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길 (평화를 향한 여정 | 양장본 Hardcover)

외교의 길 (평화를 향한 여정 | 양장본 Hardcover)

$28.00
Description
한승주가 걸어온 길,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갈 길
그는 평생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50여 년간 대학에서 외교를 배우고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임명되어 각각 22개월간 격변의 외교 현장을 누볐다. 이 책은 그의 삶, 그 가운데서도 주로 외교와 연관된 ‘공적인’ 삶의 기록이다. 장관과 주미 대사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왜, 어떻게 평화외교를 지향했는지, 그가 생각하는 실용외교란 무엇인지, 그것이 기회주의나 물질만능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저자

한승주

저자한승주는1940년서울출생.서울대외교학과를졸업하고도미하여미국뉴햄프셔대에서정치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정치학박사학위를받았다.이후미국대학에서약8년,귀국이후30년가까이고려대에서연구하고학생들을가르쳤다.김영삼대통령시절에는외무부장관으로정책을만들고현장을지휘했다.노무현대통령시절에는주미대사로격동의외교무대에서직접선수로뛰기도했다.대학에서은퇴한후에도외교에종사하고있으니반세기경력의‘교수외교관’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공직에몸담고있지않은시절에도늘민간외교무대의현장에있었다.교수시절다양한국제교류를통해쌓아둔인맥은훗날장관으로서공식외교무대에서활동할때큰도움이되었다.민간인시절에는키프로스유엔사무총장특별대표,서울국제포럼회장,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의장,삼각위원회아시아태평양지역부의장을역임했으며,최근(2017년)까지한독통일정책자문위원회공동위원장,한미협회회장으로활동했다.

목차

머리말:나는어떤외교를지향했는가

1부학문의길

500년서울토박이:나의출생과성장의배경
전쟁과평화:초등학교시절의6·25전쟁
북침인가,남침인가:한국전쟁의원인에대한논란
영어에눈뜨다:내가영어를배운4가지방법
새로운세상을만나다:미국과의첫대면
다시한번생사의고비를넘다:대학시절의4·19혁명
다양한세상을만나다:미국유학시절
유대인과한국인:뉴욕시립대교수시절의견문
전두환대통령에게한미관계강의:고려대교수시절
활동무대를넓히다:민간외교참여
뉴스위크와의인연:영어칼럼을통한나의정치활동
학문과현실정치:학계대표로현실외교참여

2부외교의길

외무장관을맡아주시오:김영삼대통령의‘깜짝인사’
장관도대통령도모르는것은배워야:취임후아쉬웠던점들
“인사청탁은받지않겠습니다”:믿고맡겼던김영삼대통령
미국의폭격을막아라:북한의NPT탈퇴선언
1994년6월:북핵위기와한국·미국·중국의대응
미국의북한공격을한국이막았다?:한반도를둘러싼군사적긴장의진상
역사에는가정이없다지만…:불발로끝난남북정상회담
미국이북한에너무끌려다닌다?:제네바합의를둘러싼갈등
성공했기때문에실패했다?:제네바회담의득과실
가깝고도먼사이:한일관계의과거와미래
정치냐경제냐:UR과쌀시장개방
신외교의다섯가지목표:퇴임에얽힌이야기들
장관시절만난사람들:부트로스-갈리·페레스·첸치천
어떻게소통할것인가:언론과의관계

3부다시외교의길로

반미대통령,친미대사:내가주미대사가된속사정
반미대통령의친미정책(?):2004년5월한미정상회담전후
노대통령이었기에가능했던파병:한국의이라크파병
미국의대통령선거:이해하기어려운미국인의선택
북핵과또다른위기:북핵문제를둘러싼한·미·북의갈등
“노대통령,큰텐트를치세요”:국내정치와대미외교
황장엽의미국방문:황장엽과의짧은만남
한승주대사는너무차분한사람:워싱턴에서의교류
한미FTA와쌀개방:소홀히할수없었던통상문제
주미대사22개월을돌아보며:장관시절과의차이
대통령의언행불일치(?):노무현대통령의외교정책
혹떼려다혹붙이다:북한의고백외교
강경이냐온건이냐:대북정책을둘러싼한미양국의갈등
주미대사직을마무리하다:장관과대사시절의보람

4부민간외교의길

분단국의비극:키프로스유엔사무총장특별대표
인종학살의비극:르완다인종학살조사위원
동아시아비전그룹(EAVG):EAVG의장
주미대사이후의민간외교:삼각위원회등

에필로그:우리외교의다섯가지도전
맺는말:실용주의외교를향하여

부록

외교란무엇인가?:통념과실제
세계화시대와한국의외교
불안정한삼각관계:중국과일본사이의한국
한반도의분단관리와통일문제
주요해외신문기사와인터뷰동영상

약어일람
저자연보
집필후기

출판사 서평

한승주가걸어온외교의길

그는평생외교의길을걸어왔다.지난50여년간대학에서외교를배우고가르쳤으며1993년에는김영삼정부의초대외무부장관으로,2003년에는노무현정부의초대주미대사로임명되어각각22개월간격변의외교현장을누볐다.
이책은그의삶,그가운데서도주로외교와연관된‘공적인’삶의기록이다.장관과주미대사로서어떤길을걸었는지,왜,어떻게평화외교를지향했는지,그가생각하는실용외교란무엇인지,그것이기회주의나물질만능주의와어떻게다른지를있는그대로기록했다.
그가맡았던외무부장관과주미대사두보직의배경에는모두북한의핵무기개발과관련된위협이있었다.이에대처하는것이그에게주어진가장큰임무였다.
장관으로취임한지2주만인1993년3월12일,그의장관재임기간중가장중대한사태가벌어졌다.북한이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탈퇴하겠다고공식선언한것이다.일반국민은물론대통령에이르기까지미국이북한을폭격할까봐크게걱정하는분위기였다.국회에서는외무부장관이빨리미국에가서미국이북한을폭격하지못하게막으라고주문했다.결국북핵문제는유엔안보리에회부되고미국과북한간에협상이시작되었으나1994년10월의제네바합의에이르기까지는많은우여곡절과위기,그리고19개월이라는긴시간이요구되었다.“제네바합의로북한의핵활동을동결하여북핵문제를일단락시키고한반도에서전쟁의재발이나대규모무력충돌을막을수있었던것은보람있는일이었으나,영구적이고강력한평화의기반을구축하지못한것은큰아쉬움으로남아있다.”고그는회고한다.
주미대사시절도‘picnic(소풍)’은아니었다.워싱턴에있던기간동안그는특히북한에대해강경책이필요하다고생각하는부시행정부와온건책을고집하는한국의노무현정부의틈새에서고전하지않을수없었다.그보다10년전그가외무부장관으로서강경책을주장하는한국의김영삼대통령과비교적온건책을선호하는클린턴의미국정부사이에서고전했던것과는정반대의현상이었다.

대한민국외교의어제,오늘그리고내일

책의1부‘학문의길’에는출생과성장의배경부터초등학생시절의6·25전쟁과대학시절의4·19혁명때생사의고비를넘긴이야기,고등학교시절영어에눈뜨고미국이라는새로운세상을접한이야기를비롯하여외무부장관취임이전의삶이담겨있다.2부‘외교의길’에는외무부장관시절,3부‘다시외교의길로’에는주미대사시절,4부‘민간외교의길’에는공직에몸담고있지않았던시절의민간외교에얽힌이야기를담았다.책의부록에는고려대학교고별강연인‘외교란무엇인가?’를비롯하여‘세계화시대와한국의외교’,‘불안정한삼각관계’,‘한반도의분단관리와통일문제’등의연설문,주요외국신문에게재되었던그에관한기사와인터뷰동영상을인터넷에서찾아볼수있는바로가기를수록했다.회고록에나타난그의사고(思考)와그에기초한실천을이해하는데보탬이될내용들이다.에필로그에서는박근혜대통령탄핵과트럼프대통령당선이라는충격적인상황을맞은한국외교의나아갈방향을제시하고있다.
회고록이지만과거의이야기에서그치지않는다는것이이책의큰장점이라고할수있다.그는그어느때보다더복잡하고어려운오늘우리의외교현실을분석하고그에대한해법을제시한다.평생외교를연구해온학자로서의폭넓은시각과장관과대사로서외교현장을누빈경험을두루갖추었기에가능한일이었을것이다.
10년동안뉴스위크고정칼럼니스트로활약할정도로고급영어를구사하는것으로널리알려진그의학창시절영어학습법을엿볼수있는것은이책이제공하는덤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김영삼대통령과노무현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외교문제에서장관을비롯한실무진의조언과건의를존중해주었고,설사본인의의견과다른점이있더라도합리적인건의는납득하고채택하는분이었다.뿐만아니라다른대통령들과달리외무부인사에간섭하거나통제하지않고외무부의독자적결정을허용하고존중해주었다.
노무현대통령은대선에서자신을지지하지않았던그에게주미대사자리를제의했고,그는그것을수락했다.노대통령은이념적으로다른입장을갖는경우가있어도큰틀에서합리적이고실용적인건의를받아들여주었다.이라크파병을결정하고,미국과자유무역협정(FTA)협상을개시했으며,주한미군의전략적유연성을수용했다.그는노대통령에게좌우를아우르는‘큰텐트(bigtent)’를칠것을건의하기도했다.
이념적성향이거의정반대인김영삼,노무현대통령밑에서한대통령과는외무부장관으로서,다른대통령과는주미대사로서외교를수행할수있었던것은개인적으로커다란행운이었으며무엇보다도그분들의도움으로한국외교에실용주의를불어넣을수있었던것은국가적으로도다행이었다고그는회고한다.

대한민국외교가나아갈길

오늘날우리의외교는최소한다섯가지의위기와그에따른도전을맞고있다.그첫번째는북한의핵무장,두번째는떠오르는‘미국중심주의’,세번째는부활하는주변국의대국주의,네번째는갈등하는미국과중국사이에서줄타기를해야하는현실이다.그리고마지막,다섯번째의위기는우리의세가지결핍사항(Deficiencies)이라고하겠다.세가지결핍사항이란첫째리더십,둘째전략,셋째국민적합의라고할수있을것이다.
그는이책에서이를분석하고각각의해법을제시하면서우리의가장시급한과제는정치와리더십의안정이라고지적한다.정치와제도그리고누가정부를이끌고있는가가불안정하고불확실한상황에서는외교를효과적으로수행하기어렵기때문이다.따라서지금우리에게가장필요한것은무엇보다도안정적이고,감정과이념그리고정치적이해관계를초월한실용적리더십이라고그는강조한다.

[책속으로추가]

장관은그래도일을하는과정에서차관을비롯한부처직원들의조언과브리핑등조직의도움을받게되므로크게빗나갈가능성이적다.그런데청와대수석비서관들은그런도움을받을기회가상대적으로적을수있다.특히민간출신의경우공직에대한이해와경험부족탓에기대에어긋난처신으로간혹물의를일으키기도한다.장관이나청와대비서관은물론이고대통령에이르기까지모든고위공직자에대해서는일정한교육과정을반드시이수하게함으로써그들의직책수행에도움을주어야하지않을까하는생각을갖게된다.p.82

외무부장관재임기간내내가장시간과신경을많이썼던문제는북한핵문제였다.그러나외무부장관에취임하기전에도나는북핵문제에깊은관심을두고있었다.1992년11월미국의회의아·태소위원회(위원장스티븐솔라즈StephenJ.Solarz의원)는북핵문제에대해청문회를개최했다.나는참고인으로초청을받았는데,그때나와같은자리에서발언한전문가들(나를빼고는모두미국인들이었다)중에약3분의1은당장북한을공격해야된다는입장이고,다른3분의1쯤은그래도외교적으로해결해야된다는입장이었다.나머지3분의1쯤은중간입장이었는데,당시미국의강경분위기에나는상당히경악했다.p.88~89

1994년6월당시군사적인긴장이어느정도였느냐의문제가상당기간동안논란의대상이되었다.1991년걸프전에서전쟁준비를맡았던게리럭(GaryLuck)장군이주한미군사령관을맡아미국의군사력을강화하는임무를수행하는한편,동해에서미해군이항공모함등을배치하며북한에무력시위를벌이는가운데CNN등세계언론은한반도에서의전쟁가능성을심각하게다루고있었다.한국에서는한쪽에서‘미국이한국과충분한협의없이한반도를전쟁위기로몰아갔다.’라는비판이있었고,그러한비판은그후10여년에걸쳐수그러들지않았다.p.103

김영삼대통령은정치권에서본인의정치적라이벌은물론이려니와야권의지도자로있을때최고권력자에대해서도뚝심있게자기의지를관철해온경력이있기때문에상당히자신감을가지고다가올정상회담에임했다.대통령은‘김일성은자기가북한에서수령이고어버이라고하지만,내가그친구는문제없이상대할수있다.’라는자신감을내비치곤했다.p.111

결국,마지막순간까지김영삼대통령은흔쾌히예스(Yes)를한건아니었다.하지만어떤의미에서는우리가미북협상을그렇게흡족하게여기고있지만은않다는사실을보여주는것도그나름대로의미나가치가있다고나는생각했다.무슨일이든겉모습보다는내용이중요하지만외교에서는형식이나모양새가중요할때도있다.마지못해억지로떠밀려하는것같은모습을보이는것은바람직하지않지만,때로는‘우리가이것을아주감지덕지받아들이는것은아니다.’라는태도를보여줄필요도있는것이다.p.118~119

어떤관점에서제네바합의는‘성공했기때문에실패한’사례라고볼수도있다.제네바합의에서북한이핵개발을중지하는대신우리가중유나경수로등을북한에지원해야하는상황에서북한이완전히핵을포기하는단계까지몰렸기때문에오히려제네바합의를깨고2차북핵위기로간것으로본다면제네바합의자체가상당히효과적이었기때문에오히려북한이그것을위반하는쪽으로간것이아니겠는가.p.129

노무현대통령이반미주의자아니냐고의심하는사람들도있었고,노무현대통령이반미바람을타고당선되었다는사람들도있었다.그래서‘누군가가이러한‘슬리퍼리슬로프(slipperyslope:미끄러운비탈길)’에서한미관계가미끄러져내려가는것을막을필요가있지않느냐.’하고생각하던때였다.사정이그럼에도노무현후보에게투표도하지않은사람이그를대표해서주미대사가된다는사실에선뜻마음이내키지않아서그자리에서는즉답을피했다.그런데그날오후에내가주미대사로내정되었다고언론에보도되었다.p.166

노대통령이나를주미대사에임명한데는몇가지목적이있었다.첫째,부시행정부에자신은반미주의자가아니며미국과좋은관계를갖기를원한다는메시지를전하는것이었다.둘째,미국이북핵문제에과잉반응하지않도록하고한반도에서무력충돌을방지하는것이었다.노대통령에게는두번째이유가가장중요했다고생각한다.p.168~169

부시대통령이김정일에대해부정적인언급을하자노무현대통령은“나도김정일을생각하면짜증이납니다.”라고맞장구를쳤다.부시대통령은한반도의평화와안보그리고비핵화에대한미국의굳은의지를재천명했다.부시대통령은또노무현대통령에대한친근감을강조하기위해‘대화하기쉬운사람(easymantotalkwith)’이라고표현했다.안타깝게도이표현은노무현대통령이미국에쉽게양보했기때문에나온말이라며국내일각에서트집을잡는근거가되기도했다.p.181~182

미국사람들이노무현대통령을평가할때“그의행동은언사보다는훨씬좋다(Hisdeedsarebetterthanhiswords).”라고표현하기도했다.예를들면한미FTA를추진했다든지,이라크에파병을했다든지,또는소위‘전략적유연성’문제에대해서양해를했다든지하는것들이대표적이다.그런중요한(critical)결정과관련하여나는기회있을때마다노대통령을설득하기위해서“미국에대해레버리지(leverage:영향력)를가지려면이러한문제에서미국에협조적인결정을내리는것이좋겠습니다.”라고말하곤했다.p.18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