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지금, 스튜어트 홀인가?
“문화 연구계의 가장 탁월한 인물. 그런 명성을 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국 사회학자 크리스 로젝의 말처럼 스튜어트 홀은, 현재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핵심 사상가 중 한 명이다. 홀이 없었다면 오늘날 문화 연구라는 학문 분야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홀 덕분에 ‘문화는’ 이론적인 항목으로, 그리고 정치적 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리 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문화 연구는 가장 유행하는 ‘최신 이론’으로서 문학?역사학?사회학 등의 인문학 분야에서 활력을 불어넣으며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스튜어트 홀이 있다.
“신좌파에서 새로운 시대New Times까지, 리비스에서 리오타르까지……”
그러나 스튜어트 홀의 영향력이 문화 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홀은 1950년대 신좌파new left 그룹 내부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문화연구의 주창자로 부상했으며, 1980년대에는 대처주의와 인종주의 논쟁을 촉발시키고, 1990년대 이후에는 정체성?디아스포라?민족성 등에 관해 발언하며 학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까지 홀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변변한 저서 한 권 없는 대표 이론가?
그런 그가 아직까지 ‘변변한’ 대표저서 한 권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견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는 홀이 이론화 작업에서 선택한 전략적 특질이다. 자신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수정?갱신하고, 중요한 현안이나 사건들에 그때그때 개입하는 것. 이미 종결된 이론이 갖는 권위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상대화함으로써 모든 제도적인 것을 부식시키고자 하는……, 그러하기에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사상 ……
이런 맥락에서 사상가로서 홀의 중요성은, 그의 권위적 혹은 기원적 지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순수한 중심적 기원)을 끊임없이 의문시하는 방법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본질주의적 관념을 거부하는 이러한 경향은 이 책에서 논의할 다음과 같은 홀의 핵심 주장에서도 드러난다.
》》 홀 사상의 핵심 이슈들
1. 문화는 정치적 행위다.
스튜어트 홀이 남긴 가장 큰 공적은 “문화의 문제는 단연코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데 있다. 홀에게 문화는 단순한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관계들이 끊임없이 동요하는, 어느 한편도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현재 진행 중인 투쟁의 장소이다.
― “지배문화에 전혀 감염되지 않은 진정한 대중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 “오늘날 사회주의의 임무는 대중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불만을 드러내며, 사회주의 운동이 바로 이 시대에 대한 직접적 감각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2.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홀의 논문 중 단연코 가장 많이 읽힌 논문 ?기호화/기호해독?에서, 홀은 기존 매스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의사소통 모델을 제시한다.
― “의미는 발신자가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는 결코 투명하지 않다.”
― “미디어는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3. 대처주의와 새로운 시대
‘대처주의’는 대처 내각과 관련된 광범위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힘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홀이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홀은 대처주의가 ‘퇴보적 근대화’와 ‘독재적 포퓰리즘’을 특징으로 하는 모순적 프로젝트임을 밝히고, 새로운 시대 프로젝트를 통해 좌파에게 시대에 발맞추어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 “새로운 시대는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 차원으로 나아간 듯 보인다. 그리고 민족성의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시와 소속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 둘을 간과하는 정치학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수 없다.”
― “토니 블레어는 몇 개의 노랫말은 배웠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은 잊어버렸다. 블레어는 좀 더 정돈되고 인간화된 극우파 새로운 버전에 불과하다.”
―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가 자신을 미국적으로 꿈꾸는 방식이다!
4. 정체성의 정치학
“모든 게이, 여성, 흑인은 동일한가?” 홀은 ‘하나의 노동계급’이나 ‘하나의 흑인 공동체’처럼 단일하고 균질적인 통일된 정체성에 근거한 정치학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정체성의 정치학을 제안한다. 홀이 말하는 정체성의 정치학에서는 차이, 자기 반영성, 맥락 의존성이 강조된다.
― “타자의 정체성에서 전혀 영향 받지 않은 자기충족적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차이의 정치학은 끊임없이 작동 가능해야 하며, 무한한 분산의 정치학은 결코 정치학이 아니다.”
이밖에 인종주의와 저항, 포스트식민주의, 디아스포라 등……, 이 책은 홀의 연구를 역사적?문화적?이론적 문맥 속에 위치시켜 그의 핵심 사상과 영향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또한 홀이 남긴 지적 유산과 비평가들의 견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홀 사상에 다가가는 이상적인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