적인 의미는 “서구사회가 생태적으로 자멸하거나” 아니면 “여섯 가지 서구 가치관을 핵심으로 하지 않는 또 다른 문명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해 지난 20∼30년 사이 뚜렷해진 서구사회의 부정적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서구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즉 역사적인 목표나 이상과 다른, 그리고 수백 년 동안 가까워진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서구 문명의 소멸
서구문명은 과거나 현재의 다른 문명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서구문명이 차별적이고 보다 성공적인 이유는 깊이 뿌리박혀 있는 사상과 그 사상이 이끌어내는 행동 때문이다. 서구문명의 중심에는 지칠 줄 모르고, 자기향상적이고, 낙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제력 있고, 어떤 의미에선 이상주의적인 개인, 멈춰 있지 않으며 자신과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믿는 개인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향상적이고 자부심과 책임감이 있는 개인, 자유주의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그 공동체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개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서구 사람들이 이전 세대보다 못한 것은 아니다. 도덕적인 행동이 쇠퇴하기는커녕 오히려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서구 전역에 걸쳐 현재 소수집단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은 줄었고 빈민에 대한 원조는 늘었다. 아동과 동물에 대한 학대는 줄고 환경에 대한 관심은 늘었다. 공공연한 인종차별과 해로운 민족주의는 줄고 광범위한 자선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 늘었다. 인구에 대비해 볼 때 서구 사람들이 살생하는 동포 및 적의 수는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나 서구의 사상이 변화했으며 특정한 핵심 사상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무너졌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서구 사람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 사상이 서구문명의 이례적인 성공을 가능케 한 원인이라면 서구는 지금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즉, 서구문명을 멸종으로 몰아가고 있는 경향을 저지하고 전환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러한 경향이 구조적으로 불가피한지 짚어보는 것이다.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멸이 불가피한 경우가 종종 있다. 자멸은 순전히 자신에 의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과 보다 ‘분별 있는’ 현실관의 불화로 인해 일어난다. 자멸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재건하는 것인데 이는 아마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네 가지 질문
서구문명은 과거나 현재의 그 어느 문명보다도 번성했다. 특히 경제, 군사 및 정치 분야, 과학 기술 분야, 학술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인 서구는 시민들의 건강과 부, 수명 연장에도 큰 공헌을 하여 인간의 행복을 끌어올렸다. 명백하고도 심각한 수많은 잘못들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은 인간 생명의 신성성과 존엄성, 모든 구성원의 교육, 기회의 균등, 개개인의 자유와 능력 발휘, 인류의 본질적 평등과 형제애, 개인 및 단체에 대한 편견 제거, 과학 및 학술 증진, 보다 값싸고 편리한 상품 개발, 그리고 고통 구제의 중요성을 다른 문명들보다 한층 부각시켰다. 이러한 문명의 기준들을 놓고 볼 때 그 어떤 문명도 서구만큼의 성과를 이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서구에 만연해 있는 자신감 상실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서구의 자신감을 뒷받침하던 여섯 가지 성공 요인은 한 세기 동안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개념들은 더 이상 서구를 고무하거나 단결시키지 못하며 개개인이 무의식적으로 공동 작용을 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주지도 못한다.
위대한 문명이 단지 외부의 적들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로마제국은 이방인들의 도전을 받기 전에 이미 퇴폐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히틀러가 독일의 인도적이고 민주적인 문명을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문명의 옹호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서구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위협은 내부의 분열과 결함이다. 서구를 특별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냉소와 비관론, 무심함이 가득할 뿐이다. 이대로라면 집단적인 자멸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네 가지다. 1)서구 문명에 특별한 점이 있는가? 2)서구 문명이 그토록 번영한 이유는 무엇인가? 3)서구 문명이 왜 현재는 위협받고 있는가? 4)서구 문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여섯 가지 키워드
1. 크리스트교
서구의 성공과 부절제, 실패에 있어서 크리스트교만큼 중요한 요인도 없다. 크리스트교는 고대 세계를 세우고 천상과 지상의 관계를 변화시켰으며 현재까지 서구인의 생활양식과 인격을 정의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트교는 세계 최초의 개인화되고 행동주의적인 자기수양 운동이었다. 모든 서구인들이 크리스트교도나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심지어 다른 종교 신자들도 비서구인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고 행동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이는 서구가 지구상의 다른 40∼50개 문명보다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크리스트교는 몇 가지 행동효과를 남겼다. 1)개인의 책임, 2)그리스도의 힘을 통한 변화, 3)약자에 대한 원조, 4)저주받은 이들의 구원 또한 변화와 개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근세기 들어 “신은 죽었다”는 사상이 출현했으며 크리스트교 내의 분열은 오늘날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열의 축도라고 볼 수 있다.
초기 크리스트교의 자유로운 정신, 내적 자아라는 개념의 도입, 개별화와 권력에 대한 거부와 개인 관계에서의 사랑을 강조하는 태도, 학대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평등 요구, 자기수양과 자기개선 장려 등은 서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서구를 분열시키고 나아가 세계를 분열시켰다. 그리하여 내부에 더욱 강하게 존재하는 위협으로 남아 있다.
2. 낙관주의
서구문명이 시작된 후 20세기 초까지 서구 역사를 지배한 것은 한 가지 사상과 한 가지 현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류에 대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낙관주의와, 끊임없이 세계를 개선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확신이었다. 낙관주의는 행동주의로 이어졌다. 그 행동들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와 통제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낙관주의는 언제나 두드러지는 서구의 특징이었다. 서구 낙관주의의 중심에는 서로 얽힌 세 가지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율성의 신화, 두 번째는 선(善)의 신화, 세 번째는 진보의 신화다. 그러나 이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로 변했고 신과 인간의 박애가 이루는 조화를 파괴했다. 또한 인간의 자율성과 선 그리고 서구문명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일련의 사회적 격변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인해 깨져버렸다.
서구의 성공은 대체로 낙관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현재 낙관주의의 뿌리는 시들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서구가 다시 낙관주의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이론적 실제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3. 과학
서구가 현재 기술, 혁신, 생활수준, 군사력 면에서 다른 문명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게 된 요인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과학의 성공이다. 1900년 이후 과학적 성과는 이론적인 의미에서도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원대해서 자연과 우주에 관한 6세기에 걸친 놀라운 발견들을 빛내주었다. 과학적 성과 및 발견에 있어서는 압도적으로 서구가 우세했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00년까지 과학적 진보는, 단순한 종교적 세계관이 보다 정확하면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과학적 설명으로 대체되어 세계를 이해하기가 점점 더 쉬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은 부정적 영향을 안겨주고 있더. 지구의 물과 공기, 토양을 오염시키기 시작했으며 온실효과와 오존층 파괴, 지구 생태계 파괴,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그리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의 놀라운 확산 등이 모두 과학의 산물이었다.
완전히 발전된 형태의 과학은 서구의 현상이다. 과학의 근원에는 다른 두 가지 서구 사상, 즉 크리스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