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을 읽다 (강남 형성과강남 현상을 찾아서)

강남을 읽다 (강남 형성과강남 현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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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강남의 빛과 그림자!
지금의 강남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상징적인 지역으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남을 읽다』. 강남 탄생은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이 맞물린 결과이다. 해방 당시 90만 명 정도였던 서울 인구는 1959년 200만 명을 돌파했다. 1966년에는 379만 명을, 1·21 사태가 발생한 1968년에는 433만 명을 넘어섰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허허벌판에 불과하던 강남은 반세기만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고, 브랜드 가치는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찬란한 영예 뒷면에는 몇 가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파트공화국, 부동산 폭등, 사교육, 비리와 안전사고, 부의 양극화 등 강남불패의 이면에 숨겨진 강남 현상의 제 문제를 가감 없이 들춰낸다.
저자

전상봉

20대중반부터40대초반까지청년운동과통일운동에몸담았다.지금은서울시민연대대표로활동하면서‘역사와인문학으로보는서울’,‘한성백제시민강좌’등시민을대상으로하는교양강좌프로그램을진행하고있으며,서울의역사와사람들의이야기를찾아떠나는답사프로그램‘발로품는서울’을운영하고있다.
지은책으로는《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2004년,두리미디어),《몽양여운형》(2009년,산하),《자본주의,미국의역사》(2012년,시대의창)들이있고,통일운동의경험을바탕으로쓴《통일,우리민족의마지막블루오션》은MB정부시절국빙부불온도서로선정되기도했다.션》은MB정부시절국빙부불온도서로선정되기도했다.

목차

이책을펴내며·4
들어가는글┃강남공화국이탄생하다·8

1장┃개발의신천지강남
1.새서울백지계획과서울도시기본계획·23
2.한남대교와경부고속도로건설·38
3.영동개발과말죽거리신화·51
4.뽕밭은어떻게콘크리트숲이되었나·64

2장┃강남개발과3핵도시구상
1.3핵도시구상과지하철2호선·79
2.지역차별의상징이된강남고속버스터미널·91
3.강북고등학교강남이전기·102
4.압구정동현대아파트특혜분양사건·114

3장┃88서울올림픽과강남개발
1.88서울올림픽과강남개발·129
2.잠실,롯데월드가되다·140
3.교육특구,강남8학군의탄생·155
4.수서비리사건·165

4장┃강남과강북의단절
1.서태지와아이들,X세대그리고압구정동·179
2.성수대교붕괴,강남과강북의단절·188
3.탐욕위에쌓은집,삼풍백화점·201
4.보수의온상이된강남·213

5장┃강남은울퉁불퉁하다
1.강남의부와특권의상징,타워팰리스·225
2.사교육1번가,강남구대치동·236
3.강북의욕망을자극한뉴타운사업·246
4.강남은울퉁불퉁하다·259

나가는글┃강남공화국,
조물주위에건물주가지배하는나라·270
찾아보기·282

출판사 서평

이제‘강남은대한민국의압축성장을상징하는장소이다.한양도성의남쪽변방으로허허벌판에불과했던강남은반세기의시간이흐르면서호화아파트와고층빌딩이즐비한콘크리트숲으로탈바꿈했다.상전벽해의변화를거치면서대한민국의부와권력을상징하는곳이된것이다.
이책은강남이우리사회의부와권력의상징적인지역으로서어떤과정을거쳐탄생했는지를보여준다.이를통해아파트공화국,부동산폭등,사교육,비리와안전사고,부의양극화등강남불패의이면에숨겨진강남현상의제문제를가감없이들춰낸다.

세월따라달라진강남의의미
1936년일제는대륙침략의하나로실시한조선시가지계획령에따라경성에인접한한강이남의영등포일대(시흥군영등포읍,북면,동면,김포군양동면)도경성부에편입시켰다.그리고지역관할을위해동부출장소,서부출장소,용산출장소와함께영등포출장소를설치했다.‘한강이남지역’을일컫는강남이란말은영등포가경성부에편입되면서경성에처음으로생겨났다.당시강남지역은영등포일대로지금의서울영등포구와동작구를일컬었다.

1940년대에들어경성인구가90만명을넘어서고산업화가진행되자조선총독부는1943년출장소를폐지하고구(區)제를도입하여1944년마포구가서대문구에서분구되기전까지경성부를7개구(종로구,중구,용산구,서대문구,동대문구,성동구,영등포구)로나누었다.이즈음한강이남을뜻하는‘강남’이라는말이공식적으로사용되기시작하여1970년대초까지사용되었다.
대한민국정부수립이후서울시면적은두배이상커져영등포구에도5개출장소(신동,관악,양동,양서,오류)가생겨났는데지금의서초구반포동,서초동,양재동일대가1970년대초반까지만하더라도영등포구였다는사실이흥미롭다.영등포구동쪽을뜻하는‘영동’이라는지명은신동출장소가관할하던반포동,서초동,방배동,양재동지역을가리키는말이었다.영동이라는지명이사용되기시작한시기는1967년무렵이다.그해11월정부여당연석회의에서경부고속도로건설이공식결정된다음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이수립되면서‘영동’이라는말이사용되기시작했다.

1970년에이르러서울시인구가500만명을넘어서면서서울시면적도627.06km2로늘어났다.서울시는1973년7월언주출장소와신동출장소를통합한영동출장소가신설되면서그동안영등포구에속했던반포동,잠원동,서초동,양재동,우면동,원지동지역이성동구로편입되었다.
한편경부고속도로건설은강남개발을촉발시켰다.경부고속도로완공이후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일환으로고속도로주변의반포동,잠원동,양재동일대가개발되면서강남은일확천금을노리는투기일번지로달아올랐다.이즈음사람들은강남이라는말보다는남서울또는영동이라는말을더사용하였다.이런가운데1975년성동구의한강이남지역이강남구로분구된다.강남구의신설로서울한강이남을가리키던‘강남’은행정구역명칭이되었다.이로써서울의남쪽(남서울),영등포의동쪽(영동)이라불리며특정지역과지리적관계속에서지역명이결정되었던강남이서울의부도심으로서위상을굳히기시작했다.그리고4년이흐른1979년강남구에서강동구가분구되었고,1988년1월1일에는강남구에서서초구가,강동구에서송파구가독립했다.
1970년대가되자강남은더이상영등포를가리키는개념이아니었다.강남개발을촉진하기위해정부는1975년강남구를신설하고,‘부동산투기억제세면제’조처를단행하는한편,사대문안의명문고등학교와국가기관의강남이전을추진하였다.이때부터정부의공식문서에서나사용되던강남이라는지명이빈번하게사용되기시작했다.

1980년대서울올림픽의개최와3저호황은강남의개발과투기를부채질하였고,1990년대에접어들자강남은부와권력을상징하는지역으로굳건한성채를쌓았다.이시기강남은좁게는강남구를,넓게는강남구,서초구,송파구를지칭했다.그리고어느순간부터인가대한민국은강남에뿌리를둔소수특권층이지배하는강남공화국이되었다.

강남의빛과그림자
강남탄생은서울시의폭발적인인구증가,남북대치의분단상황,한·미·일동맹에기초한경제개발계획이맞물린결과이다.이같은요인을배경으로강남개발은1966년한남대교건설공사가시작되고,1968년경부고속도로가착공되면서촉발되었다.
경부고속도로의부지를확보하기위해시행된영동지구개발을시작으로강남에는수많은아파트단지들이조성되었다.반포주공아파트를시작으로압구정동현대아파트,잠실주공아파트단지등대단위아파트가건설되면서대한민국은아파트공화국으로탈바꿈했다.86아시안게임과88서울올림픽이유치되면서강남의주요거점인잠실종합운동장과올림픽공원을비롯하여코엑스같은고층빌딩들이건설되었고,순환선으로건설된서울지하철2호선이개통되면서강남개발은활기를띠기시작했다.특히1976년경기고등학교를시작으로서울도심의명문고등학교들이강남으로이전하면서강남8학군의신화가만들어졌다.
허허벌판에불과하던강남은대한민국의경제발전을상징하는공간이되었고,사람들이선망하는부와권력의중심지가되었다.브랜드가치또한서울을능가할정도로눈부시게발전했다.그럼에도불구하고강남의찬란한영예뒷면에는몇가지짙은그림자가드리워져있다.
첫째,강남은부동산투기의진원지이다.일제강점기지주들은부동산투기를통한자본이득보다는소작료수취에몰두했고,해방뒤에도이같은경향은변함이없었다.그러나강남개발과함께사정은달라졌다.1968년말죽거리신화라는투기붐이일어난이후강남은부동산투기의진원지가되었다.
둘째,강남개발과함께아파트공화국이탄생했다.1974년6월반포주공1단지완공을시작으로강남에는대단위아파트단지가건설되었다.서초구반포동한신아파트와경남아파트,강남구압구정동현대아파트와한양아파트,송파구잠실동잠실주공아파트와시영아파트등대단위아파트가동진하면서지어졌다.
셋째,강남개발과함께토건국가대한민국이등장했다.경부고속도로건설과강남개발을시작으로1970년대중동건설에건설사들이진출하면서토건국가체제가확립되었다.토건국가의등장은정권과토건족이결탁한공생관계가확립된것을의미한다.박정희정권이래개발주의정부는대규모택지개발같은SOC사업을추진하여정치자금을확보했고,건설사들은정부가추진한개발사업에참여하여막대한이익을챙겼다.
넷째,강남발부동산불패신화가뿌리를내리면서대한민국은조물주위에건물주가지배하는나라가되었다.1988년강북권아파트는평당315만원에서2,163만원으로6배오른반면강남권아파트는평당285만원에서2017년4,536만원으로16배올랐다.1988년강남권의전세가는25평아파트기준3,000만원,월세는18만원이었으나2017년전세가는5억원,월세는192만원으로급등했다.땀흘려번돈으로는도저히집을살수없는사회가된것이다.그결과초등학생들의장래희망이건물주인세상이되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