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는 한중연 (한중판)

서울에서 만나는 한중연 (한중판)

$25.00
Description
서울의 시공간을 탐방하는 한중 문화유산 답사기
“그대와 하룻밤 말하는 것이 10년 동안 글 읽는 것보다 낫소.”
명나라 학자이자 서화가로서 조선을 방문했던 사신 예겸은 돌아갈 때까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과 매일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는데, 특히 정인지와의 각별함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예겸은 안평대군의 글씨 등 조선의 문화를 명나라에 알리는 역할도 했으며, 훗날 한명회의 별서에 ‘압구정’이라는 이름을 지은 인물도 바로 그다. 이처럼 서울 곳곳에는 오랜 시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언젠가 우리가 지나갔던 익숙한 장소일 수도 있고, 예술작품일 수도 있으며, 이야기일수도 있다.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의 인연, 즉 ‘한중연’(韓中緣)이라는 테마로 서울의 시공간을 탐방한 역사기행이자 문화기행이다. 미술사학 연구자인 김민규 박사와, ‘중국 엄마의 딸로 태어나, 한국 딸의 엄마’가 되었다는 취환 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이 함께 썼으며, 중국인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서울을 탐방할 수 있도록 한국어와 중국어로 나란히 구성했다.
저자

김민규,취환

(金玟圭)
동국대학교대학원미술사학과석사,박사
동국대학교불교학술원문화재연구소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강사
간송미술관한국민족미술연구소객원연구원
문화재청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문화재전문위원
『조선시대능묘비석연구』,『융건릉』,『조선왕릉사전』(공저)
『경복궁중건천일의기록』(공저),『조선왕릉석물조각사』(공저)
「조선시대능묘비연구」,「조선왕릉장명등연구」
「조선18세기조각가최천약연구」
「해창위오태주가건립한묘비연구」
「금강산백화암〈서산대사비〉건립과17세기승려석장의활동」
「송정악의『서행록』을통해본묘비건립연구」

목차

1.압구정의이름을지은예겸과조선문인들의시문화답
狎亭命名的倪朝文士的唱和交流佳

2.중국사신의숙소황화방과,교류의기록『황화집』
中使臣的舍皇坊交流《皇集》

3.중국사신주지번의문화적역할:<명륜당>편액,<영은문>편액
中使臣朱之蕃的文化影:<明堂>、<迎恩>

4.조선과중국을오가는사신들의험난한여행길:<조천도>,<항해연행도>,<연행도>
往于中和朝的使臣的旅途:《朝天》《航海朝天》《燕行》

5.사신행차를그린청과조선화가들의합작품:《봉사도》
有使臣出行的朝和朝家合作品:《奉使》

6.사행길을따라온백송
使行路而的白松

7.추사김정희와유희해의우정:<백석신군비>와<명선>
秋史金正喜和喜海的友:<白石神君碑><茗>

8.글씨를사랑하는이들의인연이겹겹이쌓이다:당태종글씨집자비
法好者的深厚情:唐太宗迹集字碑

9.추사와청문인들의인장을수집한헌종:창덕궁낙선재와보소당인존
收集秋史和代文人印章的宗:昌德善和堂印存

10.안진경체로쓴조선충신들의비석
用卿刻制的朝忠臣墓碑

11.주자학의창시자주희의글씨:<명륜당>편액과<백세청풍>
朱子立者朱熹的迹:<明堂>和<百世>

12.한양의도시계획과『주례』
都城《周》

13.광화문에그려진하도낙서
制在光化的河洛

14.국립중앙박물관의한(漢)낙랑군유물
立中央博物中的浪郡物

15.중국과고구려의불상교류:<뚝섬출토금동여래좌상>
中高句的佛像交流:<纛出土金如坐像>

16.명과조선장인의합작품:동관왕묘의관우상
明朝朝匠人的合作品:王的羽像

17.동관왕묘에있는중국인물들의글씨
中人留在王的字迹

18.손오공과<원각사지십층석탑>
悟空<寺址十石塔>

19.임진왜란에참전한형개와양호를기리다:선무사와<양호거사비>
万朝的邢和:宣武祠<去思碑>

20.천재조각가최천약과동인
天才雕刻家崔天若和人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언젠가맺어질사람들은,보이지는않지만‘붉은실’로이어져있다는이야기가있다.‘한국딸의엄마로중국엄마의딸’로한국에서살아온지어언30년이되어가고있다.하루하루를살면서나는늘유라시아대륙의끝자락에있는한국이라는이나라와,대륙에서태어난나를운명처럼이렇게강하게맺어주고있는‘인연의실’을느끼고있다._4쪽

예겸은안평대군의글씨를가지고황제에게바쳤는데,황제는“매우좋다.꼭이것이조자앙(조맹부)의서체이다.”라고칭찬하고,이후사신들에게“그대들은조선에도착하거든중국에없는물건을구해오라.”는명을내리기도했다.그래서이후오는사신들은안평대군의글씨를얻고싶어하기도했다._30쪽

현재의압구정은그흔적조차남아있지않고,겸재정선의그림으로만그모습을추정할수있다.높은언덕위에큰기와집으로지어진압구정이있으며,주변에는금빛모래톱과한가로이오가는배의모습이그려져있다.멀리종송(宗松)이우뚝솟은남산이짙은녹색으로그려져있으며,주변의산들이아스라이보인다._38쪽

주지번은허균과도친교가있었는데그의누이난설헌허씨(1563~1589년)의시집(詩集)을중국에서간행하기도했으며,조선에서사행을마치고돌아가는중벽제관에서「난설헌시집서」(蘭雪軒詩集序)를짓기도했다._58쪽

추사와유희해의교류속에서탄생한작품이<명선>(茗禪)이다.115센티미터길이의큰종이에쓴이두글자는‘차를마시며선정(禪定)에들다’라는뜻이다.추사가50세되는1835년경에쓴글씨로초의(草衣)의순(意恂)에게써서보낸작품이다._96쪽

고려태조왕건은진공대사충담의탑비의비문을직접짓고당태종의글씨를집자해<원주흥법사지진공대사탑비>(940년)를건립하게했다.이<진공대사탑비>는고려태조가직접비문을짓고당태종의글씨를모아새겼다는점에서새로운왕조의시작을알리는기념물적성격을갖고있다는주장등이있다._108쪽

낙선재내부에도여러개의편액이걸려있었는데추사의스승인담계옹방강의<실사구시>(實事求是)편액과,추사가제주에유배중에써서보낸<길금정석재>(吉金貞石齋)편액이마주보며걸려있었다.<길금정석재>편액은제주도에서만들어보냈는데풍랑을만나일본까지떠내려간것을다시찾아왔다는기록이있는작품이기도하다._116쪽

조선에서는비석건립비용을줄이는방법으로역대명필의글씨를모아서새기는집자비가18~19세기에크게유행했다.…한호의작품이압도적으로많으며,중국서예가중에는안진경의집자비가가장많이건립되었다.…특히정조는송시열묘비(1779년),사육신묘비(1782년),이순신신도비(1794년)를안진경글자를모아건립하게했다.또한이순신신도비는전수(篆首)를‘상충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라고했으며,하교하기를,“충신의비문은마땅히충신의글자로써야하니,안진경의가묘비를집자하여새기도록하라.”고했다.즉안진경의글씨는그의충절과동일시되었음을알수있다._126~130쪽

만약북경에서종묘와사직을찾으려한다면우리와는조금다르다는것을알아야한다.북경의종묘,즉명청의태묘(太廟)와사직단은자금성내부에있다.천안문으로들어가면단문(端門)이나오는데이단문의동쪽에태묘,서쪽에사직단이있다.사직단은현재중산공원으로불리어혼동할수도있다.조선과명청은동일한『주례』를따라궁궐과종묘,사직단을건립했지만조선은궁궐밖동서에,명청은궁궐내부동서에배치한것은흥미로운차이점이다._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