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낙동강 을숙도, 좌절과 희망 사이
모래톱과 우거진 갈대숲이 아름다운 자연의 생명터 낙동강 하구 을숙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는 인위적인 개발유혹으로 상처받은 섬이다. 을숙도는 지난 30여 년간 준설토 적치장, 쓰레기 매립장, 분뇨처리장 등이 들어서면서 드라마틱한 생태 파괴의 현장이 되었다. 2009년 10월 29일, 막개발의 결정판 같은 다리(을숙도대교)가 놓였고 다시 4대강 사업에 치받힐 예정이다. ‘강 살리기인가, 강 죽이기인가’ 논란으로 뜨거운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의 종착점에 낙동강 을숙도가 있다. 을숙도의 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20여 년간 을숙도를 탐사한 저자가 아름다운 새들의 에덴이었던 을숙도의 순결한 자연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 통찰한 최초의 을숙도 탐사보고서다. 을숙도 치욕의 역사를 철새, 문화, 수난, 상실, 공존의 5가지 키워드로 읽어낸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 인간과 생명의 순환질서를 의미 있게 되묻는다.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을숙(乙淑)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하늘을 장식하는 눈부신 군무의 향연, 사각사각 운치 가득한 갈대숲, 붉게 타오르는 낙조와 시간이 빚어놓은 자연의 걸작 모래톱. 낙동강 1천300리의 긴 여정은 을숙도에서 끝이 난다. 강이 품고 온 흙과 모래는 바닷물과 만나면서 넓디넓은 갯벌과 모래섬을 만들었다.
‘새(乙)가 많이 살고 물이 맑은(淑) 섬’ 을숙도.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장소다. 낙동강 하구는 1966년 문화재관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 179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연안오염특별관리구역(1982, 환경부), 자연환경보전지역(1988, 건설교통부), 자연생태계보전지역(1989, 환경부), 습지보호지역(1999, 환경부)으로 중복 지정되어 보호받아 왔으며 현재 멸종위기종 11종, 보호야생종 29종 등 국내 최다 법적보호종 서식지이고 고니의 전 세계 개체수의 8~11% 월동지, 국내 유일의 솔개 월동지이다. 또한 흰물떼새와 쇠제비갈매기의 국내 최대 집단번식지, 국내 최대 민물도요?좀도요 도래지, 국내 최대 민물가마우지?맹금류?갈매기류?잠수성오리류 월동지이다.
하늘과 바다, 동해와 남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 을숙도. 을숙도의 독특한 경관과 희소성 높은 아름다움은 문학적 가치를 자랑한다. 부산이라는 대도시 안에 있는 을숙도는 불과 몇 m 거리에서 직접 보고 듣게 되는 고니를 비롯한 희귀철새들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갈대숲과 바람의 교감, 낙조의 장관 등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축복의 땅이다. 해질녘 하늘을 배경으로 나는 철새들의 군무는 그 자체가 시라고 할 만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요산 김정한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 문정임의 시 <돛배를 찾아서> 등의 작품들은 을숙도를 직간접적인 소재로 삼았다. 을숙도의 갈대밭은 추억의 드라마 <호랑이선생님>과 <피아노>, <엽기적인 그녀>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와 각종 CF의 단골무대로도 각광받았다.
개발의 전차에 떠밀린 을숙도는 슬프고 아리다
을숙도는 낙동강 하굿둑 건설(1987년 완공)을 시작으로 첨예한 환경파괴의 논쟁에 휘말린다. 하굿둑 건설은 국제적인 비난과 반대 압력을 받았지만 당시 전두환 정권은 철저한 보전을 약속하고 공사를 강행한다. 정부는 이후 본격적인 매립과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하굿둑 건설과 함께 1?2차 압축쓰레기 매립장, 분뇨처리장, 준설토 적치장, 자동차극장 등이 정부와 부산시의 허가 아래 차례차례 조성되었다.
을숙도 핵심지역을 관통하는 명지대교 건설문제는 전국적인 환경이슈가 되었다. 한국조류학회가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2001) 일본에서는 낙동강하구 보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으며(2002) 람사협약의 국제기구인 동아시아 오리?기러기 네트워크(anatidae)에서 보전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부산시에 공식적으로 전달하였다(2003). 결국 명지대교 건설이 허가(2005.6.08, 환경부)되고 부산지역 환경단체들로 구성된 ‘낙동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는 곧바로 부산지법에 명지대교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2005.6.13). 그러나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은 2006년 11월 1일 대법원에 의해 최종 기각됐고 2009년 10월 29일 을숙도대교란 이름으로 개통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부산시가 을숙도 전체를 생태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4대강 정비 사업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을숙도는 한쪽에서는 각종 보전대책이 실행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발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모순의 땅이다. 가령 문화재청은 을숙도에 쓰레기를 매립하는 조건으로 부산시에 철새도래지 부분 복원을 요구한다. 1995~97년 부산시는 을숙도 서남단과 대마등, 신호리에 120억 원을 투입해 자연 형태의 습지를 만들었다. 낙동강 하구 철새인공서식지다. 조성 당시 전문가들은 습지에 왜 습지를 복원하느냐며 반대했으나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조성 후 몇 년이 안 돼 3곳의 인공생태계를 새들은 외면했다. 허술한 구상이 빚은 예고된 실패였다.
유쾌한 상상력으로 을숙도를 이야기하다!
을숙도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을숙도의 생태 파괴를 단순히 철새들의 생존 문제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함께 아파하고 염려해야 할 문제로 접근한다. 생태 파괴는 새들의 서식지가 사라짐을 의미하고 서식지가 사라지면 새들이 지상에서 영영 사라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들의 멸종은 인간에게도 재앙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을숙도의 자연을 살리는 유쾌한 상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을숙도를 바꾸고 부산을 바꾸는 그래서 대한민국을 푸르게 일렁이게 하는 유쾌한 상상력. 을숙도를 환경운동 차원에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진지한 성찰과 반성적 토대 위에서 생태적 상상력을 발휘에 인간과 생명의 새로운 순환질서를 만들어보자고 한다. 을숙도에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개념을 적용해 개발의 아픈 상징인 쓰레기 매립장, 분뇨처리장, 하굿둑, 을숙도대교를 산업 문화유산으로 접근해 스토리를 만들어 내자고 제안한다. 가령 을숙도 습지구역 일부에 해저수족관 같은 투명유리돔을 만들어 습지 동식물을 관찰하게 하자고 한다. 파괴의 역사까지 보존함으로써 창출될 수 있는 창조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추천사
내가 본 을숙도는 하늘이 준 자연의 보고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동물과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과 난개발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에 인간도 살기 어려운 법이다. 수많은 뭇생물에게 실낙원이 되고만 을숙도는 우리 모두에게도 실낙원이다. 이 책이 그것을 아프게 일깨우고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을숙도의 옛 낙원을 되찾는 노력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원순(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을숙이와 일웅이의 결혼이야기로 시작하는 을숙도 이야기는 마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낙동강 편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를 통하여 을숙도와 진우도 등 주변의 섬들에 살고 있는 고니, 도요새, 개개비, 솔개 등의 무수한 새들, 그리고 세모고랭이, 맛조개, 재첩이 빚어낸 자연환경, 신들의 정원 모습이 잔잔하게 떠오른다. 여기에 등장하는 시민, 시인, 걷기 달인, 소설의 주인공, 환경운동가, 철새공화국 사람들, 보존군, 개발군 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낙동강 을숙도를 무대로 종횡무진 펼쳐진다. 지금까지는 망가지고, 학대 받아온 수난의 을숙도 이야기지만, 결국은 이 풀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 자연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이 방대한 을숙도의 서사시는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재미와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감동적이다. 낙동강 을숙도, 그리고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 부산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김승환(100만평문화공원협의회 사무처장·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강물은 하굿둑에 막혀 바다와 만나지 못하고, 강변은 도로에 덮이고 둑에 막혀 산과 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급기야는 강 살리기란 이름으로 이제 물길마저 끊길 위기에 처한 단절의 시대. 수천만 년 강에 기대어 살아온 흑두루미, 자라, 모래무지가 강에서 사라져간다. 모두가 강을 떠나고 심지어 환경 운동과 강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물신의 시대. 박창희 기자는 여전히 강의 아들로 남아 어머니 강의 이야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박중록(습지와 새들의 친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