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노동자들의대모
1929년에미국에서시작한대공황은10년이나지속하였다.미국은제1차세계대전을계기로경제적번영을누렸으나거품이점점두터워져시야를가렸고,부실기업의주가마저도하늘높은줄모르고치솟았다.그러던주가가매일매일폭락에폭락을거듭하며기업이줄줄이파산했다.고스란히책임을덤터기쓴노동자들은거리로내몰렸고,하루종일일거리를찾아다녀도부질없었다.노동력이남아돌자여기저기서임금착취와열악한노동환경이생겨났다.그러자곳곳에서이를개선할것을주장하는시위가잇달았고,이를지지하고사실을전달하는중심에도로시데이가있었다.그녀는진보성향의기자였고,가톨릭교도였다.당시종교는노동운동을인정하지않았기에진보주의자중에종교인은거의없었다.그러나도로시데이는<가톨릭노동자>신문을창간하고‘환대의집’을만드는등‘가톨릭노동운동’을전개했고,결국엔가톨릭이노동자들속으로들어와그들을보호하고영혼을치유하게했다.그녀의바람은오직하나,가톨릭이가난한노동자와함께하며그들의몸과영혼을달래주는것이었다.
피터모린과의운명적만남
도로시데이의삶은피터모린이전과이후로나뉜다.그만큼피터모린과의만남은도로시데이에게는인생의특이점이었다.삶의방향을잡은도로시데이에게더는종교적인방황은없었다.그러나노동운동을인정하지않는가톨릭단체를어떤방식으로노동자들속으로이끌지에대한명쾌한답을갖고있지못했다.그런데피터모린이스스로찾아와가톨릭신문과무료급식소를만들자는제안을한다.피터모린의이상적인제안에현실적인도로시데이의계획이더해져서<가톨릭노동자>신문과‘환대의집’이탄생한다.이것은가톨릭에전해질그녀의영원한유산이자상징이다.
나를성인이라고부르지마세요.
1973년8월의어느날소외된노동자들을위해일생을바친용맹스러운여성,도로시데이가감옥에갇혔다는신문기사가났다.기사내용은마치전사와같은여성을묘사하고있었지만,신문에실린사진을보면그여성은노쇠하고지친노인에불과했다.그도그럴것이도로시데이는75세였고,이것이그녀의마지막수감이었다.수감직후인터뷰에서“그곳이교도소만아니라면쉬기에는그만인장소였어요”라고말해,듣는이의눈시울을적셨다.
이렇게도로시데이는자신의모든것을가난한이들에게주었다.그리고자신이죽은이후수중에는장례를치를돈마저남아있지않았다.또고인의장례식이11시로잡힌까닭은그시간이무료로제공되는아침식사가끝나고부엌을청소한뒤점심식사를준비하기전까지약간의여유가있는시간대였기때문이었다.죽음이후까지도그녀는정작자신을위해서는아무것도남기지않았다.도로시데이는세상을떠나고‘하느님의종“칭호에이어’성인품‘추대를받았지만,아마도기뻐하진않았을것이다.생전에자신을성인으로우러르는사람들에게이렇게말했기때문이다.
“나를성인으로부르지마세요.나는그렇게쉽사리물러나고싶지않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