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독일 신비주의 최고의 정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독일 신비주의 최고의 정신)

$16.05
Description
모든 고통을 위한 참다운 위로!
게르하르트 베어의 『독일 신비주의 최고의 정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종교 갈등 등으로 인해 '중세의 가을'이라고 불리우는 14세기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수사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생애와 활동을 들여다보고 있다. 19세기에 부활하여 재조명됨으로써 '학문의 스승'이면서 '삶의 스승'으로불리게 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교회의 권력이 난무하는 시기에 인간과 신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위험스러운 설교를 선포함으로써 민중에게는 진정한 위로를 안겨줬지만, 교황청에 의해 종교 재판에 불려가 이단으로 단죄된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트하르트의 사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이스터 에트하르트의 사상이 시대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모든 시대의 고통스러운 삶에 '비우고 떠나있음'이라는 참다운 위로를 전해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양장본.
저자

게르하르트 베어

저자 게르하르트 베어(Gerhard Wehr)

1931년에 태어난 게르하르트 베어는 명예 신학박사이며 자유 기고가다. 현재 뉘른베르크 근처 슈바르젠브룩에 살고 있다. 로볼트 출판사에서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칼 융C.G. Jung』, 『야콥 뵈메Jakob B?hme』, 『토마스 뮌쩌Thomas M?nzer』,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를 출판하였고, 저서인 『칼 융과 루돌프 슈타이너C.G. Jung und Rudolf Steiner』(슈트트가르트 1998), 『비교적 그리스도교Esoterisches Christentum』(슈트트가르트 2판 1995), 『서양의 영성의 대가Spirituelle Meister des Westens』(뮌헨 1995), 『쟝 겝세. 새로운 의식의 지평 앞에서의 개별적인 변모Jean Gebse. Individuelle Transformation vor dem Horizont eines neuen Bewu?sein』(페테스베르크 1996),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신비주의적 논고Meister Eckhart-Mystische Traktate』(뮌헨 1999), 『루돌프 슈타이너 입문Rudolf Steiner-Zur Einf?hrung』(함부르크 1994), 『프리드리히 리텔마이어. 종교적 쇄신의 가교Friedrich Rittelmeyer. Religi?se Erneuerung als Br?ckenschlag』(슈투트가르트 1998), 『개신교에서의 신비주의Mystik im Protestantismus』(뮌헨 2000), 『카발라. 유대인의 신비주의와 비의Kabbala. J?dische Mystik und Esoterik』(뮌헨 2000), 『일곱 개의 세계 종교Sie sieben Weltreligionen』(뮌헨 2002),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뮌헨 2004) 등 많은 책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번역되었다.
현재 사전과 공동 연구에 수많은 기고를 하면서 야콥 뵈메 전집(전5권, 프랑크푸르트 1992년 이하)을 작업 중이다.


역자 이부현

광주가톨릭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부산대학교에서 「헤겔의 종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설인문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이성과 종교』, 『상생의 철학』(공저), 『7일간의 철학교실』 등이 있으며,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공역), 『사회적 실천, 자연 그리고 변증법』(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에크하르트에 관하여 「M. 에크하르트-신과 인간의 역동적 관계」, 「M. 에크하르트의 『삼부작』에 대한 이해와 해석」,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수도자 영성」, 「M. 에크하르트의 논고 ‘버리고 떠나 있음’의 구조와 해석」, 「M. 엑크하르트의 독일어 설교들의 주요 주제」 등의 논문을 썼으며, 플로티노스에 대해서는 「일자에 대한 경험과 인간의 자기 인식」, 「영혼과 정신」, 「정신과 일자」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왜 금강경인가?」, 「플라톤 향연의 놀이마당」, 「『영언여작』상권의 논리적 구조에 따른 재해석」, 「칸트와 셸링의 자연철학」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목차

들어가면서
다양한 차원의 신비주의적 경험
에크하르트 이전의 독일 신비주의
에크하르트의 생애
라틴어 작품들
독일어 작품들
- 논고
_『영적 강화』
_『신적 위로의 책』
_『고귀한 사람』
_『버리고 떠나 있음』
- 설교
에크하르트 신비주의의 주제와 내용들
영혼 가운데 신의 탄생
마리아와 마르타
내적인 삶
당신 자신을 경계하라
- 우리는 신 가운데 죽는 것을 찬미한다
- 신에게서 세계를 이해하기
- 정신의 가난에 대하여
수용사 그리고 영향사
서양과 동양의 대화
오늘날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출판사 서평

모든 고통을 위한 참다운 위로는 무엇인가?
중세의 설교자는 말한다, “버리고 떠나있음”으로 신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14세기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수사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그는 라틴어 설교의 시대에 모국어인 독일어로 설교를 시작하였고 교회의 권력이 난무하는 시기에 인간과 신의 합일이 가능하다고 설교하였다. 당시로는 엄청나게 대담하고 파격적인 설교였다. 많은 중세 독일인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고 수도회에서도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교황청은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였고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당시 교회는 부패와 권력싸움이 한창이었고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 그리고 전염병으로 유럽인의 절반이 죽어나가고 십자군전쟁으로 수많은 과부들이 생겨나는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위로를 주었던 위대한 설교사의 말은 “버리고 떠나 있음”이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신께 맡기면 인간은 누구나 신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고 자신의 내면에서 신성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의 사상은 현대 서양 철학에서 헤겔과 에리히 프롬으로 연결되고 동양사상으로는 선불교 사상과 통한다.
그의 설교는 이 시대의 고통스러운 삶에도 참다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독일 신비주의 최고의 정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1329년 3월27일 84세의 교황 요하네스 22세는 이단심문재판에서 단죄칙서인 “주님의 밭에서’에 서명한다
“이 시대 독일 출신의 성서 박사이며 교수인 에크하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한 사람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알고자 했기에 신앙이 신중함과 기준을 벗어났음을 우리는 고통스럽게 공지한다.”

그 후로 600년 이상 묻혀있다가 독일관념론의 시대이며 낭만주의 시대인 19세기 초반에 프란츠 본 바아더와 피이테, 헤겔, 로렌크란츠, 괴뢰스, 그리고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의해서 부활되고 재발견되었다. 20세기에 와서는 동양의 선불교사상과의 만남으로 재조명 받게 되었고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에도 그는 여전히 학문의 스승, 삶의 스승이다.


시대적 배경

독일 중세의 신비주의는 전성기 중세에서 후기 중세로의 이행의 전통 가운데 후기의 열매이다. 그 시대는 균열과 위기의 시대이기도 했다. 교황권과 황제권 사이의 막강한 권력을 둘러싼 전투는 상대를 분쇄하기 위한 마지막 결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소위 바빌로니아 유배로 비유되는 교황의 아비뇽 감금(1309-1377)에 이어 교황권의 약화되자 막강했던 위계적 교회 구조는 치욕과 균열 그리고 당파적이고 이단적인 운동의 위협 아래 노출되게 된다. 이런 운동은 점점 강화되어 종교 개혁 이후로 머리와 지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이 시대는 셀 수 없이 많은 자연 재해로 뒤흔들리고 붕괴되기도 하던 시대였다. 토지의 황폐화, 지진, 홍수의 범람, 유령처럼 떠돈 흑사병 등이 그러했다. 특히 흑사병은 유럽 전 지역에 만연하여 그 당시 최초로 예술로 형상화된 사자(死者)의 춤이라는 모티브로 모든 지상적인 것의 몰락과 붕괴를 끔찍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실로 그 시대는 ‘중세의 가을’이었다. 그 시대에 몸과 영혼이 고문당한 인간성이 죽음과 전율의 고통을 겪어내고 치러야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그 정점에 올랐던 전성기 스콜라 학문 체계의 휘황찬란한 전개나 외경을 자아내는 스콜라 학문 체계의 구축 등은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런 부조화는 시대를 갈라놓았고, 아마도 다시 한 번 눈앞에 닥쳐올 시대의 종말 앞에서 고통 속에 사는 인간을 불안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이 시대의 신비주의는 초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적인 것의 내재에 대해 말했다. 신비적 일치 경험 가운데서 각자의 고유한 가슴에 신이 내재한다고 말했다.
특히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통해 많은 기사들이 죽게 되자 13세기 중엽 후반에 고위 귀족이나 하급 귀족 가문에서 과부가 되거나 고아가 된 수많은 여성들이 우후죽순처럼 도미니코 여자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상류 계층의 이 여성들은 강한 지식욕을 갖고 있었다. 특히 종교적 신학적 가르침에 목말라 있었다. 게다가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환시를 보기도 하는 예리한 민감성을 갖고 있었고, 가끔은 자신을 벗어나 위로 상승하려는 정서적 열정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열망은 거의 충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도미니코 수도원 총장 민덴의 헤르만(Herman von Minden)과 교황 클레멘스 4세가 1267년에 특히 신비주의적이면서도 전적으로 사변적인 설교 방식을 개발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수녀들을 돌보는 일을 도미니코 수도원의 교수와 강사들에게 위임했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설교자이면서도 동시에 독일 신비주의를 가장 유창하게 알려주고 있는 사람, 독일 신비주의에 있어 가장 탁월한 정신으로 ‘삶의 스승, 학문의 스승’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최고의 설교가

에크하르트는 수도원에서 저녁을 먹고 식탁에서 젊은 수사들과 『영적 강화』를 나누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쿠르트 루가의 말에 따르면 『영적 강화』에 있어서는 귀중한 은총이 특징적이다. 지옥, 마귀, 형벌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고통은 신을 수반한다. 죄는 인간을 반드시 파괴하지는 않는다. 선한 것의 힘이 악한 것의 힘만큼 강하다. 신은 항상 가까이 계신다.” 이러한 내용들은 13세기 후반의 널리 제도화되고 법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그리스도교적 세계에 있어서 놀라운 주장이었다. 에크하르트는 인간에게서 불안을 제거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신에 속하는 본질적인 인간으로 전환시켰다.
에어푸르트 수도원의 원장직을 시작으로 유럽 곳곳의 수도원장과 관구장을 맡게 되면서 수사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을 도맡게 되고 동시에 에크하르트는 튀링겐 관구의 대리로서 외부에 있는 수사들을 방문하고 교육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많은 도미니코 수도원과 수녀원이 마이스터가 설교하고 사목하던 주요 지역이었다. 이는 스콜라적인, 곧 대학 강단의 신학이 이제는 실천적 영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변환의 과정은 언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강단 신학에는 전혀 입문도 하지 않았지만, 신비 체험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수사들과 수녀들에게 성서 말씀은 즉각적이고도 가장 내적인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만 하였다. 에크하르트가 관장하는 지역의 수많은 수녀원에서의 신비주의적 삶이 의심할 바 없이 독일 신비주의의 전개 발전에 결정적인 견인차 역할을 한다. 고향 관구 삭소니아에는 단지 9개의 여자 수도원이 있었던 반면에, 남부 독일에는 65개의 여자 수도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설교의 대부분이 행해졌는데 이들 가운데서 유명한 것으로 『고귀한 인간에 관하여』, 『신적 위로의 책』이다.
때로는 열광적으로 존경받고, 많은 동료들에게 주목받았던 마이스터의 에크하르트의 압도적이고 매혹적인 슈트라스부르크 시대의 독일어 설교들은 대부분 신비적 정신과 삶의 배양지이며 중심지였던 라인 강 상류의 수많은 여자 수도원에서 행해진 것이 확실하다. 그는 또한 신학적 교양이 전혀 없는 민중들을 향하여 민족 언어인 독일어로 설교를 했기 때문에 혐의를 자초하게 된다. 그의 정신적 비상이 대중들이 도달하기에는 너무 높았다고 할지라도 전대미문의 그의 말들이 상당히 자극적이고 흡착된 방식으로 청중들의 영혼에 스며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신이 진리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신을 버리고 (오히려) 진리를 고수하고자 할 것이다.”라고. 이 진리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서 그의 내면으로부터 바깥으로 울러 펴진다. “만약 여기에 아무도 없다고 한다면, 나는 이 기부함에 설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어 설교들 가운데서 마이스터가 영감 받은 청중에게 내뱉었던 말들은 결코 단순한 스콜라적 탁상공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이하임과 동시에 무한히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대담하고 위험스러웠던 그의 설교

에크하르트는 당시의 라틴어 복음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심지어 당시로서는 의심할 수 없는 해석, 곧 복음서의 의미를 대담하게 뛰어 넘는다. 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에 대한 해석이 한 예이다. 성서 속의 예수는 마르타보다는 마리아를 옹호하지만 에크하르트는 마르타를 더 높이 평가한다. 그는 역사적인 자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우선시한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신에 대한 몰입과 명상’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내재적 수용에 따른 실천적 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따라서 명상적인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타가 신비주의적 인간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탈아적(ekstatischen, 脫我的)인 “행복감, 종교적 고양의 달콤함”에 틀어박힌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하고 확고한 덕과 걱정 없는 마음 가운데 모든 것에 방해받지 않고” 세상 한 가운데서 활동하는 인간이 신비주의적 인간의 전형인 것이다. 따라서 에크하르트의 의미에서 신비주의자의 길은 오직 명상적 길(via meditativa), 곧 안으로 향하는 길만으로 뻗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길의 절대적 귀결인 활동적 길(via activa), 곧 바깥 일로 향하는 길로 뻗어 나가야 한다. 마치 그것이 가치 없는 창조인 양 여겨서는 안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것은 청중들에게 활동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충동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이 점이 에크하르트가 학문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삶의 스승으로 불리어지는 이유이다.


영혼 가운데 신의 탄생 - 신과 인간의 신비적 합일

에크하르트의 위대성은 고유한 그의 사상 때문이다. 에크하르트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사상은 ‘영혼 가운데 말씀의 탄생’에 대한 사상이다. 영혼의 불꽃 가운데 아버지 신에 의한 아들의 탄생이 에크하르트 설교의 유일한 동기이며 내용이며 목적을 이룬다.
영혼의 불꽃은 자아 추구(Selbstsucht)와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