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의 통신사 : 국적 없는 한국인

나는 일본의 통신사 : 국적 없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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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본의 통신사로 살아온 국적 없는 한국인 이야기
저자는 무궁화가 피어 있는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지난 88올림픽 무렵부터 한국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삼십여 년간 만나온 한국 사람을 통해 핏줄보다 진한 삶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경청, 겸손, 봉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실천해왔다. 일본에서 공식 파견된 외교사절이 아닌 자청, 민간외교사절로 지한(知韓)과 지일(知日)을 겸비한 사람으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지지하고 한반도기에서 빠진 독도를 제기하여 수정하게 하는 일, 100회가 넘는 헌혈 봉사를 통해 두 나라를 영원히 사랑하는 한일지인(韓日知人)으로 살고 있는 삶을 생생하게 엮어냈다.
저자

혼다토모쿠니,신한준

(本田知邦)
일본후쿠시마현다테시에서1962년에태어났다.운명처럼만난이름토모쿠니(知邦)와한국의국화인무궁화가피어있던집.일본에서태어난일본인이되한국을더잘안다.특수교사라는안정적인직장을그만두고1988년한국행을감행,36년째일본국적의한국인으로살고있다.생일은아버님의기일과같아서평생에생일이없으나,왼손과오른손뿐아니라겸손이라는제3의손을갖고산다.
처음배운한국말은‘배고프다’로시작서울대학교대학원국어교육과박사과정을수료했고서강대,서일대,배화여대강사등을거쳤으며EBS교육방송중급일본어회화를7년간진행하였다.
현재는남서울평생교육원교수,남서울탐정사관학교지도교수,한국번역가협회이사,UN합창단한국실행위원회국제협력위원장,하이컨디션일본총본부장으로활동중이며저서로는『일본어표현10000』,『일본어를알면축구가두배로재미있다』등10여권의저서가있다.

목차

추천의글
들어가는글-나를낳아준일본,나를키워준한국

제1부나의존재는반반치킨
-나는반일(半日),반한(半韓)의존재
일본에피는무궁화
무궁화나무가심어있던일본의본가,한국행의암시였을까
기적의나라,정이많고따뜻한나라,한국
교원직을그만두다
마침내한국행으로결행을하다
“정가고싶다면가라.그것이네뜻이라면….”
1988년의여름과평화그리고어머니와의작별
대학선배들이가르쳐준것
합기도부에서상하조직생활을배우다
한국의첫인사는신문지몽둥이였다?
“배고프다”,처음배운한국어
참으로고마운한국사람들눈물이펑펑쏟아진다
어이구이화상아!!!
“당신의사람됨을믿는다.나중에갚으라”
박달재에서만난평생의반려자가있어서‘지금의혼다’가있다
아내는내가한국에남을수있게해준일등공신이자,한국인생의삶의동기가된여인이다
그분께여쭤봤다①박귀옥여사
‘사위’대신‘왜놈’,’일본놈’
역지사지-삼무(三無)의사위
그분께여쭤봤다②혼다노조미(딸)
삶은외발자전거타기가아니다
한국과일본의다리를튼튼하게이어줄손자하원이
육년만에받은영주권그렇지만국적은일본

제2부신의직장,교직을내던지다
-정규직특수교사를던지고비정규직강사로
삼년동안의특수교사생활은섬김의생활이었다
사표를내고한국행을타다
혈혈단신이지만고달프지않았던학원강사시절
일본어시간강사에서저자로,선생으로(1)
쓰나미‘IMF’가휩쓸고간지옥,그리고살기위한몸부림
우리손에반지가없는이유
1998년,2003년일본대중문화의개방으로일본어학습열풍불어
당신이있을곳은여기가아니다
기회의여신은머리카락이앞쪽에만있다더라
일본어시간강사에서저자로,선생으로(2)
EBS시절
배화여자대학교겸임교수시절
현장수업을중시한서강대학교강사시절
연구실이있었던서일대학교교수시절
서로를알기위한노력의일환인교수연구실개방
서울대학교석ㆍ박사과정과은사민현식교수님
늘감사한나의한국어멘토이신은사민현식교수님
이제는티칭(Teaching)이아닌코칭(Choching)
특임교수의일-5박6일간집중적으로일본을배우고일본인들과생각을나눈다
일본이아닌독일ㆍ프랑스의유럽연수
다리를세우는일

제3부참교육과올바른인성함양의길
-경청과선정후교(先情後敎)
나의어릴적삶은조금독특했다
화목했던우리가정
대학에서‘다테오토코’를찾다
다테의의미는다양하다
꼴찌에서일등,늦게배운도둑이날샌줄은모른다
내가일본학교의교사를관둔이유
한명을백명처럼백명을한명처럼
삼십년지기친구는어떻게하면만들수있을까?사십대에만난결혼커플
누구든오라.같이가자
경청(1),상대방이하고싶은말을꺼낼때까지계속들어주는것
두터운인간관계는학교와국경을넘는다
자율성,창의력,색다른교수법
실천:서일대교수시절
칭찬은고래를춤추게하지만경청은영혼을춤추게한다
화내는것과혼내는것의차이
교육이란무엇일까?
교육은가르칠대상과소통이된다음에이루어진다(선정후교先情後敎)
경청(2),선정후교(先情後敎)
무엇이그를울산까지가게했을까
나의생일은이생에는없다

제4부우리의소원은통일
-나의소원도통일
한국인의삶
한국에서살아남기1.(한국어배우기)
한국에서살아남기2.(딸,아들의이야기)
한국에서살아남기3.(삼십년지기들)
강성재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구한일문화교류센터)회장
김석기국회의원
나를한국에심취하게만든안중근의사의‘동양평화론’
한반도기에독도도넣어야-한국인보다더한국적인일본인
독도입도및울릉군독도명예주민증발급받아
UN합창단의‘메시지’
한국에도기회가찾아오다
통역사,협력위원장이되다
본궤도에오르다
UN합창단한국내한(2017)
이제는UN이다
마침내카네기홀에서다
우리의소원은통일
잃어버린5년
마음을연결하는다리한국번역가협회
경기도양평에서인문학을가르치다
원장님의일본어공부
조이고!쪼이고!!하이컨디션!!!
방송의매력에빠지다.종로TV와한국축제방송
빛과그림자로한국과일본사이의다리를놓다
그래도아직은따뜻하다

제5부내몸에는어떤피가흐르는가
-국적없는한국인
내몸에는어떤피가흐르는가
이십이년만에지킨약속
생신날에돌아가신아버지
교수님앞에서내아버지의이야기를했다
헌혈-아버지와은혜에대한보답
피를나누는사이
헌혈왕서재균교수님과함께피를나누다
한일간의피를나누는헌혈봉사
공연기획자와공연가의동행:빈대욱학장과함께
사랑과노래를나누는현대판각설이들
각설이타령으로일약가수로데뷔하다
일제당시의일본인만행을대신하여사죄의큰절을올리다
삼부자학습의대가,이제는노인을위한‘섬김의신’으로
시한부삶의하루,희망으로일어나기위한힘
루게릭환자돌봄으로얻는교훈
죽기전까지는힘들다고생각하지않기로했다
도대체나는누구인가
어떻게살것인가

나가는글내가하는일,앞으로하고싶은일
-나의자전거는멈출수없다
2022년12월어느날의일과보고서
내삶을맡깁니다
나의버킷리스트
선구자(先け),선구자로남고싶다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추천사

혼다선생이환갑이라니세월의빠름에아쉽지만축하하며그동안근면성실하게일본어교육과한국어교육발전에헌신한공로를잊을수없습니다.특히일본어를알면축구가두배로재미있다등그의손에서탄생한수많은일본어교재들은창의성과효율성에서단연압권이었습니다.EBS일본어명강사로,한일친선및국제문화친선사절단명강사로바친헌신적문화활동은진정세계화한국제인의모습이었습니다.일본에서는노년(老年)을실년(實年)이라하는데더욱풍성한젊음의실년을누리시기를기원합니다.
-서울대학교명예교수민현식

35년이라는긴한국생활동안자신에게는매우엄격하고타인에게는겸손과배려로1톤의생각보다1그램의행동을몸소보여주시는분이다.이러한감동이우리들을변화시켰다.
-남서울대학교남서울평생교육원학장/교수빈대욱

혼다토모쿠니는유일한일본출신엘리트친구다.많은것을선행하여나를늘반성하게만드는친구!혼다가족에게좋은일들만계속생겼으면진심으로바랍니다.이번진솔하고멋진자서전만루홈런치시길~
-개그맨최양락

1990년도초에길에서우연히만난인연으로삼십년넘게서로관계를잊지않고연결이된다는것은큰축복이자또한한일간의보이지않는끈이아닐까싶다.이미마음이통한사이라서언제든지만나도반갑고마냥웃음만나오는일본동생이다.
-국회의원김석기

삶의모든순간들을긍정적인생각과봉사정신으로극복하고살아오신혼다위원장님의자서전출간을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열정적인삶을응원드리며저희모두같이공감하며배우는계기가될것을믿어의심치않습니다.
-UN합창단한국공연실행위원회회장박수정

책속에서

182쪽
내가일본인이고,한국은남편의성(姓)을따른다는이유에,한국과일본이상생(相生)하고협력(協力)한다는‘소망(所望)’을담아딸에게이름을붙여준것인데,이런고통을준다는것이싫었다.하지만딸은일본국적자이지만,한국에서태어나한국에서자란엄연한한국인이고,대한민국에서살아가는이상그런차별을당해야할이유는없다고생각했고,이런일은언제나일어날수있으므로정신수양을할겸,호신을배울겸하여딸에게태권도를배우는것이어떻겠냐고권유하였다.

187쪽
왜놈이라던가,쪽발이라던가하는경멸에가깝도록욕을먹는것이일본강점기에겪었던한민족이겪었던수모에비하면약과이고이런일은당해도싸다는논리가정당했던시기이기도했다.다만,일본강점기를겪어보지않은,아무것도모르는아이들까지언제까지나욕을먹어야하는것은아니며,어떻게보면그것은조선시대에있었던‘연좌제’에가까운것으로생각했다.

196쪽
2000년시드니올림픽때였다.선수단이입장하는데들고온‘한반도기’에왜독도가그려져있지않았는가에대해신문에투고한적이있다.단일팀을상징하는한반도를나타내는데,중요한독도가빠지는것은이상하다고지적했다.신기하게여긴것은신문사측이었다.이런일을한국사람이아니라일본사람이묻느냐고따지자,당시기사제목의부제가‘한국인보다더한국적인일본인’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