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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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문 - 에세이소설의 장르적 의미
홍성암

이번 작품집에서는 ‘에세이소설’이란 표제로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에세이소설’이란 에세이와 소설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근래에 자주 말해지는 장르의 통합개념과도 유사하다. 즉 새로운 유형의 장르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기왕에 행해지고 있는 소설의 다양한 양상을 에세이와 관련하여 통합의 모양으로 묶어 본 것이라 하겠다.
작가가 소설을 창작할 때 가장 처음으로 행하는 작업은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천착하는 것이다. 자신의 둘레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구체적 사물과 추상적 사상, 그리고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관계양상의 파악을 통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즉 이 우주에서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의문에서부터 인간의 존재 이유 등을 성찰하는 과정을 통하여 삶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그런 가치 추구의 방편으로 표현하게 되는 언어는 대체로 수필의 영역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수필은 모든 글쓰기의 기초며 기본이다. 그런데 그런 수필로 전달할 수 있는 외형적 사실은 완벽하기 어렵다. 우주의 진실은 언어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비유나 상징 같은 수사적 언어와 더불어 픽션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특히 전달의 본체를 감동과 더불어 전달하는데는 픽션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것이 곧 소설의 몫이다.
따라서 ‘에세이소설’은 수필 영역이 해결하기 어려운 상상적 진실을 전달하는 꼭 필요한 영역이다. 필자는 이런 영역을 수필 유형 내지 꽁트 유형으로 묶어서 다루었다. 수필과 꽁트의 분류는 화자의 설정이나 글의 종결부분에 극적반전을 설정하는 방법상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서술방향에 있어서나 태도에 있어서 거의 동일하다. 즉 수필에 허구를 가미하거나 꽁트에 사실성을 강화할 경우에 ‘에세이소설’로 통칭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이런 수필, 꽁트 유형의 에세이소설을 심화 확대하면 내적독백체의 심리소설과 자서전적 전기체소설 유형이 된다. 내적독백체의 서술은 진솔한 에세이의 모습일 수가 있고 마찬가지로 자서전적 전기체소설도 서술방법에 있어서 수필적 성격이 매우 농후하다. 즉 심리소설이 인간 내적 심리의 서술에 속한다면 전기체소설은 인간 외적 현상의 서술이다. 즉 인간의 내면과 외형을 극단적으로 세밀하게 사실화하여 밀도있게 서술하게 되면 ‘에세이소설’ 양식이 될 것이라는 견해다.
이러한 분류는 특정학자의 전문적 분류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 필요성에 의한 것이니만큼 앞으로 많은 분들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방법을 ‘에세이소설’이란 장르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더 많은 토론의 여지를 남긴다고 하겠다. 새로운 장르의 창출이라기보다 소설을 처음 써 보려는 초심자들에게 자기표현의 방법으로 접근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에세이소설’이란 문학적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필적 서술에다 픽션의 적절한 활용을 추가하는 모양새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을 극단적으로 객관화하여 모든 인류의 체험으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공감을 이끌어내게 된다. 내 체험이 인류의 전통으로 전승되기 위해서는 현재적 우주의 공간과 과거부터 전승되는 전통의 관습까지 모두 수용하고 보편화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 그리하여 개인의 경험이 인류의 관습으로 흡수되고 역사적으로 전승될 때 진실의 견고한 틀을 갖게 된다. ‘에세이소설’이 다른 문학장르에 비해서 독자들에게 매우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런 태생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린다.
저자

홍성암

*홍성암은1942년강원도강릉에서태어났다.
*강릉사범학교를졸업하고,한양대학교대학원국문과에서석,박사과정을수료하고〈한국근대역사소설연구〉(1988)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
*1980년에〈겁화경(劫火經)〉으로월간문학지신인상을받았고,1981년에〈조기(弔旗)〉가현대문학지에추천완료되어소설가로문단에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최고위원,한민족문화학회회장등을역임했고동덕여자대학교국문과교수,총장직무대행을역임했음.
*단편집으로〈아직도출렁이는어둠을〉(1981)〈큰물로가는큰고기〉(1988)〈어떤귀향〉(1997)〈모깃불〉(2001)〈영진리마을의개〉(2008)〈영진리블루〉(2018)가있고꽁트집으로〈다리가없는통닭〉(2008),중편집으로〈가족〉(1999),대하역사소설로〈남한산성〉(전9권)(1992)이있다.그외의장편소설로〈세발까마귀의고독〉(2003)〈한송사의숲〉(2018),〈피안으로가는길〉(2020)이있다.
*한국소설문학상(1997),한국비평문학상(2003)둔촌이곡문학상(2017),녹색문학상(2018)등을받았다.

목차

서문:에세이소설의장르적의미/5

1부
강릉남대천의은어떼 /10
어머니의꿈/16
숨어서피는작은꽃들 /22
언덕위의작은땅 /27
평범한작은생활/31
새로운가족 /38
작은고추 /48
황교장과깡패두목/54
한점바둑돌의사색 /61
한글의우수성/67
대학진학의열망과대학교수/71
대학교의혼란과총장직무대행 /81
어느화가의죽음/86
달리던기차도멈추게한송별연/90
은사님의뒷모습/100
혜산박두진선생님 /109
문단데뷔와창작동인 /116
유금호의〈속눈썹한개뽑고나서〉/121
종교문인회와장백일교수 /125
강릉사범학교그리고강릉문인들/127
한민족문화학회의창설과기대/132
성년식파티/135
고향의꿈 /140
아파트 /147
다리가없는통닭/153
바보식당 /160
검은나비/166
사랑의통과의례/172
파리들의웃음소리 /178
미루나무와까치집/184
귀성(歸省)버-스/189
건망증 /195
모기한마리/201
법과인정 /209
황소의반란/213
전쟁이야기/220
행운의겨울등산 /227

2부
한줄기햇살이되어/234
빗줄기속에서 /243
지리산물기둥/256
불면증/264
생명서설(生命序說) /278
환상과환청 /302
저승언저리 /315
의식(意識)의저쪽 /339
그대의콧구멍/369
완행버스/강원도①(1960년대)/392
움직이는산,또는제물길찾기/417
붕새의출현과그울음소리 /434
아버지의땅/459

*장르경계허물기와에세이소설/김봉진/528

출판사 서평

장르경계허물기와에세이소설
-홍성암작가의또다른작품세계
김봉진(문학평론가)

이번에펴내는홍성암작가의소설집《불면증》은1부와2부로나뉘어져있다.1부는수필,꽁트형태를띤소설작품들로이루어져있고,2부는심리소설과전기소설로이루어져있다.특히1부에실려있는작품들은작가와관련맺은사람들이나사건들에대한내용이중심을이루고있어서작가개인의내면세계를잘보여주고있다.이처럼작가의자전적인내용을담아그린작품들을작가는‘에세이소설’로이름짓고있다.이들작품들은어떻게보면색다른형식의소설양식을제시하고있는작품들이라고할수있는데,일본의‘사소설’형식을띤소설이라고할수있다.
1920년대일본에서서양소설의영향을받아쓰여지기시작된‘사소설(私小説)’은1920년무렵에서양의사실주의와자연주의문학이일본에들어왔을때일본의일부작가가자연주의문학의연장선에서자기내면의체험을자연주의소설형식으로쓰기시작하면서나타났다.그뒤유행처럼수많은일본소설가들이그런형식의작품을소설로발표하기시작하였고,일본근대문학을대표하는독특한문학형식으로자리잡게되었다.이처럼‘사소설’은작가자신의체험과내면을사실적으로드러내는자전적인내용을담고있는데,자신의실제경험과감정,인간관계,심리적고뇌등을작가가거의그대로작품화하고있다.즉,이들작품들은허구보다는사실적인내용을많이담고있으며주로작가자신의고백과반성,자기폭로가중심을이루고있다.
이같은일본의사소설이지닌특징으로는작가자신이실제로겪은연애사나개인의가난이나병력을비롯하여가족관계와친구관계를거의그대로다루고있다는점이다.즉,이들작품들은작가가겪고있는현실상황을더중시하면서내면고백적성격을지니고있다.특히죄의식이나삶의무력감,그리고성적욕망등을솔직하게드러내고있는이들작품들은외적인사건보다내면의심리변화를중시한다.또일반적인소설형태인기승전결의방식을따르지않고작가내면에흐르는의식의변화를중요시하면서내밀하고솔직하게작가의내면세계를나타내고있다.이같은경향을보여주는대표적인소설로는시마자키도손(島崎藤村)의《신생(新生)》과시가나오야(志賀直哉)의《암야행로(暗夜行路)》,다자이오사무(太宰治)의《인간실격(人間失格)》을들수있다.
우리나라에서는작가개인의내밀한삶의모습을그린소설작품들이1980년부터조금씩나타나기시작하였다.이러한경향에대해평론가김윤식이문제제기를하면서약간의논쟁이일어나기도했지만,크게문제가되지는않은채지나갔다.1980년대김윤식은황순원에쓴일부소설작품에대해‘합리적인논리를바탕으로하는소설세계에서는결코용납될수없는소설형식’이라고비판하였고,황순원은이에대해‘합리적인논리를바탕으로하는세계에서용납될수없는것을다루는것이소설’이라며김윤식의논리를반박하기도했다.김윤식이‘합리적인논리’의틀로소설을보는것에대해황순원은‘소설이보여주는비합리적인세계가은유적이고상징적인진실을드러내는것’이라며비판한것이다.
1990년대에최인훈은기행문이나일기를소설형식으로발표하는등소설형식에대한다양한장르적실험을시도하였다.이에대해서도김윤식은전통적인소설장르의틀에서벗어나소설형식의본질을흐리고있다고비판하였다.특히1990년대에발표된최인훈의소설작품《화두》에대해김윤식은소설가소설로불리고있던작가자신을소재로한이같은자전적인소설을‘소설이아니다’라고까지비판하였다.
이같은논쟁이일부있긴했어도,소설장르에대한다양한시도는여러소설가들에의해서계속이어져왔고,특히자전적인내용을소설형식으로발표하는경향은계속되어왔다.2024년에노벨문학상을탄한강도2018년에‘하얗다’는주제를중심으로자전적인경험과추억을수필형태로써서묶은《흰》을소설로발표하기도했다.이처럼우리문학계에서는자전적이거나수필형태로이루어진작품들을소설로발표하는일이있어왔는데,이번에발표된홍성암의에세이소설집《불면증》도그러한경향을이어받았다고할수있다.
에세이소설집《불면증》1부에실린작품들은작가가살아온과정에서겪었던개인의경험을바탕으로하고있는데,이들작품중에서〈강릉남대천의은어떼〉〈어머니의꿈〉〈숨어서피는작은꽃들〉등은고향에서겪은경험을다룬작품들이고,〈대학교의혼란과총장직무대행〉〈어느화가의죽음〉〈달리던기차도멈추게한송별연〉〈은사님의뒷모습〉등은스승과제자로이어지는학교사회의경험을,〈문단데뷔와창작동인〉〈강릉사범학교그리고강릉문인들〉등은동료작가들인벗과의경험을,〈고향의꿈〉〈다리가없는통닭〉〈바보식당〉〈파리들의웃음소리〉〈미루나무와까치집〉등은우리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의모습을다루고있다.그리고2부에서는개인의심리와가족사를소재로하여개인의내면에작용하는심리를사람간의관계와의식의흐름관점에서묘사하고있다.그중에서〈불면증〉〈환상과환청〉〈완행버스/강원도①〉같은작품들이인물들의내면심리를다루고있다면,〈붕새의출현과그울음소리〉〈아버지의땅〉은인물들의전기적삶을그려보이고있다.이처럼작가자신의다양한경험세계나상상적세계를진솔하게드러낸이번작품집은작가의자서전적인소설집이라고도부를수있다.
홍성암소설가는이번에자서전적인경향의작품들을모아묶어펴내면서에세이와소설을결합시켜‘에세이소설’이라는표현으로또하나의장르실험을시도하고있다.이때문제가되는것은에세이와소설을구별짓는요소인상상력과허구성을어느한도까지정할수있을까하는문제라고할수있다.소설은상상력과허구성을요구하는장르인반면에에세이는자기내면의경험과사실성을요구하는장르이기때문이다.평론가김윤식이소설가개인의체험이나고백을표현한소설인소설가소설또는자기고백소설을두고소설로서의자격을문제삼았을때바로이점을지적한것인데,이것을장르확산이나장르융합으로다르게볼수있지않을까생각한다.
에세이와소설을결합시킨이러한‘에세이소설’이우리소설의폭을넓히는길이될것인지아님하나의흐름으로지속되다가끝나게될것인지는작가의노력도필요하지만독자들의호응여부에달려있지않을까생각한다.고려시대나조선시대에쓰여진많은글들이시대상황과독자들의반응여부에따라생성과소멸이되면서작품에대한평가가달라진것처럼,결국독자들의반응여부에따라장르의생성과소멸이이루어지기때문이다.