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문장

간절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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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영식

저자 서영식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5년 매일신문 '집시가 된 신밧드'로 등단하였고 2009년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

시인의 말
엄마는
슬픔이 명치에 걸려 퍽퍽 가슴 치다 죽었다.
이 몸엔 그토록 슬픔이 지나는 길 하나 없어
나는 슬프게도 슬픔에 체해 본 적 없다.
슬픔은 나의 밖에서 모두 나를 스치고 떠났거나
나라는 벽에 부딪쳐 죽은 주검들이었을 뿐.
슬픔이 이 몸을 흐르다 멈춘 적 없어 나는
산 슬픔이 얼마나 뜨겁고 숨통 조이는 것인지
그 날것에 가슴 쳐본 적 없다.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들 모두 나의 슬픔이 아니었고
가슴이 아팠으나 그것들 모두 내 밖의 슬픔들이었다.

여기, 어떤날은 간절하게
어떤 날은 즐겁게 옮겨쓴 나날들을 풀어놓는다.

외로움은 모두 허기에서 오는 것이라던
한 영혼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09년 가을, 서영식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역으로 가다/ 내객來客/ 납이다/ 그림자/ 홍탁/ 압화/ 과녁/ 꽃/ 걸음의 배면/ 비창悲槍/ 창漲/ 배의 밑동을 생각하다/ 엉킨 실타래 푸는 법/ 객/ 쥐며느리는 공벌레가 아니라서

제2부
발톱/ 감기/ 꽃피는 용호동/ 사계/ 틀니/ 아카시아 향수/ 극빈/ 트루먼쇼/ 로드킬/ 꽃게/ 유산/ 회전문에서 길을 잃는 사이/ 파랑주의보/ 송시/ 접신/ 얼룩

제3부
호칭/ 소통/ 나비 화석/ 기별/ 장마/ 페르소나/ 소나기/ 폭풍주의보/ 비상구는 바닥 아래 있다/ 봄아/ 폐냉장고/ 아귀/ 이별에게/ 부종/ 내 국적은 층계참/ 취해서 봄인가 싶었다가/ 경계에서/ 계절의 허물/ 잘 가라, 비명들/ 이사/ 큐브

출판사 서평

누런 쌀밥을 한 입 떠 넣고/ 삭은 깍두기를 씹는 밤/ 오득, 오드득 입 안에서/ 눈 밟는 소리 들려온다// 산 입에 어찌 눈이 쌓였는지/ 누가 이 몸을 걸으려는지// 눈 내리는 겨울 덕장/ 입 벌린 명태 속으로 걸어가는/ 싸락눈 같은/ 눈발이 눈발을 밟고/ 텅 빈 몸으로 드는 소리 같은/ 오득 오드득// 눈발 성성한 입 속, / 까마득한/ 거기가 덕장이다
-「내객來客」전문

2005년 매일신문으로 등단한 서영식 시인이 첫 시집 『간절한 문장』(도서출판 애지)을 냈다. “특이한 시적 상상력을 지닌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에 등장한 서영식 시인이 4년 만에 묶은 첫 시집에는 그의 특이한 시적 상상과 전통서정이 하나로 어우러진 5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고인환 평론가는 해설에서 “서영식의 시는 경쾌하고 발랄한 감수성이 삶의 무거움을 거느리는 보기 드문 개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고, 손세실리아 시인은 그 이유가 서영식 시인이 “삶에 온전한 내 것이 없음을 알아차린 자만이 품을 수 있는 도저한 사유와 지독한 허무와 무욕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슬픔이 명치에 걸려 퍽퍽 가슴 치다 죽었다./ 이 몸엔 그토록 슬픔이 지나는 길 하나 없어/ 나는 슬프게도 슬픔에 체해 본 적 없다./ (…)/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들 모두 나의 슬픔이 아니었고/ 가슴이 아팠으나 그것들 모두 내 밖의 슬픔들이었다.
<시인의 말> 부분

‘시인의 말’과 같이 그는 자신의 슬픔에서조차 멀리 떨어질 줄 아는 시인이다. 따라서 그의 슬픔은 자폐적이지 않으며, 현실과 소외의 대상들로 향해 있다. 신춘문에 당선 소감에서 그는 “소외된 것들의 입이 되어 침묵만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다. 시집 '간절한 문장'을 “소멸하는 풍경들에 생기를 불어넣는”시집이라고 평가한 손택수 시인의 말이 이 시집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하다.


추천글
여기 “물 속에서 물을 비집고 물의 틈”을 열고자하는 시인이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세계에서 사랑이 되기도 하고 고독”이 되는 시, 심지어는 “보이지도 읽히지도 않”는 시를 꿈꾸는 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서영식이다. 그는 삶에 “온전한 내 것이 없”음을 알아차린 자만이 품을 수 있는 도저한 사유와 지독한 허무와 무욕을 동시에 지녔다. 이는 간단치 않게 견뎌온 그의 생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말하자면 이 시집은 “비명의 시간”을 견뎌낸 시인이 “둥글고 힘센 물고기의 주둥이를 닮은 말 하나를 먼 외계”로 송신하는 지극하고도 간절한 첫 의식인 것이다.
_ 손세실리아(시인)

시인은 방언을 만드는 자이다. 표준화된 질서의 그늘 속에 웅크린 그의 방언적 개성은 모국어의 젖줄을 풍요롭게 한다. 가령, 싸락눈처럼 차디 찬 밥과 삭은 깍두기를 씹는 극빈으로부터 눈 내리는 겨울 덕장을 불러오는 상상력은 폭설에 휩싸인 백두대간 등성이처럼 모골을 바짝 곤두서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눈발 성성한 입 속, 까마득한/ 거기가 덕장이다”(?내객?)라고 노래하는 이 도저한 울림들을 따라가 보자. 명태의 꼬리 지느러미를 붓삼아 굴곡진 삶의 주름들을 쓰다듬고 소멸하는 풍경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의 시는 “비유가 아니라// 그대로, 生”(꽃)이다. 우리 모국어의 지도 속에 이렇게 또 하나의 지극한 진경이 탄생했다.
_ 손택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